146화
* * *
“와!!!!!!!!!!!!!!!!!!!!!!!”
다시 한번 펼쳐지는 한일전에 세간의 관심이 높아졌다.
선우와 마키토의 이름을 연호하는 이들로
경기장은 터질 것 같이 시끄러웠고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성용과 마사키의 대결에서 일본이 졌기에
이번에는 일본인들도 작정을 하고 준비를 해왔는지
관중석에서 북을 치고 대형 플래카드를 펄럭이며 응원해댔다.
그러나 한국도 만만치는 않았다.
일본이 소리를 높여 응원할라 치면
응원가를 더 크게 불러 그들의 목소리를 묻었고
북을 칠라치면 높고 째지는 소리의 깽과리를 쳐대 방해했다.
대단한 신경전 가운데 선우와 마키토가 필드에 올랐다.
“임선우!!!!!! 파이팅!!!!!!!!!!!!!!”
“쓸어버려!!!!!!!!!!!”
“조선 놈 따위 죽여 버려!!!!!!!!!!!!!”
이제는 악을 쓰며 응원하는 일본인들과 한국인들로
관중석은 후끈하다 못해 뜨거워졌고 분위기는 점차 험악해졌다.
곳곳에서 몸싸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당연히 한국인과 일본인의 싸움이었다.
대회 주최 측이 이를 막으려 가드를 내보내려 하자,
마키토가 심판에게 마이크를 달라 해 발언했다.
“조용히 해라. 여긴 일본이 아니다.”
소요(騷擾)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키토의 도발.
“처참히 짓밟아 줄 테니 조용히 앉아 응원이나 하도록.”
“우와!!!!!!!!!!!!!!!!!!!!!!!!!!!”
“푸핫. 제법이군.”
마키토의 쇼맨십에 한성이 웃음을 터뜨렸다.
도발이라고는 하나 폭동으로 이어질 뻔한
관중들의 싸움에 찬물을 끼얹어 그들을 진정시켰고
그들의 에너지와 이목을 경기로 집중시켰다.
예사 인물은 아닌 셈.
선우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씩 웃어 보였다.
일본인들의 함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한국 관중들은 이에 야유를 해댔지만
일본인들의 함성을 덮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선수 제자리!”
유의사항을 설명한 심판이 소리쳤다.
심판의 말에 선우와 마키토는 자리로 돌아갔고 경기를 준비했다.
차칵.
마키토가 검을 꺼내 들고 휙 휙 돌리며 손을 푸는 동안
선우는 검을 뽑기는커녕 이렇다 할 만한 행동 하나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경기 시작!!!!!!”
쾅!
선공은 마키토였다.
발구름과 함께 빠른 속도로 선우를 향해 달려가는 마키토와
그저 가만히 이를 바라보는 선우의 시선 사이에 불똥이 튀었다.
“호오. 날 상대로 여유란 말인가.”
순식간에 좁혀진 거리.
차칵.
마키토가 선우를 내리치려 한 발 내딛는 순간
검집을 잡고 있던 선우의 왼손 엄지가 동전을 튕기듯
검의 콧등을 때렸고 검은 순식간에 앞으로 튕겨져 나갔다.
튕겨져 나간 검의 손잡이를 오른손으로 잡은 선우가
달려오는 마키토를 향해 뽑아낸 검 그대로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태산 가르기.”
후웅.
카가가가가가가가각!!!!!
빠르게 날아간 참격에 마키토가 두 칼을 들어 막았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와 함께 불똥이 무수히 피어올랐다.
쾅!!!!!!
인상을 찌푸리며 막아 낸 마키토가 이를 옆으로 쳐내자
참격에 필드의 한 귀퉁이가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삭.
‘음?!’
분명 1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시야에 있던 선우였다.
‘생각보다 몸놀림이 재빠르군.’
후웅.
등덜미로 미세히 이는 바람에 마키토가 재빠르게 몸을 돌려
내리치는 선우의 칼을 마주쳐냈다.
차창!!!!!!
마키토가 쳐내는 힘에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힘을 받아 빙글 돈 선우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제법이군.”
“너야말로.”
“그럼 이것도 받아 보도록.”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선우가 가볍게 검을 들어 올리고 내리쳤다.
어린아이라도 할 수 있는 단순하기 그지없는 동작.
그러나 그 단순한 동작 안에는 검의 묘리(妙理)가 담겨 있었다.
‘…이건 위험할지도 모르겠군.’
검에 실린 기운을 알아본 마키토가 황급히
검을 x자로 교차해 들어 올렸고 다가올 충격에 대비했다.
쾅!!!!!!!!!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는 것이라 믿을 수 없는 충격과 소음이 일었다.
경기장과 관중석 사이에 방어선이 꽤나 흔들렸다.
“크윽….”
검과 검이 만나 이루어지는 팽팽한 힘의 줄다리기.
까가가가각!!
불똥이 튀어 오르고 소름 끼치는 쇠 철판 긁는 소리가 들렸다.
위에서 짓누르는 선우와 아래에서 이를 받치는 마키토의
시선이 공중에서 부딪치자 불꽃이 튀는 듯했다.
“굉장하군. 천검이란 이름이 괜히 나온 게 아니야.
이 좁은 한국 땅에도 꽤나 쓸 만한 검사가 있었나. 후후.”
진심인 듯 마키토가 중얼거렸다.
“과찬이군. 광검(狂劍).”
그랬다. 마키토의 이명은 미친 검. 광검이었다.
수많은 마물과 그에게 대립하는 헌터들을 향해
미친 듯 휘날리는 그의 검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챙!
마키토가 강하게 힘을 주어 선우를 밀치고는
오른손의 검을 고쳐 잡아 회전하며 선우의 복부를 베어냈고
왼손의 검으로는 회전력을 더해 선우의 목을 그어냈다.
캉 카강!
“시도는 좋았지만, 예상했던 바라 말이지.”
선우가 가볍게 마키토의 검을 쳐내며 중얼거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뺀질거릴 수 있는지 두고 보자.”
“얼마든지.”
그 뒤로는 마키토의 일방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양팔을 휘두르며 폭풍처럼 내리치고 베는 마키토의 검에
선우는 꽤나 놀란 모습이었다.
그의 검은 과감했고 또 파격적이었다.
일정한 검로나 초식이 없어 보이는 것 같았음에도
그의 검에는 분명한 길과 방향이 있었다.
상대를 죽이는 것에 최적화된 검이 그것이었다.
특별할 것도 화려할 것도 없는 몸놀림이었지만,
불필요하다거나 쓸모없는 동작은 하나 없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간결한 검격들이었다.
검을 맞대며 선우가 놀란 것은 또 있었다.
그의 검은 이도류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 중 하나인 빠른 공격을 위해 경량화한 검이 아니었다.
검신의 두께도 두꺼웠고, 길이도 정상이었다.
심지어 선우의 애검보다도 두께가 좀 더 있어 보였다.
한 번, 한 번의 공격이 묵직했고 날카로웠으며 치명적이었다.
마키토는 일반 사람이었으면 극복해내지 못했을 이도류의 단점을
헌터가 되어 비약적으로 상승한 악력과 근력, 체력으로 보충해냈다.
단순히 힘만으로 친다면 마키토의 힘이 선우보다 강하리라.
어지러이 휘두르고 베고 찌르는 마키토의 검에
점점 선우도 힘이 부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일본 국가 대표 검사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시험 삼아 확인할 계획으로 그의 검을 받았건만,
이제는 점차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그는 수백 합의 검을 맞부딪치며 나누었음에도
지친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 비해 힘이 빠지거나 속도가 느려진다든지의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점점 더 강하고 빠르게
선우를 내리치고 후려치며 허점을 찾아댔다.
거리를 넓히려 선우가 마키토의 검을 밀치고 빠르게 자리를 옮겨도
마키토는 쉽게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마키토 또한 빠른 속도로 자리를 옮겨 끈질기게 따라붙었으니까.
‘쳇. 쉽지 않군.’
선우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았고, 공격의 주도권을 뺏겼다.
짜증이 밀려오는 선우였다.
얼마 전에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 있었다.
한성과의 대련이 그것이었다.
‘허나….’
한성에 비하면 마키토는 쉬운 상대였다.
한성은 더 빠르고, 훨씬 변칙적이었으며
더욱 강한 힘으로 자신을 한계까지 밀어붙였으니까.
그런 한성을 뛰어넘고자 선우는 부단히 노력했고
기본에 기본을 더해 가혹할 정도로 더욱 기본에 집착했다.
결과적으로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성장해왔다.
‘이한성 헌터에 비하면… 이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지….’
“왜. 슬슬 힘에 부치나?”
마키토가 입가에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
“웃기는 소리. 내 목표는 너 따위가 아니다. 광검.”
“그런 소리는 나를 이기고 나서나 해도 늦지 않다. 천검.”
“슬슬 마무리 지을 것 같습니다.”
둘을 지켜보고 있던 한성이 중얼거렸다.
“그래?”
한성의 말에 성용이 답했다.
“네.”
“누가 이길 것 같은데.”
“음… 방심만 하지 않는다면 알파 길드장이 이길 겁니다.”
“…이긴다고? 천검이…? 저렇게 두드려 맞고 있는데…?”
성용이 이상하다는 듯이 한성의 말에 반문해왔다.
성용의 말대로 선우는 일방적인 마키토의 검격에
수세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검만 쳐내고 있었다.
또, 선우의 몸에는 미세하나 분명 상처가 하나, 둘 늘어나고 있었고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단 한 번의 어그러짐만 있어도 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상황.
그럼에도 한성은 선우가 이길 것이라 한다.
“내기하시겠습니까?”
한성이 빙긋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니. 뭐. 거. 굳이 그러고 싶진 않네. 험험.”
자신만만한 한성의 꼬리를 마는 성용이었다.
‘흠… 한성 군 말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어떻게 저 상황에서 활로(活路)를 찾을는지 원….’
선우와 마키토를 바라보는 성용의 눈이 가늘어졌다.
“후욱… 후욱… 후욱….”
캉 카가가강 캉캉!
“자신만만하던 사람 어디 갔나. 조용하군.”
거친 숨을 토해내며 미친 듯 몰아치는
마키토의 검을 막아내던 선우의 눈빛이 달라졌다.
‘지금!’
캉!!!!!
“크악…!!!!”
카가강….
내리치는 마키토의 왼 검을 올려치고
그의 손이 이에 튕겨져 올라간 틈을 타 빠르게 손목을 그어 내렸다.
잘려진 손목과 놓친 칼이 필드 바닥을 나뒹굴었고,
잘린 절단면에서는 피가 솟구쳤다.
마키토는 당황한 듯 뒤로 빠르게 물러나 거리를 두려 했지만
이번엔 선우가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낭아!!”
늑대의 이빨이라는 그 이름처럼 거칠게 인 검기의 폭풍은
마키토를 향해 빠르게 폭사되어 나아갔다.
늑대가 짐승의 고기를 씹듯 검기의 폭풍은
단단한 필드의 바닥을 씹어대며 마키토를 향해 나아갔고
이를 피하거나 막는 것은 불가능이라 판단한 마키토 역시
불안정한 한 손으로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오니(Oni, 鬼)의 숨.”
휘두른 그의 검에서 새파랗게 시린 검기가 발했다.
그의 대표적인 기술이랄 수 있는 오니의 숨이
불안정한 형태와 모습으로 나아갔다.
휘몰아치는 낭아의 한가운데로 나아간 마키토의 검기는
성난 바다 위에 한 조각 뗏목에 지나지 않았고
결국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한 채 갈기갈기 찢겨 사라졌다.
“크아아아아악!!!”
낭아가 마키토를 지나고 관중석에 부딪치자 굉음과 함께
방호가 흔들렸고 이내 서서히 사라져갔다.
마키토의 몸은 낭아에 난자당해 엉망이었다.
방어구는 모조리 찢겨 떨어져 나갔고,
날카롭게 베인 것 같은 수백의 생채기에선 피가 흘러내렸다.
……카가강….
요란한 소리와 함께 마키토의 손에서 검이 떨어져 내렸다.
“…내가… 졌다.”
털썩.
마키토는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미야 마키토. 전투 속행 불가능. 임선우 선수 승리!!!”
“와아아아아아아아아!!!!!!!!!!!!!!!!!!!”
심판의 선언과 동시에 관중들의 함성이 터져 올랐고,
스크린에는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선우의 얼굴이 비쳤다.
마키토에게로 의료진과 힐러들이 붙어 빠르게 치료했고,
뒤이어 애림이 도착해 그에게 힐을 불어 넣었다.
생채기는 빠르게 아물었고, 깔끔하게 잘렸던 그의 손목은
어느새 붙어 원상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선우가 그의 안위를 걱정하며 괜찮은 거냐고 애림에게 묻자,
애초에 너무나 깔끔하게 절단된 상태여서 오히려 붙이기 쉬웠다며
걱정할 필요 없다는 말을 해왔다.
그제야 선우는 안도했고 자신의 승리를 만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