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 * *
‘거북이처럼… 길어야 10분…이라고…?’
성용은 경기장으로 걸어가며 한성의 영문 모를 말을 곱씹었다.
‘한성 군이 허튼소리를 할 인물이 아니야.
분명… 분명히 그 말에 뭔가 뜻이 있을 거야.’
한성이 자신에게 힌트를 준 것이라 생각하며
이리저리 열심히 머리를 굴려 봤지만,
성용의 둔한 머리로는 힌트를 쉽게 해석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 이와 관련된 수많은 생각들이 돌아다녔지만
이거다 싶을 정도로 명확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후… 부딪쳐보면 알겠지.’
성용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필드로 올라갔다.
심판의 주의사항을 듣고 인사를 마친 둘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 심판의 경기 시작 신호를 기다렸다.
‘후우… 집중하자. 어차피 저치는 공격밖에 할 줄 모르니.
이에 하나하나 대응하다 보면 뭔가가 떠오르겠지.’
성용이 숨을 들이마시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마사키 또한 징인지 마력석인지가 박힌 가죽장갑을 어루만지고는
두 주먹을 쥐었다 펴며 자신의 상태를 체크했고
언제든지 달려나갈 수 있도록 가벼이 몸을 풀었다.
“시작!!!!!!”
쾅!!!!!!
심판의 경기 시작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마사키가 맹렬한 기세로 성용에게 돌진해 왔다.
성용에 비해 반도 안 될 몸을 가졌음에도
마사키가 보이는 폭발적인 기세와 속력은 성용을 웃도는 듯 보였다.
‘빠… 빠르다…!’
기겁한 성용이 급히 철의 벽을 시전하자 성용의 방패 위로
회백색의 기운이 단단하고 날카롭게 어리기 시작했다.
“어딜!!”
철의 벽이 완전히 그 모습을 갖추는 데 걸리는 시간이
채 1초가 되지 않았음에도 마사키는 그 짧은 시간 만에
15미터의 거리를 주파해 성용에게로 주먹을 휘갈겼다.
쾅!!!!!!!!
폭탄 주먹이라는 그의 별명답게 마사키의 주먹이 닿자마자
성용의 방패에서 폭약이 터지듯 크게 폭발이 일었다.
‘크윽… 미친…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군.’
충격에 두 팔을 비롯한 온몸이 저린 성용이었다.
“호오… 꽤나 단단하군.”
한 번에 박살 나지 않은 성용의 방패와 철의 벽에
마사키가 진심으로 감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박살 내주지.”
말을 마친 마사키의 두 주먹에 붉은 기운이 어렸다.
쾅쾅쾅쾅쾅쾅쾅!!!!!!!!!
“크으으윽….”
마사키가 성용의 방패를 냅다 후려갈기기 시작했다.
특별한 기술이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단순히 훅과 스트레이트를 연속해서 꽂을 뿐.
계속된 타격으로 방패에서 비롯된 폭발과 화염이
마사키의 안면과 상반신을 불태웠음에도
그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계속해서 성용의 방패를 후려갈겼다.
거의 없다시피 한 눈썹도, 폭발과 화염으로 녹아버린 모공도,
까맣게 그을린 그의 상반신도 왜 그런지 이해가 갔다.
‘빌어먹을… 꼼짝도 못 하겠군.’
상정 외의 무력에 놀란 성용이 방패를 더욱 강하게 쥐었다.
마사키의 완력만 해도 대단한 수준이었는데
그의 주먹에서 피어나는 폭발의 충격은 가히 함포 수준이었다.
그 어떤 마물의 공격이라도 흘리거나 쳐내 반격하거나
후방의 딜러들이 공격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
성용 자신이었음에도 지금의 성용은 방패를 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만큼 마사키의 휘몰아치는 맹공은 매서웠고 또 강했다.
폭발을 이겨내지 못한 마사키의 장갑은 너덜너덜해지다 못해
해어지고 찢겨지고 뜯겨져 불에 타들어 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사키는 성용의 방패를 부수는 것만이
자신의 삶의 가장 큰 목표인 듯 미친 듯이 때려댔다.
“와!!!!!!!!!!!!!!!!!!!!!!!!!!!!!!!!!!!!”
“마사키!!!!!! 마사키!!!!!! 마사키!!!!!!!!”
“박성용!!!!!!!!!!!!!!!!!!!! 정신 차려!!!!!!!!!!!!”
마사키의 화끈한 공격에 관중석의 열기도 후끈해졌고,
성용을 응원하던 이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던 경기장은
성용을 욕하는 목소리들로 점차 채워져 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마사키 쪽으로 승기가 기울었다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게 선명하던 철의 벽이 계속된 마사키의 강공에
초반과 달리 계속해서 형태도 색도 흐릿해져 가고 있는 데다
반격은커녕 마사키의 공격도 겨우겨우 막아내는 모습이었으니
누가 봐도 마사키가 승리할 것이라 예상했으리라.
5분쯤 지났을까.
성용의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저러다 터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붉어진 얼굴과
부서질 정도로 악문 이, 전신에서 비 오듯 흐르는 땀,
보기 애처로울 정도로 크게 부들거리는 양팔과 다리까지.
그는 마사키의 주먹을 간신히 버텨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거북이 새끼마냥 숨어 있는 게 다라니.’
잠깐… 거북이…?
한성의 힌트를 떠올린 성용의 머리가 순간 맑아졌다.
우지직….
‘제기랄.’
그때, 충격을 버텨내지 못한 방패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눈에 띌 정도로 큰 균열은 아니었지만, 분명한 균열이었다.
이러한 방패의 변화를 마사키도 느낀 듯 씩 웃으며 중얼거렸다.
“끝이 보이는군. 덩어리.”
그러나 웃는 마사키의 상태도 딱히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화염과 폭발 때문인지
붉게 물든 얼굴과 거칠게 몰아쉬는 숨이 그 상태를 말해줬으니까.
게다가 마사키의 주먹이 떨리고 있었다.
해지고 찢어진 장갑 사이로 흘러내리는 피가 보였다.
제아무리 자신의 힘이라도
충격을 온전히 견뎌내지 못한다는 뜻이리라.
‘설마…? 길어봐야 10분이라는 뜻이…?!’
이러한 마사키의 변화에 성용은 한성의 말이 퍼뜩 떠올랐다.
마사키가 제아무리 강한 파괴력과 공격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신체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이는 무용지물인 것이었다.
한성이 말했던 10분이라는 시간은
아마도 마사키가 폭발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거나
자신의 주먹으로 인한 충격을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인 듯했다.
“흡….”
마사키가 숨을 들이마시고는 다시 공격해왔다.
쾅쾅쾅쾅쾅쾅!!!!!!
‘역시!!’
성용의 눈이 반짝였다.
성용은 자신의 예상이 맞았음을 깨달았다.
내리치는 마사키의 주먹은 전보다 힘이 줄어 있었고,
파괴력과 폭발력은 눈에 띌 정도로 줄어있었다.
뿐만 아니라 너무 빨라서 눈으로 좇기조차 힘들었던
마사키의 주먹이 이제는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철의 벽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해서 쏟아부어야 했던
마력도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었다.
성용의 완력만으로도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방패를 들고 있는 것만 해도 버겁던 방금 전과 달리
이제는 조금씩 마사키의 공격을 흘리거나 쳐낼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한 발 나아가 성용은 마사키의 힘이 다하길 기다리며
마력을 모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후려칠 한 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 거북이처럼이라는 말이 이런 뜻이었어.
거북이가 껍데기 속에 숨어 위험을 피하듯
방패 뒤에 숨어 상대의 힘이 다하길 버티고 버텼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 먹이라는 뜻이었던 게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성용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이런 성용의 변화를 눈치챈 듯 마사키의 눈에 당황의 빛이 어렸다.
‘빌어먹을, 눈치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던 상대가
갑자기 마력을 풀고 방패로 자신의 공격을 흘리며 웃는다.
당황할 수밖에.
사실 마사키는 이제껏 자신의 공격을
5분 이상 버텨낸 존재를 보지 못했다.
그게 같은 헌터이건, 마물이건.
자신의 폭발적인 주먹 앞에 모두 무너지거나 부서졌고
몇 번 버틴다 해도 함포 수준의 파괴력과 휘몰아치는 화염에
겁을 내며 항복하거나 도망가기 바빴으니까.
그러나 눈앞의 성용은 달랐다.
이를 악물고 끈질기게 버텼다.
무식한 자신의 공격에 힘겨워했을지언정 겁내거나 피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지금처럼 때를 기다리며 한 방을 노렸다.
마치 발톱을 숨긴 한 마리 곰처럼.
‘쳇. 어쩔 수 없군.’
마사키가 물러서기 시작했다.
쾅!!!!!!
마사키가 방패를 후려치자 큰 폭발이 일고 화염이 둘을 감쌌다.
화염을 틈타 마사키가 성용의 곁에서 벗어나기 위해
빠르게 발을 옮겼지만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성용이 아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성용이 불타오르는 방패를 마사키에게 내던지고는
성난 멧돼지마냥 마사키에게로 달리기 시작했다.
공기를 가르고 빠르게 다가오는 방패에 당황한 마사키가
이를 피하려 했지만 방패는 이미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뿐만 아니라 설령 이를 피한다 해도
뒤에서 무시무시한 기세로 돌진하는 성용이 있었기에
옆으로 피하거나 도망치는 것은 더욱 위험했다.
“제기랄!!”
쾅!!!!!!
성용에게 최후의 일격을 날릴 요량으로 힘을 모으던 마사키도
자신에게 날아오는 방패를 쳐내는 데 이를 사용해야만 했고
결국 힘을 모으지 못하고 다가오는 성용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나 먹어라!!!!!!!!!!”
쾅!!!!!!!!!
쾅!!!!!!!!
달려오던 성용이 내지른 주먹과
이에 반사적으로 내지른 마사키의 주먹이 엇갈렸다.
성용의 주먹에 어린 푸른 마력의 기운과
마사키의 주먹에 어린 붉은 화염의 기운이
서로의 얼굴에 적중하며 요란한 폭발 소리와 함께 터졌다.
폭발과 함께 일어난 검은 연기가 가시자
필드에는 쓰러진 둘의 모습이 보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관중석에서는 폭발음보다도 더 큰 함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 이런 순간에는 어떻게 판정이 되는 건가요?”
“이런 경우는 복싱 룰과 같습니다. 주심이 숫자를 세는 동안,
먼저 일어나서 파이팅 자세를 잡는 그 사람이 승자가 됩니다.
아 말씀드리는 순간 주심이 카운팅을 시작합니다.”
“하나!”
“둘!!”
주심이 숫자를 세자 기절한 듯 쓰러져 있던 둘이
꿈틀거리며 그 소리에 반응했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 박성용!!!!!!!!!!!”
“마사키 뭐 하냐!!!!!!!!!! 일어나 이 새끼야!!!!!!!!!!”
콰당.
쿵.
둘 다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는지 일어났다 넘어지길 반복했고,
관중들은 소리 높여 둘을 응원했다.
응원에 보답이라도 하듯 둘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고
주심이 일곱을 외칠 시점에 둘 다 파이팅 포즈를 취했다.
“와!!!!!!!!!!!!!!!!!”
관중석에서 함성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둘에게로 다가가 의사를 확인하던 주심.
“경기 속행 가능합니까?”
성용의 눈에 라이트를 비추며 안구 검사를 하던 주심에게
성용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주심은 경기 속행이 가능하다고 판단했는지 알았다며
마사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제기랄. 더 이상… 더 이상은 못 움직여. 빌어먹을….
저 괴물 같은 새끼. 제발 쓰러져라. 쓰러져라. 쓰러져!!!!’
성용은 흐릿해져 가는 의식을 붙잡으며 마사키를 바라보았다.
마사키에게 당도한 주심이 똑같이 안구 검사를 하던 도중.
갑자기 머리 위로 엑스자를 그리며 마이크를 잡고 선언했다.
“마사키 선수 기절! 경기 속행 불가능. 박성용 선수 승리!!!”
“우와!!!!!!!!!!!!!!!!!!!!!!!!!!!!!!”
폭발적인 함성과 함께 마사키는 그대로 쓰러져 내렸고
성용은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숨을 헐떡거렸다.
“이겼다!!!”
성용이 두 손을 번쩍 들어 올리며 소리쳤고
이에 관중들은 성용의 이름을 연호하며 환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