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14화 (114/336)

114화

* * *

위협이 사라졌음을 확인하자 군 당국은 빠른 철수와 함께

혹시 모를 재침입에 대비해 밀려 내려온 군사 경계 구역을

본래대로 복구하느라 온 힘을 쏟았다.

북한도 괴멸된 마당에 북쪽으로 밀고 올라가

중국과 러시아가 땅의 분할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북한의 땅을 선점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정부 측 의견도 있었지만, 이는 한성에 의해 저지당했다.

아직 게이트가 완벽히 제거된 것이 아니기에

괜한 욕심을 부렸다 화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후 한성은 복구에로 눈을 돌렸다.

한성의 제안으로 길드장들 모두

각자의 힘을 활용해 군부대와 시설의 복구에 힘썼고

군 장병들만으로라면 몇 달은 족히 걸렸을 복구를

단 하루 아니, 반나절 만에 완료했다.

성용과 선우의 도움으로

파괴된 전차와 장갑차들의 잔해는 빠르게 치워졌고

엎어진 벽들이 치워지거나 세워졌고 보강대가 더해졌다.

또 부서지고 무너진 부대들과 지형들은

벨루몬과 형우의 손짓 몇 번에 모두 수복되었다.

마물들과 북한군의 위협이 사라지자

지뢰지대와 장애물 지대도 빠른 속도로 문제없이 설치되었다.

지치거나 다친 이들은 재권의 버프와

타우한, 애림의 치료 덕에 금세 기운을 되찾을 수 있었다.

모든 일들의 마무리가 끝나고 남은 것은

죽은 이들에 대한 장례 절차였다.

죽은 이들은 병사와 부사관, 장교를 합쳐 자그마치 332명.

길드장들이 투입되기 전인 네 번째 침입 때 죽어 나간 희생자였다.

던전 브레이크치고는 적은 인원이 죽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결코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온전히 사체가 남아 있는 이들은 그 수가 반도 채 되지 않았고

나머지 병사들은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벨루몬의 힘을 빌려 몸이 남아 있는 자들의 사체는

한곳으로 모아 깨끗하게 몸을 닦아 낸 뒤

부대 내에 정렬해 자리를 마련해 두었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해주었다.

사체가 남아 있지 않는 자들은 혼(魂)을 불러내

그것이 꿈의 형태든, 혹은 만남의 형태이든 잠깐이나마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에게 작별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일련의 과정이 끝나고 길드장들은 다시 서울로 복귀했다.

던전 브레이크 발생으로 전선을 지키다 죽은 병사들과

마물과 싸워 이긴 길드장들에 대한 이야기는

매스컴을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물론 마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말은 쏙 빼놓은 채로.

* * *

던전 브레이크가 종결된 그 이튿날, 강건의 집무실이 북적였다.

한성을 비롯한 길드장 전원이 이번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에 대한 논의를 위해 모여서였다.

“중국 측은 어떻게 됐습니까.”

선우가 물어왔다.

“중국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듯 보이네.”

강건이 담담하게 답했다.

“아직도… 싸우는 중이란 말씀입니까?”

선우가 이해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건에 물었다.

“뭐. 그렇지.”

“우리에 비해 헌터 수도 월등히 많은데 어찌….”

“북한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거라 생각 못 했겠지.

그렇기에 이에 대한 대비가 되지 않아서일 테고.

설령 했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빨리 자신들의 국경에

마물들이 당도할 줄 몰랐을 걸세.”

“하지만 군 병력은…?”

“우리도 겪어봐서 알지 않나. 언데드의 끈질김과 무서움을….

군 병력만으로 막아내긴 무리였겠지.

그렇다고 미사일이나 전투기로 폭격하기에는 국경 지역이다 보니

러시아나 미국이나 주변 국가의 눈치가 보였을 테고.”

“아….”

“중국 본토에서 병력과 헌터가 급파되었지만

국경까지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꽤나 많이 소요되었다네.

그 사이 마물들은 진군을 계속했고

진지를 구축하고 요새를 만들기까지 했으니

이를 뚫는 게 어려운 것은 당연하지 않겠나.”

“국경에 배치된 헌터들은요?”

“안타깝게도 하나 같이 마스터급 아래의 하급 헌터뿐이었다네.

게다가 마법과는 거리가 먼 탱커나 전사들이 대부분이었어.

막아낼 수가 없었겠지.”

“…아무리 그래도….”

선우가 말끝을 흐렸다.

“이는 중국 측이 맡은 전령 때문일 걸세.

꽤나 높은 등급의 네크로맨서라 하더군. 트롤 주술사라나.

리치 킹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그 역시 대단한 사령술사야.

소환에 저주, 마법까지 능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더군.

꽤나 막아내기 까다롭고 힘들었을 게야.”

“…흠.”

“게다가 자네들 말대로라면 마신에게 힘을 얻어

상정 외의 무력을 보였을 테니 더욱 쉽지 않았겠지.

그래도 도움을 청하거나 별말 않는 걸 보니

본토에서 급파된 헌터들이 잘 해내고 있는 것 같아.”

“그렇군요.”

“하아… 모르긴 몰라도 중국 측이 공략에 성공하고 나면

자신들의 공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점유권을 요구할 텐데….

그게 걱정이구만… 아마도 국가적인 마찰을 빚을 테지.

한동안 시끄러울 것 같긴 하네만… 그건 나중 문제고….”

삑.

강건이 리모컨 버튼을 누르자 창문이 불투명한 상태가 되었다.

이에 외부에서는 집무실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는 불이 꺼지며 한쪽 벽면에 걸린 스크린에

영상과 사진들이 쫙 펼쳐졌다.

영상과 사진들은 각 국가에 발생한

게이트와 이로 인한 참상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한성의 눈이 반짝였다.

“지금부터 말하는 것은 대외비이네.

그 누구에게도 심지어 길드원들에게도 말하지 말길 바라네.”

“예.”

강건의 엄중한 태도에 모든 길드장들이 동시에 답했다.

“자네들 말대로 평양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시점과

동일한 시간대에 전 세계 모든 국가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더군.”

“…제기랄. 역시 그놈이 한 말이 맞았군.”

성용이 손톱을 거칠게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전령은 우리에게만 온 게 아니었네.”

강건이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전령의 말대로

항복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었네.

다만 의사소통 자체를 거부하고 싸운 국가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 조금 마음에 걸리긴 하네만….

이야기를 주고받았더라도 저항하고 싸웠을 거라 믿어야겠지.”

“후… 그럼 대화한 국가도 있었습니까?”

“한국, 미국, 러시아, 인도, 중국, 영국, 일본이 다였네.”

“…적군요.”

“그래… 그래서 걱정이네.

전쟁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국가들에게 알렸을 때

이들이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흠….”

“우리는 청와대에 연락을 넣어 미스터 블루와 이야기를 마쳤네.

미디어와 언론은 물론 인터넷 매체도 미리 손을 써 장악해 뒀고.”

“미스터 블루라 함은…?”

“대통령의 코드 네임이라네.”

“아….”

한성의 질문에 강건이 대답했다.

“그 어떤 대형 신문사나 잡지사조차도

이번 사건에 대해 깊게 파고들 순 없을 게야.

기사라 해봐야 목숨 걸고 국가를 수호한 자네들과

군인들의 노고에 대한 칭찬과 찬양들뿐이겠지.”

“그 말씀은 지금처럼 마물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을 거라는 말씀인가요.”

선우가 중얼거렸다.

“맞네. 하지만 당분간만이야. 세상이 준비될 때까지만.

나도 사람들을 속이고 싶지 않네. 천검. 하지만 생각해보게.

준비도 되지 않은 이들에게 마물들이 전쟁을 준비한다느니

인류가 멸망할지 모른다느니 이런 터무니없는 얘기들을 하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어떻겠는가.”

“….”

“세상에 멸망이 찾아왔다며 혼란해질 걸세.

빼앗고, 약탈하고 방화하고 살인하고. 미쳐 돌아갈 게 뻔해.”

“흠….”

길드장 전원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 말에 틀림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이는 비단 우리 한국에만 해당하는 일이 아니라네.”

“그럼…?”

“전령과 대화한 모든 국가의 수뇌부들과 이야기가 된 바라네.

그들도 이렇게 하기로 했고.”

“흠… 그렇군요.”

“그런데… 궁금한 것은… 모든 국가가 싸움에서 이겼습니까.”

한성이 중얼거렸다.

“유감스럽게도 그렇지는 않네.”

“하면….”

“대부분의 나라가 승리하거나,

타국의 원조를 받아 가까스로 막아내기는 했네.”

“그건 다행이군.”

성용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프리카는 아니야. 지금 현재 아프리카는

대륙의 90%가 마물들에 의해 점령당해 있는 상태일세.

UN 소속 헌터와 군 병력이 급파되어 막아내고는 있지만….

지금 이 기세라면 나머지 또한 조만간 점령당할 게야.”

강건이 침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래서 올해 개최될 헌터 배틀 때 국가 대표들을 모아놓고

전쟁 대비에 대한 것과 아프리카 탈환에 대한 안건을

회의 주제로 상정할 생각이야.

머리를 맞대면 뭔가 해답이 나올 테지.”

“아니. 이 상황에 대항전을 개최한단 말이요?

제정신입니까? 협회장? 노망났소?! 영감?”

성용이 흥분하며 소리쳤다.

“아니. 이럴 때일수록 더욱 필요하네. 잘 생각해보게.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네. 이에 대한 준비가 절실히 필요해.

각국의 군사력이야 100%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데이터가 있네.

하지만 헌터들의 전력은 정확하지가 않아.

각국의 자발적인 협조가 있지 않는 이상 파악이 어렵지.

어느 국가가 충분하고 어느 국가가 부족한지

파악하고 대비하고 준비해야 해.”

“…국가 전력이랄 수 있는 헌터들의 전력을

다른 국가들이 순순히 알려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형우가 중얼거렸다.

“그래. 그 말이 맞네. 그러니 이번 대회를 통해

가늠해보고 알아보고 대화해보겠다는 게야.

이렇게 한꺼번에 모든 국가들이 모일 기회가 몇 없으니까.”

“…그 말씀이 틀렸다고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만….

전쟁이 나리라는 우리의 말을 다른 국가들이 들어나 줄까요?”

애림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뭐. 우리 한국만 하는 이야기라면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며 저들도 들어주지 않을 걸세.

허나 미국과 러시아 등 헌터 강국들도 함께 하는 말이니

쉽게 흘려듣지는 못할 게야.”

“그럼 전쟁이 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한 증거는

어떻게 제시하실 생각이십니까?”

재권이 날카롭게 물어왔다.

“간단하네. 자네들끼리 수신했던 이어폰과 이어 마이크의 기록,

그리고 군부대에 있는 액션 캠과 영상들을 증거로 낼 걸세.

그리고 우리뿐만이 아니라 전령들과 접촉한 다른 나라들의

기록과 영상들도 함께 제시할 걸세. 그 정도면 충분하겠지.”

“…음….”

길드장들 전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이 아니야.

연속된 던전 브레이크로 모두가 불안해하고 있네.

그런데 이런 시점에 국제적인 행사를

그것도 갑자기 취소한다면 국민들의 반응이 어떻겠는가.

무슨 일이 생겼구나, 일이 심각하구나, 큰일이 났구나.

하는 생각을 먼저 할 걸세. 불안이 불안을 낳을 거야.”

“흠….”

“내 말이 틀렸다면 기탄없이, 가감 없이 의견을 이야기 해주게.

들어보고 타당하다면 충분히 수용하겠네.”

“…없습니다.”

“없수.”

“그게 현재로서는 최선인 것 같네요.”

“….”

“없습니다.”

“…진행하시죠.”

“그럼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그대로 진행하도록 하겠네.

아까도 말했지만 이는 대외비이네.

이 사안에 대해선 자네들도 당분간은 함구(緘口)하도록. 알겠나.”

“네.”

“좋아. 다들 가서 쉬도록 하게나. 조만간 국가 대항전 건으로

다시 호출할 때,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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