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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라스트 엠페러-113화 (113/336)

113화

* * *

오우거의 네 눈이 크게 흔들렸다.

“데스나이트 쪽도 마무리된 것 같군.”

한성의 시선 끝에는 사선으로 검을 쳐올린 선우가 보였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선우의 검로(劍路)대로 몸이 갈려

쓰러져 내리는 마지막 데스나이트가 있었다.

“자. 이제 대화할 자격을 갖춘 건가? 다시 대화를 시작하지.”

한성이 담담히 말했다.

[건방진. 벌레 따위가.]

[이 정도로. 이겼다고. 생각?]

[죽인다. 죽일 거다.]

[찢어서. 씹어 먹을 거다.]

녀석의 지팡이가 다시 한번 발전기 가동되는 소리와 함께

밝게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거기서 조금만 더 힘을 쓴다면 네놈 왼쪽 대가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갈 거다. 약속하지.”

한성이 중얼거렸다.

한성의 말대로 왼쪽 대가리의 이마 정중앙에

붉은 점 하나가 미동 없이 박혀 있었다.

티에라의 것이리라.

이것이 무엇인지 알 리 없는 오우거는

본 드래곤을 쓰러트린 자의 것이리라 판단하며

끌어올린 마력을 서서히 줄여나갔다.

눈앞에서 터져 오르는 푸른 화염을 직접 목격했기에

그 정확성과 파괴력을 알고 있었으니까.

지팡이의 빛이 줄어들고 웅웅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내. 방호가. 더 빠를까.]

[네놈. 수하의. 화살이 더 빠를까.]

비릿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오우거였다.

“뭐. 일단 화살은 아니지만… 내 쪽이 더 빠를 것 같군.

설령 네놈이 더 빠르다 해도 방호 따위야 깨부수면 그만이다.

이제 주절거리는 건 그만하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해라.

쳐 죽여 버리기 전에.”

한성에게서 폭사된 살기가 오롯이 오우거에게로 향했다.

“웃….”

멀리서 지켜보던 재권, 지근거리에서 이를 보던 성용과 애림,

공중에서 이를 내려다보는 형우도 한성의 진한 살기에 몸을 떨었다.

죽음.

순간적으로 오우거의 머리에 스쳐 지나간 단어였다.

[위험하다.]

[한낱. 인간이. 이런. 힘을.]

“넌 누구냐.”

[위대한 마신의. 전령.]

[인간 세상에. 종말을. 전한다.]

“전령…? 좋다. 그럼 마신이란 놈은 누구냐.”

[이놈!!!]

[더러운. 인간 놈. 감히.]

[죽고 싶나. 벌레 같으니.]

[그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라.]

“한 번만 더 내 주군께 망령되이 행동한다면

네놈들의 혀를 뽑아 잘근잘근 씹은 뒤 찢어 개에게 주겠다.”

어느새 나타난 건지 벨루몬이 한성의 뒤에서 으르렁거렸다.

[망자의 왕….]

[어째서. 당신이.]

[누구보다. 고귀한 자.]

[당신이. 왜. 이딴. 벌레를.]

오우거의 표정이 이상했다.

마치 자신의 우상을 바라보는 듯한 눈이었다.

“…망령되이 행동하지 말라 했거늘.”

벨루몬의 안광이 불타올랐다.

“중력 강화.”

[으헉.]

[무겁…다.]

쿵….

무방비한 상태에서 갑자기 주어진 중력은

녀석으로서도 감당하기 버거운 모양이었다.

수 cm 정도 바닥에 박힐 만큼 강한 중력이 녀석을 짓눌렀지만

녀석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를 견뎌내고 있었다.

“….”

자존심이 꽤나 상한 듯 벨루몬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중력 강화.”

“중력 강화.”

“중력 강화.”

“중력 강화.”

쾅! 쾅! 쾅! 쾅!

거대한 망치가 내리쳐지듯 녀석들에게로 중력이 겹쳐져 내렸다.

버티던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몸을 반으로 접고, 무릎을 꿇더니

결국 땅에 고개를 처박았다.

쾅!

우드득.

[크아아아악.]

[그만… 그만!!!]

바닥에 처박힌 녀석들의 입에는 흙더미가 가득했고,

고통스러운지 비명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형우의 눈이 커졌다.

리치 킹이 강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것뿐이었다.

공략 못 할 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눈앞에 있는 저 리치 킹은 차원이 달랐다.

중상급 마법에 속하는 체인 라이트닝을

편하고 쉽게 사용할 만큼의 막대한 마력.

기존의 체인 라이트닝을 훨씬 상회하는 위력과

이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운용능력.

오우거가 마력장을 펼치거나 마법을 캐스팅하기도 전에

상대를 제압해버리는 빠른 판단력.

적은 마력으로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상대를 짓누르고 압도하는 천부적인 마법 자질.

뭣 하나 부족함이 없는 그였다.

그런 리치 킹을 수하로 삼은

한성의 강함은 과연 어디까지란 말인가.

“이것이 네놈이 주군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자세이니라. 명심하고 또 명심해라. 어리석은 자여.”

벨루몬이 씹어 뱉듯 녀석들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하문(下問)하소서. 주군.”

그제야 자신의 할 일이 끝났다는 듯

벨루몬이 한성의 뒤로 자리를 옮기며 중얼거렸다.

“가끔은 과하다 싶군. 벨루몬.

그러나 잘했다. 마침 목이 아프던 차였으니.”

“모든 것은 주군의 뜻대로.”

“자. 다시 질문을 시작하지.”

한성이 벨루몬에게 손짓하자 중력의 강도를 줄인 벨루몬이었다.

[퉷. 더러운. 인간 놈. 꺼져라.]

[굴복하지. 않는다.]

한성을 향해 고개를 든 오른쪽 대가리가 침을 뱉었지만

침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중력에 의해 떨어져 내렸다.

“감히 네까짓 게….”

“흠. 아직도 정신 못 차렸나.”

딱.

탕.

푸확.

[미카사!!!!!!!!]

한성이 손가락을 튕기자 왼쪽 대가리의 이마 가운데에

티에라의 총탄이 적중했다.

방호를 펼칠 새도 없이, 마력을 끌어 올릴 틈도 없이

녀석의 대가리 한가운데에 큰 구멍이 뚫렸다.

그대로 즉사해 버렸는지 왼 대가리의 고개가 축 늘어졌고

오른 대가리는 고통에 눈이 뒤집혔다.

왼 대가리의 이름이 미카사였는지,

오른 대가리가 미친 듯 그 이름을 외쳐댔다.

압도적인 무력의 차이.

“대답은 입 하나만 있어도 충분하겠지.”

[스킬: 왕의 위압을 발동합니다.]

[대상 ‘트윈 헤드 오우거’가 위협을 느낍니다.]

[대상 ‘트윈 헤드 오우거’가 공포를 느낍니다.]

[대상 ‘트윈 헤드 오우거’가 전의를 상실합니다.]

[헉… 헉… 헉….]

고통으로 충혈된 두 눈과 흘러내리는 침이

녀석의 상태를 말해 주고 있었다.

“자. 그럼 묻겠다. 마신의 진짜 목적이 뭐냐.”

[말할 것. 같나.]

“지루하고도 긴 고통을 선택하겠다는 건가.”

한성의 등 뒤로 수백에 달하는 나이프가 어지러이 날아다녔다.

나이프에는 보랏빛 예기와 격전의 그림자가 어려 있었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 해볼 테면. 해봐라.]

한성을 똑바로 쳐다보며 오우거가 중얼거렸다.

으득.

살점이 뚫리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렸다.

녀석의 거대한 송곳니가 혀를 꿰뚫었다.

녀석은 고통스럽지도 않은지 아니면 죽음을 각오라도 한 것인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과 핏발 선 눈으로

한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시 한번 혀를 씹었다.

푸확.

말과 함께 녀석은 한 움큼의 피와 설육을 뱉어냈다.

[약속의 시간. 도래했다.]

[지옥에서. 기다리겠다. 인간.]

말을 마친 녀석은 의식을 잃은 듯, 고개를 떨궜다.

‘약속의 시간…?’

“…끝인가?”

선우가 중얼거렸다.

그 말을 반박이라도 하듯 녀석의 온몸이 검은 문양과 글자들로

빽빽하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벨루몬. 폭발에 대비하라.”

“지엄하신 왕의 명을 따릅니다.”

벨루몬의 손짓에 절대 방어 여러 겹이 녀석의 사체를 둘러쌌다.

빠르게 채워진 검은 문양과 글자들은

어두운 기운을 흩뿌리며 요동치기 시작했고

녀석의 몸은 온통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녀석의 몸은 한 점 남김없이 새까맣게 뒤덮였다.

선우가 다가가 이를 살피려 했지만,

느껴지는 위험하고도 어두운 기운에 한성이 그를 말렸다.

순식간에 10미터에 달하는 녀석의 사체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벨루몬.”

“하명하소서.”

“녀석의 혼을 불러낼 수 있겠나.”

“불가합니다. 주군.”

“어째서지.”

“녀석은 혼과 육체가 이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사라져?”

“트윈 헤드 오우거가 강하다고는 하나

녀석이 보인 무력은 정상 범주를 한참 벗어났습니다.

정확한 바는 아니나 미천한 저의 식견으로는

힘을 대가로 마신이란 자에게 자신의 혼과 육체를 바쳤을 겁니다.

그렇기에 녀석의 육체와 혼은 계약 당사자인 마신에게 갔을 것입니다.”

“흠….”

한성은 지팡이에 박혀있던 투박한 마력석을 떠올렸다.

* * *

쉭.

“어디 다녀오셨습니까?”

녀석의 사체가 사라지자마자 잠깐 어디 다녀온다는 말과 함께

바로 모습을 감췄던 한성이었다.

그랬던 한성이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림자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선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평양 쪽을 다녀왔습니다.”

“네?!”

“게이트가 사라진 것을 확인해야 하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답하는 한성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거리가 상당할 텐데….”

“저에게는 벨루몬이 있습니다.

그에게 이 정도의 일은 딱히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싱긋 웃으며 답하는 한성이었다.

“아….”

“늦게 나타났던 것도 혹시나 모를 마물들의 지원이나

보급이 있을까 정찰을 다녀오느라 늦었던 것이구요.”

“….”

놀란 표정의 길드장들을 보며 한성은 계속해서 담담히 말을 이었다.

“평양 상공에 나타났다던 게이트는 총 두 개였습니다.”

“…뭐요? 하나가 더 있다고?!”

놀란 성용이 진저리치며 소리쳤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나머지는 중국이 맡고 있는 모양이니까요.”

“후… 그건 다행이군.”

성용이 한숨을 내쉬었다.

“두 개 중 하나는 소멸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마도 오우거가 한 게이트의 보스 몬스터였을 겁니다.”

“그…럼… 남은 하나는…?”

“자세히 알아봐야 알겠지만, 중국 쪽 처리가 덜 된 모양입니다.”

“…그렇습니까.”

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전령은 뭐고 마신은 또 뭐랍니까.”

한성이 물었다.

“그게….”

형우는 그간 있었던 일들과 오우거와의 대화를 통해 알아낸 것을

한성에게 소상히 말해주었다.

[퀘스트 : 사건의 배후를 완료하셨습니다.]

[연계 퀘스트 : 숨겨진 단서의 실마리]

[퀘스트 내용 : 마신에 정체와 목적을 파악하시오.]

[수락하시겠습니까?]

‘수락’

‘…이 또한 자연스레 알게 되겠지.’

“전쟁이라… 흠….”

한성은 한참이나 말없이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논의가 필요하겠군요.”

“동감입니다.”

“동감이에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찬성했다.

“그나저나 듣던 것보다 더 대단하시더구랴.”

성용이 한성을 보며 중얼거렸다.

“뭘요. 아닙니다.”

“그나저나. 거 뭐… 어떻게 불러야 하나. 말이 어색해서 원….”

성용이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편하게 불러주세요. 길드장만 아니라면 뭐든 좋습니다.

길드장이라는 호칭만 들으면 소름 돋아서요. 어색하기도 하구요.

이한성 헌터도 좋고 한성아도 좋고. 한성 군도 좋습니다.”

“뭐. 그럼 나야 좋지. 하하하하.”

“그리고 아드님 일에 대해선 죄송합니다.”

한성이 가볍게 목례하며 중얼거렸다.

“아니우. 하하하하. 크게 다친 것도 아니거니와

별것도 아닌 제 아비 빽 믿고 설치다가 혼쭐난 거지 뭐.

오히려 한성 씨 덕분에 녀석이 정신 차린 것 같아서

내가 더 고맙수. 그날 이후 열심히 수련 중이우. 하하하.”

“그런가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마음이 편합니다.”

“거 그런데. 한성 씨. 그 수하들은 뭐요?

분명 한성 씨 수하라고 보고된 마물은 리치 킹 하나였는데.”

성용이 궁금하다는 듯 물어왔다.

“동료를 더 들였습니다.”

참으로 담백한 대답이었다.

“…대단하구려. 정말 대단해. 내가 틀리지 않았다면

그 동…료들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최소 언터쳐블 최상급에서 엠페러 정도는 되는 것 같던데….”

성용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저도 같습니다.”

마력에 민감한 형우와 재권이 동의하며 중얼거렸다.

“맞습니다. 엠페러 초입은 될 겁니다.”

“….”

경악할 만한 내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한성을 보며

길드장들은 입을 다물어야 했다.

침묵을 깨고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성용이었다.

“…후우… 거참… 대단하구랴. 길드원 중에 전투 가능 인원이라고는

슈페리어급 헌터인 곽한철 씨와 한성 씨 둘뿐인 신생 길드가….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이 가장 강하다니… 거참….”

입맛을 다시며 머리를 긁적이는 성용이었다.

“여러분께서 보유하고 계신 전투력에 비하면 보잘것없습니다.”

한성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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