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107화 (107/336)

107화

* * *

“이겼다!!!!!!!!!!”

방어 라인에서 군 장병들의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살았다며 눈물을 흘리는 자들과 얼싸안고 뛰는 자들,

기쁨의 환호성을 질러대는 이들로 방어선이 시끌시끌했다.

“허허. 거 참. 자식들. 그리 좋은가.”

장병들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던 성용이

전장을 휙 둘러보고는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우… 살벌하구만.”

성용의 말대로 전장은 난장판이었다.

전장 좌측은 선우의 검기 폭풍에 바닥이 1m 이상 파인 채로

위아래 할 것 없이 뒤집혀 완전히 새로운 지형이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마물들의 살점 조각이라든지, 사체라든지의

흔적은 하나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사라져 있었다.

검기의 폭풍에 모든 것이 갈려버린 것이리라.

처참한 것으로 치면 우측이 더 했다.

우측 지형은 포탄이라도 맞은 것마냥 완전히 뒤집혀있었다.

흙더미는 마물들의 피와 체액이 섞여서인지

온통 검붉은색이었고 곳곳에는 바싹 타들어 간 시체들이 즐비했다.

이에 시체 썩은 냄새와 번개에 구워진 살점의 냄새,

털이 그슬려 나는 단백질 타는 냄새가 온 천지에 진동해

역겹기 그지없었다.

“푸후우… 거 냄새 한번 지독하구만… 어우… 숨 쉬기가 어려워.

그 와중에 살아남은 놈들도 있네. 거 참 끈질긴 놈들이구만….”

성용이 중얼거렸다.

성용의 시선 끝에 신체 부위를 잃어버린 마물들이

부여받은 명을 수행하기 위해 나머지 한 팔로 기어 가거나

쏟아져 내리는 내장을 붙잡고 흐느적거리는 모습이 있었다.

“마무리하러 가시죠.”

숨을 고른 선우가 성용을 향해 중얼거렸다.

“오. 이제 좀 괜찮수? 갑시다. 그럼.”

스팟.

나머지 마물을 처리하기 위해 나서려던

성용과 선우의 앞에 형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대단하던데? 수고했어. 형우 씨.”

성용이 엄지를 올려 보이며 웃었다.

“수고하셨어요.”

선우도 옅은 미소를 머금고 말을 건넸다.

“아닙니다. 두 분이 더 수고하셨죠.”

형우가 짧게 답했다.

답하는 형우의 표정이 뭔가 이상했다.

“왜요?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형우의 표정이 이상한 걸 눈치챈 선우가 빠르게 물었다.

“…찝찝해서 말입니다….”

“찝찝… 하다구요?”

“예. 확실한 것은 아니나… 제가 생각하기엔….

마물들의 습격이 이것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뭐유?”

성용이 물었다.

“최전선에서 휘하 마물들을 지휘하고 있었어야 할

데스나이트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감춘 것도,

적장이라는 자가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은 것도,

적장이 제게 남긴 말도 그렇고. 뒷맛이 영 씁쓸합니다.”

“뭐라 했길래 그러는 거유?”

“이것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고….”

“에… 에피 뭐? 그게 뭐요?”

성용이 못 알아들은 듯 불퉁하게 물었다.

“본 요리가 시작되기 전에 주어지는 전채요리 같은 겁니다.”

선우가 대신 답해주었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2만이 넘는 그 마물들이

쉽게 말해서 그냥 맛보기에 불과했다는 거요…?”

성용의 표정이 굳어졌다.

“확신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럴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허… 참… 거 재권 씨 생각은 어떻수? 혹시 같은 생각이우?”

“유감스럽게도 그렇습니다.”

이어폰으로 재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빌어먹을.”

다 끝나고 집으로 복귀할 생각에

웃음 가득하던 그의 표정이 순식간에 구겨졌다.

“내 이제껏 수많은 던전을 공략 해왔지만

이렇게 마물 놈들이 많이 나온 건 처음이오.

그런데도 이게 끝이 아니라고?

전쟁을 준비한다는 말이 허풍이 아니었군….”

성용의 구겨진 표정이 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선 잔존 마물들부터 처리하시죠.”

꿈틀대는 좀비의 대가리를 쳐내며 선우가 중얼거렸다.

“후우… 그럽시다. 그래… 에이 썅….

오늘따라 마누라 드럽게 보고 싶네 거.”

성용이 마지못해 발걸음을 옮기며 중얼거렸다.

* * *

해는 뉘엿뉘엿 산을 넘어갔고

어느새 전장에는 어둠이 짙게 깔리기 시작했다.

시간은 마물들이 물러가는 시간인

4시를 훌쩍 넘어 어느덧 7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방어 라인에도 하나둘 불이 켜졌고

전조등과 탐조등이 켜져 환하게 어둠을 밝혔다.

“거 윤 총장님 쪽 애들은 뭐 찾은 거 있답니까?”

성용이 이어 마이크에 대고 중얼거렸다.

“아뇨. 없습니다. 야투경으로 전 방위를 살피고 있고

움직임 감지 센서, 열 감지 센서에 마력 감지 센서까지 탑재한

드론 수십 기를 운용 중입니다만 포착된 움직임은 없었습니다.

계속 수색하겠습니다.”

“거 잘됐구만. 수고해 주슈.”

성용이 만족의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으어어!”

콰직.

성용이 마지막 생존 구울의 대가리를 짓이겨 터뜨리고는 소리쳤다.

“마무리도 다 된 것 같고… 시간도 이미 지난 것 같은데,

우리도 이만 슬슬 쉬러 갑시다. 고기 구워서 밥이나 먹자고.

여유 된다 싶으면 소주 한잔 때려도 괜찮고. 하하하.”

“그러시죠. 장병들도 차단선 다시 복구한 것 같은데.”

크레모아와 지뢰를 재설치해 차단선과 장애물 지대를

복구 및 점검하고 있는 군인들을 보며 선우가 중얼거렸다.

“….”

“뭐… 찾은 거라도 있수?”

성용이 머리를 긁적이며 공중에 떠 있는 형우를 향해 물었다.

전 방위로 마력을 퍼뜨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적의 존재를 살피던

형우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을 뿐, 별다른 대답은 하지 않았다.

“쩝. 그럼 오늘은 이만하고 갑시다.”

성용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예.”

성용의 말에 동감이라도 하듯, 형우가 마력을 해제하려던 그때였다.

흠칫.

형우의 눈이 빠르게 숲을 향했다.

“뭔가 옵니다!”

좀처럼 언성을 높이는 법이 없던 형우의 언성이 꽤나 높아졌다.

“뭐요?!”

형우의 말 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희미하게 발소리가 들려왔다.

쿵… 쿵… 쿵… 쿵….

희미하던 발소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소리가 가까워질수록 땅의 울림도 커져만 갔다.

성용과 선우가 경계하며 발소리의 진원지를 날카로이 살폈고,

형우 또한 지팡이를 들어 언제라도 마법을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이에 놀란 방어라인에서도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어지러이 라이트를 비추던 중 소나무 군락지의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리는 것이 포착되었다.

10미터가 넘는 큰 나무들의 군락지였다.

쩌적….

고목들이 쓰러지고 나타난 건 10미터는 될법한 크기의 오우거였다.

그것도 머리가 둘이나 달린.

“…트윈 헤드 오우거.”

형우가 중얼거렸다.

두 개의 대가리 위에 각각 솟아난 자그마한 뿔.

험상궂게 생긴 얼굴에, 짙은 눈썹, 퀭한 두 눈.

코와 귀에 걸린 마물의 뼈 장신구.

무엇을 요란스레 먹었는지 피로 칠갑된 입가와

위로 날카롭게 솟아오른 누런색의 아래 송곳니.

황토에 가까운 피부색과

한눈에 보기에도 단단해 보이는 근육질의 몸.

각종 마물의 두개골과 송곳니를 이어 만든 화려한 목걸이에

짐승의 가죽을 덧대어 만든 하의.

양팔과 복부에 가득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의 그림과 글자.

물탱크 크기 수준의 마력석을 상단에 아무렇게나 박아 넣어

조악하다 못해 무식하기 그지없는 나무 지팡이까지.

녀석의 모습은 말 그대로 피에 취한 흉폭한 거인이었고,

전장에 있는 이들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을 만큼의 모습이었다.

녀석에게서 풍겨져 나오는 진한 살기로

온몸이 피에 적셔진 듯 찐득해지는 것만 같았고,

마력석이 품고 있는 강대한 마력에 숨 쉬기조차 어려웠다.

방어 라인의 몇몇 심지가 약한 병사들은

이미 거품을 물고 기절한지 오래였고, 심한 병사들은

오우거의 기세에 그대로 쓰러져 불안에 떨기까지 했다.

“빌어먹을… 저런 놈이 아직 안 나오고 버티고 있었단 말이야?”

성용이 인상을 쓰며 중얼거렸다.

“놈에게서 느껴지는 기운도 심상치 않습니다.”

선우가 함께 중얼거렸다.

‘그래… 이제야 들어맞는군.

오우거 녀석들은 타 종족과 교류를 하지 않으니

언어 구사 능력이 떨어졌던 것일 테고.

같은 목소리가 둘로 들렸던 것도, 대가리가 둘이니까 그랬던 거야.’

형우의 눈이 번뜩였다.

머릿속에서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하나둘 맞춰지기 시작했다.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자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나홀을

녀석은 선천적으로 두 개나 가졌으니 꽤 많은 마력을 가졌겠지.

하지만… 2만이 넘는 마물들을 소환하고 유지하는 것은 물론,

마물들을 반나절 만에 다시 소환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그렇다면… 저 마력석이 힘의 원천이라는 소리인데….

만약… 저것이 마신이라는 놈이 하사한 힘이라면…?’

퍼즐을 완성한 형우가 다급히 소리쳤다.

“이 녀석이 전령입니다!! 적장이에요!!!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입니다!! 전부 대비하세요!!!”

“너였냐? 그 새끼가? 너 이 새끼. 잘 만났다.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지 아냐? 오늘 뒤졌어. 너는.”

성용이 주먹과 주먹을 쾅쾅 소리 나도록 맞부딪치며 중얼거렸다.

선우 또한 조용히 칼집에서 칼을 밀어내며

당장이라도 녀석을 베어 낼 준비를 끝마쳤다.

형우 역시 조용히 마법 주문을 읊조리며 언제라도

오우거를 향해 마법을 내쏘아 낼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

이런 길드장들의 반응을 보고도 오우거의

두 대가리는 그저 씩 웃을 뿐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자신 있다는 뜻이겠지.

[어린. 마법사. 전쟁은. 시작됐다.]

[후회. 이미 늦음.]

[얼마든지 받아주지. 네깟 놈들의 도발 따위.]

오우거의 네 눈이 형우를 향했고 그들의 입가에는

왜인지 모를 진한 살기가 가득했다.

‘뭐지. 저 여유는.’

뭔가 이상하다 싶은 형우의 머릿속으로

다시 한번 오우거의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에피타이저는. 끝났다.]

[본격. 요리. 시작한다.]

[부디. 즐겨다오.]

[사실. 우리가. 더 즐기겠지.]

[가라. 마신 #%@#^의 군대여.]

[먹고. 마시고. 취하라.]

두 녀석의 말이 거의 동시에 들려왔다.

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사삭.

“쿠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녀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풀과 나무에 몸을 숨기고 있던

좀비와 구울들이 소리치며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빌어 처먹을!!!! 그렇게 죽였는데 또 있단 말이야?”

성용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마물들을 보며 소리쳤다.

“쿠워어어어억!”

뿐만 아니라 달려오는 마물 군단의 뒤로

사라졌던 데스나이트 12기가 포효와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배고픔. 강화. 분노.]

[너희에게. 내리는. 축복이다.]

[가라. 죽여라. 취하라.]

[먹어라. 마셔라. 즐겨라.]

지팡이의 마력석이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밝게 빛나더니

검고 기분 나쁜 마력이 안개처럼 피어났다.

피어난 안개는 마물의 대군에게로 가 빠르게 스며들었다.

녀석들의 눈은 피와 같은 색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으며

녀석들의 근육과 육체는 터질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오우거의 버프를 받은 것은 좀비와 구울 뿐만이 아니었다.

데스나이트들의 눈도 붉게 타올랐고,

녀석들의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탁한 마기의 농도도 짙어졌다.

“…오늘은… 밤이 길겠군. 제기랄.”

성용이 방패의 손잡이를 꽉 쥐며 중얼거렸다.

“데스나이트는 제가 맡겠습니다.”

선우가 발검하고는 빠르게 뛰쳐나가며 소리쳤다.

“그럼 제가 오우거를 맡죠.

오래 시간을 끌 수는 없을 것 같으니 빠른 조력을 부탁합니다.”

형우가 부유 마법을 시전해 오우거에게 날아가며 소리쳤다.

“아이 거 참… 제일 귀찮은 걸 나한테 짬을 때리나 거. 에이 씨….”

성용이 다가오는 좀비와 구울 군단을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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