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88화 (88/336)

088화

* * *

“저… 길드장님.”

양화가 어색한 표정으로 사무실 의자에 앉은 한성을 불렀다.

“아이. 누나. 거참 그렇게 부르지 말라니까요?

달라진 거 하나 없어요. 가족끼리 왜 이래 어색하게?”

한성이 기겁하며 대답했다.

“…정말 그래도 되나…요…?”

“에에? 또 그러네? 평소대로 하라니깐.”

“알…겠어. 하아. 힘들었다.”

양화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게 누가 그렇게 부르래?”

“아무리 그래도 이제 길드장이고 엠페러급 헌터고.

내 소속 회사 사장님인데 함부로 부를 수가 있니 어디.”

양화가 입을 삐죽거렸다.

“내가 꼬박꼬박 존대 받으려고 누나 데려왔는지 알아?

내가 누나를 왜 스카우트해왔는데.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일 처리를 그 누구보다 잘하니까 데려왔지.”

“그거야 그렇지만.”

“됐어. 하던 대로 해.”

“알겠어.”

씩 웃는 양화였다.

“협회에 연락해 봤어?”

“응. 협회 데이터베이스에 우리 길드 등록됐다고 하더라.

길드 등록에 관한 계약에 관한 모든 건 다 처리해 뒀어.”

“역시. 빨라.”

한성이 엄지를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리고 이번에 헌터 육성 계획의 일환으로

엠페러급의 헌터가 설립하는 신생 길드에 한해서는

1년 동안 세금을 면제해준다는 법 조항이 생겼던데?”

“그래?”

“어제 생겼대. 안 봐도 뻔해. 협회장이 너 대놓고 밀어주려나 보다.”

“그런가.”

“아 그리고 빠르면 내일부터 우리한테 게이트 할당해줄 거래.”

“오케이. 좋네.”

“그런데 우리는 길드원 안 뽑아?”

“응? 길드원? 왜?”

“아니… 그래도 명색이 길드면… 길드원들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야?

길드 사무실도 이렇게 넓은데….”

양화가 책상이 가득 놓여있는 휑한 사무실을 보며 말했다.

“나, 누나, 삼촌, 점주, 공방장. 벌써 다섯 명인데?”

“…그건 그렇지만….”

“게다가 내 수하들 셋에 둘 더 들어올 거고. 충분한데?”

“음….”

“됐어. 길드원이 더 필요하다 싶으면 내가 알아서 뽑을게.

아직은 사람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을 거야.”

“알겠슴다.”

양화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삼촌은?”

“아 아까 5대 길드에 떡 돌리러 갔어.”

“어유. 그냥 편지만 전해주라니까. 촌스럽게 떡은….

우리가 무슨 식당을 개업했냐. 아니면 이사를 왔냐.”

한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왜. 정감 있고 좋지 뭐.”

“그래. 뭐. 어휴…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아 대회까지 얼마 남았지?”

“29일.”

“흠. 아직 여유가 좀 있네. 게이트나 공략하러 가봐야겠다.”

“벌써?”

“놀면 뭐 해. 공방장 재료 조달해줘야지.”

“그럼 난 뭐 해?”

“누나는 여기서 놀아.”

“…놀라고?”

생각지 못한 한성의 말에 양화의 눈이 커졌다.

“어. 좀 있으면 누나 숨도 못 쉬고 일해야 해.

그때까지 충분히 놀고 실컷 쉬어. 알았지?

일 없어도 월급 꼬박꼬박 챙겨 줄 테니까. 열심히 쉬고 놀아.”

“…어? 어….”

농담하듯 웃으며 건네는 한성의 말이

조금도 농담 같지 않아서 소름 돋는 양화였다.

“다녀올게. 삼촌한테 게이트 공략하고 온다고 말해줘.”

“알았어.”

양화는 어째서인지 자신의 앞날이 그려져

일을 그만둬야 하나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 * *

“내일부터 게이트 할당될 텐데

뭣 하러 벌써부터 힘을 빼? 엠페러나 되는 고급인력께서.”

한성 담당 협회 요원 김현철이었다.

한성의 소환에 하던 일을 두고 남산으로 달려온 그였다.

“그냥 운동 좀 하려구요.”

한성이 몸을 풀며 대답했다.

“뭐. 그래 누가 말리겠냐. 입맛대로 골라봐.

회장님께서 너 원하는 대로 내주라고 하셨으니까.”

“음… 그럼. 일단 가볍게 근방에 있는 게이트 다 주세요.”

“…? 다?”

“네. 다.”

“어… 어 그래.”

“저번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하려구요.”

“어… F급 42개 E급 24개 D급 12개 C급 4개

B급 2개 그리고 A급 1개 이렇게 있어.”

“수가 전보다 훨씬 더 늘었네요?”

게이트의 명단을 보는 한성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 요새 이래. 무슨 징조인지….”

현철도 동의한다는 듯, 함께 얼굴을 찡그리며 말을 이었다.

“그나마 수도권에는 5대 길드… 아니지 이제 6대 길드구나.

너네 길드가 있으니까. 하하. 여하튼 6대 길드가 있으니

대응이 빠르고 처리가 금방금방 되는데. 지방은 난리라더라.

지방 거점 길드들이 열심히 공략하고는 있는데 힘든가 봐.

B급 이하는 그래도 어찌어찌 공략하긴 하던데

A급 이상은 힘들어하더라고. 협회랑 정부에 도움 요청하더라.”

“그래요…? 조만간 투어 한 번 가야겠는데.”

“어유… 그때는 나 말고 다른 사람 데려가.”

“하하. 생각해보구요. 그리고 A급이랑 B급이 있는데

아직 쉴드나 다른 길드들에 할당 안 됐어요? 이상하네?”

“다들 여유 없어.”

단정하듯 현철이 중얼거렸다.

“…왜요?”

“아까도 말했듯이 게이트 발생 수가 엄청 늘어서

자기네 길드 앞으로 할당된 게이트 처리하는 것만 해도

힘들어서 헉헉거릴 거다.”

“그래요? 알겠어요. 뭐 다 주세요. 그럼.”

“괜찮겠어? 전보다 더 많은데?”

“괜찮아요.”

“쓰읍… 뭐. 일단 알겠어.”

“벨루몬, 타우한, 티에라. 나와.”

“예. 주군.”

차원이 일그러지며 셋의 모습이 드러났다.

티에라의 오른손 중지에는

전에 본 적 없던 반지 하나가 끼워져 있었다.

공방장이 만들고 벨루몬이 마법을 부여한 아이템이었다.

반지는 굉장히 튼튼하다는 것을 빼고는 별다른 능력치가 없었고,

부여된 마법도 아공간 마법으로 비교적 간단했다.

“…친구가 하나 늘었네…?”

“네. 인연이 닿아서 후후. 근데 A급에 나오는 마물은 뭐래요?”

“아그니래. 협회 기록에는 A급 게이트라 써두긴 했는데

실질적으로는 S급 전투력이라나 봐.”

현철이 중얼거렸다.

“아그니라… 벨루몬 들어본 적 있나?”

“예. 알고 있나이다. 동부 용암지대를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계수만큼이나 오랜 시간을 살아온 자로 알고 있나이다.

본디 온화하고 따뜻한 성정을 가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마기에 정신을 빼앗겨 신격을 잃고 타락했다고 들었나이다.”

벨루몬이 답했다.

“흠… 그래? 강해?”

“…저도 직접 본 적이 없기에 잘….”

“너희는 알아?”

“모르오.”

“저도 이름만 들어봤어요.”

“흠. 알겠어. 게이트 공략 끝나고 합류하도록.”

“예.”

“음… 삼촌 협회 요원 둘 정도 더 있어야 되겠는데요?

하나는 박 실장님이면 될 거고 하나가 부족한데….”

“…어? 왜?”

“저는 B급이랑 A급 게이트 처리할 거고

벨루몬은 혼자서도 잘하니 삼촌이랑 보내고

타우한이랑 티에라는 박 실장님이랑 다니게 하려구요.”

“…어우. 바쁜 분인데 오시려고 할까.”

현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성이 휴대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삐빅.

“네. 박 실장님.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게이트 공략을 좀 하려 하는데 믿을 만한 사람이 없네요.

네. 김현철 요원은 이미 아까 전부터 나와 있으세요.

저는 박 실장님이 좀 나와 주시면 좋겠는데….

10분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삐빅.

“됐어요.”

“…너도 참… 대단하다. 협회 2인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굴리냐?”

기가 찬 듯한 표정으로 한성을 바라보는 현철이었다.

“아니 이게 뭐가 굴리는 거예요.

박 실장님이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부르라고 하셨는데.”

“어이고… 됐다. 모르겠다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현철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벨루몬 넌 C급 4개 D급 12개를 맡아라. 삼촌 따라다니고.”

“지엄하신 왕의 명을 따릅니다.”

“타우한 티에라 너희는 나머지 게이트 처리하고.”

“알았소 주군.”

“네. 주군.”

“하… 한성아. 나 저 친구들이랑 가면 안 될까?”

김현철이 한성의 옆으로 살며시 다가와

타우한과 티에라를 가리키며 귓속말했다.

“익숙한 사람이 낫지 뭘. 왜요. 쟤가 삼촌 괴롭혀요? 뭐라 해줘?”

“아… 아니야 아니야. 하지 마.”

한성의 말에 현철이 기겁하며 손을 급히 내저었다.

“그럼 됐네.”

“…간다 가. 아 그리고 B급 게이트 앞에 사람 하나 있을 거야.

내 후배 놈 하나 대기시켜놨어. 믿을만한 놈이야.”

“고맙습니다.”

“안내해라 인간.”

벨루몬의 안광이 번뜩였다.

“예… 여… 여기 좌표.”

좌표를 받아든 벨루몬이 몇 번 중얼거리더니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술식을 완성한 듯 한성에게 말했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어.”

차원이 일그러지고 현철과 벨루몬의 모습이 사라졌다.

얼마나 지났을까.

“길드장님!”

멀리서 박 실장이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아니… 천천히 오시지. 안 뛰어오셔도 되는데.”

“괜찮습니다. 차를 타는 것보다 이게 더 빠르니까요.”

“그런가요. 그리고 평소대로 불러주세요. 영 어색하네요.”

“후우. 알겠습니다.”

박 실장은 잠깐 숨을 몰아쉬더니

이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바로 했다.

“이… 자는…?”

박 실장이 티에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번에 연이 닿아서 만나게 된 새로운 동료입니다.”

“아… 그렇군요.”

“반갑습니다.”

티에라가 싱긋 웃어 보였다.

“아… 예 반갑습니다.”

티에라의 인사에 박 실장도 다급히 인사했다.

“손을 써놔서 녀석들과 대화하는 데 불편함은 없을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아 얘네가 지금부터 이 근방 E급 F급 게이트를 공략할 건데

거기에 보호자가 필요해서요. 얘네만 돌아다니면 좀 그렇잖아요.

게이트에 관한 건 현철 삼촌한테 물어보시면 명단 줄 겁니다.”

“아. 저번처럼 하실 생각이군요.”

“바로 아시네요.”

“동료가 늘었으니 분산시켜서 효율적으로 움직이실 계획이구요.”

“크… 역시.”

한성이 엄지를 들어 올려 보였다.

“알겠습니다. 고생해주십시오.”

박 실장이 웃으며 이에 화답했다.

“네. 그럼 이만.”

쉭.

그림자에 녹아 사라진 한성을 뒤로하고

박 실장이 웃으며 남은 두 마물에게 말했다.

“시작하실까요.”

* * *

한성이 도착한 B급 게이트의 앞에는

현철의 말대로 협회 요원 하나가 서 있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가 있는 모습이었다.

평소에 한성의 팬이기도 한 그였기에

기대감으로 얼굴이 붉게 상기된 모습이었다.

한성이 다가가자 그는 정중히 인사하며 한성을 맞이했다.

그는 자신의 신분과 임무를 망각하지 않았고

한성이 불편할 만한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

“반갑습니다. 이한성입니다.”

“여… 영광입니다. 길드장님. 협회 소속 요원 김주빈입니다.”

“그렇게 딱딱하실 필요는 없구요. 그냥 이한성 헌터라 불러주세요.

길드장은 아직 어색하고 낯 간지러워서 듣기 불편하네요.”

한성이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네… 네 알겠습니다. 패…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순수한 그의 모습에 웃음 짓는 한성이었다.

“후우… 그럼 설명 드리겠습니다. 오늘 공략하시기로 한 게이트는

B 최상급 하나, B 중급 하나. 그리고 A 최상급 하나입니다.

B급에는 트롤과 오크, A급에는 아그니가 서식 중입니다.”

“음…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주빈이 낯을 붉히며 답했다.

“그럼 여기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예. 건투를 빕니다. 이한성 헌터님.”

“후후. 고맙습니다.”

슥.

게이트 저편으로 한성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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