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86화 (86/336)

086화

* * *

“흐흐흠~”

집으로 돌아온 한성이 가장 먼저 한 것은

뜨거운 물이 가득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것이었다.

온기에 온몸이 느슨해지고 노곤해질 때쯤

욕조의 문밖에서 다급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똑.

“한성이냐?!”

“음… 어. 네. 삼촌.”

졸던 한성이 급히 대답했다.

철컥.

“이 자식이! 왔으면 왔다고 말을 해야지!!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너 휴대폰 내가 들고 다니랬지.”

곽한철이 욕실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어차피 게이트 안에는 전파 안 터지잖아요.

가져가 봐야 쓰지도 못하는데 뭘. 하아아암.”

한성이 늘어지는 하품을 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임마 그래도!!”

“아이. 알았어요. 알았어. 그래서 무슨 일 있었어요?”

씩씩거리는 곽한철에 한성이 멋쩍은 표정으로 답했다.

“내가 니 메신저도 아니고 아오… 메시지는 두 건이야.

하나는 공방장이 건물 지상층 완공되었으니 와서 확인해 보래.

둘은 협회장이 좀 보자고 하신다.”

“…그래요? 씻고 현장부터 들러야겠네.”

“그건 너 알아서 하고 얼른 씻고 전화나 한 통 해드려.

연락 목 빠지게 기다리시더라. 벌써 두 통이나 연락 오셨었어.

대한민국에서 협회장을 기다리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지.”

툴툴거리는 한철이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삼촌.”

“됐어 임마.”

철컥.

“하아… 귀찮게 하는군….”

* * *

“오. 건물 잘 빠졌네.”

한성이 완성된 건물을 보여 만족스레 웃었다.

건물은 무슨 요양원인가 싶을 정도로 흰색으로만 칠해져있었고,

멀리서 보면 비석인가 할 정도로 네모반듯한 직사각형의 모양이었다.

심지어 건물의 외벽 면에는

별다른 그림이나 디자인마저도 그려져 있지 않았다.

화려한 것이 싫었기에 무난하고 평범하게 만들어 달라 한

한성의 주문을 공방장이 받아들여 만든 것이었다.

“어 이 사장 왔는가.”

5kg은 빠져 보이는 듯한 공방장이 건물의 입구에서 걸어 나오며

한성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왜 이렇게 살 빠지셨어요? 어디 아프세요?”

한성이 걱정스레 물었다.

“간만에 몸을 움직여서 그렇지 뭘. 아프긴 뭘 아파. 하하하.”

“그럼 다행이구요 하하. 지상층은 완공됐다면서요.”

“자자. 말로 할 것이 아니라 가보자고.”

공방장의 안내를 따라 들어간 건물 내부는 깔끔하고 또 화사했다.

외관처럼 전체적으로 화이트 톤에 검은색의 패턴들이

감각적으로 새겨져 멋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1층은 주문대로 사무실과 대회의실, 손님 접객실.

2, 3층은 식당과 휴게 공간 및 체력 단련장. 4층은 숙소.

5층은 자네와 지부장이 지낼 주거 공간이네 어떤가?”

“깔끔하고 단순한 구조여서 좋네요.”

“자네가 말한 simple is best를 생각하며 만들었지. 후후.”

“오늘부터 당장 사용 가능하도록 모든 가구며 집기며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다 주문해서 넣거나 내가 만들어뒀네.

하다못해 식당의 숟가락 젓가락까지 모두 다 말이야.”

“좋습니다. 아주 맘에 듭니다.”

“그거 다행이구만. 후후.”

한성의 만족한 듯한 얼굴과 목소리에 공방장도 흐뭇하게 웃었다.

“지하는 어떻게 돼 가나요?”

“기본 골조들이야 진즉에 다 완성됐지.

내 공방이랑 단련장도 모두 다 만들어뒀고

나머지 층들은 기본 마감까지는 어느 정도로 해뒀네.

용도가 정해지거든 말해주게. 곧바로 공사에 착수할 테니.

이 사장이 뭘 만들라 오더를 내려야 뭘 하지 않겠나.”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한번 쭉 둘러보고 뭐 궁금한 거나 수정해야 할 거 있으면

공방으로 내려오시게.”

“네.”

“그나저나 건물 골조에 뭘 섞은 건가? 대체?

그 힘센 타우렌들이 해머로 온 힘을 다해 내리치고 때려도

부서지긴커녕 흠집도 안 나더군. 대단한 강도야….

게다가 골조 때문인지 지하에 전파가 아예 터지질 않더군.

밖에 있는 사람이랑 전화라도 하려면 위로 올라와야 하니 원.

귀찮은 게 이만저만이 아니야.”

“비밀입니다.”

한성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거 사람 참. 영업 비밀이라 이건가. 알겠네. 허허.

아 그리고. 이 사장. 내 재촉하는 것은 아니네만,

그 재료 수급을 좀 빠르게 해주면 좋겠다 싶어.”

“재료요? 무슨 재료?”

한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에? 아직 소식 못 들었나? 우리 가게 오픈했잖나.

사람들 몰려들어가지고 물품 다 떨어져 가.”

“예?! 언제 오픈했는데요?”

“이틀 전?”

“그런데 벌써 재고가 떨어져 간다고요?”

“어. 아주 그냥 헌터들 개인은 물론이고 길드 측에서도 와서

오픈 한 날 와서 거의 싹 쓸어갔다더라고. 허허. 거 참.

확실히 자네라는 광고가 좋긴 좋아.”

“…허….”

“점주도 지금 빨리 만들어 내라고 성화야.”

“알겠습니다. 최대한 노력해볼게요.”

“하던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보겠네. 필요한 거 있으면 부르게.”

“예.”

엘리베이터로 향하는 공방장을 바라보며 한성이 중얼거렸다.

“흠… 한 건은 해결됐고… 협회장한테나 가볼까.”

* * *

“어서 오게. 한성 군.”

“잘 지내셨습니까.”

“나야 잘 지내지. 암. 하하하.”

호탕하게 웃는 강건.

왜인지 그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째 저번보다 더 강해진 것 같으이.

올 때마다 강해져서 돌아오니 원… 지구 정복이라도 할 셈인가?”

장난스레 강건이 물었다.

“그 정도 힘이 있으면 좋겠습니다만 아직은 아닙니다.”

진짜 그러길 바라기라도 하듯, 한성의 표정은 진지함이 어려 있었다.

“아직이라… 허허….

다른 사람이 그런 말을 했다면 쉽게 웃어넘길 수 있겠는데

한성 군이 그런 말을 하니까 마냥 웃을 수만은 없구만 그래.”

“그럴 리가요. 과대평가십니다.”

“과소평가겠지. 후후.”

“여하튼 정정하셔서 다행입니다.”

“자네가 가르쳐준 대로 욕심내지 않고 천천히 약을 복용 중이야.

확실히 차도가 있더군. 마력도 회복 중이고. 후후. 고맙네. 고마워.”

강건이 주먹을 쥐어 보이자

작지만 또렷하게 솟아오르는 마력이 보였다.

“별거 아닙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도움이 되어 참 다행입니다.”

‘우리 찬이도 살아 있었다면… 지금 딱 한성 군 나이일 텐데….’

웃는 한성의 모습에 대격변의 날 때 죽은 손자 찬이가 겹쳐 보였다.

처음 한성을 봤을 때부터

한성과 손자의 모습과 많이 닮아 놀랐던 강건이었다.

그래서일까.

한성을 바라보는 강건의 눈이 깊었고 또 따뜻했다.

“후후후. 신세 진 것은 반드시 갚겠네.”

“괜찮습니다. 회장님.”

“손자뻘 되는 후배에게 목숨과 헌터로서의 삶을 구원받았건만,

그냥 입 싹 닦고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나 내가?”

강건이 서운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 뜻으로 이야기한 건 아닙니다만….”

진심으로 서운해 보이는 강건의 표정에

한성은 당황한 듯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면 내가 빚을 갚을 능력이 부족해 보이나?”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후후후. 그러면 됐네.”

그제야 장난이라는 듯 미소 짓는 강건이었다.

“그러시면 저 밥 한 끼 사주십쇼.”

“…뭐?”

“저번에 알파 길드장하고 대련한다고 못 얻어먹기도 했으니까,

그거 겸해가지고 사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한우 a++급 정도로.

그래도 협회장님이신데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지 않습니까?”

“…진심인가?”

“예. 요새 고기를 통 못 먹어가지고 후….

아…! 혹시 공무원이라 그런 고급 음식점에는 출입하면은….

조금 눈치 보이는 것인지요…?”

“뭐라고? 하하하하하하.”

어리둥절한 표정의 한성을 뒤로하고 강건은 숨넘어갈 듯 웃어댔다.

몇십, 몇백억을 벌어도 더 벌었을 한성의 입에서 나온

고급 음식이라는 게 겨우 한우라는 것이 귀엽고 웃겨서였다.

“혹시 제가 뭔가 실수라도 한 것인지…?”

조심스레 묻는 한성이었다.

“하하하. 아닐세. 아니야. 자네를 참 알다가도 모르겠구만. 그래.

그런데 말이야.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쑥스럽네만….

한성 군보다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내가 능력이 있는 사람이네.

그런 내게 다른 부탁을 안 해도 되겠나? 겨우 그거로 되겠어?”

“겨우라뇨… 제가 얼마나 먹을 줄 아시고.”

“푸하하하. 얼마든지 먹게나. 내가 소 몇 마리라도 잡아 줄 테니.

가세나. 내가 자주 가는 고깃집이 있다네.

박 실장. 차 좀 대기 시켜 주게. 늘 가던 고깃집으로 가지.

주인장한테 괜찮은 고기로 준비해달라고 부탁 좀 해주게.”

“예. 준비시켜놓겠습니다.”

* * *

삼성동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식당 안.

식당 홀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독채의 VIP룸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한성과 강건의 목소리였다.

“그래서 그 헌터 배틀 대회에 저더러 출전하라는 말씀이십니까?”

한참을 말없이 고기를 씹으며 설명을 듣던 한성이 대답했다.

“그렇다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싫다고만 하지 말고 잘 생각… 응? 뭐라고? 출전하겠다 했나?”

예상했던 반응이라는 듯 미간을 찌푸리던 강건이

놀란 표정이 되어 황급히 다시 한성의 의사를 물었다.

“네. 출전하겠습니다. 상금도 벌고 아이템도 얻고,

제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도 하고, 길드장들과 안면도 트고

뭐 여러모로 저에게 이득일 자리이니까요.”

“오… 아주 탁월한 선택이야. 잘 생각했네. 하하하.”

강건이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상금과 아이템을 자신이 차지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한성이

약간은 어이없었지만, 왜인지 한성이라면 가능할 것 같았다.

“그리고 참가 안 한다고 했다가는 협회장님 입장이 곤란해지실 거고,

하루가 멀다고 절 괴롭히실 테니. 하는 게 여러모로 낫죠.”

한성이 씩 웃으며 장난스레 말했다.

“…이 사람? 어떻게 알고? 하하하하.

자네가 대회 참가한다고 할 때까지 자네를 독촉할 팀을 만들어뒀네.

박 실장이랑 김현철 요원 및 휘하 요원들 4명 정도로.”

“…으…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회장님.”

한성이 몸서리치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일세. 농담.”

“그런데 회장님. 제가 나가도 괜찮겠습니까?”

“…무슨 소리인가?”

“저는 길드장도 아니며 한낱 마에스트로급 애송이 헌터입니다.

다른 길드장 분들에 비해 그 경력도 경험도 현저히 적구요.

그런 제가 한국을 대표하는 6인 중 하나가 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논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한성이 고민이라는 듯 얼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예끼 이 사람. 누구 놀리나?

자네가 마에스트로급이 아니라는 것은

세상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네.

등급이야 재조정하면 될 일이고 말이지.

길드장들도 자네가 참가한다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네.

심지어 천검은 이를 반겼고 말이지.”

“그렇습니까.”

“그뿐인가. 지금 여론을 보면 이번 대회에

자네가 참여하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아.

모르긴 몰라도 자네가 참여한다고 하기만 하면

찬성하고 응원할 사람이 더 많을 걸세.”

“…그럼 다행입니다만….”

“이럴 게 아니라, 말 나온 김에 식사 다하고 등급 재조정을 하지.

이번엔 숨기지 말도록 하게.”

“알고 계셨습니까.”

“바보 취급 말게. 마력을 읽을 수 없는 민간인이 봐도

자네가 보인 행보들은 마에스트로가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네.

지나쳐도 한참 전에 지나쳤지. 정말로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진심으로 속이려고 그런 것은 아니니 용서해 주십시오. 회장님.”

“용서 안 하면 어쩔 텐가 내가. 어차피 이기지도 못하는데.”

강건이 웃으며 말했다.

“아직 전 멀었습니다. 회장님.”

“어허이. 늙었다고는 하나 내 부족함을 모르진 않네. 후후.”

휴대폰을 한참이나 만지작거리던 박 실장이 그제야 입을 열었다.

“마력 측정기 가동이 완료되었습니다. 언제든지 측정 가능합니다.”

“오… 역시 박 실장이야.”

“아닙니다.”

“다 먹었으면 일어나지.”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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