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화
* * *
“뉴스 속보입니다.
던전 브레이크로 광화문에 나타났던 마물들이
돌연 시민들을 구출하고 있습니다.
무슨 상황인지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김으뜸 기자?”
“네 광화문 광장에 나와 있는 김으뜸입니다.
보시다시피 센티페드 즉, 마물들의 태도가 급변했습니다.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공격하고 도시를 부수던 이전과 달리
시민의 대피를 돕는 것은 물론 건물 잔해를 부수고 치워
고립되어있던 시민들을 구해내고 있습니다.
협회와 길드의 헌터들이 유사시를 대비해 이를 감시하고 있으나,
별다른 변화 없이 협조적인 모습입니다.
아?! 말씀과 동시에 뭔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 시체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인가요? 김으뜸 기자?”
“네. 말 그대로 시체들이 걸어오고 있습니다.”
“좀비나 구울입니까?”
“아닌 것 같습니다. 지근거리에 헌터와 시민이 있음에도
이들을 향해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헌터들이 쳐 놓은 차단선을 향해 걷고 있을 뿐,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센티페드들이 이를 호위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를….”
“말씀과 동시에 차단선에 도착한 시체들이 쓰러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센티페드들이 이를 옮겨 한 명씩 도착한 순서대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일렬로 정렬하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특이사항이 있으면 계속해서 연락 바랍니다.”
“네. 알겠습니다. MKS뉴스 김으뜸이었습니다.”
“몬스터 행동 연구가 이진우 씨를 모시고….”
삑.
협회장실의 TV가 꺼졌다.
“하아….”
한숨의 주인공은 10년은 더 늙은 것 같은 강건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만 해도 골치 아픈데,
갑자기 급변한 몬스터들의 행동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지
그리고 왜 저러는지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아픈 듯 관자놀이를 누르던 강건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삐비빅.
“네. 회장님.”
“어. 박 실장. 어떻게 돼가고 있나.”
“아까 보고 드린 것과 같습니다.
계속해서 시체들이 운반되고 쓰러지길 반복 중이며
센티페드들 또한 생존자를 구조 및 운반 중입니다.”
“…그래….”
“아 회장님. 그 이한성 헌터 말씀입니다.”
“어. 추가로 소식 들어온 게 있는가?”
강건의 표정이 일순간 밝아졌다.
“예. 지금 퀸과 대치 중인 게 이한성 헌터 같습니다.”
“뭐? 천검이 아니고?!”
강건의 이마가 잔뜩 찌푸려졌다.
어디 있다가 갑자기 나타났단 말인가.
“예. 천검이 직접 제게 알려왔습니다.”
“…자존심 강한 천검이 순순히 물러날 리가 없는데….
천검이 뭐라 하며 물러났다던가.”
“그게… 자신이 한 일은 그저 킹을 벤 것일 뿐,
센티페드 유충들을 막아 피해를 종식시킨 것은
오히려 이한성 헌터라며 이를 양보했다 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저도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지금 센티페드들과 시체들의 그 비정상적인 움직임이
이한성 헌터가 한 것이라는 천검의 말이 있었습니다.”
“뭐?! 한성 군이??”
강건의 언성이 높아졌다.
“예. 천검의 말로는 그렇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한성 군이
몬스터 테이머가 되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 그 리치 킹 있지 않습니까?”
“…갑자기 리치 킹은 왜?”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우물쭈물하는 박 실장의 태도에 답답함을 느낀 강건이 채근했다.
“왜왜. 빨리 말해보게.”
“그… 리치 킹을 수하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리치 킹이 현재 센티페드를 조종해
시민들을 구출하고 대피시키고 있는 거구요….
아마 시체들의 움직임도 리치 킹의 영향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예측하고 있습니다.”
“…….”
수수께끼가 드디어 풀렸다.
그런데 그 수수께끼를 출제한 사람이 이한성이라니….
이 무슨….
이해되지 않는 센티페드와 시체들의 움직임에 대해
몬스터 연구총장과 몬스터 행동 연구가에게
그 이유가 뭔지 알아내라 닦달하고 고함치던
지난 1시간이 허망하게 날아갔다.
“……회장님?”
박 실장의 말에 정신을 차린 강건이 담담히 대답했다.
“일단 알겠네. 현장 일이 마무리되는 대로
이한성 헌터랑 약속을 잡도록 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래. 수고해주게.
그리고 차단선 안으로 기자들 출입 못 하게 잘 막아.
괜히 쓸데없는 분란 생기지 않게.”
“예. 들어가십시오.”
삑.
“하아….”
“후우… 이한성…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사람이구만… 하….”
힘 빠진 웃음과 함께 소파에 몸을 맡기는 강건이었다.
그러나 그의 만면에는 이전과 달리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 * *
“키엑….”
새끼들이 물러나자 퀸은 기뻐하는 것도 잠시
새로 닥친 국면에 상당히 불안해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느껴진 포식자의 살기가 노골적으로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선 녀석의 기운도 강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이처럼 어둡고 거칠며 몸이 떨릴 정도로 흉포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의 힘은 깨끗하고 순수했다.
게다가 킹만 아니었더라면 앞선 녀석 정도쯤이야
충분히 대적하거나 상처 없이 도망할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느껴지는 이 압도적인 힘은
퀸은 도저히 대적할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저 도망가야겠다는 생각만 들 뿐.
아니… 킹을 데리고 도망칠 수나 있을까…?
탁.
“너구나.”
퀸 앞에 선 한성이 중얼거렸다.
“키에에에에에엑!!!!!!!”
퀸이 놀란 듯 한성을 향해 위협적으로 소리쳤다.
퀸은 한성의 전신에서 피어오르는
그의 압도적인 힘을 느낌과 동시에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어둡고 거친 살기의 주인이 한성이었음을.
그리고 오늘이 자신과 킹의 마지막 날임을.
“지금 내가 기분이 많이 안 좋아.
그래서 너를 깔끔하게 죽여줄 생각이 전혀 없어.”
“…키익.”
“그러니 내 기분 풀릴 때까지 이 악물고 버텨라.”
한성의 손에 일렁이는 격전의 그림자가
퀸을 의식하기라도 한 듯 거칠게 일었다.
[스킬 : 왕의 위압을 시전합니다.]
[대상 : 센티페드 킹과 퀸이 두려움을 느낍니다.]
[대상 : 센티페드 킹과 퀸이 불안을 느낍니다.]
“키에에에에에엑!!!”
쾅!!!
* * *
“야 그거 봤냐?”
“뭐?”
“이한성.”
“아 봤지. 개 지리던데?”
“와… 살~~~~발하더만? 내가 살다 살다
마물보고 불쌍하다는 생각을 할 줄은 몰랐다.”
“말 들어보니까, 이번 던전 브레이크 때,
자기 아는 사람이 다쳤다 하더라고. 가족이랬나?
뭐 여하튼 그거 때문인가 봐. 그래서 그렇게 살벌했던 거래.”
“야. 감정이 실렸고 자시고를 떠나서
주먹으로 센티페드 퀸을 깨부수는 인간이 어디 있냐?”
“그건 그렇지.”
기자들의 출입을 막으려던 박 실장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차단선을 뚫어내고 기어이 한성과 퀸의 싸움을
찍어낸 기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 덕에 한성과 퀸의 싸움, 아니
한성의 일방적인 폭행과 살육으로 점철된
영상은 TV와 유튜브 등의 매체를 통해 퍼져나갔다.
전력 노출 방지와 헌터 보호 차원에서 협회가 빠르게
원본 영상을 찾아내 제거하고 방송사에 경고를 주었지만,
이미 영상은 풀려버렸고 한성의 영상을 모르는 이들이 없었다.
영상 속 한성의 모습은 정녕 정도를 모르는 악귀 그 자체였다.
한성은 그림자 단검이나 비뢰의 술을 사용하지 않았고,
벨루몬을 불러 그들에게 고통을 가하거나 죽이라 명하지도 않았다.
대신 지옥과도 같은 고통을 선사할 뿐이었다.
퀸은 제 다리 하나보다도 작을 한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림자 이동으로 이리저리 나다니며
내리치는 한성의 주먹에 10미터가 넘는 퀸이 휘청거렸다.
한성이 주먹을 내지르는 방향으로
퀸이 엉망진창으로 쓰러지고 넘어지고 구르길 여럿.
영상 속 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퀸의 깨끗하고 빛나던 등갑과 배의 가죽들은
볼품없이 갈라지고 부서지고 찢어져 너덜거리고 있었다.
또한 수백 개의 다리들 중 몇 십 개가 이미 부서지고,
또 우악스러운 한성의 악력에 의해 뜯겨져 나가 피를 쏟아내고 있었다.
한성은 퀸을 곱게 죽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잔혹하게도 갈라진 등갑을 붙잡고 그대로 뜯어내거나
드러난 속살과 내장에 격전의 어금니 한 줄기를 지폈다.
퀸은 속에서부터 타들어가는 고통에 미쳐 날뛰었다.
격전의 어금니는 그를 끄려는 퀸의 숱한 시도와
노력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태우고 씹어 삼켰고,
그녀의 몸부림으로 인해 건물 수십 채가 부서져 내렸으며
심지어는 일대 지반이 푹 가라앉기까지 했다.
퀸이 자랑하던 화염 브레스도 한성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애초에 브레스가 쏘아지기도 전에 한성은 몸을 숨겼고,
어쩌다 공격이 닿을라치면 그림자 이동으로 피해버렸으니까.
게다가 한성은 노련하게도 퀸이 브레스를 쏘아댈 때마다
킹에게로 가 공격이 그에게 쏟아지도록 유도했고,
결국 킹 다리 일부가 녹아내리기 까지 했다.
제 공격 때문에 제 남편(?)이 다치자
퀸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녀석도 이판사판이라 생각했는지,
남아 있던 독액까지 쏘아 냈지만 한성은 피하지 조차 않았다.
그저 담담히 쏟아지는 독액을 정면에서 받아냈다.
한차례의 독 브레스가 지나간 자리에는
녹아내린 건물들의 파편과 아스팔트, 철근 조각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 녹아내린 잔해들에 한성은 포함되지 않아 있었다.
한성은 그저 불쾌하다는 얼굴로
얼굴과 방어구에 묻은 독액을 털어냈을 뿐,
조금도 다치거나 데미지를 입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만독불침 때문이리라.
한성의 방어구들 또한 독에 조금도 삭거나 녹아내리지 않았다.
바실리스크의 독도 버텨낸 그것의 가죽이
한낱 벌레의 독에 잠식당할 리 또한 없었다.
그림자 이동을 통해 녀석의 머리 위로 이동한 한성이
거칠게 더듬이를 잡아 뜯고 대가리를 내리 쳤다.
녀석이 힘없이 쓰러져 내렸다.
기력이 다한 듯 숨을 헐떡이는 퀸에게 한성이 다가가
그녀의 대가리를 들었고 킹을 볼 수 있도록 고개를 꺾었다.
그리곤 급한 기색 하나 없이 천천히 킹에게로 다가갔다.
한성의 검지에서 피어오른 한 조각의 격전의 어금니가
불똥처럼 킹에게로 튀었다.
킹의 다리 끝에서 피어오른 검은 불길은
이내 거대한 불길이 되어 킹을 좀 먹어 들어갔다.
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는 킹과
이를 바라보는 퀸의 절규로 영상은 끝이 났다.
하지만 한성의 싸움보다 더 화제가 되었던 것은
싸움 직후 한성이 취했던 일련의 행동과 기자회견 때문이었다.
퀸과 킹이 죽고 던전 브레이크가 종결된 것을 확인하자마자
한성은 차단선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한성은 모든 것은 쉴드의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던 일이고,
애림이 자신의 가족인 한철을 치료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침착하게 퀸을 사냥하지 못했을 거라 추켜세웠다.
또 감사하게도 쉴드의 배려 덕에 이번 던전 브레이크를
나머지 계약된 게이트 공략과 퉁쳐
쉴드와의 계약을 종료하게 되었다고 발언했다.
애림이 손을 쓰기도 전에 미리 못 박아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한성은 킹은 자신이 사냥한 것이 아니며,
알파 길드장인 선우의 조력이 아니었다면
절대 퀸을 잡지 못했을 것이라 말해
소리 소문 없이 묻힐 뻔했던 선우의 업적을 치하했다.
따라서 사체와 마력석 등의 부산물은 온전히 그의 몫이라 발언했다.
또 위험한 상황에 몸을 아끼지 않고 나서
모범을 보인 임선우야말로 헌터의 귀감이며
모두가 본받아야 할 숭고한 희생정신을 가진 헌터라며
입이 마르도록 칭찬했다.
자신의 작은 공치사도 크게 부풀려 큰 업적인 것 마냥
과장하는 헌터들이 태반이었기에 의도치는 않았으나,
한성의 겸손은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기자회견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한성은 벨루몬을 시켜
남아 있는 생존자를 모두 구출해냈고, 희생자들의 시체를 운반해와
고인의 넋을 기릴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
작업이 끝난 후 한성의 명에 따라
벨루몬은 센티페드의 소환을 해제했고,
수천, 수만에 이르던 센티페드들은 재가 되어 날아갔다.
모두가 궁금해할 벨루몬에 대한 질문에
한성은 단순하게 그리고 칼같이 대답했다.
벨루몬은 자신의 수하이며,
모든 것은 완벽한 통제 아래에 있으므로 걱정할 필요가 없음을.
그러므로 추측성 기사든 뭐든 벨루몬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자들에 대해선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고.
이 때문이었는지 각종 언론과 매체들은
벨루몬에 대한 언급을 제외한 기사들만 줄기차게 써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