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51화 (51/336)

051화

* * *

“그럼 가볼까.”

“오케이. 늘 하던 대로 포메이션 B?”

“그래. 그게 좋겠다.”

그때였다.

[부름에 답하라.]

흠칫.

마물의 언어였다.

게다가 목소리의 주인공에게서는 선우와 지환으로서는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음산하고 소름 끼치는 마력이 느껴졌다.

“…들었냐?”

“어.”

지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쳇… 벌레 새끼들도 버거운데….”

“게이트를 타고 넘어온 건가.”

“…미친… 형, 저거 봐.”

“….”

지환이 가리킨 곳에는 죽어 아무렇게 쓰러져 있었어야 할

센티페드들이 좀비마냥 하나둘 몸을 다시 일으키고 있었다.

끊어진 허리와 더듬이는 이어졌고,

뜯겨 나간 눈알은 도로 박혔으며 절단된 다리는 기워졌다.

조각이 나 그 형체를 유지하기 어려운 녀석들은

조각 난 다른 녀석들의 시체에서 각 부분을

각출해와 새로운 하나의 센티페드가 되었다.

“…역시 네크로맨서였나.”

선우가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서의 짓이라면 충분히 설명 가능했다.

시체가 일어나는 것도, 소름 끼칠 정도로 음침한 마력도.

다만 군단에 가까운 수의 센티페드를

다시 일으키고 조종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마력과

얼마나 세밀한 마력의 운용이 필요할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

그렇기에 선우는 어쩌면 퀸이나 킹을 합친 것보다

이 음침한 마력의 주인공이 더 강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걱정스러웠다.

녀석들이 완전히 몸을 갖추자 안광이 푸르게 빛났다.

“형. 저거였어. 파란 눈!”

이제 거리에는 푸른 눈의 안광만이 존재했다.

[가라.]

“키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엑!!!”

“…세상에….”

푸른 눈의 파도가 퀸과 킹에게로 쏟아져 내렸다.

스팟.

[재밌지 않은가.]

[제 품에서 나고 자란 것들이,]

[어미의 숨을 거두러 온다는 것이 말이야.]

[킥킥킥… 아… 즐겁구나. 즐거워.]

마력의 흐름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벨루몬이 있었다.

“…리치?!”

지환이 공중에 떠 즐거운 듯 키득거리는 벨루몬을 향해 소리쳤다.

[음…? 호오… 꽤나 강한 녀석들이군.]

[주군과 비슷하거나 좀 더 약한 정도인가?]

[잡아다 혼을 빼앗고 호위병으로 삼으면 좋겠군.]

[그러나 주군의 병사로서 명을 어길 수야 없지. 후후….]

[주군의 명이 너희를 살린 줄 알아라.]

지환과 선우를 바라본 벨루몬이 중얼거렸다.

찰칵.

“백호출격(白虎出格).”

선우의 칼이 불을 뿜었다.

발도에서 참격을 날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1초가 되지 않았다.

참격에서 뿜어져 나온 무형의 기운은

백호라는 이름에 걸맞게 날카롭고 강하게 다가가 벨루몬을 갈랐다.

푸확!

벨루몬이 뭔가 반응하기도 전이었다.

단순히 스피드로만 보자면 선우의 힘은 한성을 뛰어넘는 듯했다.

[…놀랍구만… 놀라워.]

[주군 외에도 이 정도 힘을 가진 존재가 또 있었나?]

말을 마친 벨루몬의 몸이 양단되어 갈라졌고 안광이 흐려졌다.

“…해치웠나.”

지환이 중얼거렸다.

“그럴 리 없다. 괜히 리치가 불사자라는 별명을 가진 게 아니니까.”

허공이 일그러지며 생긴 공간으로

양단된 벨루몬의 몸이 빨려 들어갔다.

[소용없다.]

몸을 갈이하고 다시 모습을 드러낸 벨루몬의 몸에는

검격은커녕 그 흔한 생채기 하나 없이 말끔했다.

“역시….”

선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형 난 퀸보다 쟤가 더 골치 아플 것 같은데….”

지환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내 생각도 같다. 간다. 보조해라.”

“어.”

“뱁새의 춤.”

귀여운 이름과 다르게 칼끝에 어린 기운은 꽤나 날카로웠다.

뛰어나가는 선우의 양옆으로 토벽이 솟구쳐 올랐다.

토벽을 발판삼아 벨루몬에게로 선우의 몸이 탄환같이 나아갔다.

검무(劍舞)라도 추듯 어지럽게 칼을 휘두르자

휘둘러지는 대로 검에서 쏘아진 자잘한 참격이

뱁새가 춤이라도 추는 것 같은 모양새로 벨루몬을 향했다.

“그만.”

카가가가가가강!

“…? 음?!”

불꽃이 튀고 금속성의 쇳소리가 들렸다.

한성이었다.

이제 막 옥상 전광판의 그림자에서 빠져나온 듯

검은 연기가 한성의 발끝에서 아른거리고 있었다.

한성의 손에는 그림자 단검이 일렁이고 있었다.

‘공간 이동을…?’

‘…단검 따위로 내 참격을…그것도… 모두…?’

이유는 달랐지만, 한성을 바라보는 지환과 선우의 눈이 날카로웠다.

‘알파 길드의 임선우라 했나. 대단한데…?’

겉으로는 담담한 척했지만 한성은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단순한 참격만으로도 이 정도의 힘이라니….

선우의 검이 직접 향했다면 자신이 과연

이를 쉬이 받아낼 수 있었을까 싶은 한성이었다.

‘괜히 엠페러급이 아니군….’

충격으로 저린 손을 뒤로하고 한성은 벨루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내가 인간은 공격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아닙니다. 주군. 전 공격한 적 없습니다.]

[저들이 저를 적으로 오인하고 먼저 공격한 것뿐입니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한성을 향해 벨루몬이 서둘러 대답했다.

“…뭐야? 지금…? 대화하는 거야?”

놀란 지환이 한성과 벨루몬을 보며 말했다.

지환과 선우에게 벨루몬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마물의 말로 들렸다.

그런데 한성은 인간의 언어를 쓰면서도

무리 없이 대화하는 모습이었으니 신기할 수밖에.

[시킨 일은 다 하고 노는 거냐?]

[이제 퀸과 킹만 남았습니다.]

[…가서 도망 못 가게 해. 마무리는 내가 한다.]

[지엄하신 왕의 명을 따르나이다.]

스팟.

“…뭐… 뭐야?!”

사라진 벨루몬을 보며 놀란 지환이 소리쳤다.

“…제가 보냈습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한성이 담담한 표정으로 이에 답했다.

“…이한성 씨…? 맞죠?”

지환이 한성을 알아본 듯 아는 체를 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제야 한성도 가볍게 목례와 함께 인사를 해왔다.

“방금… 리치 킹은… 대체…?”

“제 수하입니다.”

“…수… 수하요? 리치를…요?? 그것도 아크 리치는 넘어 보이던데….

호… 혹시 몬스터 테이머(tamer)세요…? 아니면 소환술사?”

흥분한 듯 지환의 목소리가 커졌다.

“둘 다 아닙니다. 그럼 이만.”

“잠깐.”

선우가 한성을 불러 세웠다.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당신 정체가 뭡니까.”

한성을 훑는 선우의 눈이 날카로웠다.

“이한성입니다. 헌터구요.”

한성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

“몬스터 테이머나 소환술사도 아닌 자가 리치 킹을 수하로 삼고,

마에스트로인 당신이 엠페러인 내 참격들을 모두 막아내기까지 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싶은 것은 나만 그런 것입니까?

애초에 인간이 맞긴 한 겁니까?”

선우의 말이 왜인지 칭찬으로 들렸던 한성은 옅은 미소로 답했다.

“…보시다시피?”

“…조만간 협회를 통해 당신께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긴히 이야기할 것이 있으니, 혹시 저와 만나줄 수 있겠습니까.”

“알겠습니다. 그럼 이만.”

휙.

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우린 철수한다.”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진 한성 쪽을 보며 선우가 중얼거렸다.

“응? 센티페드 퀸이랑 킹은 어쩌고?”

“우리가 가봐야 방해만 될 뿐이다.

잠재적 위협이 될 유충을 모두 잡은 것도 저쪽이고.

우리보다는 저쪽 공이 더 크다.”

“아니… 그래도….”

“혼자 공을 독식하려는 사람으로는 보이지는 않더군.

어떤 식으로든 보상할 거다. 빚을 지워두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음… 알겠어.”

“협회에 연락해서 이한성 헌터와 만남을 주선해봐.”

“왜? 영입하게?”

“쉴드에서도 영입 못 했는데 우리라고 할 수 있을까.

그저 만나보려는 거다. 궁금하기도 하고.”

“…알겠어.”

“가자.”

탓.

선우가 빌딩 숲으로 뛰어내렸다.

“…흠… 무슨 생각인지 원….”

탓.

중얼거리며 선우의 뒤를 따르는 지환이었다.

* * *

“키에에에에엑!”

퀸은 이곳을 발판삼아 자신의 세력 범위를 넓힐 계획이었다.

다른 마물들과 경쟁하고 싸우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새끼들보다도 작지만 꽤나 많은 먹이를 찾을 수 있고,

숨을 구조물까지 많은 이곳은 말 그대로 천국이었으니까.

그런데 이 땅에 뿌리를 내리라고 보낸 새끼들이 오히려 되돌아와

자신의 몸을 갉고 씹고 있으니 퀸의 입장에서는 기가 막힐 노릇.

게다가 어찌 된 영문인지 새끼들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의 외침과 상관없이 그저 자신을 공격할 뿐이었다.

물론 생채기 하나 낼 수 없는 수준의 공격이었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된 위협과 공격에도 새끼들은 겁내거나 굴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달려들어 자신과 킹을 공격했다.

자신에게야 몇만 마리가 달려들어 씹어도

상처를 주기는커녕 흠집 못 낼 수준이었지만, 약해진 킹은 달랐다.

뱃가죽의 출혈도 겨우 막은 상태인데,

상처를 계속해서 씹어댄다면 벌어질 것은 자명했다.

“키에에에엑!”

콰직! 콰직! 콰직!

마음은 쓰렸지만 퀸은 킹에게 달려드는 녀석들을 짓밟아 터트렸다.

자식이야 또 낳으면 되지만 반려인 킹은 아니었으니까.

아예 다가오지 못하도록 화염을 토해내고 독액을 내뿜어도

녀석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계속해서 개미 떼처럼 달려들어 퀸과 킹을 갉아댔다.

[킥킥킥.]

벨루몬은 건물의 위에서 숨을 헐떡거리는 킹을 보며 키득거렸다.

[어떻게 되고 있어.]

벨루몬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낸 한성이 말을 걸었다.

[오셨습니까. 주군.]

[보시다시피 킹의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가슴팍의 자상을 보아하니 아마 방금 전 그 칼잡이 짓인 듯합니다.]

[킹은 상처를 회복하느라 한동안 저 자리에서 머물 듯합니다.]

[퀸 또한 제 짝을 보호하느라 쉬이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좋군. 그리고 이거 어떻게 못 하나?]

[언제까지 이렇게 불편하게 대화해야 하지?]

한성이 찡그리며 머리를 톡톡 쳤다.

머리를 울리는 벨루몬의 음산한 목소리가 기분 나빴기 때문이리라.

[무례를 용서하소서.]

벨루몬이 중얼거리며 한성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벨루몬의 앙상한 뼈 손아귀에서 솟아오른 빛이

한성의 머리를 감쌌고 빛은 금세 머리로 스며들었다.

[인식 저해 마법을 역산해 조금 손 본 것입니다.]

[주군께서 따로 마력으로 의사를 전달하지 않으셔도,]

[이것이 주군의 언어를 마물의 언어로.]

[마물의 언어를 주군의 언어로 번역해 줄 것입니다.]

“제 말씀이 제대로 들리십니까?”

“제대로 작동하는군. 잘했다.”

“원하신다면 무엇이든지.”

벨루몬의 표정에 뿌듯함이 어려 있었다.

“이제 센티페드들을 물려.”

“…어찌 그러시는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퀸은 내가 직접 죽일 거다.

그러니 방해되는 것들을 빼라는 것이다.

네가 할 일은 차단선을 치는 것뿐이다. 이의 있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주군.

다만 저 하찮은 것들이 옥체를 상하게 할까 하여….”

“쓸데없는 걱정이다. 시킨 거나 잘하도록.”

“예. 주군.”

“키에에에에엑.”

벨루몬의 손짓 한 번에 녀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빠져나간 녀석들은 약 1km 밖에서 퀸과 퀸을 중심으로

주위를 둥글게 에워싸 전 방위로 도주로를 차단했다.

“좋다. 근방에 인간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면 구조해서 차단선 밖으로 보내라.

죽은 이들 또한 일으켜 차단선 밖으로 보내도록.

죽은 자들의 혼은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도록 해주고.”

“지엄하신 왕의 명을 따릅니다.”

스팟.

한성의 명을 이행하려는 듯 벨루몬의 모습이 사라졌다.

“가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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