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8화
* * *
“이 미친 새끼야 자꾸 어딜 가겠다는 거야!!!”
야전 막사에 김 상병의 고함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그렇게 놔두면 삼촌 죽습니다!! 김 상병님도 아시잖습니까!!”
이번엔 석진의 고함이었다.
그의 눈에는 눈물이 잔뜩 고여 있었고
목소리와 총을 쥔 손은 형편없이 와들와들 떨리고 있었다.
“알아 이 새끼야. 안다고!!! 누가 몰라서 그래?”
김 상병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럼 가면 되지 않습니까!!”
석진도 이에 지지 않고 마주 소리를 질렀다.
“야. 이석진. 이 새끼가 쳐 돌았나. 어디서 큰 소리야?”
큰 소리가 나자 무슨 일인가 싶어 찾아온
상병과 병장들이 상황을 파악하고는 석진을 다그쳤다.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미쳤냐?”
다른 선임들까지 가세하려는 것처럼 보이자
두 돈 반 차량에서 상황을 모두 지켜봤던
석진의 맞선임이 나서서 말했다.
“김 상벼임, 참으십쇼. 저 새끼 지금 제정신 아임다.”
“나와 봐. 저 미친 새끼가 상황 파악을 못 하잖아.”
“아이. 김 상벼임. 참으십쇼. 참으십쇼.”
“나와 보라고!!”
팍.
김 상병이 자신을 말리는 일병을 쳐내고 나왔다.
“그 벌레 새끼들 드글드글한 곳으로 다시 가겠다고?
야 이 새끼야. 정신 차려. 거기서 살아 나온 것도 기적이야.”
김 상병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석진을 다그쳤다.
“그 기적 아저씨가 만들어 준 겁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눈을 한 석진이
김 상병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팍.
김 상병이 석진의 멱살을 거칠게 잡고 흔들었다.
“그.러.니.까. 이 새끼야. 생각 좀 해보고 지껄이라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 아저씨가 자기 목숨 내던져가면서 우릴 구한 거라고.
그 덕분에 애기가 살았고 애기 엄마가 살았고 우리가 살았어.
그 아저씨 목숨 하나 바쳐서 우리 열 명이 살아남았다고.
그런데 애써 살려 놨더니 다시 들어가자고? 거기에?
그 지옥으로?? 뭐 하러? 그 아저씨 구하러? 어?”
“…예.”
팍!!!
김 상병이 퍽 소리가 날 정도의 강한 힘으로
석진의 방탄모를 후려갈겼다.
단단한 방탄에 살갗이 찢어졌는지 주먹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김 상벼임. 참으십쇼. 저 새끼도 맘 아파서 그럼다.”
석진의 맞선임이 석진과 김 상병 사이로 들어가며
멱살을 잡은 두 손을 풀려 했지만 김 상병은 놓지 않았다.
“야 이 병신 새끼야. 아저씨가 그걸 원하셨을 것 같냐?
아저씨가 자신을 구하러 오길 기다리셨을 것 같냐고.”
“하지만….”
석진이 차오르는 울음을 꾹 참으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아저씨는 자기 목숨 바쳐서 열 명이 넘는 생을 살렸어.
숭고한 죽음이었고 귀중한 희생이었어. 알아?!
네가 뭔데 그 희생에 이래라 저래라야.
네가 만약 거기에 그 아저씨 구하러 가다가 죽으면?
그 아저씨 죽음은 개죽음밖에 더 돼?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 가봐야 아저씨 시체도 발견 못 해 병신아.”
팍.
김 상병이 잡았던 석진의 멱살을 거칠게 놓았고,
석진은 다리의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 쓰러져 울기 시작했다.
거칠게 방탄을 눌러쓰고 몸을 돌린
김 상병의 눈가도 촉촉했고 코끝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 * *
쾅!
“키에에에엑!”
한철의 방패가 달려드는 센티페드의 대가리를 강타했다.
녀석은 충격을 버텨내지 못했고, 아파트의 담벼락에 날아가 박혔다.
“덤벼 이 새끼들아!! 덤벼!!”
호기롭게 외쳐대고 있었지만 한철의 상태는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다.
비 오듯 흘러내리는 땀과 피곤에 지친 듯 퀭한 두 눈.
온몸 곳곳에 난 생채기와 거기서 흘러내리는 피.
상당히 거칠게 몰아쉬는 숨까지.
한철은 쓰러지기 직전처럼 보였다.
콰직!
한철에게서 벗어나려 발버둥 치던 유충의 머리가
한철의 악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나갔다.
“덤벼 이 버러지 새끼들아!!!!!!”
“헉… 헉… 헉….”
덤벼드는 유충들을 방패로 쳐내고 밟고 잡아 뜯고 터뜨리고
주먹으로 때리고 돌로 찍기를 십여 분.
한철의 주위에는 센티페드들의 사체와
푸른색의 피, 내장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못해도 사체가 백 구는 넘어 보였으나
센티페드의 군세는 조금도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녀석들의 기세는 점점 흉흉해져만 가는데,
한철의 체력은 이와는 반대로 점점 줄어만 갔다.
게다가 무리 사이로 언뜻언뜻 준성체급의 녀석들도 보였다.
녀석들은 영악하게도 먼저 덤벼들지 않았다.
한철이 어린 유충들과의 전투로 힘이 다하길 기다렸다가
빈틈을 보이거나 지쳐 쓰러질 때를 노릴 심산인 듯했다.
콰각.
“크윽….”
유충 하나가 한철의 팔을 물었다.
한철의 팔이 워낙 단단한 탓에 살이 아니라 금속을 씹는 소리가 났다.
콰직!
살이 단단하다고 한들 고통은 마찬가지였는지
인상을 찌푸린 한철이 통증을 참으며
그대로 녀석의 머리를 잡아 거칠게 뜯었다.
한철의 손아귀에서 센티페드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 조각과 푸른색의 피가 뚝뚝 흘러내렸다.
‘…젠장할… 끝도 없군….’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이는 한철이었다.
‘그래도… 석진이 녀석하고 애랑… 애 엄마는 살렸으니….
그걸로 된 거지 뭐. 후후… 지금쯤… 부대 도착했으려나.’
한철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키에엑!”
뒤에서 침묵으로 일관하던 센티페드 준성체 하나가 소리쳤다.
퀸과 킹이 없으니, 우두머리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리라.
우두머리의 외침에 녀석들의 기세가 달라졌다.
막무가내로 공격하던 이전과 달리
녀석들은 이제 체계를 가지고 한철에게 달려들었다.
이전의 녀석들의 공격패턴은 실로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한 마리씩 터뜨릴 때마다 겁을 먹고 물러서다
다시 공격하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그것이었다.
하지만 우두머리 센티페드의 명을 받은 이제는
노련한 병사들마냥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며
한철의 힘을 빼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었다.
한철에게로 가까이 다가갔다가
한철이 공격하려 다가오면 달아난다든지
여럿의 센티페드들이 공격하려는 페인트 모션만 취한다든지의
행동이 그것이었다.
분명히 전에 비해 직접적인 공격은 줄었다.
데미지를 입는 빈도수도 확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철의 정신은 피폐해져만 갔다.
언제 어디서 녀석들이 달려들지 예측도 되지 않는 데다,
이제 대놓고 덤벼들지도 않아 제거한 녀석들이 확연히 줄었기 때문이다.
그저 한철의 무의미한 허우적거림만이 계속될 뿐.
“헉… 헉… 벌레 주제에 사람을 가지고 놀아?
오냐. 한번 해보자. 이 개자식들아.”
다시 한번 도발을 감행하려는 한철.
하지만 우두머리 센티페드가 한발 빨랐다.
“키에에에엑!”
가가가가각.
녀석의 고함에 유충들이 일사불란하게 한철을 향해 다가왔다.
“뭐… 뭐야. 이 새끼들아!!!!!!”
쾅! 쾅!
“끼에엑.”
뿌드드득.
“뭐… 뭐야?!”
한철은 다가오는 녀석들 몇을 쳐냈지만,
센티페드들의 물량 공세를 이겨낼 순 없었고
결국 몇의 접근을 허용하고 말았다.
혼란을 틈타 한철에게 달려든 두 녀석이
자신들의 긴 몸을 이용해 한철의 팔과 다리 하나씩을
자신의 몸과 엮어 단단히 묶기 시작했다.
녀석들은 수많은 다리와 긴 몸을 이용해
사정없이 한철의 팔과 다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당황한 한철이 이를 떼어 내기 위해
남은 손을 들었지만, 녀석들이 이를 가만둘 리 없었다.
또 두 녀석이 달려들어 나머지 팔과 다리에
달라붙어 자신의 몸과 한철의 몸을 묶었다.
콰당.
녀석들의 무게와 힘에 못 이긴 한철이 넘어졌다.
“이런 씨ㅂ….”
생각지도 못한 공격에 당황한 한철이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발버둥을 치려 하자,
나머지 녀석들이 달려들어 한철의 몸을 눌러댔다.
한둘이 아닌 수십이 넘는 녀석들의 무게는
가히 1톤에 가까웠고, 슈페리어인 한철에게도 이는 버거웠다.
때문에 한철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게 되었다.
“키아악!”
우두머리 녀석의 외침에 대기하고 있던 녀석들이 자리를 비켰다.
갈라진 유충들의 사이로 5m는 되어 보이는 녀석이
침을 뚝뚝 흘리며 다가왔다.
치이이이이익.
나름 준성체급의 개체여서일까.
독낭이 발달하기 시작한 듯,
흐르는 침에 콘크리트가 녹아내리는 것이 보였다.
“이런 제기랄!!!”
한철이 이를 벗어나려 발버둥 쳐댔지만
몸을 덮은 센티페드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한철도 이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카악!”
우두머리의 외침에 한철의 몸을 덮고 있던
녀석들의 일부가 슬며시 몸을 치웠다.
한철의 왼쪽 어깨가 드러났다.
콰각.
녀석의 날 선 이빨이 한철의 어깨를 노렸다.
“끄아아아아아아악!!!”
준성체의 치악력은 유충들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당장이라도 녀석의 이빨에 몸이 꿰뚫릴 것만 같았다.
한철은 어깨에 힘을 주어 녀석의 이빨을 밀어냈지만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았다.
치이익.
“끄아아아악!!”
게다가 녀석의 무기는 이빨만이 아니었다.
녀석의 독이 한철의 살갗에 닿자,
한철의 살이 검게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아악!”
눈이 뒤집히는 고통에 한철이 소리를 질러댔다.
한철의 단단한 살갗도 이를 버텨내지 못했고
독의 침입에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피부가 녹아내리기 시작하자 피와 살점, 독이 섞여
형용할 수 없는 역겨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철갑 같던 외피가 뚫렸고 내부의 근육들도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푸욱.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약해진 한철의 어깨를 녀석의 이빨이 무참히 꿰뚫었다.
까가각.
우두머리의 이빨이 뼈를 갉는 소리에
한철은 소름이 돋고 피가 차갑게 식었다.
콰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고통이 한철의 전신을 타고 흘렀다.
녀석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녀석은 집요하게 어깨의 관절과 근육을
계속해서 잘근잘근 씹어댔고 찢으며 부숴댔다.
콰드득
“끄아아아아아아아악!”
듣고 싶지 않았던 소리가 들렸다.
투확.
우악스럽게 뜯어낸 한철의 왼팔이
공중을 날아 센티페드의 군세를 향해 갔다.
날아가는 팔이 한철은 자신의 것이라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이를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다.
툭.
“키야아아악!”
순식간에 센티페드 유충들이 달려들어
한철의 왼팔을 게걸스럽게 씹어댔다.
움직여야 할 왼손이, 힘이 들어가야 할 왼팔이 느껴지지 않았다.
힘겹게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는
거칠게 뜯겨나간 어깨의 절단면과
거기서 쉼 없이 빠져나오는 피만 보일 뿐,
마땅히 있어야 할 왼팔이 없었다.
몸이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했다.
의식은 희미해졌고, 눈앞은 흐려졌다.
우두머리 녀석은 이제 한철의 허벅다리를 노리고 있었다.
인생의 순간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이게… 죽는다는 건…가….’
장면이 끝을 다해 갈 때쯤 떠오른 한성의 얼굴.
조카 같고 아들 같았던 그 녀석이 생각났다.
‘춥군….’
눈이 자꾸 감겼다.
그때였다.
희미해져 가는 의식 뒤로 익숙한 목소리 하나가 들렸다.
“삼촌!!!!!!!!!!!!!!!”
환청인가. 우리 한성이 목소리가 들리네… 하하….
하하… 잘못 들은 걸 테지….
그래도 내가 죽으면 울어 줄 사람이 하나는 있겠구나….
딱히… 나쁘지만은 않은… 생…이었……나…….
들려오는 한성의 목소리와 함께 한철의 의식이 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