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43화 (43/336)

043화

* * *

쾅!

“꺄아악!!”

“이쪽입니다. 대피하세요!!!”

“사… 살려줘!!!”

“발포!!! 발포하라!!!!!!!!!”

타다다다당!

“격발!!”

쾅!!!

한밤중인 서울의 하늘이 화약과 폭약으로 붉게 물들었다.

시체 타는 냄새와 매캐한 연기 냄새, 총성과 비명,

마물들의 고함과 폭발음으로 광화문은 이미 전쟁 통이었다.

게이트에서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저지하기 위해

중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총탄과 유탄, 폭발물을

이용해 막아 내고 있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마물들은 현대식 화기에

별다른 충격이나 데미지를 입지 않았으니까.

진군을 저지하거나 놀라게 하는 정도가 다인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도 데미지를 주기 위해선 철갑탄이나 고폭탄을 활용한

함포 수준의 공격이 가해져야만 했다.

이에 폭격기를 이용한 대규모 폭격도 고려됐으나,

시민들이 대피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과

수도에 폭격을 가할 수 없다는 정부의 지침에 이는 기각되었다.

고위 헌터의 수가 부족해 현 상황으로는

그게 최선의 방법이라며 폭격을 허가해줄 것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쉴드의 헌터들이 곧 현장에 도착할 것이라며

헌터들로도 충분히 해결 가능할 일을

왜 폭격을 통해서 해결하려고 하느냐며 타박해왔다.

대외적으로 현 정부가 헌터를 관리하고 조직함에 있어

부족함이 있다는 인상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이에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헌터들이 오기 전까지 몬스터의 진군을 저지하고

시민을 대피시키는 것뿐이었다.

“발포하라!! 탄을 있는 대로 쏟아부어!!”

쾅!! 쾅!! 쾅!!

타다다당 타다다당 타다다당!

끼익.

전차와 장갑차가 속속들이 현장에 도착했다.

탁.

장갑차에서 내린 중년의 방탄모에는 별 넷이 선명히 박혀 있었다.

“충성!”

펄럭.

심각한 얼굴의 육군참모총장이 야전 막사의 천막을 걷자,

사단장과 예하 장교들이 급히 일어나 맞이했다.

“충성.”

“충성.”

“치우고 상황 보고부터 해.”

“예! 00시 53분경 던전 브레이크 발생.

마물 전담 특무부대와 기갑부대가 교전 중이나, 효과 미미합니다.”

“…우리 측 피해는?”

“투입한 병사 3531명 중 사망자 2451명 부상자 342명.

전차와 장갑차 504기 중 354기 완파, 120기 반파되었습니다.”

“후… 생각보다 심하군.”

“계속해서 지원 병력이 도착하고는 있습니다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입니다.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모총장의 이마에 주름이 더욱 깊어졌다.

“…공중폭격지원은 요청했나.”

“…또 기각되었습니다.”

“이런 제기랄. 무슨 생각인 거야 다 죽고 나면 허락해줄 건가.

이런 멍청한 작자들 같으니라고. 헌터들은?”

“거의 도착했다고 합니다.

최근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게이트 공략에

협회와 길드 소속 헌터들이 대거 투입되어

현재 수도권에 대기 중인 헌터 수가 부족하다고 합니다.

이에 현재 협회와 모든 길드 측에 운용 가능한 전력을

최대한 보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버틸 수 있는 시간은?”

“방어 라인 5열 중 이미 3열이 완파되었습니다.

나머지 2열 완파까지 예상 소요시간 35분입니다.”

“최대한 저지해. 방어 라인 더 구축하고.”

“알겠습니다.”

“시민들의 대피는 어떻게 됐나.”

“87프로 완료했습니다.”

“뭐?!”

분노한 참모총장의 고함 소리가 야전 막사를 뒤흔들었다.

“지금 던전 브레이크 발생하고 한 시간이 지났어!!

그동안에 자네들은 뭘 하고 있었나? 적어도 90은 넘겼어야지!!”

“그게, 몬스터의 저항이 만만치 않아 진입이 어렵….”

사단장의 말에 참모총장이 거칠게 멱살을 잡으며 소리쳤다.

“변명은 염라대왕한테 가서나 해. 알겠나.

그딴 어렵다는 개소리할 거면 하지도 말란 말일세.”

“… 죄송합니다.”

이에 총장이 잡은 멱살을 거칠게 놓으며 말했다.

“우리의 최우선 과제는 시민들을 안전히 구출해 내는 것이다.

안 된다, 못 한다는 선택지는 우리에게 없어 알겠나!”

“네 알겠습니다!!”

“협회 측 요원들은?”

“이미 일선에 투입되어 시민 구출에 힘쓰고 있습니다.”

“…빠르군.”

펄럭.

천막을 열어젖히고 나타난 것은 박 실장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그의 셔츠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고,

넥타이는 아무렇게나 늘어져 있었다.

사건 발생 후 현장으로 바로 뛰어온 듯했다.

“박 실장. 수고가 많습니다.”

“아 윤 총장님. 인사는 나중에요.”

총장의 인사에도 박 실장은 보고부터 시작했다.

“A구역 3번째 블록까지 생존자 확인 및 대피 완료입니다.

4번째 블록과 B 구역에 인원을 투입했습니다만,

몬스터의 저항이 거세 쉽지가 않습니다.

여기로 화기의 집중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소. 바로 실행에 옮기도록.”

“예!”

총장이 밑의 장교에게 빠르게 명령을 내렸고

장교는 바로 무전병에게 이를 지시했다.

“그럼, 전 이만 다시 가보겠습니다.”

“…살아서 봅시다.”

진심 어린 윤 총장의 말.

“… 쉽게 죽지는 않을 겁니다. 걱정 마세요.”

희미하게 웃으며 야전을 나가는 박 실장이었다.

펄럭

말없이 전장을 향하는 박 실장을 보던 윤 총장은

무슨 생각에서인지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아아. 전 병력은 들어라. 참모총장 윤은호다.

지원군 도착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지원할 수 있는 모든 화기와 물자를 지원할 테니

아끼지 말고 있는 대로 모조리 싹 다 퍼부어라.

모든 무기 체계가 박살 난다 해도 몬스터를 막아 낼 수만 있다면

내 이름을 걸고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그러니 아끼지 마라. 부서질까 염려도 마라. 알겠나.”

“예!!”

병사들의 고함 소리가 야전 막사를 흔들었다.

“우리가 몬스터를 상대로 이길 확률은 0에 수렴한다.

본인도 이를 모르는 게 아니다. 본인도 무섭고 두렵다.

그러나 우린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인이다.

우리의 등 뒤에는 시민들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가 뚫리면 서울이 뚫린다. 그러니 죽을 각오로 지켜내라.

나 또한 여러분과 함께하겠다. 죽더라도 같이 죽는다.

우는 소리는 허용하지 않겠다.

행여나 운으로라도 몬스터를 잡는 인원에게는

총장의 이름을 걸고 특진과 유급 휴가 1년을 제공하겠다.

그리고… 절대 죽지 마라. 이는 명령이다. 이상.”

“와아아아아아아!”

장병들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후… 빨리 와라… 헌터들아….”

* * *

덜컹.

수송 차량이 도착한 이곳은,

게이트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안전지대.

길드와 협회에서 우선적으로

시민들의 대피를 위해 파견한 하급 헌터들이었다.

문이 열리고, 수십의 하급 헌터들이 내렸다.

저마다 긴장과 흥분으로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는 모습들이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막는 것은

게이트 공략과는 차원이 다른 것임을 알고 있기에

모든 헌터들의 표정에는 책임으로 인한 무거운 중압감과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이 어려 있었다.

곽한철도 이 인파 중 하나였다.

방어구와 방패로 중무장한 한철은 사뭇 긴장되어 보였다.

“저게… 그… 게이트인가….”

한철의 시선 끝에 붉게 일렁이는 게이트가 보였다.

게이트는 기존의 게이트 색인 푸른색과 달리

던전 브레이크의 상징이랄 수 있는 붉은 색으로 일렁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크기가 약 10미터는 될 법한 지름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대격변의 날 이후, 한 번도 보고된 적 없는 수준의 크기였다.

쾅!!!!!!!

쾅!!!!!!

전차와 포들의 사격이 계속되는지 게이트 주변이 소란스러웠고,

화염과 폭약으로 인한 폭발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후우… 잘하면…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르겠군….’

한숨을 내쉬며 주위를 살피던 한철의 눈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어?! 박 실장님!!”

“아. 지부장님. 언제 오셨어요.”

곽한철의 부름에 박 실장이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방금요. 근데… 괜찮아요??”

“아, 네 뭐 괜찮습니다. 아직까지는….”

땀인지 피인지 모를 액체들을 닦아내며 박 실장이 담담히 답했다.

“이한성 헌터는요?”

한성의 거취를 묻는 박 실장의 눈이 날카로웠다.

“아직… 연락이 없네요.

일단 집에다가 메모를 써두고 나오긴 했습니다만,

애가 언제 올지는 저도 잘….”

“그렇군요… 빨리 와야 할 텐데….”

“…보통 놈들은 아닌가 보네요. 어떤 놈들인데요?”

“자이언트 센티페드더군요.”

“자… 자이언트 센티페드요??”

“네.”

“…빌어먹을.”

자이언트 센티페드.

말 그대로 거대한 지네 몬스터였다.

갓 부화한 새끼조차 2미터가 훌쩍 넘고

다 자란 성체는 15~20미터에 육박한다.

녀석들의 이빨은 지반이나 바위도 부술 정도이고

단단한 등갑은 총은커녕,

헌터들의 공격에도 쉽게 뚫리거나 잘려나가지 않는다.

녀석들이 가진 힘과 방어력만 해도 골치가 아픈데,

녀석들을 다루기 힘든 이유는 하나 더 있다.

바로 독.

두꺼운 쇠 철판도 녹여 낼 수 있는 부식성 독과

먹잇감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주입하는 마비독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가장 경계하는 이유는

바로 높은 번식력 때문이었다.

한 번 알을 낳을 때 수천 개에서 많게는

만 개가 넘는 알을 낳아 번식하는 자이언트 센티페드의 특성상,

먹을 것이 풍족하고 숨을 곳이 충분한 이쪽 세계에

한 마리라도 발을 들이게 된다면 매우 골치 아프게 될 것이다.

새끼들만으로도 기계화보병과 기갑부대로 이루어진

방어선이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에,

센티페드 킹이나 퀸이 나타난다면….

종로구뿐 아니라, 서울 전체가 쑥대밭이 될 것이다.

만약 이를 방어해내지 못하고 한 마리라도 놓치게 된다면….

끔찍한 일이 발생할 것은 자명했다.

그렇기에 협회는 총력을 다해 헌터들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이었다.

“헌터님들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면서 설명 들으시겠습니다!!”

대위 하나가 중앙에서 헌터들을 향해 소리쳤다.

“가보겠습니다.”

곽한철이 중얼거렸다.

“…시민들 구출 임무니까 그렇게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혹시라도 위험하거든 도망치세요. 저도 곧 따라가겠습니다.”

“네. 그래야죠. 하하 벌써 죽기는 싫거든요.”

웃으며 말하는 곽한철이었지만,

속으로는 떨림과 긴장됨의 연속이었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에 정신이 멀쩡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

“…무운을 빕니다.”

“실장님두요. 살아서 봅시다.”

그 말을 끝으로 한철은 헌터들이 모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삐비빅.

“네 협회장님.”

“…어 그래 괜찮나?”

“예 아직은 괜찮습니다.”

“…그래. 수고가 많아.”

“아닙니다.”

“이한성 헌터는?”

“아직… 연락이 닿지 않은 듯합니다.

최근 발견 위치가 지부 숙소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그 뒤로는 행방이 묘연합니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는 곽한철 지부장의 말도 거짓은 아닌 듯합니다.”

“…알겠네. 나도 계속 알아보지.”

“다른 길드들의 증원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지….”

머뭇거리며 묻는 박 실장의 말에 한숨부터 나오는 강건이었다.

“…알파 길드장만이 부름에 응했고, 나머지 길드장들은 대답이 없네.

아직 게이트 공략 중인 자도 있고 막 공략을 마친 자도 있어.

지금 당장 온다 해도 시간이 꽤나 걸릴 게야.”

“그럼 쉴드는…?”

“준비 중이라고 말은 해왔네만. 언제 올진 미지수네.”

“…알겠습니다.”

“계속 연락해 보겠네. 조금만 버텨주게.”

“네 알겠습니다.”

삐비빅.

“빌어 처먹을 새끼들… 다 죽고 나면

길드가 무슨 소용이고, 돈이 무슨 소용이냐.

이 멍청한 새끼들아… 하….”

박 실장이 씹어뱉듯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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