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22화 (22/336)

022화

* * *

‘이 영감… 날 떠보려는 건가.’

“한성 군. 자네는 지금 등급이 어떻게 되는가?”

“비기너입니다.”

“아니. 지금 등급 말일세.

병원에서 설화 양과 측정한 결과 말고.”

흠칫.

‘벌써 뒷조사까지… 생각보다 일 처리가 빠르군’

“하고 싶은 말씀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허허… 무슨 말인지 알 텐데. 늙은이를 귀찮게 하는군.”

“…그게 무슨…?”

한성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한성 군… 내가 아무리 전선에서 물러났고

전성기에 비해 힘을 많이 잃었다고는 해도

비기너급 헌터 하나를 제압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네.”

“….”

“일반적인 비기너급 헌터였다면

내 힘에 게거품을 물거나, 기절하거나, 발작하거나,

정신을 잃거나 등의 썩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을 게야.

그런데 자네는 편하게 차나 마시고 있지 않았는가.

최소 마에스트로급 이상이라는 의미지.”

“네?!”

한철이 놀라 소리쳤다.

한성이 자신을 넘어섰다는 것은 이미 예상했지만,

그래도 마에스트로급이라니….

“뭘 놀라는 척을 하나.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흐…흠.”

‘일이 귀찮아지겠네… 젠장.’

복잡한 한철의 마음과 달리

한성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한철은 한성을 유심히 살피는 강건의 모습을 발견했다.

‘화제를 돌려야 한다.’

이에 곽한철이 황급히 말을 꺼냈다.

“저 협회장… 김현철 씨 징계나….

그… 저희에 대한 처벌은 어떻게 될…지요?”

“징계…? 무슨 징계? 아. 이거?”

협회장이 품에서 서류 다발을 꺼냈다.

“그간 김현철 요원이 작성한 보고서일세.”

화르륵.

손에 있던 보고서가 깨끗하게 불타올랐다.

“무슨…?”

“애초에 징계할 생각도 없었네.

자네들을 부른 것도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고.”

“…네…?”

“작성한 보고서도,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된 자료도 모두 사라졌네.

이제 이것에 대해 그 누구도 문제 삼을 수 없겠지.

심지어 나조차도. 하하.”

“…이게… 무슨…?”

한철은 돌아가는 상황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멍한 표정으로 눈만 끔뻑거렸다.

“뇌물 수수 죄가 가벼운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받은 것이 그리 큰 금액도 아니었거니와,

이한성 헌터라는 원석을 발견하게 해줬으니

그 정도는 눈감아 줄 수 있네.”

“아. 그렇습니까.”

“게다가 뇌물을 받는 대가로

범죄를 눈감아 준 것도 아니지 않나.

모르긴 해도 이틀 동안 무지하게 마음고생 했을 거야.

그것으로 벌을 대신하도록 하지. 하하.”

“그럼… 저희는…?”

“처벌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말했지 않나.

왜? 혹시 자네 벌을 받고 싶은 겐가? 그래?”

“그… 그건 아니지만….”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비해 위험부담만 높아

아무도 처리하려 들지 않는 하급 게이트를

10개나 처리해준 헌터들에게 상을 주지는 못할망정,

벌을 내리다니 말도 안 될 일이지. 암.”

“후….”

‘일단 하나는 해결했다.’

한철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하. 거 사람 참. 덩치는 산만해가지고. 긴장하기는.”

한철의 긴장이 누그러진 것을 본 강건이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뭐 일적인 이야기는 끝났고,

이제 한성 군의 이야기를 좀 들어보고 싶은데….”

‘하… 씨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을 해봐도

눈앞의 협회장을 속이거나 주위를 돌릴만한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 한철이었다.

한철의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때쯤

한성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전에 회장님. 방금 말씀하신 상 대신에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

“뭔가. 말해보게

내 선에서 가능한 일이면 내 들어줌세.”

강건의 기대에 찬 표정과 달리

곽한철은 당황스러운 표정이었다.

‘예정에 없었던 일인데…?’

한성은 그런 한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말을 이었다.

“헌터법 조항 하나를 수정해주셨으면 합니다.”

“뭐…?”

“한성아 그게 무슨…?”

“푸하하하하.”

회장실에 강건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성아 그게 무슨 소리야. 어?”

놀란 한철이 한성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지만,

한성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야. 내가 한 방 먹었구만. 그래.”

웃음을 멈춘 강건이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진심으로 즐거워 보이는 눈치였다.

“내가 이렇게 반응할 줄 알고 있었나? 그래?”

한성은 씩 웃는 것으로 이를 답했다.

긍정이란 뜻이리라.

“…뭐…?”

곽한철의 머리가 복잡해졌다.

강건은 이런 이한성을 보며 마냥 즐거워하고 있었다.

“아 즐겁구만. 즐거워. 이 얼마만의 웃음인지.

당돌한 건지, 겁이 없는 건지. 여러모로 대단하구만.”

“한성아 이게 무슨 말이야?”

곽한철이 작고 빠르게 속삭였다.

한성은 말없이 웃기만 했다.

“……허….”

혼이 나간 표정의 곽한철과 달리, 강건은 만면에 미소가 가득했다.

“헌터 법 중에 게이트 등급에 따른 헌터 등급과 수를

제한하는 조항을 조금 손봤으면 합니다.”

“음…? 어떻게”

“역량이 되는 헌터에 한해 이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세부 조항을 추가한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 정말로 그게 다인가?”

“네. 그게 다입니다.”

“…그거라면 헌터 조약에도 어긋나지 않고.

기존의 법 조항을 완전히 새로 바꾸는 것도 아니니

별 어려움은 없을 것 같군. 그런데 왜…?”

“혼자서 사냥하고 싶어서입니다.”

“뭐?”

“혼자가 편해서요.”

“…….”

짧은 침묵.

“하 이것 참 걸작이구만 그래. 아주 걸작이야.

돈도 아니고 명예나 권력을 원하는 것도 아니야.

단지 조항을 바꿔 달라. 하하. 참. 재밌는 사람이구만.”

“아닙니다. 회장님께서 편의를 봐주신 덕이지요.”

씩 웃어 보이는 한성이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 ‘역량’이라는 말이… 참 애매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해도….

남들도 납득할만한 증표나, 증거가 있어야 되거든.”

강건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네. 알고 있습니다. 등급 재조정 말씀이시죠?”

“그렇지. 역시 현명하구만.”

“오늘 재측정 해 볼 수 있을까요?”

“아 물론이네. 지금 당장 준비시켜 놓도록 하지.”

삑.

“어. 박 실장. 지금 당장 마력 측정실로가

마력 측정기를 가동할 수 있게 준비 해주게나.

그리고 박 실장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들이지 말도록.

어. 수고해주게.”

삑.

“됐네. 한 30분 내로 준비될 게야.”

“배려 감사드립니다.”

강건의 만면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뭐 이 정도 가지고 그러나 하하.

생각해보니 안 되겠군. 내가 직접 가봐야겠어.

간만에 큰 손님이 오셨는데, 내가 가만있어서야 되겠나.

여기서 잠깐 쉬고 있게나. 다 되면 사람을 보내지.”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회장님.”

“아닐세. 그럼 좀 이따 보지. 하하하.”

강건이 호쾌한 웃음을 하며 방을 나갔다.

달칵.

“야 임마. 이게 무슨 일이야.

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데?”

강건이 문을 닫고 나가자마자,

곽한철이 한성에게 달려들며 물었다.

“아이 손 손 손! 아파 아파 아파.”

“어… 어 그래.”

‘아프기는 개뿔이….’

한성의 어깨를 잡은 손을 놓으며 생각하는 한철이었다.

“어유. 삼촌은 이야기 듣고도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그래. 임마!”

“이번 일은 내가 꾸민 게 맞아요. 협회장 만날라고.”

“그러면 나한테 얘기를 좀 해줘도 되잖아!”

“적을 속이려면 아군부터 속여라

뭐 이런 옛말이 있잖아요?”

“이 자식이 정말. 심장 터질 뻔했다 이 자식아.

어? 너 때문에 내가 늙는다. 늙어!!”

“죄송해요. 혹시 몰라서

계획에 차질 생길까 일부러 말씀 안 드렸어요.”

“진짜로… 죽을 뻔했다.

은퇴했다는 양반이 왜 저렇게 기운이 좋아.

어우…아직도 간이 떨리네.”

“하하.”

“근데 일이 어떻게 풀릴 줄 알고….

여차하면 그냥 징역 살고 끝일 수도 있었잖아.”

“아이… 일부러 들키려고 어설프게 계획했는데요 뭐.

그래서 현철 삼촌한테 그렇게 하라고 한 거고.”

“뭐!? 명단갈이랑, 공략 주기랑, 공략 시간대 섞은 거…?

그거 네가 시킨 일이었어?!”

한철이 놀란 얼굴로 한성에게 물었다.

“당연하죠. 삼촌은 그런 허술한 보고서로

진짜 협회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아이고. 순진도 하셔라… 일부러 그렇게 한 거예요.

이 정도로 허술해야 협회 측에서도 눈치를 채죠.”

“그럼 협회장이 널 불러낼 거라고는 어찌 알았는데…?”

“협회장이 말했다시피 말이 안 되는 기록이잖아요.

아마 협회 측이 협회장한테 보고했을 거예요.

이상하다 싶어 우리 뒷조사도 이미 했을 거고.

모르긴 해도 다양한 의심을 했겠죠.

뭐 내가 등급을 숨기고 있다든가, 성장 형 헌터라든가,

아니면 몬스터에게 유효한 무기를 만들었다든가.”

“그걸 다 계산했다고…?”

한성을 바라보는 강건의 눈에 경악이 어렸다.

“뭐가 됐든,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니까

다른 길드가 눈치채거나 접근하기 전에

협회장 이름으로 빠르게 소환한 거구요.

쓸만한 헌터면 살살 꼬셔서 영입하려 들 거고

그게 아니라 해도 10개의 게이트를 공략한 건 사실이니

그 노하우라도 얻어 내면 이득인 거고.”

“후우… 그래.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런데 너 힘을 갖추기 전까지 숨기기로 한 거 아냐?”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한데.

제 몸 하나 건사할 힘은 있다고 생각해요.”

“흠… 그래도 너무 이른 거 아닌가 싶은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밝혀질 일이에요.

그리고 들켜도, 먼저 협회한테 들키는 게 나아요.”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사실, 협회장이 인재에 대한 욕심이 많아요.

자기 뒤를 이을 후계자를 찾고 있는 건 알죠?”

“뭐 공공연한 사실이니까. 너 설마? 협회장 자리 노려?”

한철의 표정에 경악이 어렸다.

“아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날 노리게끔 만드는 거지.”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 답답하긴. 자기 후계자로 점찍을 만한 애가

눈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해 봐요. 삼촌 같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꼬시려고 노력하겠지?”

“그거죠. 꼬시려고 노력하겠죠?

그래서 법안의 수정이라는 사탕을 저한테 주는 거예요.

이걸로 호감을 사서, 절 자기 사람으로 만들려는 거죠.

그런데 만약에 이 과정에 이를 방해하는 세력이 있다?

협회장이 다른 세력들이 나에게 접근 못 하게 막아주거나,

아예 자기 후계자라 공표를 하겠죠?

어느 쪽이 되었든 저한텐 이득이죠.

협회장이 점찍었다는 소문이 돌면,

거대 길드라도 웬만해서는 귀찮게 안 할 테니까.”

“아….”

고개를 끄덕이던 곽한철이 빠르게 물었다.

“법 조항은 왜 바꿔?”

“그래야, 눈치 안 보고 빨리 크죠.

내 맘에 드는 공격대 어느 천년에 구성해서 커요.

게다가 믿을 놈 하나 없는데 누구를 데려와.

나 혼자 빨리빨리 처리하는 게 낫지.

게다가 언제까지고 명단갈이랑 뭐 주기 조작하면서

협회를 속일 수도 없는 노릇이잖아요.”

“아….”

“어휴. 삼촌은 앞을 내다보는 힘을 좀 키우셔야겠다.”

“너…!? 하 참나 원.”

“하하.”

덜컥.

“이한성 헌터님, 곽한철 헌터님. 협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아 네.”

“가요.”

“그래. 어휴… 더 이상 놀랄 일이 없으면 좋겠다 야.”

“모르죠. 더 있을지.”

“됐어. 더 이상 놀랐다간, 내 심장이 버티질 못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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