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1화
* * *
지부에 들어가자,
심각한 얼굴로 전화를 받는 곽한철이 보였다.
감시과에서 온 연락이겠지.
“네. 네. 알겠습니다. 내일 9시에 찾아뵙겠습니다. 네.”
달칵.
“후우….”
한철이 한숨과 함께 솥뚜껑 같은 손으로 얼굴을 부벼댔다.
“뭐래요? 어떻게 됐는데…? 어?”
몸이 달은 김현철이 한철을 닦달했다.
“후… 거 일 처리를 좀 잘 좀 하지. 어유….”
한철의 미간이 팍 일그러졌다.
“나라고 이럴 줄 알았어요?! 어떡해 우리 현지 아이고.”
잘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물을 글썽이는 현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허위로 작성해 올린 보고서가 이미 10건이 넘었다.
무거운 중징계는 기본, 자칫하다가는 잘리는 것은 물론이고 공론화되면 징역형을 면치 못할 수도 있었다.
안 그래도 얼마 전 협회 말단 직원 하나가
마력석을 대가로 범죄를 눈감아 주다 들킨 일이 있었다.
이를 알게 된 협회장은 길길이 날뛰며 불같이 화를 냈고
그의 직위를 해제함과 동시에 직무유기와 뇌물수수죄로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청렴하고 강직한 성품을 가진 탓에,
이런 유형의 범죄를 가장 싫어했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검찰로 넘어간 이번 사건은
협회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기소 유예나 기각 없이 빠르게 재판이 진행되었고,
징역 5년에 처해졌다고 했다.
그 후로 협회 내 모든 사람들이 더욱 조심하며 몸을 사렸다.
그 후로는 심지어 감사와 수고의 의미에서
시민이 건넨 음료수 캔 하나도 받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김현철의 범죄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으니….
겁이 나는 건 당연하겠지.
“나 어떻게 해요? 어? 뭐라 말 좀 해 봐요 좀!!”
김현철이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하아. 기다려봐 나도 나름 머리 굴리고 있으니까.”
한철이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종이에 계속해서 뭔가를 썼다 지웠다 하며 궁리하는 듯했다.
그 사이 김현철의 전화기는 불이 나고 있었다.
각종 메시지부터 전화까지 쉴 새 없이 벨이 울려댔다.
아마 선임과 과장, 차장, 부장들의 확인 전화이리라.
전화기에 뜬 사람들의 이름을 본
김현철의 안색은 파리하다 못해 시체처럼 변해갔다.
불이 나던 김현철의 전화기가 갑자기 조용해졌다.
이윽고 울리는 벨소리.
그 소리가 왠지 난 장송곡마냥 느껴졌다.
빠라바라밤~ 빠라바라밤~
“히익!”
김현철의 손이 눈에 띄게 부들거렸다.
벨소리는 군대에서 사열 시
사단장이 나올 때나 들릴 법한 ‘장성에 대한 경례’였다.
삼촌이 순간 머리를 싸매고 긁적이던 뭔가를 멈췄다.
“혀… 협회장님….”
김현철이 중얼거렸다.
머리를 싸매고 있던 한철이 고개를 퍼뜩 들어 김현철을 쳐다봤다.
“어… 어떻게 해요.”
“우… 우선… 받아요. 얼른.”
고개를 끄덕인 김현철이 침을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 여보세….”
“――――――――”
낮고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라고 말하는지 들리진 않았지만,
김현철은 협회장의 말을 듣는 내내
금방이라도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표정이었다.
김현철에게 다가간 한성이 손을 내밀었다.
“줘 봐요.”
“…?”
“줘 보라구요. 생각이 있으니까.”
김현철이 덜덜 거리며 전화기를 주었다.
“여보세요.”
“자넨 누군가?”
“예 안녕하십니까. 헌터 이한성입니다.”
“…이한성?”
날 서 있던 협회장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예. 그렇습니다. 이번 일을 꾸민 장본인입니다. 네.
곽한철 지부장과 김현철 요원을 대동해 직접 찾아 뵙고
이번 일에 대해 소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네.”
“――――――――”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9시에 협회로 가겠습니다.
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네 그럼.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자, 자리에 주저앉은
김현철과 경악한 표정의 한철이 보였다.
“야… 야 한성아 너 어쩌려고…?”
“이제 끝났어… 나는 어떻게 해 이제….”
넋이 나간 김현철과 얼빠진 한철을 향해 말했다.
“생각이 있어요. 걱정 말아요.”
김현철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 * *
다음 날 아침. 아침부터 지부는 부산했다.
자신이 입은 정장이 깔끔한지 잘 어울리는지
수백 번을 묻는 한철과 짜증 난 양화의 답으로 시끌벅적했다.
한성도 처음으로 입어보는 양복 수트에 조금은 설렜다.
거울에 이리저리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는 한성을 보며
한철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퉁명스레 말했다.
“임마. 지금 선보러 가는 줄 아냐?
그 자리에서 바로 피살될 수도 있어. 알아?!”
“아이 삼촌 농담도. 괜찮아 쫄지 마. 잘될 거야.”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하는 한성을 보고
한철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휴. 저놈은 겁이 없는 건지, 정신이 나간 건지 어휴….”
“괜찮다니까!”
“안 괜찮아 이 시꺄!”
끼이익.
“준비 다 됐으면 가시죠….”
김현철이 문을 열고 말했다.
밤새 수많은 전화와 메시지에 시달린
김현철의 얼굴은 반송장과 다를 바 없었다.
협회로 가는 내내 차 안은 조용했다.
세상 다 산 것 같은 표정으로 운전하고 있는
김현철의 표정이 조금 안쓰러웠다.
“너 근데 뾰족한 수가 있긴 해? 아니면 그냥 막 지른 거야?”
한철이 물었다.
이에 김현철도 백미러를 통해 한성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나도 몰라요. 일단 부딪쳐 봐야지 뭐.
그 양반 만나봐야 견적 나올 것 같은데?”
한성의 심드렁한 태도에
한철은 답답해했고 김현철은 한숨만 쉬었다.
* * *
눈앞에 으리으리한 건물 한 채가 보였다.
정부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고 독자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유일한 조직.
그래서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헌터들에
개입하고 감시 감독 및 관리할 수 있는 조직.
게이트 관리와 헌터 감시, 길드 간 갈등 중재,
국가 간 정보 교환과 협력을 주도하는 조직.
헌터협회가 그것이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가시죠.”
협회에 도착하자마자,
검은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다가왔다.
아마 협회장이 보낸 인물들일 것이다.
대략 마스터 하급에 해당하는 마력이 느껴졌다.
우리가 도망가거나,
허튼짓을 할 경우 제압하기 위한 조치겠지.
그래 봐야 몇 초 안에 제압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그들을 따라 들어간 협회의 건물.
중앙 홀을 지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는 곧장 최상층으로 올라갔다.
문이 열리고, 긴 복도를 지나 협회장실 앞에 섰다.
똑똑똑.
“들어오게.”
문을 열자 사방이 창문으로 된 깔끔한 방이 보였다.
청렴하다는 평처럼, 그의 방에는 화려한 장식이나
구조물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컴퓨터 한 대와 책상.
그리고 접객용으로 들여놓은 소파와 탁자가 전부였다.
검은 양복의 사내들이 인사하고 방을 나갔다.
백색의 정장을 입은 사람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창가에 서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의의 철권’이라는 이름답게
그는 무인의 기골을 가지고 있었다.
삼촌의 덩치도 상당한 편인데,
협회장과 비교하니 왜소해 보일 정도였다.
은퇴한 지 오래긴 했지만, 협회장 또한 헌터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엠페러급 헌터이자,
최강이라는 칭호가 가장 잘 어울렸던 헌터.
그것이 협회장 강건이었다.
그는 서울 한중간에 발생한 던전 브레이크에서
수십만의 목숨을 앗아간 마물 ‘카르마’를 제거하고
게이트를 닫은 입지전적인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 일로 심각한 상처를 입게 된 그는
수명이 다한 헌터가 나아갈 전장은 없다는 말과 함께 은퇴했다.
정부는 인재를 썩힐 수 없다며
쉴드의 수장이 되어달라 말했지만,
강건은 정부의 개 노릇은 하고 싶지 않다며
이를 단호히 거절하고는 헌터 협회를 창설하겠다 선언했다.
정부는 자신들을 감시하고
옭아맬 수 있는 협회가 달갑지 않았으나,
강건의 사회적 위치와 헌터들의 두터운 신임에
이를 악물고 허락했다.
“왔는가.”
굵고 묵직한 저음이 들렸다.
“협회장님. 사실….”
“됐네.”
김현철의 말을 자른 협회장이 계속 말을 이었다.
“김현철 요원. 자네는 나가 있게.
둘과의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때 다시 부르겠네.”
“…네 알겠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한 김현철이었다.
철컥….
김현철이 방문을 닫고 나갔다.
그제야 협회장이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다.
부리부리한 눈매와 짙은 눈썹,
하얗게 세다 못해 은백색이 되어버린 머리가 보였다.
60대라는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그는 건강하고 강인해 보였다.
“…앉게.”
강건이 소파의 통화 버튼을 누르며 말했다.
“여기 차 좀 내오지.”
강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과와 차가 들어왔다.
“들지. 좋은 품질의 차라네.”
“아… 네.”
후룩.
차 마시는 소리 외에는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참의 침묵 뒤에 차를 다 마신 강건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내가 왜 여기에 자네들을 부른지 아는가?”
“예. 알고 있습니다. 헌터법 위반 처벌 논의를 위해….”
강건이 한철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니. 아닐세.”
“…그러면… 왜…?”
“궁금했거든.”
“…네? 뭐가…?”
“정말 협회를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지 말이야.”
“…….”
“설마 진짜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그 조잡하고 말도 안 되는 보고서 몇 장으로?”
“…그…그게.”
“거 참… 이 늙은이를 고생시키는군.
일반적으로 말이지. 아무리 낮은 등급의 게이트라도,
공략 후 재정비 기간이 평균 오 일에서 일주일이라네.
그런데 자네들은? 평균 이틀, 늦어도 사흘이었어….
높은 등급의 헌터가 있다면 못할 것은 없지.
그런데 자네들 공격대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아.
왜? 명단 헌터들은 전부 비기너 아니면 익스퍼트니까.”
삼촌이 눈을 질끈 감았다.
“또, 보고서대로라면, 자네들과 함께
게이트를 공략하고 있었어야 할 김준 헌터가
같은 날, 같은 시간, 다른 게이트에서 발견됐어.
김준이라는 이름의 헌터는 단 한 명인데 말이야.”
“저… 협회장님….”
“쉿. 아직 안 끝났네. 그뿐인 줄 아는가?
자네와 한성 군을 제외한 명단의 헌터들은
현재 헌터 일을 쉬거나, 은퇴한 자들이라네.
혹시나 싶어 직접 연락도 해봤네만….
그 날짜에 게이트에 간 헌터는 없었어. 단.한.명.도.”
“….”
“그렇다 해서 게이트 공략 자체가 거짓은 아니야.
분명 10개의 게이트가 소멸한 것을 확인했단 말이지.
그 말인즉슨… 단둘이서 게이트를 공략했다는 건데….
어떻게 비기너와 슈페리어급 헌터 단둘이서….
E, D, F급 게이트 모두를 공략할 수 있었을까…?
그것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빨리?”
능구렁이 같은 삼촌도 이와 같은 상황을
모면할 만한 기지는 없었는지, 비 오듯 땀을 흘렸다.
“자네들이 봐도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이 일련의 과정들이 일반적이고 정상적인가? 아닐걸?”
“…그게 협회장님 사실은….”
“혹여나 내 앞에서 거짓을 늘어놓을 생각이라면
그러지 않는 게 자네들 신상에 좋을 걸세.”
방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강건에게서 어마어마한 양의 마력이
폭발적으로 방출되어 한철과 한성을 옥죄었다.
[‘강건’으로부터 위협이 감지됩니다.]
[업적 : 차가운 업적의 소유자 발동,]
[위협이 소멸됩니다.]
“커헉….”
한철은 강건의 위협을 받아내지 못한 채,
소파에 무너지듯 쓰러져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는 듯 보였다.
이윽고 그는 컥컥거리는 소리와 함께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흡 곤란 증세를 보였다.
강건은 자신을 한 번 쳐다보고는
아무렇지 않게 차를 마시는 한성을 보고 눈을 반짝였다.
이윽고 마력을 갈무리한 강건이 말을 이었다.
“현역에서 물러났다고는 하나,
내 마력은 애송이가 태연하게 받아낼 만한 것은 아니지.
역시 예상대로구만.”
“헉… 헉….”
한철이 거칠게 숨을 쉬었다.
땀이 폭포같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안하네. 위협을 가할 생각은 없었네만,
확인 차 시험해본 것이니 늙은이의 심술이라 생각하고 용서해주시게.”
강건이 사람 좋은 웃음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한성은 알고 있었다.
저 웃음이 진짜가 아니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