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화
* * *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났다.
협회 요원들도 오는 횟수가 줄더니 이제는 아예 오지 않았다.
매스컴에서도 냄새를 맡고 우리를 취재하려 했지만,
협회 측의 제재로 이는 저지당했다.
아마도 자신들의 실수가 알려질까 조심하는 모양새였다.
뭐 이와 상관없이 나는 차분히, 천천히 스킬들을 익혀나갔다.
스킬들은 숙련도는 빠르게 올랐다.
초승달 베기를 제외한 스킬 모두 숙련도 9를 달성했다.
그렇다고 초승달 베기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
막무가내로 이를 연습할 수는 없었다.
이목을 끌 수 있는 수준의 파괴력과 폭발력을 가진 스킬이라,
아무래도 의심을 받을 수 있어 연습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따르릉.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았다.
“네, 고객님. 헌터 마켓 김윤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 네.”
“네, 고객님께서 제작 의뢰하신 단검 한 쌍과
방어구가 완성되어 연락드렸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언제 가면 될까요.”
“언제든지 편하실 때 찾아주시면 됩니다.”
“아, 네 좀 이따 가겠습니다.”
“네. 기다리겠습니다.”
* * *
한 달 전, 퇴원하고 지부로 돌아오자
삼촌은 지부 창고에 있던 쿠마의 사체를 꺼내왔다.
타긴 했지만, 녀석의 가죽은 여전히 쓸 만했고
이빨과 송곳니도 상태도 양호했다.
삼촌에게 왜 팔지 않고 그냥 두었냐고 물었더니,
내가 잡았으니 내 뜻대로 해야 한다 했다.
그래서 난 이걸로 방어구와 단검을 만들면 되겠다 싶어
그리하기로 했다.
삼촌은 콩고물이라도 떨어질 거라 생각했는지 입맛을 다셨다.
이번에도 저번의 그 헌터 마켓에 가서
단검과 방어구의 제작을 의뢰했다.
한성의 의뢰에 오너가 공방장을 불렀다.
처음에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온 공방장.
새하얗게 센 흰머리와 고집스러운 표정, 양손의 굳은살까지….
한눈에 장인임을 알 수 있었다.
오너는 내게 방어구와 단검의 재료를 직접 준비해 올지,
아니면 상점에 있는 재료를 쓸지 물었다.
오너의 말에 씩 웃으며 둘을 공방으로 데려갔다.
할 일이 밀렸는데, 이리저리 자신을 불러내는 상황이
공방장은 짜증 난 듯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성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그런 공방장의 표정에도 아무 말 없이 한성은 빙긋 웃으며
주위에 시선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쿠마의 사체를 꺼냈다.
표정의 변화가 잘 없던 오너의 표정이 단숨에 변했다.
쿠마의 크기에 한 번, 인벤토리에서 꺼낸 내게 두 번 놀란 듯했다.
이내 오너는 표정을 바로 했다.
공방장은 쿠마의 크기가 어떻든,
내가 어디서 물건을 꺼내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짜증 가득하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애인이라도 보듯 환한 미소로 쿠마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장인으로서의 호기심과 기대 때문이겠지.
이리저리 쿠마를 살피는 공방장을 보며 오너는 그도 헌터라 했다.
다만 그 능력이 전투 계열이 아니라
아이템을 제작하거나 추출하는 데 특화된 것이라고 했다.
그런 공방장을 뒤로하고 오너에게 기존 내 단검과 방어구를
처분해 줄 것을 요구했다.
또 오늘 있었던 일들은 비밀로 해줄 것을 요구했다.
오너는 웃으며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단검과 방어구를 찾으러 갔다.
“오셨습니까.”
역시나 정중한 오너였다.
“우선, 말씀하신 방어구 처분 금액입니다.”
천오백을 내게 건네주었다.
“단검 한 쌍은 처분하지 않고,
이를 활용해 새로운 투척 나이프를 제작해 두었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필요했거든요.”
오너가 내민 박스에는 백여 개의 투척 나이프들이 들어 있었다.
[흑랑의 이빨 투척 나이프]
공격력 : +35
내구도 : 100/ 100
착용 가능 민첩성 : 75
효과 : 방어구 관통력 +35%
‘오오….’
상당한 능력치였다.
투척 나이프가 이렇게까지 좋아도 되나 싶을 정도였다.
“여기 제작 의뢰하신 단검 한 쌍입니다.”
오너가 가죽으로 된 벨트와 늑대 문양이 새겨진 검집을 내놓았다.
검집에서 단검을 꺼내자 탄성이 절로 나왔다.
전체적으로 무광의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게다가 유려한 곡선을 가진 칼날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쿠마 녀석의 가죽을 가공해 만들었는지,
손에 착 감기는 그립감의 손잡이가 너무나 기분 좋았다.
화려하지 않게 해달라는 내 주문을 그대로 반영한 듯,
단순하고 수수해 보였다.
‘음… 능력치를 확인해 봐야겠군.’
[그림자 송곳니 단검]
공격력 : + 75
내구도 : 100 / 100
착용 가능 민첩성 : 100
매우 빠른 공격속도
장착시 + 공격속도 30% 증가 + 치명타 확률 45% 증가
+ 방어구 관통력 40% 증가
+ 공격 명중 시 35% 확률로 출혈효과 발동,
대상의 체력이 1000초에 걸쳐 전체 체력의 30% 소모.
‘와… 어마어마하네. 출혈 효과까지….’
뭐랄까. 마치 나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어 왔는가.”
공방장이 가게 한편에 공방으로 이어진 천막을 걷어내며 들어왔다.
“아 네.”
“그 녀석 만드는 데 간만에 힘 좀 썼지.”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뿌듯함이 어려 있었다.
“나로서도 꽤나 맘에 드는 작품이야. 공을 많이 들였어.”
“수고하셨습니다.”
“됐네. 자 그리고 여기 입어보게”
공방장이 내게 방어구를 건네주며 말했다.
“아 거 참. 이 녀석 가죽이 어찌나 질긴지
단검보다 이거 만드는 데 더 용을 썼어.”
받아 든 방어구는 놀랄 정도로 가벼웠다.
“가볍지? 질기고 튼튼한데, 가볍기까지 해.
하하! 제작계 헌터의 스킬이지. 자네한테 딱이야.”
공방장의 표정에는 웃음과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림자 갈기 늑대의 방어구 SET]
1. 그림자 갈기 늑대 투구 :
방어력 +150, 내구도 100/100
2. 그림자 갈기 늑대 갑옷 :
방어력 +300, 내구도 100/100
3. 그림자 갈기 늑대 장갑 :
방어력 +100. 내구도 100/100
4. 그림자 갈기 늑대 신발 :
방어력 +120. 내구도 100/100
세트 효과 :
방어력 20% 상승/ HP +100 / 민첩 +25P/ 자동 온도 유지
‘휘유….’
전의 방어구와 효과는 비슷한 양상이었지만,
방어력이나 세트효과가 차원이 다르게 좋았다.
이 정도라면 방어력이라면 가죽 방어구의 한계점을
충분히 보완하고도 남을 성싶었다.
디자인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그림자 갈기라는 녀석의 이름처럼, 칠흑같이 어두운색이었다.
입어보니 움직임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어쩐지 내 몸 치수를 꼼꼼하게 재더라니….
무게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고, 피부처럼 딱 달라붙었다.
“어때? 괜찮아?”
“네. 마음에 드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재료만 가져와 준다면야. 얼마든지!”
공방장의 호쾌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헌터께서 가져오신 몬스터의 사체는… 어떻게 처리할까요…?”
오너가 조심스레 물었다.
오너와 공방장의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오호라 방어구와 단검을 만들고도 꽤나 남았나 보네.
“흠….”
좀 더 애를 태울까 하다
어른 놀리는 것도 죄다 싶어 그냥 말했다.
“그러면 이렇게 하시죠. 남은 재료 모두 공방장께 드릴 테니,
제작비를 제하는 거로. 제작비 제하고도 많이 남을 텐데,
이거는 제가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오너와 공방장의 얼굴이 급격하게 밝아졌다.
“대신!”
오너와 공방장의 얼굴이 다시 초조해졌다.
놀리는 맛이 있네. 이 양반들.
“다음에도 제가 제작을 의뢰할 때 더 신경 써주세요. 어때요?”
“알겠습니다.”
“알겠네.”
“다시 찾아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공방장의 호쾌한 웃음과
오너의 정중한 인사를 뒤로하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아 맞다.
나온 김에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스크롤을 찾아봐야지.
내가 찾는 은신이나, 소멸 비슷한 스킬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가보기로 했다.
삼촌에게 물어 찾은 곳은 달빛 주점이라는 이름의 칵테일 바였다.
삼촌은 달빛 주점이 겉만 칵테일 바일 뿐,
그 실상은 스킬 스크롤을 사고파는 상점이라고 했다.
띠링.
달빛 주점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문에는 초승달 모양의 풍경이 걸려 있었다.
풍경이 울리자 주점 안 사람들의 이목이 내게로 집중되었다.
아직 어린 데다, 이런 장소를 어색해하는
내 모습이 영락없는 풋내기 헌터로 보였나 보다.
사람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렸다.
뭐 딱히 신경 쓰지는 않았다.
매의 눈으로 살펴봐도, 나보다 강한 녀석은 보이지 않았으니까.
하나같이 마력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난잡하게 흩트려 놓은 하수들이었다.
기껏해야 비기너나 익스퍼트 수준 정도랄까.
고개를 돌려 사람들을 관찰하다 카운터 석을 바라보았다.
거기엔 조명에 잔을 비추며 꼼꼼히 닦는 마스터가 있었다.
저 사람이다. 이 가게에서 가장 강한 사람.
그에게서는 흐트러짐 없이 잘 정돈된 마력이 보였다.
음… 마스터급 정도인가.
탁.
카운터 석의 의자를 빼고 자리에 앉았다.
“마스터. 오늘의 추천 메뉴는 무엇인가요?”
이런 곳을 와본 적이 없다 보니 영 주문이 어색했지만,
어찌 됐든 삼촌이 시키는 대로 물었다.
“마티니 블루입니다.”
“네. 젓지 말고, 흔들어서 한 잔 부탁합니다.”
마스터의 눈이 바뀌었다.
“…네 알겠습니다.”
마스터는 유심히 나를 쳐다보다 잔을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가게 뒤 창고로 이어져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이, 꼬마야.”
역시… 영화나 현실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같은가보다.
왜 시비를 안 거나 했다.
“…?”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나를 대놓고 비웃던 녀석이 보였다.
얼굴에는 좌에서 우로 길게 찢어진 자상에
허리춤의 칼까지… 보아하니 녀석도 헌터인 듯했다.
“부르면 대답을 해야지.”
“용건은?”
“하하하하하하.”
내 대답에 주점 안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이야.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한테 무시당한 거야?”
“세상에. 한물갔구만.”
다른 헌터들의 조롱에 칼잡이가 상기된 얼굴로 일어서며 말했다.
“어른이 부르면, 네 하고 대답을 해야지. 응?”
뚜벅뚜벅 내게 걸어오는 칼잡이.
거리는 기껏해야 3미터.
흠, 한 대 치면 죽을 것 같은데.
“대답을 안 하네. 거참. 꼬마야 겁이라도 먹은 거냐? 엉?”
아무런 대답 없이 바라보는 내게
칼잡이는 골이 났는지 허리춤에 손을 올리며 다가왔다.
가볍게 장난이나 쳐볼까.
“그만하지. 이 가게의 규칙이 뭔지는 잘 알 텐데?”
어느새 카운터로 나온 마스터가 칼잡이에게 말했다.
“쳇….”
칼잡이가 허리춤에 올린 손을 내리고 으쓱하며 말했다.
“아니 뭐. 저 꼬마한테 어른의 세계를 한 번 알려주려 했지.”
“자네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 같군.”
마스터가 품에서 종이 뭉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뭐요? 내가? 이 꼬맹이를? 하, 참 나.”
“자네 칼이나 간수 잘하게.”
“응?”
콰당.
칼잡이의 허리춤에 메어있던 칼집이 떨어져 내렸다.
허리춤의 벨트가 예리하게 잘려 있었다.
“뭐… 뭐야? 언제?”
“쯧. 조만간 물갈이를 하든가 해야지.”
칼잡이를 보고 혀를 찬 마스터가 내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손님 실례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니가 한 거냐? 이 새끼가….”
콱.
쉭 소리와 함께 칼잡이가 서 있던 벽에 나이프가 꽂혔다.
칼잡이의 뺨이 벌어지며 피가 흘렀다.
“그만.”
흠. 좋은 솜씨군.
“윽….”
“손님께서 봐주셔서 그 정도인 줄 알아.
내가 자넬 멈추지 않았다면, 나를 포함한 주점 안 그 누구도
여기 계신 손님을 말리지 못했을 테니까.”
주점 안이 술렁거렸다.
“…쳇….”
칼잡이 녀석이 분한지 얼굴을 붉힌 채 씩씩거렸다.
여전히 내가 자신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듯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아뇨 뭐. 큰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요 뭐.”
“주문하신, 마티니 블루입니다. 천천히 즐기시길.”
마스터는 내게 마티니 한 잔과 스킬 목록들을 보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