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화
* * *
“아무 이상 없다면서요. 선생님? 예? 근데 왜….”
“단지 의식을 잃은 것뿐입니다. 곧 깨어날 거예요.”
“곧 깨어난다는 그 말만 지금 이틀째 아닙니까? 예?”
멀리서 희미하게 소리가 들려왔다.
‘음…? 삼촌 목소리인데…?’
의식이 맑아졌다.
희미하던 소리는 이내 점점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한성의 회복이 완료되었습니다.]
[분배되지 않은 스탯 포인트가 있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보상을 확인하십시오]
정신을 차리고 눈을 뜸과 동시에 알림이 들려왔다.
‘여기가 어디야?’
눈을 돌려 살펴보니 병실이었다.
그것도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1인실.
어? 얼마 전에도 이런 적 있었던 것 같은데??
데자뷰인가…? 아니네. 얼마 안 됐구나.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삼촌은 병실 문 밖에서 곤란해하는 의사에게
뭐라 뭐라 일방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의사와 간호사는 회진시간인데도 끈덕지게 달라붙어
자신들을 귀찮게 하는 삼촌에 난감해하고 있었다.
상대가 일반인이 아닌 헌터이다 보니,
맞아 죽을까 함부로 뭐라 말도 못 하는 듯했다.
이제 내 차례인 듯 문을 열고 들어왔다.
드르륵.
“아니, 선생님 뭐라 말씀 좀….”
문을 열고 삼촌과 의사가 들어왔다.
“삼촌.”
대화 내내 의사의 얼굴만 바라보던
삼촌이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고개를 홱 돌렸다.
그 기세가 너무 대단해 목이 돌아가는 줄 알았다.
“한성아!”
삼촌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왔다.
날 해치지 않을 것을 아는 데도, 약간 무서웠다.
“괜찮아? 어디 불편한 데 없어? 응?”
삼촌이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아.”
호들갑을 떠는 삼촌을 안심시킨 나는
의사의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하고 간단한 검사를 받았다.
의사는 별다른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으나,
혹시 모르니 조금 더 경과를 지켜보자 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나가고 난 뒤
삼촌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봤다.
삼촌은 내가 기절하고 난 뒤의 일을 설명해주었다.
“나도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몰라.
폭발하고 난 뒤에 정신 차려 보니 밖이더라고.
현철 씨의 말로는 게이트가 불안정하게 요동치다가 폭발했다더라.
자기도 이런 일은 처음이래. 협회 데이터에도 없는 일이라나.
여하튼 폭발이 끝나고 나니까 게이트는 사라져 있었고,
와보니 그 자리에 우리가 쓰러져 있었다지 뭐냐.”
“그래요?”
“그래. 나도 이런 경험은 첨이라서 뭐가 뭔지 원.”
“삼촌은 괜찮으신 거 맞죠?”
“그래. 누워있는 니가 서서 돌아다니는 날 걱정할 처지냐.
어이구. 퍽도 고맙다. 야.”
“그러네요. 하하.”
“그나저나 꼼짝없이 죽는지 알았다 나는.
삼촌이 나가자고 하면 빨리 나갈 생각을 해야지 어?
거기서 그 새끼를 잡을 생각을 해?
잡았으니 망정이지. 못 잡았으면 우리 둘 다 개죽음이었어.”
“그러게요.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그때 아니면 못 잡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가지고….”
“어휴… 두 번은 겪고 싶지 않다. 지금 생각해도 막 오금이 저려.
그나저나 그 늑대 새끼 거 바싹 타가지고 죽었더라야.”
삼촌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했다.
“아 맞다. 내가 이상하다 했는데, 이상한 거 맞더라.”
“뭐가요?”
“아니 그 늑대 새끼 말이야. F급 게이트 보스 주제에
내 도발을 상쇄하지를 않나. 이상한 스킬을 쓰질 않나.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거든.”
“그래서요?”
“현철 씨한테 들어보니 현상금 걸린 C급 게이트 보스더만?”
“에?”
놀라 혀를 깨물 뻔했다.
“어쩐지 말도 안 되게 강하더라.
말 들어보니까. 그 늑대 새끼가 보통 영악한 게 아니더만.
자기보다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되면 게이트 붕괴시키고
자기는 몰래 빠져나가 버린다더라.”
“…아 그래요?”
“그래. 붕괴 속에서 죽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래.
슈페리어는 물론 마스터급도 수두룩하대.”
“영악하네요….”
“야. 그뿐인지 아냐.
게이트 밖으로 도망가서 그림자에 숨어 있다가,
다른 하급 게이트가 발생하면 거길 들어간대.
그리고 거기서 대장 노릇을 한다는 거야.”
“아 그래서 F급 게이트로 판정됐구나.
마력 측정이 끝난 뒤에 녀석이 숨어 들어갔으니까?”
“그렇지. 그렇지. 역시 똑똑해.”
“우와… 그런 애를 잡은 거예요? 우리가?”
나의 질문에 삼촌이 갑자기 일어나 여기저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뭔가를 찾는 듯했다.
침대 밑과 꽃병, 커튼, 창문 틈 등 손이 닿는 모든 곳을 뒤졌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는 아니지.”
“네? 뭐 해요 삼촌?”
“혹시 몰라서.”
“뭐가요?”
“비기너, 슈페리어급의 하급 헌터 달랑 둘이서
C급 게이트 보스를 잡는다는 게 흔한 일이 아니야.
혹시 아냐? 협회 측에서 도청 장치를 박아놨을지?”
“…에이…설마….”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 여하튼 정확히 말하자면 너 혼자 잡았지.
내가 한 게 뭐 있냐. 밑에 쫄따구 몇 잡은 게 다인데.”
“아니… 그래도….”
“아 대외적으로는 내가 잡은 게 맞아.”
“?”
“야 당연하지 임마. 생각을 해봐.
헌터 된 지 1년도 안 된 비기너급 꼬맹이가
혼자서 C급 게이트 보스 몬스터를 잡았다고?
그걸 알면, 사람들이 널 가만둘 것 같냐?
귀찮게 하고 어떻게 잡았는지 꼬치꼬치 캐묻고,
찾아와서 인터뷰하고 난리도 아닐 거다.”
“…그건 그렇네요.”
“그래서 내가 잡았다고 해뒀다.
폭발은 설치한 함정용 트랩이 터진 거라고 말해뒀고.
그래야 사람들이 운이 좀 따라줬나보다 하지.”
속삭이는 삼촌의 말에서 나에 대한 배려와 애정이 느껴졌다.
“고맙습니다. 삼촌.”
“아이 뭘 고마워 임마. 내가 더 고마워해야지.
너 아니었으면 나 꼼짝도 못 하고 죽었어.
오히려 너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미안하다 야.”
“아이 아니에요.”
“아 맞다. 그리고 나중에 그 계좌 확인해봐.
전산 오류 나서 아직 안 들어왔을 수도 있으니까.”
“뭐가요?”
“뭐긴 뭐야 돈이지.”
“아….”
“그 늑대 새끼 현상금이 1억, F급 게이트 처리비용 5백.
늑대 새끼가 원래 C급 게이트의 보스라 추가 수당 천 더.
거기다가 늑대들 이빨이랑 송곳니 판매비용 천까지.
도합 1억 2천 5백 받았다.”
“네?!”
상상도 못 했던 금액이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놀래… 야 우리 목숨값이야.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높은 등급 헌터들은 몇십억 우습게 벌어.”
“…와….”
6년을 미친 듯이 일(?)해서 1억을 벌었는데….
몇 시간 만에 그 큰돈을 벌었다고…?
“아까 말한 것처럼, 거 보고할 때 기여도를
나 7 너 3으로 보고해서 그렇게 돈 받았다.
근데 뭐 내가 한 게 없는데 돈을 왜 받냐?
그래서 니 계좌로 더 보냈다. 나 3 너 7 오케이? 이 정도는 괜찮지?”
“아니 삼촌… 왜… 반 반 해야죠!”
놀란 내가 말했다.
“됐어. 자식이 사람을 뭐로 보고. 줄 때 받아 둬.”
“…….”
“아이 자식 참. 거 괜찮다니까.”
“…네.”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나중에 괜찮은 방어구나 방패를 하나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한성이 너 말 안 해줄 거냐?”
“네? 뭘요?”
“뭐긴 뭐야. 니 힘에 관한 얘기지.
C급 게이트 보스를 혼자서 잡을 정도면
최소 슈페리어 최상급 혹은 마스터 초입 정도는 돼야 하거든.
마스터급의 힘을 가진 비기너라… 좀 이상하지 않냐?”
‘역시… 알고 있었구나.’
“….”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내게 삼촌이 웃으며 말했다.
“왜? 삼촌이 모를 줄 알았냐?
그러기에 숨길 거면 잘 좀 숨기지 그랬냐.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다. 말이 안 되지.
능력도 모르는 비기너 애송이가 슈페리어한테 데미지를 준다는 게.
처음에는 의심이었는데, 이제는 확신이 드네.”
삼촌이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확신이 든 이유는 세 가지야.
첫째, 단기간 급성장.
둘째, 하급 헌터가 보일 수 없는 위력의 힘과 노련함.
셋째, 지금 너의 반응.”
“….”
“뭐 성장의 속도나 정도는 헌터들마다 차이가 있어.
그래서 성장이 빠른 사람도 있고, 느린 사람도 있지.
하지만 너처럼 빠르고 크게 강해진 전례는 찾아보기 힘들어.”
“….”
“물론 능력이나 주특기에 따라
등급을 초월한 위력을 보이는 헌터가 있긴 해.
그런데 그건 대부분 마법 계열 헌터이거나
마스터급 이상의 헌터들에 해당하는 이야기거든.
즉 너랑은 전혀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이 말이야.
그래서 이 둘을 종합해 봤을 때,
분명히 너는 내게 말하지 않은 뭔가를 숨기고 있다.
이게 내 결론이야.”
“음….”
늙은 너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역시 산전수전 다 겪은 헌터라 이건가.
내 반응을 살피던 삼촌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부담이 되거나
마음의 준비가 안 된 거라면 말하지 않아도 된다. 정말이야.”
순간 갈등했다. 생각을 마친 내가 말했다.
“……그게 아니고, 말씀드릴 타이밍을 놓쳤었어요….
그리고 믿어주실 것 같지도 않고.”
“응?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머뭇거리며 삼촌에게 그간 말하지 않았던 내 특성,
업적으로 인한 기본지속효과, 그리고 내게만 보이는
인터페이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내 말을 모두 들은 삼촌은
처음에는 뜨악 하는 표정이더니 이내 곧 심각해졌다.
‘…역시 삼촌도 못 믿으시겠지… 괜히 말했나.’
“흠… 그랬구나. 숨기는 게 당연하지. 믿을만한 놈 하나 없는데….
말했다가 미친놈 소리 듣고, 연구대상으로 전락할지 어찌 알겠냐.
녀석… 맘고생 좀 했겠구나 삼촌 믿고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맙다.”
의외였다.
내가 거짓말하는 거라 생각할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던 듯했다.
“제가 거짓말한 거면 어쩌시려고….”
“요놈아. 내가 지금은 헌터지만 본래가 장사꾼이었던 사람이야.
애초에 속이려고 온 놈은 눈만 봐도 달라요.”
“그런가…?”
“내가 너를 다 알지는 못해도 옆에 살면서 꽤나 오래 봤잖냐.
이런 거로 거짓말할 애는 아닌 것 같더라고.
게다가 또 내 신조가 그래.
믿을 거면 다 믿고, 믿지 않을 거면 보지도 말라고.”
“아…하하.”
“흠… 그나저나 이제부터 조금 바쁠지도 모르겠다.”
“…에? 왜요?”
“너 네가 가진 능력이나 특성을 다른 사람한테 말할 수 있어?
아닐걸? 숨길 거 아니야?"
“그… 그렇죠?”
“그래. 당연히 숨겨야지. 무슨 일 생길 줄 알고.
너나 나나 니 힘을 숨기려고 노력하겠지만,
꼬리가 길면 들켜. 언젠간 드러나게 될 일이라고.
그러니까 곤란하게 되기 전에 너 스스로가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힘과 영향력을 키워야지.”
“아… 그렇죠.”
“세상이 바뀌고, 세상의 정점에 서 있는 사람이 누구라 생각하냐?
대통령? 갑부? 정치인? 아니야. 결국엔 헌터야.
그런 헌터들이 자기 자리를 위협할지 모르는 자를 보면 가만둘까?
제 수하로 만들거나, 제거하거나 둘 중에 하나지.
전자면 차라리 다행이게? 대부분 후자를 택해.
그러니까, 지금부터 부지런히 힘을 키워야 해.
삼촌이 지부장 되고 너 만난 건 하늘의 뜻인가 보다.
한성이 너 키우라는 하하하하.”
삼촌이 유쾌하게 웃었다.
나도 슬며시 따라 웃었다.
속이 시원했다.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고 생각했는데,
삼촌을 보면 딱히 그런 것만은 아닌 듯했다.
내 비밀과 고민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겼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삼촌과 즐거운 대화를 이어 나갔다.
시간이 한참 지나 저녁 무렵이 되자 시계를 본 삼촌이 말했다.
“어이구. 지부에 일 밀렸는데 큰일 났네. 양화 씨 난리 치겠다.
너 깨어난 거 봤으니까 이만 간다. 며칠 푹 쉬고 와.
아 병원비 이런 거는 걱정 하지 말고.
실수해서 미안하다면서 협회 측에서 싸악 제공해준단다.
돈 굳었지 뭐냐~”
“하하. 네.”
“그래 쉬어라.”
“들어가세요. 삼촌.”
“오냐.”
삼촌이 병실을 나가자 떠들썩하던 병실은 조용해졌고
병실 가득하던 온기는 사라져 썰렁해졌다.
좀 이르지만 잠을 청하기로 했다.
삼촌과의 대화로 긴장이 풀려서일까. 노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