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더 라스트 엠페러-7화 (7/336)

007화

* * *

[이한성의 회복이 완료되었습니다.]

알림 소리에 눈을 떠 보니 방 안이었다.

침대와 책상 하나가 다이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깔끔한 방이었다.

아저씨가 쓰러진 나를 여기에 옮겼구나 싶었다.

‘여기가 지부 숙소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알림창을 닫았다.

덜컹.

문이 열리고 아저씨가 들어왔다.

“어 한성이 깼구나.”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일어나 앉으면서 아저씨에게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마력을 다 써서 그래. 초보 헌터한테 자주 있는 일이야.

자기가 가진 마력의 양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니까 막 쓰거든.

그러다 고갈되면 일시적으로 쇼크가 와 기절하는 거고.

그렇다고 뭐 특별히 몸에 이상이 생기는 건 아니야.

그냥 쉬고 나면 마력은 회복되니까 걱정 말고.

정신 차리거든 밥 먹으러 나와.”

“아 네.”

문을 열고 나가자 아저씨가 덩치와 맞지 않게

분홍색의 고양이 앞치마를 입고 있었다.

아저씨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흥얼거리고 있었다.

붕대를 감은 손으로, 흥얼거리며 밥과 국을 퍼 담았다.

“어 어 앉아. 앉아. 먹으면서 얘기하자.”

나를 발견한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아 네. 고맙습니다.”

밥을 먹으며 아저씨에게 있었던 일을 얘기해 주었다.

아저씨가 만졌던 검은 아지랑이는 내 고유 스킬이며,

폭발 또한 내 스킬로 인해 생긴 일임을 알려주었다.

마력을 모을수록 강한 기운을 방출할 수 있다는

두루뭉술한 내 설명에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동안 내 설명을 듣던 아저씨는 내가 보여준 힘은

절대 비기너급에서 나올 수 없는 수준의 파괴력이라고 말했다.

위협적인 힘이다 보니 이를 제대로 컨트롤 할 때까지는

마력의 사용을 조심하라고 했다.

특히 그림자 송곳니에 당한 상처는

아저씨가 헌터가 된 이후 처음으로 겪은 것이라고 했다.

낮은 등급의 게이트이긴 하지만

몬스터에게도 이 정도로 당해보지는 않았다며 웃었다.

아저씨는 당분간 여기서 생활하면서

내 능력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할지 연구해보자고 했다.

밥을 다 먹은 뒤 앉아서

그간 살아온 이야기를 하던 중 궁금한 게 생겼다.

“아저씨. 근데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뭐… 그냥?”

“아저씨랑 저랑 뭐 특별히 말을 많이 나눈 것도 아니고,

몇 번 아저씨 일하는 거 도와드린 게 다인데.”

잠깐의 침묵 뒤 아저씨가 말했다.

“…뭐 마음 가는 데 이유가 있겠냐.

사실 옆집이라고는 해도 벽이 얇아서 소리가 다 들리잖냐.

그래서 내가 너네 집 사정을 알기도 했고….

못 먹어서 비쩍 마른 꼬마가 좀 도와달라는 내 말에

돕는다고 낑낑거리는 게 참… 안타깝기도 하고, 대견하기도 하고….”

“….”

“그냥 뭐 그때부터 이유 없이 정이 가더라.

기댈 데도 없어 보이는 너한테 나라도 삼촌이 되어줘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대격변의 날 뒤부터 안 보이니 죽었구나 싶어 잊고 살았는데,

이리 나타나니 더 반갑지 뭐냐.”

“…제가 나쁜 마음 먹고 접근한 거면 어쩌려구요.”

내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자 아저씨가 픽 하고 웃으며 답했다.

“네가 그럴 놈으로 보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가 비기너 꼬맹이 하나 제압 못할까.”

“…고맙습니다.”

“됐어 임마. 내가 너한테 그런 말 듣자고 도와준 것도 아닌데 뭘.”

아저씨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날이 늦었으니까 이만 자고 내일 아침에 다시 이야기하자.”

“네.”

“그래 필요한 거나 불편한 거 있으면 말하고 알았지?”

“네.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아이 거 자식 괜찮다니까. 그래 들어가서 쉬어라.”

방에 들어온 나는 피곤함에 몸을 뉘었다.

천장을 바라보며 여러 생각을 했다.

‘어머니 외에 누군가에게 이런 온정을 받아 본 적이 있었던가….’

세상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 * *

“한성아 다녀오마.”

“네 삼촌.”

아저씨라는 호칭은 어느새부터인가 삼촌으로 변해 있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날 거두어준 삼촌에게

무뚝뚝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감사 표현이었다.

그도 그럴 게 삼촌 덕에 먹고, 입고, 잘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난 제대로 된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었다.

또 삼촌 덕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내 감정들이

사실은 죽은 게 아니라 얼어붙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비록 몇 달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버지에게 받지 못했던 애정과 관심을 받게 되자

피폐해진 내 정신과 마음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고

사람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의심과 경계도 조금씩 누그러져갔다.

그 누구에게도 열지 않던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고,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보던 내 눈도 조금씩 제 자리를 찾았다.

삼촌 덕에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하고 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삼촌 또한 변화한 자신의 호칭에 대해 만족해하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삼촌을 따라다니며 자잘한 일을 도우려 했다.

삼촌의 호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보답을 위해서였다.

하지만 삼촌은 그런 날 보고 화를 내며

너 하나 못 품을 정도로 없지는 않다고 했다.

게다가 헌터 된 지 며칠 안 된 녀석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냐며 다그쳤다.

날 위한 삼촌의 투박한 걱정과 염려 때문이리라.

도움이 될 만큼 힘을 키우면 따라다녀도 되냐고 물었다.

그러자 삼촌이 마지못해 허락했다.

허락이 떨어지자 알림이 들렸다.

[퀘스트 발생 : 패왕(霸王)을 위한 첫걸음]

[수락하시겠습니까?]

‘퀘스트…? 진짜 게임 같네. 패왕이라… 듣기 좋은 말인걸? 수락.’

[퀘스트 : 패왕(霸王)을 위한 첫걸음]

[100일의 인내]

달성 조건

: 서브 퀘스트를 모두 완료할 것 (D―100)

1. 총 이동 거리 2000Km 달성 (0 / 2000 )

2. 팔 굽혀펴기 100000회 완료 (0 /100000)

3. 윗몸 일으키기 100000회 완료 (0/ 100000)

4. 스쿼트 100000회 완료 (0/ 100000)

5. 풀업 100000회 완료 (0/ 100000)

6. 벤치 프레스 100000회 완료 (0/ 100000)

7. 데드 리프트 100000회 완료 (0/ 100000)

8. 전략전술 Max 달성 (0 / 10)

9. 단검술 Max 달성 (1 / 10)

퀘스트 성공 시 주어지는 보상

= 경험치 획득 + a

퀘스트 실패 시 주어지는 패널티

= 모든 능력치 10p씩 감소

‘……?’

말도 안 되는 수치와 패널티에 놀란 나였다.

“아니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웅녀도 아니고 100일의 인내…?

100일을 견디란 뜻인가. 한숨부터 나왔다.

퀘스트를 수령한 다음 날부터

난 이를 달성하기 위해 미친 듯이 몸을 움직였다.

목표 할당량을 채우려 매일매일을 움직였다.

게임만 하던 내가 몸을 써봤을 리 만무했고, 몸을 쓸 줄도 몰랐다.

그냥 막무가내로 했다.

기본이 없으니 그 기본을 만들기 위해

남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 삼촌과 달리고

달리기가 끝나면 바로 운동을 해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냥 포기해버릴까 생각했지만

퀘스트를 포기하자니 그 대가가 너무 치명적이었기에

쉽사리 포기할 수도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했다.

눈 뜨자마자 달리고 눈을 감기 전까지 운동을 해 할당량을 채웠다.

근육이 매일 비명을 질렀다.

단검술의 숙련도는 단순히 베고, 찌르고, 자르는 동작들을

연속하기만 해도 빠르게 올랐다.

이러한 기본적인 동작들이 몸에 배고

익숙해지고 가볍게 해낼 수 있게 되자 달성도는 6이 되었다.

그 후로, 오르는 속도가 급격히 느려졌다.

허수아비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베고 찌르고 잘라 봐도 도무지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방향을 다르게 접근해봐야 할 것 같았다.

전략전술의 경우 말 자체가 꽤나 추상적이어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손자병법을 비롯한 책이나 교재를 읽고 외워도,

군 전략전술 동영상을 봐도 딱히 숙련도는 오르지 않았다.

3 정도? 오르는 게 다였다.

초조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숙련도는 오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체력 단련을 하는 와중에도 내 신경은 온통

전략전술을 어떻게 높일지에 가 있었다.

정확히는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초조해하는 내 모습을 본 삼촌이

어디선가 바둑판을 가져왔다.

“생각보다 체력이 안 느냐? 처음엔 다 그래. 첫술에 배부르겠냐.

머리도 식힐 겸 삼촌이랑 바둑이나 한판 두자.

생각 많아 봐야 인생만 고달파져요. 얼른 이리 와봐.”

웬 바둑이냐며 소리치고 싶었지만,

날 걱정하는 삼촌의 말과 눈빛에 한 판만 두기로 했다.

“안 봐드려요.”

“에에? 이것 봐라. 얌마 내가 아마 999단이여. 너한테 지것냐?”

어릴 적 영재 학원이다 뭐다 해서 바둑을 배웠던 나인지라,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이기기 위해 공격적으로 삼촌의 집을 흔들고 물어뜯었다.

그럼에도 삼촌은 이리저리 내 공격을 잘 피해나갔다

그리고는 오히려 자신의 집을 더 튼튼하게 다졌다.

“오호… 너 언제 바둑 배웠냐?”

“어렸을 적에 조금요?”

“학원에서 배웠지?”

“어떻게 아셨어요?”

“자 끝이다.”

“어?!”

삼촌이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했다.

“너처럼 학원에서 바둑을 배운 애들은 그 수가 뻔하고 정직해.”

“정…직하다고요…?”

“그래 임마. 이기고 싶으면 니가 가진 수를 들키지 말아야 해.

노림수도 없고, 함정도 안 파고, 판도 안 흔들고,

그저 수를 정직하게, 우직하게만 둔다?

그걸 상대방이 알게 되면? 그때부터 넌 먹잇감이야.”

“음….”

“니 수를 읽히지 않아야 하는 건 물론이고

상대방의 수를 두 수, 세 수 앞을 내다볼 줄 알아야 해.

삼촌 말이 바둑에서만 통용되는 게 아니야. 세상 모든 일이 다 그래.

그런 의미에서 너는 이 삼촌을 이기려면 하아안참 멀었느니라~”

삼촌의 말이 뒤통수를 강하게 때렸다.

정직? 우직?

“한 판 더 해요!”

[전략전술의 숙련도가 증가했습니다.]

“어?”

“응? 왜?”

“아… 아녜요 한 판 더 해요!”

“또 지려고?”

“아이 얼른요.”

“진 사람이 설거지하기 오케이?”

“아 알았어요.”

예상외의 성과였다.

바둑도 일종의 전략전술이라 그런가?

일과가 끝난 후 삼촌과 매일 바둑을 뒀다.

퀘스트를 위해서 시작한 바둑이었지만,

나중에 가서는 오히려 내가 더 즐기게 되었다.

고단수인 삼촌을 이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야 했다.

삼촌의 말대로 나의 수를 숨기고 삼촌의 수를 읽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삼촌의 수를 하나둘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덫을 놓아 허를 찌르기도 했다.

판도 흔들어 봤고, 속임수로 삼촌을 끌어오기도 해봤다.

숙련도가 오른 덕인지 평소보다

더 깊이 그리고 더 빨리 사고와 연산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삼촌과 나의 실력은 비등비등했다.

여전히 지기는 했지만, 삼촌도 이제 수 하나를 두는 데도

꽤나 장고의 시간이 필요했다.

전의 대결이 마치 호랑이와 병아리의 대결이었다면,

지금은 호랑이 간의 대결이 된 듯했다.

“이야… 이 녀석 왜 이렇게 잘해? 바둑 학원이라도 다니냐?”

삼촌이 놀리듯 물었다.

“이번엔 이깁니다.”

“내기?”

“오늘 저녁이랑 설거지 내기해요? 그럼?”

“콜.”

접전 끝에 졌다.

‘쳇. 힘에다 스탯 다 찍은 법사 같으니… 반달가슴곰같이 생겨가지고

속에는 100년 묵은 늙은 너구리가 들어앉아 있을 거다.’

투덜거리며 설거지를 하는 나와 그걸 보며 낄낄대는 삼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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