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5화
* * *
‘동작구 헌터지부’
생각보다 허름한 건물이었다.
헌터지부라기에 대격변의 날 이후 새로 지은 건물이겠거니 했는데,
그냥 넓은 공터를 가진 허름한 4층짜리 건물이 다였다.
‘뭐야… 헌터지부라고 해서 으리으리한 것은 아닌가 보네….’
들어가서 헌터등록을 하기로 했다.
끼익.
“실례합니다.”
“…네 어서 오세요.”
상태가 좋지 않은지 소리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컴퓨터 한 대와 책상 그리고 정신없이 업무 중인
3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이 보였다.
그녀의 등 뒤에는 사무실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책장과
그 책장에 빼곡하게 들어찬 문서들이 보였다.
“무슨 일로 오셨죠?”
그녀가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내게 물었다.
“아 네. 헌터 등록을 하러 왔습니다.”
“… 등급이?”
그제야 그녀는 안경을 올리고 아래위로 날 훑으며 관심을 보였다.
“비기너…라던데요.”
“아 네. 뭐 그러세요? 능력은요?”
기대했던 등급이 아니었던지 다시 심드렁한 말투가 된 그녀는
다시 모니터로 눈길을 돌리고는 타자를 치며 말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확인해봐야 되겠네요.”
“아 네. 그럼 여기 문서를 작성해주시고 잠깐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사무적인 태도로 종이 문서 하나를 건네주었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네 지부장님. 헌터 등록하러 한 분 오셨어요.
네. 비기너요. 네.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그녀는 내게 말했다.
“지부장님 곧 오실 겁니다. 문서 작성하시고 제게 주세요.”
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다시 자신의 업무를 다시 시작했다.
키보드 타자 소리와 문서를 작성하는 펜 소리만 들렸다.
문서에는 채워 넣을 것은 간단했다.
성명, 나이,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등급, 능력이 다였다.
주소와 전화번호, 능력은 비워둔 채 그녀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주소랑 전화번호는요?”
“아. 네 살던 집이 다 부서져서요. 그 때문에 전화도 없어졌네요.”
“보호자 전화번호라도 적어주세요. 그래야 우리가 연락을 하죠.”
“두 분 다 돌아가셔서요. 전화번호는 조만간 마련하겠습니다.”
“…아 네.”
어색한 공기가 컨테이너에 퍼졌다.
덜컹.
“아이고 반갑습니다. 지부장 곽한철입니다.
안 그래도 지부에 일손이 부족했는데 잘… 응…? 한성이 아니냐?”
“어? 아저씨?”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는 190의 키에 엄청난 근육을 가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옆집에 살던 고물상 아저씨였다.
분명… 평범한 키에 평범한 몸을 가진 분이셨는데…?
아저씨가 차에서 고물을 오르내릴 때
일을 도와드리고 용돈을 받은 기억이 확 떠올랐다.
“살아 있었냐?!”
아저씨가 나를 와락 안으면서 반갑게 인사했다.
난 그의 우람한 팔 근육에 짓뭉개진 채로 대답했다.
“커헉… 아저씨는 몸이 너무 좋아지셨네요.
설마 아저씨가 동작구 헌터 지부장이세요?”
“어? 그럼 니가 이번에 헌터 등록을 한다던 사람이냐?”
“네.”
“아유 그랬구나! 죽었는지 살았는지 걱정했었는데… 짜식.”
아저씨가 날 놓더니 머리를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네. 뭐. 그렇게 됐어요.”
“이야. 니가 헌터라고? 허 참. 비기너급? 그래그래. 잘됐다.
안 그래도 요새 믿고 일 맡길 만한 놈 하나 없었는데
한성이라면 내가 믿고 일을 맡길 수 있지. 하하.”
아저씨 특유의 넉살 좋은 말투와 웃음으로
내 손을 덥석 잡고는 말을 이어 나갔다.
“어떻게 지냈냐? 부모님은 잘 계시고? 아버지는 아직도 그래?”
“돌아가셨어요. 두 분 다.”
감정 없이 뱉은 내 말에 당황한 아저씨가 말을 이었다.
“아이고… 그랬구나….”
아저씨에게 내게 일어난 일들에 대해
숨겨야 할 사실을 제외하고는 모두 알려주었다.
대격변의 날 이후로 집이 무너진 이야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병원에 5년 동안 누워 있었던 이야기 등을.
“…5년을…? 이야… 그래도 깨어나서 다행이다.
힘들었겠네. 녀석. 참 뭐 하나 쉬운 게 없구나. 너나 나나.”
“네 뭐… 그렇네요.”
“나도 그날 이후로 헌터 돼가지고 고물상 때려치고 이렇게 산다.
그러다 보니 지부장이 됐고. 하하. 아 너 그러면 지금 갈 곳 없지?”
“네.”
“그러면 괜히 집 찾는다고 돌아다니지 말고 우리 지부에서 생활해.”
“그래도 되나요?”
“안 될 게 뭐 있어? 내가 지부장인데. 양화 씨. 등록 완료했어요?”
“네 다해놨어요. 전산 기록상 특이한 점도 없고. 자 여기 보세요.”
“…?”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도착한 시선의 끝에는 카메라가 있었다.
찰칵 소리와 함께 사진이 찍혔다.
분주히 뭔가를 준비하던 그녀가 내게 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헌터 : 이한성’
카드에는 내 이름과 등급, 방금 찍힌 내 사진이 새겨져 있었다.
“이 카드가 한성 씨의 신분을 보장해줄 거예요.
이 카드만 가지고 있어도 혜택이 꽤 많아요.
그리고 이 카드가 비용 지불 수단이 될 테니 잃어버리지 마시구.”
“아 네. 고맙습니다.”
“아 맞다. 한성이 너 니가 가진 능력이 뭔지 모른다고 했지?
그럼 능력이 뭔지부터 확인해야겠네.
나 연습장 준비해 놓고 있을게.
양화 씨가 얘한테 필요한 정보나 팁 좀 알려줘요.”
“네.”
아저씨가 나를 믿고 아끼는 모습을 보자
그녀의 딱딱하고 냉소적이던 태도가 어느 정도 풀어진 듯했다.
끼익.
아저씨가 나간 이후 그녀는 내게 헌터가 지켜야 할 규칙과
어겼을 경우에 생길 불이익을 알려주었다.
뻔하고 당연한 내용이 다였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무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거나,
어떤 방식으로든 타인의 재산권과 안전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등의 당연한 수준의 것들이었다.
“혹시 궁금한 거 있으세요?”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아 네 혹시, 그 헌터들은 돈을 어떻게 버나요?”
가장 궁금한 내용이었다. 난 돈이 필요했으니까.
“첫째, 몬스터를 죽이고 사체나 드랍한 아이템을 파는 방법.
둘째, 국가가 하청을 주는 일을 해결하고 돈을 버는 것.
셋째, 길드에 소속되어 월급과 성과금 받는 거? 이 정도네요."
“아 네.”
생각보다 다양했다.
“그렇군요. 길드…는 어떤 길드가 있나요?”
“현재 한국의 길드는 잠깐만요… 여기 있다.”
컴퓨터로 눈을 돌린 그녀는 몇 번 클릭 후 말을 이었다.
“지방 중소 길드까지 포함해 79개 길드가 난립해있어요.
그중 수도권의 5대 길드가 가장 그 규모가 크고 세력이 강해요.
또 광역시별로 대표할 만한 길드 6개가 더 있긴 합니다.
5대 길드에 비해서는 세력이 약하지만
지방 거점 길드 중에선 가장 규모가 큰 길드들이에요.”
“…그렇군요.”
“5대 길드 중 쉴드부터 설명하자면, 정부 산하 직속 길드에요.
그만큼 정부 입김에 영향을 많이 받구요.
민간 길드로는 제우스, 데스, 알파, 프라임이 있구요.”
“아 네.”
“5개의 길드장은 모두 엠페러급 헌터에요.
제우스 길드장은 마법계 딜러,
데스 길드장은 디버프와 버프를 사용하는 버퍼,
알파의 길드장은 검사, 프라임의 길드장은 탱커에요.
마지막으로 쉴드의 길드장은 힐러구요.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아 혹시 또 궁금한 점이 있다면 그때 질문드려도 될까요?”
“제가 아는 선에서라면 알려드릴게요.”
따르릉.
“네. 여보세요. 네 알았어요.
지부장님 준비가 다 되었다고 하시네요. 가보세요.”
“아 네 고맙습니다.”
난 가방을 맡겨 둔 채로 공터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어 여기다 한성아.”
“네.”
공터 한편에 있는 아저씨에게 다가갔다.
공터라고 생각했던 것이 연습장이었던 듯했다.
“그래. 뭐 좀 배웠냐?”
“네. 잘 가르쳐주셔서 알아듣기 쉬웠어요.”
“그래. 모르는 거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보고.”
“네.”
아저씨가 공터를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가 우리 지부 연습장이야. 필요한 게 있으면 뭐든지 써.”
“네.”
“어 일단 아저씨는 슈페리어급이야. 탱커고.
헌터들이 능력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 적 없다 했지?
그러면 맛만 살짝 보여줄게. 잘 봐.”
“네.”
아저씨가 날 몇 걸음 물러서게 했다.
내가 물러난 것을 확인한 후 연습장 구석의 바위로 다가갔다.
바위는 꽤 컸다.
장정 네다섯이 손을 잡고 둘러쌀 정도였으니까.
아저씨는 별다른 자세 없이 주먹으로 바위를 내리쳤다.
쾅!!
바위가 엄청난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바위가 부서졌다는 표현은 맞지 않아 보였다.
바위 내부에 있는 폭탄이 터졌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바위가 터지자 흙먼지가 일었다.
“콜록콜록.”
기침을 하는 내 앞으로 아저씨가 걸어왔다.
“자 봤지?”
아저씨는 손으로 먼지를 몰아내며 말을 이었다.
“이 정도가 슈페리어급이야.
이 정도만 해도 인간이 낼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아닌데….
이 위로는 음… 그냥 마물을 이길 수 있는 괴물이라고 봐야지.”
아저씨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게 헌터구나….’
아저씨가 엉망이 된 연습장을 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는 내 몸 이곳저곳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저씨가 봤을 때, 너는 음… 탱커나 전사 계열은 아닌 것 같아.
왜냐면 걔네는 각성하고 난 뒤에 외적으로 변화가 크거든.
날 보면 알잖냐.”
아저씨가 보디빌더들이나 지을 법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빵빵한 근육들을 보이고는 말을 이었다.
“이에 반해 너는… 비리비리한 게 예전 그대로고.
이 팔로 검이나 방패를 들겠어? 들어도 뭐 활이나 단검 정도?"
“그렇긴… 하죠….”
"아저씨 생각에는 너는 아마 힐러나 마법형 딜러 아닐까 싶어.
너 만약에 힐러면 땡잡는 거다? 힐러가 잘 없어요.
국내에도 한 50명 될까 말까일걸?”
“음….”
“안 그래도 생존율이 지극히 낮은 게이트인데,
이를 높일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엄청 도움 되지. 안 그래?”
아저씨가 다다다 쉬지도 않고 설명해주었다.
“그렇죠.”
게임 속 공격대에서도 힐러가
팀원의 생존에 기여하는 기여도는 매우 크다.
하물며 지금 내가 당면한 현실은 죽어도 부활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보니 그 자원의 가치는 더욱 귀중할 듯했다.
“그러면 음… 아 저기 있네.”
아저씨가 가리키는 곳에 화분이 하나 있었다.
화분에는 다 시든 꽃이 한 송이 심어져 있었다.
아저씨는 내게 화분을 건네며 말했다.
“자. 아까 꽃집에 가서 하나 사 왔다.”
“화분을 왜요? 그것도 다 시든 걸?”
“힐러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야.
만약 니가 힐러라면 방출하는 마력만으로도 꽃에 생기가 돌 거야.”
“아 네.”
헌터라고는 하나 마력 측정 외에는 마력을 사용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지 쭈뼛쭈뼛 화분만 잡는 나에게 아저씨가 말했다.
"어렵게 생각 마… 음… 어떻게 설명해야 이해를 쉽게 하려나… 음….
그래! 그 장풍 알지? 장풍? 그거처럼 니 몸에 있는 기운을 모아서
화분에 쏜다고 생각해봐. 이해되니? 해보면 바로 알 거야."
화분을 들고 집중했다.
그러자, 마력이 있기는 한지 안에서 뭔가 꿈틀거렸다.
이윽고 손끝을 통해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오.”
“쉿. 집중.”
마력을 움직였다는 기쁨도 잠시, 피어오른 마력의 색이 찝찝했다.
검은색이었으니까.
피어오른 마력이 꽃에 닿자, 순식간에 꽃이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띠링.
[마력의 움직임이 감지되었습니다]
[마력운용을 습득하셨습니다.]
알림창과 함께 소리가 들려왔다.
“엥…?”
아저씨가 머리를 긁적였다.
“어 음… 너 마법 계열인가 본데…? 것도 저주…?”
“헉… 헉….”
난 진이 빠져서 화분을 내려놓고 주저앉았다.
아저씨는 내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어 괜찮아. 괜찮아. 처음엔 다 그래.
마력을 사용 해 본 적이 있어야지. 계속하다 보면 익숙해져.
숨 쉬는 것마냥 자연스러워지니까 걱정 말어.”
“…네.”
지쳐 보이는 날 보고는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