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화
* * *
그때였다.
콰콰쾅!!!!!!!!
번개가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땅이 크게 흔들렸다.
“어어어!! 뭐야 이건!”
전쟁이라도 난 듯 터지고 부서지고 깨지는 소리가
집의 안팎뿐 아니라 온 사방에서 들려왔다.
바닥은 뒤집어져 흙이 솟구쳐 올랐고 천장은 무너져 내렸다.
가스관이 터졌는지 폭발음이 들려왔고
수도관이 뒤틀렸는지 천장에서 물이 흘러내리고
바닥이 솟구쳐 오르는 등 아비규환이었다.
끼익… 쿠구구궁.
순식간에 콘크리트와 철근들이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난 의식을 잃었다.
* * *
……쾅….
웨에에에에에에에에에에엥!
시간이 얼마나 흐른 거지…?
기분 나쁠 정도로 시끄러운 경보가 여기저기서 울려댔다.
눈을 떴을 때는 부서진 천장 위로 붉게 물든 하늘이 보였다.
‘저녁노을인가…?’
아니었다. 하늘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희미한 의식 속으로 여러 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뭔가 폭발하는 소리와 부서지는 소리,
절규하는 소리와 비명 소리, 또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
잘못 들은 것인지 총소리와 대포 소리도 들렸다.
“쿠와아아아악!”
들어본 적 없는 짐승의 소리도 들려왔으며
피 끓는 듯한 단말마의 비명도 들려왔다.
그 와중에 건물은 계속 부서져 내렸고
잠잠하던 땅도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쟁인 건가…?’
힘겹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다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와 그가 콘크리트에 깔려 있는 모습이었다.
‘어… 엄마…?’
엄마의 몸은 철근에 꿰어있었고
콘크리트 덩어리에 으깨져 있었다.
얼굴은 형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짓이겨져 있었으며
복부와 하반신은 철근에 찢겨 너덜너덜해져 있었다.
그들의 몸에서 나온 피로 바닥에 웅덩이가 생겼다.
지독한 광경에 몸이 얼어붙었다.
“어… 엄마…?”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엄마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어… 엄마… 일어나 봐. 장난치는 거지 응…?”
애타는 부름에도 여전히 엄마는 답이 없었다.
“엄마!!!!!!!!!!”
힘을 짜내 소리를 질러보아도 돌아온 것은 침묵뿐이었다.
고요했다. 세상이 마치 멈춰버린 것처럼.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총탄의 소리와 대포 소리,
비명 소리도 이제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것은 오로지 미친 듯 뛰는 내 심장 소리뿐.
모든 것이 느리게 느껴졌고 내 시선은 오로지
싸늘하게 시체가 되어버린 엄마에게 가 있었다.
건물이 부서져 내려 날 짓뭉갤지도 모른다는 생각보다,
간간이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누군가의 비명 소리보다,
엄마가 죽었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두렵게 했다.
그녀는 내 삶의 마지막 울타리였으니까.
죽음과도 같은 이 침묵이 견딜 수 없이 무서웠다.
“…이거 꿈이지…? 그래. 꿈일 거야. 꿈. 말도 안 되지.”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현실을 부정하는 것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꿈이 아니라는 것을.
골절되었는지 왼쪽 발은 반대로 돌아가 움직이기 힘들었고
어깨는 탈골되었는지 계속해서 통증이 몰려왔다.
간간히 떨어져 내리는 돌덩어리에 고통도 느껴졌다.
이는 분명한 현실이었다.
“아… 아아….”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이럴 리가 없어….”
정신이 아득해지고 의식이 흐려졌다.
* * *
“으르르르르르….”
“키에에에엑!”
얼마나 지났을까.
짐승들의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떠 바라본 곳에는 독수리 두 배는 될 법한 크기의 검은 새와
어릴 적 동물원에서나 봤던 늑대 비슷한 게 싸우고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것이 있다면 둘의 모습이
일반적인 동물의 것과는 달랐다는 것이었다.
독수리도 늑대도 모두 그 모습이 온전치 못했다.
살점이 썩어 들어가 지독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고
썩은 살점들이 그들의 몸에서 뚝뚝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떻게 생겨먹은 생명체인지 흘러내린 살점 사이로
뼈가 보이고 내장이 쏟아져 내려도
녀석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싸워대고 있었다.
그 모습에 몸이 얼어붙고 사고가 멎었다.
덜컥 겁이 났다.
녀석들이 내게로 온다면….
저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부리가 내 몸을 갉고 씹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콰직….
“끼야아아아아아악!!!!!!!!!!”
기회만 엿보고 있던 늑대 녀석이 새가 잠깐 내려앉은 틈을 타
새에게로 빠르게 달려들었고 결국 녀석의 목을 물어 씹어댔다.
우득… 우드득… 우득….
지이이익.
뼈가 부서지고 살점이 찢기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턱.”
늑대 녀석이 물었던 새의 목을 뜯고 몇 번 씹더니
맛이 없었는지 이내 뱉어내고는 엄마와 아빠의 시체로 눈을 돌렸다.
저거였나. 싸웠던 이유가.
녀석이 콘크리트 덩어리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온전한 아빠의 시체를 먹으려는 심산이리라.
늑대의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었지만 콘크리트 덩어리를 밀 만큼
강한 힘을 가진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아빠의 사체를 꺼내려 갖은 노력을 했지만
콘크리트 덩어리는 꿈쩍을 하지 않았다.
결국 녀석은 콘크리트를 치우는 것을 포기하고
아빠의 시체 일부분을 먹기로 한 듯했다.
콰직.
녀석이 아빠의 다리를 잡고 끌었다.
콘크리트의 무게에 아빠의 몸이 끌려오지 않았다.
지이익… 콰직.
늑대의 힘을 버티지 못했던 아빠의 왼 다리가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허벅지까지 뜯겨나갔다.
콰직. 콰직… 콰지직….
녀석이 게걸스럽게 다리를 씹어 먹기 시작했다.
“우욱… 우웨에에에엑.”
역겨움에 나도 모르게 토악질이 나왔다.
내 소리에 녀석의 귀가 쫑긋거렸고 날 바라보았다.
녀석은 내 몰골과 상태를 보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아빠의 다리를 씹어 삼키기 시작했다.
별로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녀석은 천천히 그리고 즐거운 표정으로
아빠의 다리를 음미하며 씹어댔다.
식사가 끝난 자리에는 뼛조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녀석이 눈을 돌려 엄마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아빠에 비해 비교적 온전한 모양이었고
또 콘크리트 덩어리에 깔린 부분이 적었기에 더욱 탐이 났으리라.
녀석이 천천히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아… 안 돼….”
목소리가 떨렸다.
“킁… 킁….”
엄마의 머리에 녀석의 이빨이 닿기 직전.
순간적으로 얼었던 손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놀란 내가 벌떡 몸을 일으켜 주위를 더듬더듬 짚었다.
뭔가 잡혔다.
팍!!!!!
무슨 용기가 나서였는지 손에 잡힌 뭔가를 그대로 집어 던졌다.
운 좋게도 뭔가는 녀석의 대가리를 정통으로 후려쳤고
녀석은 날 향해 뒤돌아보았다.
툭….
콘크리트 조각이었다.
“크륵…?”
녀석의 붉게 타오르는 두 눈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앉아있는 내게로 향했고
이내 무식하게 큰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녀석의 주둥이에는 피가 잔뜩 묻어 있었고
으르렁거리느라 드러낸 이빨에는 아빠의 것으로 추정되는
살점들이 덕지덕지 끼어 있었다.
무서웠다.
녀석의 광기 어린 붉은 두 눈이,
굶주린 듯 으르렁거리는 그 소리가,
내게 천천히 다가오는 그 걸음걸이가.
다시 몸이 얼었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그림자에
이가 딱딱 소리가 날 정도로 떨렸다.
“으르르르르르르….”
이빨을 모두 드러낸 녀석이 2미터 전방까지 다가왔다.
도움닫기 한 번이면 내 목덜미에 녀석의 송곳니가 박히리라.
‘우… 움직여. 이한성!!!!!!! 움직여!!!!!!!!!’
눈물이 미친 듯 나오고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팔과 다리는 말을 듣지 않았고
손가락은 제대로 펴지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저… 저거다!!’
바로 지척에 날카로운 철근 하나가 보였다.
손만 뻗으면 바로 닿을 거리였다.
‘움직이라고 이 새끼야!!!!!!!!!!!!!’
꿈틀.
드디어 손이 움직였다.
덜덜거리는 손으로 철근을 잡아 쥐었다.
녀석과의 거리는 이제 1미터.
녀석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었고
이빨을 드러내며 으르렁대고 있었다.
‘살려면… 적어도 살려면 기회는 단 한 번이야.’
철근을 잡은 손을 천천히 가져와 몸에 딱 붙였다.
‘기다려… 기다려….’
“쿠와아아앙!!!!!”
녀석이 달려들어 내 목을 물려는 그 순간.
“지금!!!!!!!!!!!!!!”
푸욱.
내지른 철근의 끝이 녀석의 목을 향했고,
운 좋게도 달려오는 속도와 무게에 철근이 짓눌려
그대로 녀석의 목을 꿰뚫고 반대편 목 뒤로 빠져나왔다.
그저 상처를 줘 위협만 할 생각이었던 것과 다르게,
녀석을 죽이게 된 것이었다.
“끄어어어억….”
정통으로 찔렀는지 녀석의 눈이 뒤집혔다.
꿰뚫린 목으로 끈적한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
이윽고 녀석은 힘이 점점 빠지는 듯 축 처졌고
내 목을 향해 입을 연 그 자세 그대로 쓰러져 내렸다.
쿵….
“커헉.”
근력이라고는 한 줌도 없는 데다, 부상까지 당한 내가
내 몸의 두 배는 넘는 녀석의 무게를 버틸 리가 없었고
녀석과 함께 쓰러졌다.
촤악.
녀석이 넘어짐과 동시에 녀석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내 목의 혈관 일부분이 꿰뚫린 것 같았다.
“억….”
꿀럭… 꿀럭….
뜨거운 액체가 내 목에서부터 뿜어져 나왔다.
덜덜덜 떨리는 손을 목에다 가져다 댔을 땐
이미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고
내 몸은 빠르게 식어 가고 있었다.
마치 선글라스라도 낀 것마냥 세상이 어두워 보였다.
비릿한 피 냄새가 물씬 나기 시작했다.
정신이 점점 희미해져 갔다.
‘…이게 죽는다는 건가… 빌어먹을.’
눈이 반쯤 감겼다.
‘이…렇게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았는…데….’
점점 나른해지고 몽롱해져 갔다.
‘빌어먹…을… 신 같으니….’
살고자 발버둥 치는 날 못 본 건지 아니면 못 본 체하는 건지,
내 부름에 답하지 않은 신을 원망하고 또 원망했다.
내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졌더라면….
한 방울의 굵은 눈물이 또륵 흘러내렸다.
그때였다.
희미해져 가는 내 의식과는 달리 맑은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축하합니다. 시스템이 당신을 선택했습니다.]
[각성자로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겠습니까?]
‘뭐…지…?’
눈앞에 파란색의 알림창이 떠올라 있었다.
들려온 목소리는 사무적이고 딱딱했지만 어딘가 익숙했다.
아. 뉴 월드에서 듣던 목소리다.
하긴… 내가 죽어가는 현실 앞에서 뭐든 뭔 상관일까.
띠링.
[3초 뒤 모든 신체활동이 정지됩니다.]
[각성자로서 새로운 삶을 받아들이겠습니까?]
[3]
새로운 삶…? 그래. 원해… 원한다… 원한다고!!
죽고 싶지 않아. 살고 싶어. 누구보다 살고 싶다고!!!!!
머릿속으로만 떠오를 뿐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입술을 달싹이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으득.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이를 악물었다.
[2]
“그래!!!!”
[1]
[시스템의 선택을 수락하셨습니다.]
[조건을 충족, 업적이 주어집니다.]
[업적 : 죽음을 이겨낸 자]
[업적 : 차가운 이성의 소유자]
[업적 : 불굴의 의지]
[경고 : 전체 체력의 5% 남았습니다.]
[업적 : 죽음을 이겨낸 자가 발동합니다.]
[공격력, 방어력, 회복력 100% 증가합니다.]
“생존자 발견했습니다!!!!!!!”
벽에 난 구멍으로 굵고 낮은 남자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들려오는 사람들의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세상이 깜깜해졌고 난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 * *
“출혈이 심합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압박해!!!! 지혈부터 해. 얼른!!!”
“예!!!”
급박하게 돌아가는 분위기 속.
한성의 주위에 의료진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한성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의료진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백발에 새하얀 정장, 백구두에 흰 중절모를 쓴
노인이 의료진의 뒤에서 한성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흥미롭군.]
노인이 중얼거렸다.
의료진들은 노인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듯했고
그저 한성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추… 출혈이 멎고 있습니다!!!”
“뭐…? 갑자기 그게 말이 돼?”
“사… 상처도 아물기 시작했습니다!!!”
“……뭐?! 바이탈은?”
“급속도로 좋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정상 범위 안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일단 옮겨. 빨리. 들것!!!!!!!”
의료진의 고함에 들것이 빠르게 투입되었고
한성을 싣고 어딘가로 분주히 옮기기 시작했다.
멀어져가는 한성을 바라보며 노인이 중얼거렸다.
[기회를 간청하기에 기회를 주었다.]
[목숨을 구걸하기에 숨도 틔워주었다.]
[힘을 원하기에 힘도 주었다.]
[넌 선택을 했고 난 그 선택을 받아들였다.]
[부디 그 선택에 후회가 없길 바란다.]
[난 그저 관망하는 자일 뿐. 관여는 여기까지다.]
[때가 되면… 다시 만나게 되겠지.]
말을 마친 노인은 한 무리의 빛이 되어 사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