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78화 (378/379)
  • 378화

    투-욱.

    루시퍼의 목이 땅에 떨어졌다.

    털썩.

    목이 달아난 루시퍼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고 천천히 재가 되어 사라지기 시작했다.

    “끝났다….”

    이 세상을 덮은 답답한 마기가 걷히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자신의 시야가 탁 트이는 것 또한 느껴졌다.

    몸이 가벼워졌고 자신의 몸을 옥죄고 있던 사슬이 완전히 풀어진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칠죄종의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하셨습니다.]

    [특성, ‘초월의 문턱에 선 자’가 특성, ‘초월자’로 변화합니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하셨습니다.]

    [초월자가 되어 존재의 격이 한층 높아집니다.]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팅-.

    태운은 성검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손에 끼우고 있던 건틀릿도 벗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건틀릿은 다시 마검의 형태로 돌아왔다.

    “끝났어….”

    칠죄종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동안 생각만 해왔던 순간이 실현된 것이다.

    이런 순간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할 때마다 이때가 되면 무슨 일을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항상 상상했었다.

    허덕륜 선생님과 술을 한잔하기로 했었고 명운 아카데미의 특별 강사의 자격으로 강의를 한 번 하기로 전대섭 선생님과도 약속했었다.

    찬영이와 연정아에게는 이 일이 끝나면 모든 일을 잠시 멈추고 친구들을 데리고 여행을 한 번 가자고 말을 했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칠죄종을 모두 없앴지만, 성취감 같은 건 없었다.

    홀가분함?

    그런 것도 없었다.

    그냥 텅 비어 버렸다.

    가슴 안에 남아 있는 게 단 하나도 없었다.

    “…….”

    태운은 천천히 사라져 가는 오만의 성 안에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만의 성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대로 서 있었다.

    “…됐다.”

    태운은 눈앞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했다.

    ‘…….’

    전대섭은 오른쪽 가슴부터 팔이 전부 날아간 채로 죽어 있었고 허덕륜은 사지가 뒤틀려 있었다.

    연정아는 가슴이 뚫린 채 죽어 있었다.

    그리고 가장 처참하게 죽은 사람은 구찬영이었다.

    “하…. 진짜….”

    찬영의 시신을 보자마자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상반신이 날아가 하반신만 남은 찬영의 시신을 보니 갑자기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

    “이런 X발! 왜 우리만 목숨 걸고 싸워야 하는데!”불합리하지 않은가.

    “빌어먹을 악마 새끼는 여기서 죽어도 마계로 돌아갈 뿐이고! 개 같은 신들은 뒤에서 뒷짐만 지고 있다가 일 꼬이니까 바로 등 돌려 버리는데!”이 전쟁의 시작은 악마의 의지였다.

    그리고 신들은 본인들의 의지로 이 전쟁을 악마의 승리로 끝맺으려 했다.

    “네놈들이 벌인 전쟁에 왜 우리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야 하는 거냐고! 신이고 나발이고 너희들이 악마랑 다른 게 뭔데!”태운은 지금까지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

    “이 X발…. 진짜 왜 그러냐고…. 이 개 같은 새끼들아….”태운은 억울함을 모두 털어 버리고 천천히 무너져내렸다.

    그때, 멀리서 태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미국의 헌터들이었다.

    오만의 성이 사라진 것을 보고 확인차 달려온 것이었다.

    그때 태운이 소리치는 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누굽니까.”

    태운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야 그들을 발견했다.

    미국의 헌터들은 그제야 다가와서 태운에게 말을 걸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일단 들으셔야 할 소식이….”미국의 헌터는 굉장히 긴장한 상태로 태운에게 말을 걸었다.

    “강태운 헌터님이 오만의 성에 들어간 순간 한국에 수만 마리의 몬스터의 습격이 있었다고….”

    “뭐라고요…?”

    * * *

    태운은 미국의 헌터들에게 한국의 몬스터 습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한국으로 날아왔다.

    루시퍼와의 전투 이후 지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수 시간 만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아….”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태운의 입에서 저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완전히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

    수백 마리의 몬스터들에게 뒤덮인 마을.

    “제발….”

    헌터들이 수백, 수천 명이 모여 있는 곳이 바로 서울이다.

    다른 곳이 이렇게 됐어도 서울만큼은 안전하길.

    미국의 헌터들도 몬스터들이 한국을 습격했다는 소식만 들었을 뿐, 정확한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태운도 정확한 상황은 모르고 있었다.

    그저 제발 서울만큼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 윤아만큼은 안전하길 바랄 뿐이었다.

    “제발….”

    태운은 최대한 빨리 서울로 날아갔다.

    하지만 서울에 도착한 뒤에도 사람들이 모여 있거나 싸우고 있는 장면은 보지 못했다.

    “제발….”

    그때, 태운을 향해 무언가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크윽!”

    태운은 그것을 피한 뒤 그곳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육안으로 봤을 때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무슨….”

    태운은 육감을 사용해 그곳을 관찰해보았다.

    그러자 그 안에서 약 수천 명의 사람들이 숨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저 곳은… 서울 헌터 협회 건물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 그렇다는 건….’윤아는 안전할 거라는 말이다.

    윤아는 레비아탄과의 전투 이후 계속 협회 건물 안에서 살아 왔으니까.

    ‘빨리 내려가 보자.’

    태운은 그것을 확인하고 또 공격을 받을까 봐 최대한 빨리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안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더니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며 약간의 공간이 생겼다.

    “강태운 헌터님 아니십니까!”

    “조일성 헌터님…?”

    공간을 일그러뜨리며 나타난 사람은 바로 조일성 헌터였다.

    그는 과거에 태운이 벨제부브를 쓰러뜨리기 위해 공항으로 갈 때 만났던 헌터였다.

    태운이 그의 검에 직접 파괴 불가 인챈트와 신체 능력 상승 인챈트를 걸어주었었다.

    “죄송합니다. 공중형 몬스터인 줄 알고….”“아닙니다. 그것보다… 이건 어떻게 하신겁니까?”“아…. 이건 공간 왜곡 마법이라고 하더군요. 심중현 헌터님과 자하르 박사님이 합작해서 만든 물건이라고 합니다.”반경 50km의 공간의 공간을 왜곡해 겉으로는 보이지도 않고 쉽게 들어올 수도 없게 만드는 마법이다.

    태운도 하려면 꽤나 힘을 들여야 할 수준의 마법이었다.

    “굉장하군요….”

    “일단 들어오시죠. 자하르 박사님에게 말씀드려놓겠습니다.”조일성 헌터는 태운을 안으로 들이고 어떤 장치를 조작해 공간을 왜곡했다. 그리고 다시 뒤를 돌아 태운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태운 헌터님이 살아 돌아오셨다는 건… 칠죄종과의 전투가 끝났다는 의미겠죠…?”

    “…….”

    태운은 잠시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은….”

    그들은 그 말을 듣고 좋아하다가 태운의 침울한 모습에 다시 고개를 떨궜다.

    그때, 자하르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태운아, 반갑지만 일단 들어야 할 말이 있다.”

    “네…?”

    자하르는 굉장히 급해 보였다.

    “윤아가 보이지 않는다.”

    “네…?”

    태운은 그 말을 듣자마자 가슴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어째서…. 윤아는 항상 헌터 협회 건물 안에서 지냈을 텐데….”

    “하… 하필 그때 습격이….”

    자하르의 말은 이랬다.

    집에 남은 물건들을 가져오기 위해 집으로 잠깐 간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윤아를 구하기 위해 김현우 헌터가 단신으로 밖으로 뛰쳐나갔지만, 김현우 헌터도 연락이 되지 않는 상황이라고 한다.

    “젠장…! 문 열어요!”

    “일단 진정하거라. 너도 많이 지치….”

    “문 열라고!”

    태운은 눈이 돌아가 즉시 공간 왜곡 마법을 찢어 버리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동시에 눈앞에 보이는 모든 몬스터들을 죄다 죽여 버리며 집으로 달려갔다.

    “그어어….”

    트롤킹

    A급 던전에서도 보스로 나올 수준의 몬스터.

    힘으로만 따지면 악마의 권속에게도 밀리지 않는 수준의 몬스터 수십 마리가 태운의 앞을 막아섰다.

    “다 비켜!”

    촤자자작!

    화가 난 태운의 손에 트롤킹 수십 마리는 순식간에 고깃덩이가 되어 버렸다.

    그렇게 태운은 모든 몬스터들을 찢어 버리며 집에 도착했다.

    하지만 그런 태운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너무나 비참했다.

    “그워…?”

    수백 마리의 몬스터 사체 사이에 쓰러져 있는 두 인간의 시신.

    하나는 건장한 남성의 것이었고 하나는 작은 소녀의 것이었다.

    그 옆에는 트롤 서너 마리가 멍청한 표정으로 두 명의 시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태운은 그 옆에 있는 트롤들을 모조리 갈아 버렸다.

    태운은 초월자가 된 자신의 몸에 넘치는 힘이 너무나도 원망스러웠다.

    이런 힘이 있음에도 아무것도 지키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역겨웠다.

    “으아아아!!!”

    태운은 그날 마법을 쓰지 않고 직접 검으로 서울에 있는 몬스터들의 절반을 쓸어 버렸다.

    * * *

    “X발….”

    태운은 홀로 몬스터들의 사체 더미를 걸었다.

    태운이 지나간 곳은 몬스터들의 피로 강이 흘렀고 몬스터들의 고깃덩어리로 산이 쌓였다.

    그럼에도 태운의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아무리 몬스터들을 죽이고 사체로 산을 쌓아도 마음속의 빈 공간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떠오른 알림창이 태운의 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었다.

    [기억의 인연을 쌓은 이계의 영웅이 당신에게 말합니다.]

    ‘내가 하지 못한 일, 당신이라면 할 수 있습니다.’태운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리가 번쩍 트였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가 누군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의사를 전달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누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것인지는 알 수 있었다.

    ‘가웨인.’

    과거 아수라와의 전투를 끝마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가웨인.

    그가 지금 태운에게 의사를 전달한 것이다.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덕분에 태운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마음을 고쳐먹자 태운의 시야는 한층 더 트였고 원래대로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볼 수 있게 되었다.

    “가웨인, 너의 방식대로 한번 해볼게.”

    태운은 주변에 있는 던전을 찾았다.

    아직 서울에는 수십 개의 던전이 존재했지만, 태운의 마음이 가는 던전은 단 한 곳이었다.

    태운은 즉시 그곳으로 날아갔다.

    ‘이곳이야.’

    태운이 날아온 곳은 바로 ‘말라 버린 늪지’라는 던전이었다.

    바로 태운이 신과 처음으로 조우했던 그 던전이다.

    태운은 조금도 기다리지 않고 바로 던전 안으로 들어갔다.

    그 던전 안에는 태운이 에테르를 처음 얻고 실험을 했을 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나무들이 검게 타 있었고 땅은 폭발로 인해 크게 패 있었다.

    태운은 그 흔적들을 모두 무시하고 던전의 끝까지 걸어 들어갔다.

    “여기….”

    태운은 던전 벽에 있는 긴 흔적을 보면서 말했다.

    그 상처는 태운이 에테르를 검에 씌우고 한 번 휘둘러 만든 흔적이었다.

    “가웨인, 너도 잘하고 있겠지?”

    가도, 잭, 라온, 레일로프 모두를 잘 가르치고 이끌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을 것이다.

    “너는 다시 이 짓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스-릉.

    태운은 성검을 꺼내 에테르를 주입했다.

    그리고 공중을 사선으로 베었다.

    쿠-궁.

    그 순간, 던전 벽을 넘어 외벽에 커다란 상처가 났고 태운은 그 안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잘 있어라.”

    신을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그들이 잠시 빌려주는 힘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이건 그저 시위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하는 시위.

    “다녀올게.”

    태운은 자신의 목숨 아니, 존재 그 자체를 건 시위를 하러 신계로 나아갔다.

    다시 돌아올 거라는, 지킬 수 있을지 모르는 약속을 허공에 내뱉고는 지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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