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7화
“후우….”
태운의 몸은 완전히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루시퍼의 공격을 수십 번이나 받아낸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다고 태운이 공격을 받아내기만 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놀랍구나…. 날 여기까지 몰아세우다니….]
오만 그 자체인 루시퍼도 태운을 인정하게 만들 만큼의 공격을 서로 주고받았다.
태운의 몸도 완전 만신창이였지만 그사이에 태운이 간간이 하던 공격을 받아낸 루시퍼의 몸도 정상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죽어간 사람들이 앗아간 루시퍼의 한쪽 눈과 가슴의 큰 상처.
태운이 자른 오른팔, 태운의 공격을 한 팔로 막아내느라 과부하가 온 나머지 팔까지.
출혈도 많았고 자잘한 상처들도 굉장히 많이 나 있었다.
겉으로만 보면 루시퍼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 보였다.
“후…. 하….”
하지만 태운의 상태가 루시퍼보다 더욱 심각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타박상만 조금 있을 뿐 사지 멀쩡한 것처럼 보였지만 태운은 이미 팔다리가 서너 번이나 날아갔었다.
경이로운 재생 능력에도 불구하고 태운의 몸에 타박상이 남아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이겠는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녀석의 공격을 받아내고 더 오래 싸우기 위해 일부러 회복을 늦춘 것이다.
타박상 정도는 회복하지 않아도 싸울 수 있지만 팔다리는 없으면 싸우는 데 큰 지장이 되니까.
‘타박상 따위를 회복하다가 사지가 잘려 나갔을 때 회복하지 못하면… 그것만큼 멍청한 결말도 없으니까.’태운의 재생 능력도 한계가 없는 것이 아니니 최대한 아끼는 것이다.
[인정할 수밖에 없겠군. 그 계륵 같은 남자에게서 너 같은 녀석이 나오다니.]
“계륵…? 그게 무슨 말이지?”
태운은 루시퍼의 입에서 나온 자신의 아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강철운 말이다. 그래…. 내가 전에 강림하고 인간과 싸우지 않고 마계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자주 들어서 알고 있었다.
루시퍼는 인간과 직접적인 충돌을 한 번도 일으키지 않고 권속을 시켜 인류를 공격했었다.
그러던 중 어느 순간 스스로 마계로 돌아갔다고 했었다.
[내가 돌아간 이유가 바로 네 아버지가 딱 계륵이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그게 무슨….”
[네 아버지는 인간치고 굉장히 강했다. 칠죄종을 마계로 돌려보낸 것만 봐도 그건 분명한 사실이지.]
강철운은 칠죄종과 맞서 싸웠던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다.
[네 아버지를 상대하려면 나도 진심을 내야 했겠지. 하지만 그뿐이었기 때문에 내가 돌아간 거다.]
태운은 거기까지 듣고 루시퍼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었다.
“내 아버지가 강해서 상대하려면 페널티를 져야 했지만 그럴 만큼의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말인가?”
[정확하다.]
“참….”
악마라는 족속은 모든 것을 자신의 잣대로만 생각한다.
보아라.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과 알고 지낸 사람들을 지키겠다고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을 오로지 자신의 흥미와 손익을 위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보면 볼수록 마음에 안 드는 자식이란 말이지.”
[네놈이 우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었네.]
“그래….”
[시시덕거리는 건 이제 그만두지.]
태운은 신성력과 에테르, 오러를 동시에 끌어 올렸다.
곧 녀석의 공격이 날아올 테니까.
그 순간.
[기억의 신이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기억의 신이 당신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습니다.]
[사랑의 신이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사랑의 신이 당신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습니다.]
[순결의 신이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순결의 신이 당신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습니다.]
[지식의 신이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지식의 신이 당신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습니다.]
[절망의 신이 당신에게 실망했습니다.]
[절망의 신이 당신을 더 이상 후원하지 않습니다.]
…….
태운의 눈앞에 수많은 알림창이 떠오르더니 몸에 가득 찬 신성력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개자식들이….”
태운은 눈앞까지 날아온 루시퍼의 공격을 겨우 피해 내고 상황을 정리했다.
아직까지도 태운의 눈앞에 수많은 신들이 실망했고 더 이상 후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똑같은 메시지들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메시지, 그걸 보고 태운은 잠시 머리가 멈췄다.
[이제 당신을 인정한 신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받았던 모든 특전을 회수합니다.]
[용사의 자격을 잃었습니다.]
[특성, 용사가 소멸하였습니다.]
“미친 건가…?”
태운은 신들과 존재의 계약을 맺었다.
신들의 존재력을 걸고 맺은 계약이었기에 일방적으로 계약을 끊으면 그들의 존재력이 일부 소멸하게 된다.
존재력을 잃는 것을 죽기만큼 싫어하는 신들이 존재력을 걸고 계약을 일방적으로 끊어 버린 것이다.
상상도 못 한 일이었기에 상당히 당황했지만 오히려 태운은 독기를 품었다.
이제 와서 발 빼는 비겁한 신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다는 듯이 태운은 다시 눈앞의 적에게 집중했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루시퍼는 마기로 왼팔에 큰 건틀릿을 생성하고 달려들었다.
[신이 네놈을 버린 것 같구나!]
태운은 루시퍼의 공격을 피하고 바로 루시퍼의 얼굴을 걷어찼다.
그 후, 건틀릿에서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마기에 즉시 거리를 벌렸다.
콰자자작!
태운이 거리를 벌린 순간, 루시퍼의 건틀릿에서 수많은 가시가 튀어나와 태운을 공격했다.
“후우….”
아슬아슬하게 루시퍼의 건틀릿에서 쏘아지는 가시를 피한 뒤, 가시 사이의 틈으로 파고 들어가 마기를 잔뜩 담아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루시퍼의 안면을 강타한 태운은 몸을 부드럽게 회전시켜 루시퍼의 뒤로 돌아갔다.
‘에테르 건틀릿, 마기.’
태운은 에테르 건틀릿에 마기를 섞어 넣었고 그걸로 루시퍼의 뒤통수를 노리고 휘둘렀다.
부웅!
하지만 태운의 공격은 빗나갔고 루시퍼에게 틈을 보이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태운은 억지로 무릎을 굽혀 옆구리 대신 어깨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그 어깨는 용장의 견갑을 착용한 어깨였다.
쿠웅!
태운의 견갑을 강타한 루시퍼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됐다.’
쩌-적.
용장의 견갑이 부서짐과 동시에 견갑에서 엄청난 힘의 충격파가 쏘아졌다.
[크윽…!]
루시퍼는 자신의 공격을 그대로 담은 충격파를 받아냈다.
[그 견갑은….]
루시퍼는 공격을 받은 뒤에 용장의 견갑을 어디선가 본적이 있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지의 유산인가? 왜인지 익숙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권속들이 묘사한 것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군.]
강렬한 붉은색의 견갑은 확실히 눈에 띄는 장비였다.
[한번 당해보니 알겠군. 나의 권속들이 왜 그 견갑에 부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는지.]
자신이 공격한 힘을 그대로, 혹은 그 이상으로 되돌려주는 방어구는 확실히 상대하는 입장에서 굉장히 까다로운 장비일 것이다.
그래도 권속의 입을 타고 루시퍼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줄은 모르고 있었다.
[그래도 이제는 깨져 버렸으니 이제 그 장비도 명줄이 다한 듯하구나.]
“…….”
태운은 반으로 깨져 버린 견갑을 어깨에서 떼어냈다.
‘이게… 아버지의 장비였구나.’
대충 감은 잡고 있었다.
처칠이 이 장비를 전해줄 때의 반응과 왠지 모를 익숙함에 어렴풋이 직감하고 있었다.
“그래. 이제 이 장비는 좀 쉴 때가 됐지.”
태운은 아공간 벨트에 견갑을 집어넣었다.
아버지부터 자식인 태운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위기를 넘기게 해주었던 장비, 이젠 쉬게 해줄 때가 되었다.
처억.
태운은 용장의 견갑 대신 임정국 장인이 만들어준 용갑을 착용했다.
‘다시.’
태운은 엄청난 속도로 다시 루시퍼에게 달려들었다.
휘릭!
태운은 루시퍼의 공격을 몸을 회전해 피해 내고 그 회전력을 더해 루시퍼를 베려 했다.
카가가각!
루시퍼는 태운의 검을 마기로 만든 봉을 활용해 막아냈고 공방일체의 무기인 봉의 특성을 활용해 태운을 공격했다.
태운의 공격을 막음과 동시에 회전하여 태운의 공격력까지 실은 봉이 태운의 정수리 위로 떨어졌다.
키이잉!
태운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봉을 흘려냈고 동시에 건틀릿으로 루시퍼의 명치를 가격했다.
루시퍼는 봉을 버리고 태운의 주먹을 막으려 했지만.
쩌-적.
[……!]
지금까지 공격과 방어를 전부 책임지던 루시퍼의 왼팔은 한계에 다다랐고 지금 태운의 공격에 뼈가 부러지고 말았다.
태운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그대로 한 바퀴 회전해 루시퍼의 안면에 뒤돌려차기를 꽂아 넣었다.
유일한 공격 수단이자 방어 수단이었던 팔을 잃어버린 루시퍼는 안면에 날아오는 공격을 막을 수 없었고 그대로 공격을 허용했다.
[크아아아!]
루시퍼는 그 공격을 맞고는 소리를 지르며 마기를 폭발시키듯 퍼뜨렸다.
상황이 불리해져 가니 리스크가 큰 공격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죽더라도… 네놈만큼은 꼭 데려가 주마!]
콰자자자작!
루시퍼의 주변 땅에서 붉은 기둥이 솟아올라 태운을 덮쳤고, 그 뒤로 검은 마기 실이 솟아올라 다시 태운을 압박했다.
[으아아아!]
쾅!
루시퍼가 땅을 구르자 충격파가 땅을 타고 태운을 덮쳐 왔다.
부러진 팔에 건틀릿도 씌워 어깨를 휘둘러 바닥에 내려쳐 가시를 쏘아냈다.
“…….”
태운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수많은 공격을 보며 시간이 천천히 가는 것을 느꼈다.
사고 가속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 브레인 부스트를 사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과거의 일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쳐가기 시작했다.
‘아…. 이거… 느낀 적 있어.’
처음 쟝과 만나 목숨을 잃을 뻔했던 그 순간.
태운은 이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달랐다.
그때는 무력감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태운은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휩싸여 있었다.
태운의 인생에 있던 수많은 사건들을 지나쳐 과거 대현자 처칠과 있었던 일들이 떠올랐다.
[쉽게 말하자면 저 녀석은 불가사리야. 필요한 것은 모조리 집어먹으며 언제까지나 단단해지고 몸집을 불려 나가겠지.]
대현자 처칠의 운명 비유.
‘그래. 나는 불가사리. 필요한 모든 것을 집어먹고 성장한다.’태운은 에테르나 오러를 사용하지 않고 순수하게 마기만을 끌어 올렸고, 그 마기를 바닥에 한 번에 쏟아부었다.
그러자.
콰가가가각!!!
태운의 주변에서도 루시퍼의 것과 똑같은 붉은색 기둥과 검은 마기 실이 솟아올라 루시퍼의 공격을 막아냈다.
[네놈….]
루시퍼도 그것을 보자마자 강태운이 자신의 기술을 그대로 카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태운은 놀랄 틈도 없이 성검을 쥐고 앞으로 튀어 나갔다.
성검 렉투스는 신들이 모두 등을 돌린 뒤에도 여전히 밝게 빛나고 있었다.
‘성검 렉투스는 신이 아닌 인간의 힘으로 빗어낸 인류 최초의 성검.’성검도 만들어낸 강태운 아니, 인류다.
‘신 따위는 애초에 필요 없었어.’
태운은 마나에서 신성력, 에테르, 오러, 마기를 따로 분류해냈다.
그리고 그 모든 에너지를 충돌하지 않게, 조화롭게 성검에 불어넣었다.
[잠까….]
서-걱.
에테르, 신성력, 오러, 마기가 아름답게 조화된 태운의 성검이 마지막 칠죄종 루시퍼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