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화
팅-.
태운이 찬영에게 빌려준 성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이게… 뭐지…?’
반응조차 하지 못했다.
공격을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다.
“야…. 잠깐만…. 아니….”
태운은 말을 이을 수도 없었다.
[네놈을 노려서 성검의 기운을 보고 공격했는데… 성검을 네놈의 친구가 갖고 있던 것을 깜빡하고 있었군.]
루시퍼가 태운을 보며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
태운은 알고 있었다.
루시퍼가 그냥 찬영을 노리고 공격을 한 거라는 사실을.
그냥 태운의 멘탈을 건드리기 위한 수작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이라면?’
만에 하나 루시퍼가 한 말이 맞다면?
‘그럼 내가 찬영이를….’
태운은 자신이 찬영에게 자신의 검을 쥐여주는 순간을 떠올렸다.
‘이런 개 같은….’
그냥 다른 힘을 써보겠다고 생각 없이 성검을 찬영에게 쥐여준 자신이 너무 한스러웠다.
[강태운. 너에게는 이제 흥미를 잃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지. 집중하지 않으면 너에게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모든 괴수들을 흡수하고 자신의 존재력까지 희생해 진심을 내보인 루시퍼는 지금까지와는 아예 다른 존재가 되어 있었다.
분명한 것은 방금처럼 해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그때, 태운의 눈앞에 알림창이 떠올랐다.
[절망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고통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슬픔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상실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
온갖 부정적인 개념의 신들이 태운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태운은 자신의 안에서 넘쳐흐르기 시작하는 힘과 별개로 비참함과 분노를 느꼈다.
‘전대섭 선생님, 허덕륜 선생님, 연정아, 찬영이가 죽을 때는 구경만 하고 있다가… 이제야 날 도와준다고…?’
[절망의 신이 당신을 후원합니다.]
[고통의 신이 당신을 후원합니다.]
[슬픔의 신이 당신을 후원합니다.]
[상실의 신이 당신을 후원합니다.]
…….
메시지일 뿐이었지만 태운은 저 신이라는 녀석들이 무슨 생각으로 자신을 후원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안에서부터 차오르는 힘에서 느껴지는 미약한 그들의 의도.
바로 조롱이었다.
그들은 태운이 소중한 동료들을 잃고 나서야 태운에게 힘을 빌려주었다.
애초에 태운이 악마를 죽여주면 가장 큰 이득을 얻는 자들은 신들이다.
신과 악마는 서로의 힘을 깎아 먹으며 견제하는 존재들이니까.
“개 같은 새끼들….”
태운은 자신의 안을 가득 채운 신들의 힘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 힘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비참함을 느꼈다.
‘너희들이 악마들이랑 다를 게 뭐야?’
그냥 운 좋게 신계에서 태어나 인간을 죽이지 않고도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 말고는 악마와 다른 점이 없었다.
적어도 태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정신 차려. 모두 죽었고 나만 남았어.’
신들에 대한 분노로 감정이 분산된 태운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스윽.
태운은 땅에 떨어진 성검 렉투스를 손에 쥐고 일어났다.
더 이상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눈앞에 있는 저 빌어먹을 악마 자식을 죽이는 것.
그걸 이루기 전까지 태운은 다른 것은 전부 뒤로 미뤄둘 생각이었다.
자신의 안전이나 목숨까지도.
[정신을 차렸구나.]
루시퍼는 간만에 사용하는 자신의 전력에 아직 적응을 못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쟝도 그렇고 오만의 힘을 쓰고 있는 녀석들은 평소에는 자신의 힘을 어느 정도 봉인해두는 모양이네.’거기에 태운은 루시퍼가 괴수를 흡수한 것이 전력을 사용했을 때의 반동과 대가를 최소화하기 위함이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네놈이 날 이길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사라졌다. 내가 존재력까지 걸고 오만을 벗었으니….]
루시퍼는 이제 태운을 경계하기는커녕 여유만 넘쳐났다.
태운은 그것에서 승리의 열쇠를 찾았다.
‘카벤의 몸으로 루시퍼를 이겼을 때, 그때도 대부분 녀석의 방심을 기반으로 해서 이겼다.’수천 년이 지났어도 녀석의 천성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태운은 검을 들고 일어났다.
“…….”
태운은 마검의 모양을 검이 아닌 건틀릿의 모양으로 바꿨다.
검 두 자루를 동시에 사용하는 건 밸런스가 맞지 않으니까.
[악마에게 치명적인 빛을 내뿜는 성검과 모든 빛을 흡수하는 마검을 동시에 사용하는 건 너무 손해 아닌가?]
루시퍼의 말은 맞는 말이었다.
둘 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무기들인 것은 확실했지만 상성이 좋지 않았다.
[좋은 무기가 두 자루인데 한 자루만 사용하기 아깝다는 생각에 두 자루 모두 사용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거라면 크게 실망할 것 같구나. 너에게도, 너를 대단한 녀석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안목에도.]
“입 닥치고 덤벼. 버러지 같은 새끼야.”
[실망이구나.]
루시퍼는 찬영을 죽였던 그 공격을 태운에게 사용했다.
‘초감각, 브레인 부스트, 사고 가속.’
태운은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감각 강화 스킬을 사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이 쏘아내는 마기는 굉장히 빠른 속도로 태운에게 날아왔다.
‘앱소버 라이트.’
태운은 모든 빛을 흡수하는 앱소버 블랙 실드를 응용해 방금 만들어낸 앱소버 라이트를 사용했다.
모든 어둠을 흡수해 정화해 버리는 빛을 만들어 내는 마법이다.
태운의 성검에서 빛이 뿜어져 나와 루시퍼의 마기를 흡수한 뒤 함께 소멸했다.
‘앱솔루트 부스트.’
태운은 에테르로 자신의 몸을 한계 이상으로 강화했다.
몸에 부담이 커서 자주 사용하지 않았던 마법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태운에게 몸 생각을 하지 않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뿐만 아니라 몸에 더 큰 무리가 되는 마법을 하나 더 사용했다.
‘오버 서플라이.’
태운은 앱솔루트 부스트에 마나를 억지로 주입해 강화의 수준을 강제로 끌어 올렸다.
“끄으윽….”
앱솔루트 부스트에 오버 서플라이까지 더해지자 신체가 파괴되는 속도가 태운의 비정상적인 재생 능력을 넘어섰다.
꾸드드득….
태운은 삐걱거리는 몸을 이끌고 검을 치켜들었다.
[그래. 와 봐라! 격의 차이를 보여주마!]
루시퍼는 자신의 패배는 생각조차 안 하는 듯했다.
오만 그 자체여야 할 그가 페널티까지 감수하고 꺼내 든 전력은 그만큼 강력한 것이었으니까.
쾅!
태운이 도약하자 태운이 서 있던 땅에 커다란 크레이터가 생겼다.
지금 태운의 속도는 평범한 사람은 보지도 못할 만큼 빨랐다.
하지만 루시퍼의 눈에는 아주 잘 보였다.
부-웅!
태운이 사선으로 검을 휘두르자 루시퍼는 몸만 살짝 틀어 공격을 피해 냈다.
‘예상하고 있었다!’
태운은 루시퍼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태운의 공격을 피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음 움직임을 상정하고 움직인 것이다.
뿌드득!
태운은 몸에서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격하게 움직임의 방향을 꺾었다.
‘이게 진짜다…!’
태운은 신성력과 에테르를 검에 주입한 뒤 전력으로 휘둘렀다.
급격하게 몸의 운동 방향을 튼 여파로 태운의 뼈와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태운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약간의 틈만 있다면 금방 회복할 수 있는 수준이니까.
‘녀석은 아직 왼쪽 눈을 회복하지 못했어. 그럼 이 공격은 완벽한 사각지대…!’태운은 루시퍼가 왼쪽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보고 시야의 사각지대일 왼쪽을 노려 공격했다.
하지만 그건 루시퍼의 함정이었다.
[네 노림수를 내가 모를 것 같았나?]
루시퍼는 지금까지 감고 있던 왼쪽 눈을 뜨며 태운의 손목을 낚아챘다.
동시에 태운의 무게 중심을 이용해 바로 바닥에 처박았다.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 손바닥 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루시퍼는 태운의 뒷목을 잡고 바닥에 처박은 채로 제압하고 있었다.
[나는 수천 년을 칠죄 그 자체로 존재해오면서 얻은 경험을 다른 녀석들과 달리 그대로 흡수했다. 고작 수십 년을 산 네놈에게 실력으로든 힘으로든 절대 밀릴 수가 없지 않겠나?]
태운은 고개를 바닥에 처박은 채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네가 수천 년 동안 못 얻은 게 하나는 있는 거 같네.”
[그게 뭐지?]
“이 세상에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만 너는 평생 얻을 수 없는 거지.”태운이 그렇게 말하자 루시퍼는 잠깐 의아해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은 거의 모두 가지고 있지만 나는 평생 얻을 수 없는 게…. 그게 무엇이지?]
자존심이 상했다.
그게 사실이든 사실이 아니든 정답을 듣고 싶었다.
“적의 능력에 대한 인정.”
태운은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건틀릿에서 신성력을 품은 빛을 발산했다.
[크윽!]
태운은 주춤하는 루시퍼를 밀쳐 내고 거리를 벌렸다.
“후우….”
태운은 몸을 빠르게 회복하며 루시퍼의 반응을 살폈다.
[어떻게… 마기로 둘러싸인 물건 안에서 이 정도 수준의 신성력이….]
예상대로 루시퍼는 굉장히 당황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수천 년 동안 살았다면서 이런 적은 처음이었나 봐?”당황스러워하는 루시퍼를 보자 흥분했던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신의 노림수가 통하는 익숙한 상황을 머리가 인지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냐!]
루시퍼는 이런 적이 처음이었다.
애초에 마기와 신성력을 동시에 다루는 이질적인 존재는 모든 차원의 역사를 뒤져봐도 강태운이 유일했으니까.
“오만을 버렸다고? 오만을 버리고 강한 힘을 얻었다고?”웃기지 말라고 해라.
“적에게 전력을 다하는 것이 오만을 버린 거라고 생각한다면 넌 평생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아직 태운이 유리한 상황이 아님에도 둘의 분위기는 완전히 반전되었다.
루시퍼는 지금까지 적의 노림수에 당해도 그것의 원리와 적의 생각을 단번에 완전히 꿰뚫어 보고 파훼해 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루시퍼는 상극이라 여겨지는 마기와 신성력이 어째서 공존하고 있었는지, 어째서 마기 안에서 신성력이 튀어나온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젠장….]
이렇게 되면 신성력을 상대할 때도 마기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상상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면서… 별의별 오만을 떨고 다녔네.”태운은 성검 렉투스를 쥐고 다시 루시퍼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전과 달리 빠르게 달려들지는 않았다.
[닥쳐라…. 그딴 거 몰라도 네놈 따위는 힘으로 짓밟아주마!]
촤아아아악!
루시퍼가 서 있는 땅에서 붉은 기둥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곧 그 붉은 기둥들은 휘어져 태운을 향해 날아갔다.
마치 촉수처럼 자유자재로 휘며 태운을 노리는 붉은 기둥들은 모두 굉장히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저 기둥들 하나하나가 찬영이를… 죽인 그 공격과 비슷한 수준의 힘을 가지고 있어.’직격당한다면 태운도 무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감각.’
태운은 초감각을 활용해 붉은 기둥들을 모조리 피해냈다.
카가가가각!
아슬아슬하게 날아오는 기둥의 측면을 검으로 막아내며 빠르게 루시퍼의 앞에 접근한 태운은 오른손에 쥐고 있던 성검을 왼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일부러 건틀릿에 신성력을 일부 내보였다.
[똑같은 수에 당할 성싶으냐…!]
“걸렸다.”
태운은 성검에 마나를 주입했다.
그리고 에테르, 신성력, 마기를 모두 추출한 뒤 남은 에너지 중 잡다한 것을 치워냈다.
그렇게 성검에는 이 세상에 있는 힘 중 가장 순수한 에너지인 오러만이 남았다.
태운은 흘러넘치는 오러를 에테르를 활용해 검날의 모양으로 굳혔다.
그러자 그 자체로 엄청난 예기를 가지고 있는 오러는 하나의 검날이 되었다.
서걱!
태운은 그대로 성검을 휘둘러 루시퍼의 팔을 잘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