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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71화 (371/379)
  • 371화

    포탈에서 나온 이는 루시퍼였다.

    루시퍼는 태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날 부른 건 네놈이냐. 아니지…. 네놈은 마기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루시퍼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더니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허…. 이 세계의 악마 숭배자들은 참 지능이 떨어지는군….]

    “눈치가 좋네.”

    [그래도 나를 위해 일하던 나의 아이들이었다. 복수를 안 할 수는 없겠군.]

    거짓말.

    루시퍼는 이 녀석들에게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교주에게 마기를 조금 쥐여주고 뒷일은 알아서 하게 시킬 생각이었겠지.’태운은 루시퍼의 그런 면이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짓말하지 마라. 그냥 나와 싸워보고 싶은 게 아닌가?”

    [허….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는군.]

    강태운의 말에 루시퍼는 그를 비웃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마나도 깨우치지 못한 세상에 칠죄종의 상대가 있을 리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카벤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강해졌고 루시퍼도 현실에 비하면 훨씬 약하다지만 카벤보다는 확실히 더 강했다.

    ‘이기려면… 기습이다.’

    태운은 루시퍼를 빠른 속도로 공격했다.

    지금까지 상대했던 거의 모든 칠죄종은 자신의 강함에 취해 싸우는 법을 제대로 연마하지 않았다.

    카벤의 속도는 현실의 태운보다 조금 느린 수준. 수많은 세상을 잡아먹기 전의 루시퍼라면 공격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건 태운의 생각일 뿐이었다.

    [호오…?]

    휘릭!

    퍼억!

    “커억!”

    태운은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분명 내가 공격했는데….’

    [네 녀석…. 마나를 깨우친 것뿐만 아니라 굉장히 잘 사용하는구나.]

    태운은 루시퍼의 자세를 보고서야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있었다.

    루시퍼는 태운의 공격을 회전하며 흘려냄과 동시에 태운을 발로 걷어찬 것이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이어진 깔끔한 연계 동작에 태운은 눈으로 따라갈 수조차 없던 것이다.

    그 순간, 태운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가장 강한 힘을 가진 적이… 마지막에 남아 더 강해졌어…. 그런데 실력까지 뛰어나다고…?’태운이 지금까지 칠죄종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던 이유는 그들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모두 자신의 압도적인 힘을 사용해 세상을 짓밟아왔기에 전투 센스나 실력이 뛰어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태운은 그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싸워왔지만, 루시퍼에게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바꿔야겠어.”

    루시퍼도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방을 찍어누르는 전투를 할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계획을 바꿔야 했다.

    [혼자 뭐라고 하는 거냐.]

    루시퍼가 태운에게 말을 걸었지만 태운은 무시했다.

    ‘루시퍼는 압도적인 힘으로 적을 찍어누르는 전투를 하지 않아. 오히려 강한 힘을 정확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해 적을 찢어 버리는 전투를 하고 있지.’그런 적을 상대로는 천천히 한 합 한 합 신중히 내질러야 한다.

    ‘속공이 아닌 지공으로 간다.’

    태운은 빠른 속도로 달려드는 것을 멈추고 제자리에 서서 검을 자신의 앞에 반듯하게 세웠다.

    [녀석…. 앞으로 10년만 더 있었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겠구나.]

    루시퍼는 엄청난 실력의 소유자답게 태운의 의도를 단번에 깨달았다.

    [생각이 바뀌었다.]

    루시퍼는 그런 태운을 보고 제안했다.

    [내 권속이 될 생각이 없나?]

    루시퍼의 권속 제안.

    [네 녀석은 천재다. 강함에서만 천재가 아니야. 고작 십수 년을 살아놓고 수천 번이나 싸워본 것 같은 노련한 상황 판단과 나와 싸우기 위해 악마 숭배자들의 사이에 들어오는 대담함. 나를 앞에 두고도 꺾이지 않는 눈빛. 네 녀석은 인간으로 끝나기 아쉬운 녀석이다. 내 권속이 된다면 지금보다 더 강한 힘을 주겠다. 어떤가? 나의 권속이 되어 나의 야망을 위해 일하는 것이.]

    루시퍼는 거창하게 태운을 칭찬하며 말했다.

    태운은 그런 루시퍼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중지 손가락을 올려보았다.

    [아쉽구나.]

    퍽.

    그 순간, 태운의 가슴에 직경 30cm의 커다란 구멍이 났다.

    “빌어…먹을….”

    태운은 그렇게 마정석 밖으로 빠져나왔다.

    “태운아, 괜찮냐?”

    자하르가 캡슐 밖으로 나온 태운에게 물었다.

    아무리 마정석 안이라고는 하지만 칠죄종 중 하나인 루시퍼를 만났다.

    정신이 멀쩡한지 확인할 필요성이 있었다.

    “괜찮습니다.”

    당연하게도 태운은 멀쩡했다.

    하지만 정신이 멀쩡한 것과 달리 태운의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다.

    루시퍼와의 전투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루시퍼와의 전투까지 남은 시간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었으니까.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계속 영상 저장해주세요.”

    * * *

    태운은 루시퍼와 수백 번의 전투 끝에 승률이 60%에 도달했다.

    그러던 중에 루시퍼의 전투 패턴을 완전히 파악하는 데 성공했고 마지막에는 거의 압도하며 루시퍼를 마계로 돌려보냈다.

    적의 패턴을 완전히 파악해 적을 쓰러뜨린 업적 때문이었을까.

    그 마정석의 보상으로 태운은 ‘전투안’이라는 패시브 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좋아. 이 정도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루시퍼의 힘이 더 강해졌다고는 하나 태운도 마찬가지다.

    카벤의 몸보다 태운의 몸이 더 강했으니까.

    태운이 마정석 안에서 이긴 루시퍼가 지금의 루시퍼보다 약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었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습니다.”

    태운은 자하르와 연구원들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들만큼 고마운 사람들은 몇 없었다.

    고작 고등학생이 하는 말에 의심하나 없이 러시아에서 한국으로 넘어와 전폭적인 지원과 동시에 도움도 많이 주었다.

    그리고 엄청난 양의 연구 자료를 정리하느라 고생한 연구원들에게도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태운이 브레인 부스트와 사고 가속을 사용한 상태로 마정석을 흡수해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빠른 속도로 뽑혀 나오는 자료를 정리하느라 잠도 자지 못하고 일하는 사람도 많았다.

    “신세는 무슨. 언제든 와라.”

    자하르는 언제든 오라고 말했지만 연구원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저한테는 미리 전화 넣어주고 오시면… 휴가 쓰고 외국 나가 있겠….”

    “저도요….”

    모두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좋은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그들도 태운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으니까.

    태운의 일을 도와주며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향상된 것은 물론, 다른 사람은 평생을 노력해도 얻을 수 없을 다른 세상에 있는 지식을 얻게 되었으니까.

    그 지식들은 그 연구원들이 자하르의 연구소에서 독립해 자신만의 연구를 할 때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사합니다. 돌아와서 뵙도록 하죠.”

    태운의 마지막 말에는 확신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항상 확신과 자신감에 차 있던 태운도 루시퍼를 확실하게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서 이곳에 다시 올 수 있는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아.’루시퍼를 죽이기 위해서는 어쩌면 동귀어진을 노려야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태운은 그렇게 연구소를 나와 집으로 향했다.

    최종 결전을 위해 미국으로 가기 전날 하루는 유일한 혈육인 윤아와 보냈다.

    그리고 태운은 다음날 미국으로 가기 위해 최근에 수복한 인천 공항으로 향했다.

    * * *

    “다들 후회는 없겠지?”

    전대섭이 인천 공항에 모인 모두를 보고 한 말이다.

    “미련과 후회는 모두 이 땅에 버리고 떠난다.”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확실히 주지시켜주는 말이었다.

    동시에 미련과 후회는 전투에 방해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말이기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이곳에 모인 헌터는 강태운, 전대섭, 구찬영, 허덕륜, 연정아였다.

    “모두 비행기에 올라타라. 작전에 대해 다시 말하도록 하지.”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전대섭의 말에 비행기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모두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동료들의 생각이 난 것이다.

    그때, 구찬영이 입을 열었다.

    “다시 돌아오면 돼. 허리 펴.”

    정작 이 땅에 남겨둔 것이 가장 많은 구찬영이 말하니 모두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모두의 발걸음이 한결 편해졌다.

    “가자.”

    태운의 말을 끝으로 모두가 비행기에 올라탔고 비행기는 천천히 이륙하기 시작했다.

    “이 작전은 구찬영이 낸 작전입니다.”

    태운은 비행기가 이륙을 끝내고 안정권에 들어서자 일어나서 작전에 대해 브리핑하기 시작했다.

    “전에도 들었지만… 조금 위험한 것 아닌가?”“하지만 성공하기만 한다면 피해를 확실히 줄일 수 있습니다.”구찬영이 전대섭의 물음에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건 그렇다만….”

    “전 괜찮아요.”

    그때, 이 작전에서 가장 큰 위험을 부담해야 하는 연정아가 작전에 동의했다.

    “아니, 이 작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정아야….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다만….”전대섭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자꾸나.”

    전대섭은 구찬영이 낸 작전에 동의했다.

    “그럼 이제부터 세부적인 작전에 대해 의논하도록 하죠.”

    * * *

    [놈들이 왔군.]

    미국에 있는 오만의 성에서 루시퍼는 한국의 헌터들이 미국에 들어온 것을 확인했다.

    [마리아네트, 잘 모셔오거라.]

    “네, 알겠습니다.”

    마리아네트는 루시퍼에게 고개를 한 번 숙이고는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마리아네트가 다시 모습을 드러낸 곳은 바로 한국 헌터들의 앞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마리아네트….”

    마리아네트는 허리를 굽혀 아주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루시퍼 님께서 기다리십니다. 따라오시지요.”

    “그래.”

    태운 일행은 마리아네트를 따라갔다.

    이렇게 된 마당에 함정을 팠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리아네트를 따라 10분 정도 걷자 거대한 오만의 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곳입니다.”

    “음….”

    오만의 성의 입구는 모두 다섯 개로 나뉘어 있었다.

    “이곳입니다. 왼쪽부터 팔라디오, 레오니카. 루시퍼 님, 세인티,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입니다. 싸울 상대를 정해 입구로 들어가시면 됩니다.”이제 진짜 시작이었다.

    각자 입구 중 하나를 정해 들어가는 순간, 인류의 존망을 건 최종 결전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전 안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부디 현명한 선택을.”마리아네트는 왼쪽에서부터 5번째에 있는 입구로 들어갔다.

    “다들 미리 정한 대로 서주세요.”

    태운의 말에 모두가 미리 정한 대로 자리에 섰다.

    “다들 집중하시고… 마지막에 모두 웃으며 보고 싶네요.”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입구로 들어갔다.

    태운이 들어간 입구는 아주 어둡고 긴 복도였다.

    태운은 복도를 천천히 걸으며 나아갔고 결국, 복도 끝의 거대한 공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 태운이 맞이한 적은 루시퍼….

    “안녕하십니까. 의외의 선택이군요.”

    루시퍼가 아닌 그의 권속인 마리아네트였다.

    [왜… 강태운이 오지 않은 것이지?]

    “다들 왜 강태운만 찾는건지….”

    그 시각, 루시퍼의 방에는 연정아가 들어가 있었다.

    “덤벼. 그 입에서 다시는 강태운을 찾지 못하게 해줄 테니까.”연정아는 지금까지 한 번도 내보인 적 없는 자신의 모든 힘을 개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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