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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70화 (370/379)
  • 370화

    야심한 밤, 태운은 국왕의 정원으로 잠입하기 위해 몰래 거리를 거닐었다.

    천천히 걸으며 경비병들의 수와 위치를 확인했다.

    ‘역시 국왕의 자택이다 보니 경비병들의 수가 상당히 많긴 하네.’하지만 태운에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다.

    기척을 지워 버리는 것을 물론 코앞을 지나가도 예민한 사람이 아니면 조금의 이상함도 느끼지 못할 수준의 은신 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으니까.

    기감이 뛰어난 헌터들을 상대로도 들키지 않았던 은신인데 마나를 단련하기는커녕 깨우치지도 못한 평범한 경비병들에게 들킬 리가 없었다.

    ‘슬슬 들어가 봐야겠네.’

    태운이 국왕의 정원으로 들어가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국왕의 정원에 악마 숭배자들의 본거지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으니까.

    ‘정문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지. 정문은 마기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으니까.’지금 태운이 들어가려는 입구는 국왕의 정원에 있는 우물과 이어져 있다.

    태운이 심문했던 주교의 말로 그 입구는 악마 숭배자들의 본거지가 들켰을 때 국왕의 저택을 습격해 국왕을 인질로 잡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악마 숭배자들에게 도망이란 곧 패배니까.’수가 적은 악마 숭배자들이 뿔뿔이 흩어진다면 각개격파 당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렇게 된다면 악마 숭배자들이 뿌리 뽑히는 건 시간문제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치는 것보다 국왕을 납치해 협상을 노리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아직 국왕은 악마 숭배자들이 수도의 지하에 숨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리버스 그래비티.’

    태운은 리버스 그래비티를 사용해 몸을 공중으로 띄워 천천히 담장을 넘었다.

    그 과정에서 은신 마법을 사용해 경비병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사뿐하게 정원에 착지한 태운은 미리 알아 온 내부 구조를 떠올렸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우물이 있어.’

    그 우물은 저택에 화재가 났을 경우를 대비해 만든 우물이었기 때문에 평소에 자주 사용하는 우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녀석들이 이곳에 비밀통로를 만든 것이겠지.

    ‘이 우물이다.’

    태운은 우물에 도착해 마나를 퍼뜨린 뒤 천천히 우물 안을 관찰했다.

    그 안은 물로 가득했고 안에 특별한 공간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태운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태운의 마나는 천천히 퍼져 나가 우물 내부에 숨겨져 있던 입구를 찾아냈다.

    우물 바닥에 숨겨진 문을 여는 장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끼익.

    태운은 힌지가 녹슬어있는 우물 덮개를 열었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태운은 소리도 없이 물 안으로 들어갔다.

    “후읍.”

    태운은 숨을 들이마신 뒤 우물 바닥으로 빠르게 헤엄쳐 들어갔다.

    우물 바닥에 가까워질수록 마기가 짙게 느껴졌다.

    전에 악마 숭배자들의 마을에서 느꼈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짙은 마기였다.

    하지만 이것 또한 마기가 아닌 마나로 열 수 있었다.

    여긴 우물 아래라 들키지 않을 거라 생각해 보안에 크게 신경 쓰지 않은 것 같았다.

    애초에 이곳은 외부에서 내부로 들어갈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닌 내부에서 외부로 나가기 위해서 만들어진 통로다.

    “일단….”

    태운은 우물 바닥에 손을 대고 마나를 주입했다.

    그리고 내부의 장치에 마나를 흘려 넣고 역으로 돌려 내부에서만 열 수 있게 설계된 문을 열었다.

    쏴아아아-.

    태운이 마나로 장치를 조작하자 우물 바닥이 열리며 물이 쏟아졌다.

    태운은 안으로 들어간 뒤 다시 장치를 조작해 문을 닫았다.

    “푸하….”

    “왜 이 문이 열…. 누구냐!”

    “손 들어!”

    태운이 물 밖으로 나와 숨 몰아쉴 때, 안에서 두 명의 악마 숭배자들이 태운과 눈을 마주쳤다.

    “무기를 내려라.”

    태운은 위압적인 기운 내보내며 그들을 압박했다.

    “크윽….”

    고작 15살짜리 꼬마에게서 느껴지는 엄청난 압박감에 악마 숭배자들은 순간적으로 몸이 굳어 버렸다.

    “아무런 계시도 받지 못한 것이냐.”

    “……?”

    태운의 콘셉트는 이들이 모시는 악마에게 계시를 받은 사제다.

    물론, 다른 대륙의 악마 숭배 집단 출신이라는 설정이다.

    “나를 너희들의 교주에게 데려가라. 그럼 모든 것이 설명될 것이다.”

    “혹시 어떤 분이신지….”

    그쯤 듣자 그들도 눈앞에 있는 침입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는 경어를 사용했다.

    “간단히 설명할 테니 잘 듣거라.”

    태운은 천천히 자신의 설정을 설명했다.

    “나는 옆 대륙에 있는 악마 숭배 집단의 대사제였던 몸이다. 하지만 배신자가 나타나 우리는 모두 토벌 대상이 되었다. 나는 어렸기에 병사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모조리 죽이고 탈출했지.”

    “그런….”

    “그렇게 세상을 떠돌던 중에 악마께 계시를 받았다. ‘이곳에 있는 악마 숭배자들을 찾아가 본좌를 소환하라.’라고.”

    “네?”

    태운의 말을 들은 악마 숭배자들은 놀라면서도 신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아무런 계시도 받지 못했다니…. 정문으로 갔을 때 아무런 반응이 없었던 이유가 있었군.”

    “그, 그럼 빨리 교주님께 모시겠습니다!”

    악마 숭배자들은 태운을 극진히 모시기 시작했다.

    악마 숭배자들이 태운을 이렇게 믿는 이유가 있었다.

    태운이 마나를 계속해서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나와 같은 이질적인 기운을 마기밖에 모르고 있었고 태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을 마나가 아닌 마기로 착각하고 있던 것이다.

    그러니 태운의 말에 대한 신뢰가 높을 수밖에.

    “여기가 교주님의 방입니다.”

    “수고했네. 그럼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네!”

    태운은 교주의 문을 열었다.

    “누구냐! 어떤 자식이 노크도 하지 않고….”교주는 침대에서 여자를 끼고 놀고 있었다.

    태운은 민망함을 숨기고자 교주를 조롱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군.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이렇게 놀고나 있고.”

    “뭐라?”

    교주는 대충 수건으로 자신의 하반신만 가린 채 태운에게 다가갔다.

    그는 갈색빛 피부에 근육질 몸을 가지고 있었다.

    사제나 교주라기보다는 장군에 더 가까운 몸이었다.

    “네놈이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그 말을 교주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마.”교주는 부하들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교주는 태운에게 다가와 주먹을 휘둘렀다.

    마기가 잔뜩 실려 있는 공격으로, 평범한 사람이 맞는다면 머리통이 터질 수준의 공격이었다.

    하지만 태운에게는 가소로운 수준의 공격일 뿐이었다.

    터업!

    태운은 교주의 주먹을 잡았고 교주의 주먹의 충격은 역으로 교주에게로 온전히 돌아갔다.

    “쿨럭!”

    교주는 약간의 피를 토하며 주저앉았다.

    “내가 대사제로 있던 곳은 무려 수백 년 동안 악마를 숭배해왔다. 악마를 숭배한 지 고작 수십 년밖에 안 된 집단의 우두머리 따위가 나의 상대가 될 거라 생각한 거냐?”

    “그게 무슨 헛소리….”

    “하…. 역시 계시를 받지 못한 건가?”

    태운은 다시 계시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악마를 소환할 때가 되었다. 나에게 네놈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계시가 내려왔다.”

    “그게 무슨….”

    “닥치고 옷이나 입고 나와라. 나중에 제대로 설명해주마.”이쯤 되면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 * *

    “그런 일이….”

    교주는 태운의 말에 완전히 속아 넘어갔다.

    애초에 태운의 이야기는 대륙 간의 교류가 없는 이 세상에서는 확인할 방법도 없었으니까.

    “그럼 의식을 준비해라.”

    “의식 준비는 이미 다 되어 있다. 그 정확한 재료와 방법이 내려오지 않았을 뿐.”“그렇다면 바로 가지. 내가 마지막 남은 재료와 방법을 가지고 왔으니.”

    “오오…!”

    태운은 교주를 데리고 의식 제단으로 갔다.

    그곳에는 교주의 부름을 받고 온 악마 숭배자들이 있었다.

    “허….”

    태운은 그들의 수에 입을 닫을 수 없었다.

    인구도 적은 중세시대에 만 명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수의 악마 숭배자들이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그럼 바로 시작하지.”

    더 지체할 시간은 없었다.

    태운은 마정석을 한구석에 잔뜩 쌓아놓았다.

    “손을 주게.”

    “손 말인가?”

    태운은 교주의 손에 바늘을 찔러넣고 그의 손으로 마법진을 그렸다.

    의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혼돈 에너지와 마기를 가지고 있는 자의 피였으니까.

    “호오….”

    교주는 의식을 준비하는 태운의 모습에 감탄했다.

    “드디어 그분을 볼 수 있는 것인가….”

    교주는 한껏 기대에 찬 듯한 모습이었다.

    태운은 마법진의 빈 곳을 마정석으로 가득 채웠다.

    “지금부터 의식이 끝날 때까지 이 마법진에 마기를 주입해라. 영석의 힘에 지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알겠다.”

    영석은 이 세상에서 마정석을 부르는 이름이다.

    “고작 영석 따위에게 밀릴 수는 없지.”

    뭔가 교주라고 하기에는 굉장히 호전적이고 멍청해 보이는 녀석이었다.

    ‘뭐, 나야 속이기 좋아서 다행이지.’

    태운은 그렇게 의식 준비를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교주가 마기를 주입해 의식을 진행하는 것뿐이다.

    “흐읍….”

    교주는 천천히 마법진에 마기를 주입했다.

    마기를 주입하면서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마기가 들어간다는 것을 눈치챈 모양이다.

    그렇게 천천히 마기를 주입하자 마법진 위의 마정석이 빠른 속도로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정석은 점점 팽창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 되었다.

    “집중해라. 영석에 지게 생겼다.”

    “크윽…!”

    현실 세계에서 칠죄종의 대원로 수준이었다면 의식 자체의 난이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교주는 의식의 난이도에 굉장히 부담스러워하고 있었다.

    ‘대원로보다 한참이나 수준이 떨어지는 게 확실하네.’드드드드.

    그렇게 마정석이 떨리며 팽창하던 순간.

    파-앙!

    마정석은 분리되어 허공을 날았다.

    그리고 마법진 위에 모여 무언가를 만들어냈다.

    그것은 마계와 연결된 포탈이었다.

    “성공했군.”

    이제 칠죄종 중 하나인 오만의 루시퍼가 이 포탈을 타고 이 세상으로 나올 것이다.

    그러기까지 약 10분이 걸릴 것이다.

    그 10분 동안 태운이 할 일이 하나 있었다.

    스릉

    “후우…. 왜 검을 뽑….”

    푸욱!

    태운은 마기를 모두 소모해 무릎을 꿇은 교주의 목에 검을 찔러넣었다.

    “꺼… 꺼…. 왜….”

    “왜긴 왜야? 너의 같이 쓰레기 같은 악마 숭배자들은 전부 죽어야 하니까.”쑤욱!

    태운은 교주의 목에 박힌 검을 뽑아 한 번 휘둘러 교주의 목을 잘라 버렸다.

    “교주님을 왜….”

    “의식의 한 종류인가….?”

    “그렇지만 교주님을….”

    태운이 교주의 목을 날려 버리자 보고 있던 악마 숭배자들이 동요했다.

    “화폭.”

    태운은 공동의 천장에 화폭을 시전했다.

    푸푸푸푸푹!

    화폭으로 만들어진 마나 파편은 악마 숭배자들의 몸에 구멍을 내었다.

    만 명이 넘는 사람 중 수백 명의 사람이 화폭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체인 익스플로전.’

    태운은 화폭으로 만들어진 마나 파편을 폭발시켜 악마 숭배자들을 모조리 죽였다.

    태운이 이들을 죽이는 이유는 간단했다.

    곧 있으면 악마와 싸우게 될 텐데 악마 숭배자들이 남아 있다면 그들도 태운에게 달려들지 않겠는가.

    태운은 그 싸움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다.

    [누가 지금 나를 부른 것이냐.]

    그때, 태운의 뒤에서 듣기만 해도 소름이 돋는 목소리가 들렸다.

    “왔네.”

    그 녀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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