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9화
“여긴가.”
태운은 주교를 심문한 끝에 본거지의 위치를 알아냈다.
“하여간… 무슨 수도에 본거지를…. 담도 크지.”거짓말은 아니었다.
태운이 거짓말 탐지 마법으로 확인해 보았으니까.
“왕가에 연줄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어찌 되었든 태운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수도는 구해야 할 물건들이 있어서 와야 하는 곳이었다.
“일단 돈을 좀 벌어야 할 텐데….”
태운이 구하려는 물건은 이 세상에서 공식적으로 발견된 물건이 아니라 암시장에서야 비싼 돈을 주고 사야만 한다.
태운은 돈을 벌 수단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멈춰라! 이름과 출신, 방문 목적을 말하라.”태운은 수도 입구의 경비병과 마주쳤다.
“이름은 카벤이고 말타 마을 출신입니다. 방문 목적은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말타 마을이라…. 알겠다. 수상한 짓을 해서 나를 다시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군.”“알겠습니다. 그런데 혹시 이 도시에 유명한 대장간이 있나요?”대장간을 찾자 경비병의 눈빛이 달라졌다.
“호오…. 대장간 도제 출신 여행자였나. 유명한 대장간이라 하면 샤스란 님의 대장간이 있지. 내가 샤스란 님과 약간의 친분이 있으니 소개장을 써주겠다. 대신 나중에 내가 무기 손질을 맡기면 조금 더 신경 써서 해주게나.”“네, 그 정도는 당연히 해드릴 수 있죠. 감사합니다.”태운은 경비병이 써주는 소개장을 들고 샤스란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까앙! 까앙!
대장간의 문 앞에 서자 망치로 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시끄럽지만 듣기 좋은 소리야.’쇠를 경쾌하게 두들기는 소리는 귀로 듣기에는 시끄러웠지만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졌다.
특히 임정국 장인이 쇠를 두들기는 소리는 굉장히 좋았다.
“허….”
태운이 대장간의 문을 열자 엄청난 열기가 느껴졌다.
“야! 제대로 안 해! 대장일 올해만 하고 그만둘 거야? 자세 똑바로 잡고 해!”
“네!”
“그렇게 망치질하면 담금질할 때 깨진다고 몇 번을 말해야 알아먹을 생각이냐! 그럴 거면 때려치워!”문을 열자 5명의 대장장이들이 한 줄로 도열해 쇠를 두드리고 있었다.
누가 봐도 대장간의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그들에게 욕을 하면서 대장일에 대한 조언을 해주고 있었다.
‘저 사람이 샤스란인가.’
태운은 대장일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지만 샤스란에게 욕을 먹고 있는 사람들도 나름 훌륭한 실력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을 못마땅한 듯이 보고 있는 샤스란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지 기대되기 시작했다.
‘임정국 장인님과 비슷한 수준이지 않을까….?’그때, 샤스란의 눈에 태운이 들어왔다.
“아, 손님이신가?”
“어, 손님은 아니고… 여기서 일하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일을?”
샤스란은 그 말을 듣고 태운을 한번 빠르게 스캔했다.
“그 팔로 지금 대장일을 하겠다는 건가?”
태운의 완력은 검을 수련했기에 아주 형편없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한들 수년간 한 팔로 무거운 망치만 휘두른 대장장이들에 비할 수준은 아니었다.
“아서라. 검이나 더 수련해서 용병이나 해. 대장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니까.”“아, 저는 대장일을 하려고 온 게 아닙니다.”태운은 실제로 대장일을 할 생각도 없었고 배울 생각도 없었다.
한시가 급해 죽겠는데 싸우는 데 도움도 안 되는 대장일을 배울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뭐? 어른 놀리는 거 아니다. 한 대 쥐어박기 전에 썩 꺼지거라.”샤스란은 태운에게 화를 내려다가 한숨을 쉬고는 태운에게 손짓하고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태운은 샤스란에게 말했다.
“그렇게 제가 못 미더우시면 절 테스트해 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테스트?”
샤스란은 어림도 없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손 한번 줘봐라.”
태운의 손은 굳은살로 가득했지만 망치를 쥔 손은 아니었다.
망치를 휘두를 때 생기는 굳은살과 검을 휘두를 때 생기는 굳은살은 그 모양이 달랐으니까.
그것을 본 샤스란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
“망치 한번 안 잡아본 녀석이 아무리 날고 기어도 내 눈에 찰 리가 없다.”“저한테 망한 검 한 자루만 맡겨 보시겠습니까.”
“허, 참….”
샤스란은 계속해서 귀찮게 구는 태운의 엉덩이를 걷어차 내쫓고 싶었지만 저 정신머리는 한번 고쳐주고 싶었다.
‘네놈이 지금까지 얼마나 인생을 쉽게 살아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마음대로 안 될 거다.’샤스란은 태운의 버릇을 고쳐주기 위해 잠깐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
나이가 아주 어린 것도 아니고 먹을 만큼 먹고도 이렇게 건방진 녀석은 한번 당해봐야 한다.
“그래, 저기 대충 꽂혀 있는 것들 중 하나를 골라서 네 솜씨를 보여 보거라.”
“감사합니다.”
샤스란은 실패작들을 모아놓은 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실 그 실패작들도 다른 공방이었다면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가격에 팔았을 평범한 물건들이었다.
자신의 공방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샤스란이었기에 팔지 않고 저렇게 놔두는 것이었다.
실제로 저 물건들은 재룟값의 절반 정도의 대금만 받고 초보 모험가나 검사에게 주기도 했다.
샤스란은 저 물건 중 태운이 하나를 골라 망가뜨린다면 크게 혼을 낸 뒤 그 검을 쥐여주고 내쫓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샤스란의 생각과 달리 태운은 더 이상 망가질 일 없는 물건을 골랐다.
“이거다.”
태운은 꽂혀 있는 검 중 누가 봐도 이견 없이 ‘망한 검’이라 부를 물건을 하나 골라냈다.
그 검은 단조 과정에서의 실수로 반으로 똑 부러진, 회생 불가능한 검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겠다는…. 아… 그런 건가?”샤스란은 태운이 부러진 검을 갈아내 단검으로 만들 계획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 검을 살려낼 방법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생각보다 머리를 잘 굴러가는 것 같다만… 그런 잔머리로 날 만족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단순히 검날이 짧다고 해서 단검으로 노선을 튼 거라면 오히려 마이너스다.
애초에 롱소드로 설계된 검이다.
손잡이, 가드, 무게 중심 등등 모든 것이 롱소드에 적합하게 맞춰져 있었기에 단검을 만든다면 이도 저도 아닌 쓰레기 같은 검이 되어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샤스란의 생각일 뿐이었다.
물론, 무기에 대한 샤스란의 생각은 맞았지만 태운은 이 검으로 단검을 만들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나는 무기를 만들기는커녕 검도 제대로 못 가는 똥손인데 무슨 무기를 만들어.’아카데미 최악의 열등생 시절 마법 못 쓰는 것만 빼면 모든 걸 다 잘한다고 평가받던 태운도 단 한 가지만큼은 아주 못했는데, 그건 바로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었다.
아주 깔끔하게 완성된 검도 태운의 손만 거쳐 숫돌을 지나면 완전히 날이 무뎌져 버렸다.
머리로 설계하는 것까지는 아주 쉽게 해내던 태운이었지만 그것을 직접 손으로 만드는 단계가 오면 완전히 폐급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과거에 마나 골렘을 만들 때도 혼자 만들지 않고 신서우를 고용해서 만드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태운은 어떤 방법으로 샤스란을 만족시킬 생각인 것일까.
‘무기를 강화하는 방법에는 대장질만 있는 건 아니니까.’태운은 부러진 검날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그 검에 마나를 불어넣고 마법을 사용했다.
‘인챈트, 샤프니스, 강도 강화, 경도 강화.’태운은 무기 자체의 강도와 경도를 높이고 부러진 검날에 예기를 더했다.
아주 간단한 과정을 거치자 태운의 손에 들린 검은 부러졌지만 아주 날카로운 검날을 가진 검이 되었다.
“끝났습니다.”
“뭐?”
지금 태운이 한 거라고는 검날에 손바닥을 대고 있던 것 말고는 없다.
고작 그걸로 끝났다니.
눈앞의 꼬마가 자신을 놀렸다고 생각한 샤스란은 태운을 내쫓으려 했다.
그때, 샤스란의 눈에 태운이 들고 있는 검이 보였다.
“아니, 잠깐….”
샤스란 정도 되는 장인이라면 마나가 없어도 지금 태운이 들고 있는 검이 어떻게 변한 건지 알 수 있다.
‘금속의 빛깔 자체가 변했다. 게다가 이 느낌은… 나도 한 달에 한두 번 빚어낼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의 예기….’샤스란은 태운이 들고 있는 검을 건네받고는 바로 시험에 들어갔다.
그는 종이도 베어 보고 나무도 베어 보고는 태운에게 말했다.
“너… 도대체 검에 무슨 짓을 한 거냐.”
샤스란은 그날, 인생 최대의 미스터리를 마주했다.
* * *
태운이 수도에 도착하고 한 달이 지났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나?”
“그동안 돈 잘 벌고 갑니다.”
태운은 샤스란의 대장간에서 인챈트를 해주며 거금을 벌어들였다.
처음에는 용병들의 무기를 수리해줄 때 수준 낮은 인챈트를 걸어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 이후, 천천히 인챈트의 수준을 높이고 입소문을 탈 때쯤 태운은 인챈트 서비스 자체를 유료로 전환했다.
그래도 수요가 줄지는 않았다.
용병들에게 더 좋은 무기는 자신의 목숨과도 직결되었으니까.
그렇게 점점 입소문을 타고 용병뿐만 아니라 왕실 기사와 심지어는 후작 가문의 가주가 와서 일가의 보검들에 인챈트를 해달라는 제안까지 했다.
덕분에 순식간에 작은 농장을 살 수 있을 만한 금액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허…. 한 달 동안 어린애 같은 모습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는구나.”
“어린애인 척하는 건 질색이라서요.”
어린아이인 척은 3년 동안 질리게 해왔다.
이젠 더 이상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래, 다시 수도에 올 일이 있으면 들르도록 해라.”한 달 동안 정이 들었는지 처음에는 태운을 잡아먹으려 했던 샤스란도 이제는 태운의 길을 응원해주었다.
물론, 그 친절에 목적이 없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다음에 오면 꼭 그 인챈튼가 뭐시긴가 알려줘야 한다!”“알려주고 싶어도 못 알려준다고요! 재능이 없어서!”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급하게 대장간에서 멀어졌다.
샤스란의 성격상 급하게 따라 나와 태운에게 달려올 테니까.
태운은 샤스란의 공방에서 멀어져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갔다.
15살의 아이가 골목길에 들어간다고 하면 말리는 사람이 많을 텐데 지금은 태운을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 검 좀 쓴다는 사람들은 이미 태운의 솜씨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었으니까.
태운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암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는 물건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태운이 구할 물건은 현실 세계에서는 아주 흔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주 비싼 물건이었다.
“영석 있습니까.”
영석.
그 주변에 있으면 신기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하여 영석이라 불리는 이 돌은 보랏빛의 약간 반투명한 보석이다.
가끔 손가락 한 마디보다 작은 물건도 있고 주먹보다 큰 물건도 있다.
그리고 칠죄종 소환 의식을 할 때 꼭 필요한 것.
맞다.
그건 바로 마정석이다.
이곳에는 마정석을 지속적으로 구할 수 있는 던전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마정석의 값이 너무나도 높았다.
“그건 왜 찾지?”
“암시장에서 사는 물건의 이유까지 말해야 하나. 여긴 참 개판이군.”태운은 금화 주머니를 올려두었다.
“20% 더 쳐줄 테니 이 보따리에 가지고 있는 영석 다 털어 넣어.”태운은 이렇게 칠죄종 소환의 의식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