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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68화 (368/379)
  • 368화

    “저도 악마 숭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뭐라…?”

    고작 15살 아이의 입에서 나올 법한 말이 아니었다.

    악마 숭배는 국가 전복죄와 같은 수준의 중죄였다.

    게다가 어릴 적 들은 악마와 싸우는 용사의 이야기에 나름의 정의감도 남아 있을 나이가 바로 15살이다.

    애초에 15살이 악마 숭배를 할 깡이 있을 리도 없고 말이다.

    “흐음….”

    태운에게 경고한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잡고 있던 노파는 태운의 말에 조금 의심을 품었다.

    ‘녀석…. 혹시 왕성에서 보낸 스파이 같은 건가…?’최근 왕성에서 고아인 아이들을 거둬들여 이런 위험한 일에 내보낸다는 것을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다.

    만약 그런 거라면 이 주변에 왕실 기사들이 기다리고 있을 터.

    악마 숭배를 인정한다면 오히려 위험해질 수 있다.

    “아이야, 그게 무슨 큰일 날 소리냐. 악마 숭배라니….”“알고 있어서 온 거니 거짓말은 하지 마시죠.”태운은 노파의 손에 붙잡혀 있는 여자의 왼쪽 소매를 확 찢어 버렸다.

    “이 문신, 악마 숭배자의 노예라는 증표잖습니까.”

    “…….”

    악마 숭배자의 노예.

    칠죄신교의 전사나 원로와 달리 강제로 칠죄종의 노예가 된 사람의 표식이다.

    ‘왼팔에서 옅은 마기가 느껴졌어.’

    그렇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자의 소매를 뜯어 버리는 과감한 행동을 보인 것이다.

    평범한 15살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어필할 겸 나름 괜찮은 행동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네 녀석…. 뭐냐.”

    평범한 15살짜리 아이처럼 보이지 않는 통찰력과 행동력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주눅 들지 않는 깡도 놀라웠다.

    하지만 수십 년을 악마 숭배자로 살아온 노파의 눈에 태운은 패기만 넘치는 써먹기 좋은 패였다.

    ‘저런 패기 넘치는 아이라면… 제물로서의 가치도 높겠어.’노파는 괜히 태운을 보며 군침을 삼켰다.

    “그래, 너 같은 아이라면… 악마 숭배자로 받아도 나쁘지 않겠구나.”노파는 그때까지만 해도 태운을 제물로 써먹고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다.

    ‘검을 차고 있지만 검을 든 꼬마 정도는… 나로도 충분하지.’노파는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놓고 태운에게 말했다.

    “따라오거라.”

    노파는 태운을 데리고 어두침침한 기운이 흘러나오는 집으로 갔다.

    그리고 집 외벽에 손을 대고 마기를 흘려보냈다.

    쿠구구구….

    그러자 집 마당에 있던 우물의 입구가 열렸다.

    “뭡니까?”

    “이건 마기로 만든 잠금장치다. 우물의 입구는 마기가 아니면 웬만한 충격에도 부서지지 않지.”

    “호오….”

    강태운은 고개를 끄덕이며 노파를 따라갔다.

    “높아 보이지만 한 번에 뛰어내리거라 그래도 천천히 떨어질 테니.”태운은 노파의 말대로 한 번에 뛰어내렸다.

    그러자 빠른 속도로 낙하하다가 어느 순간 몸이 붕 뜨는 감각이 느껴지더니 천천히 낙하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안전하게 착지한 태운과 노파는 안에 나 있는 긴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이름은 무엇이냐.”

    “카벤입니다.”

    “카벤이라…. 괜찮은 이름이로구나.”

    노파는 태운의 경계심을 풀기 위해 계속해서 말을 걸고 태운을 칭찬했다.

    “하여간… 그때 그 녀석은 말이다….”

    “그렇군요.”

    하지만 태운은 노파의 말에 조금의 반응도 하지 않았다.

    만만해 보이면 잡아먹히는 건 순식간일 테니까.

    조금도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 된다.

    ‘이 녀석 봐라….’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강태운의 모습을 본 노파는 조금 당황했다.

    지금껏 힘든 인생을 살아온 이들을 많이 보았지만 그중에서도 이렇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녀석은 처음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걷던 둘은 막다른 벽에 다다랐다.

    “막다른 길인데요?”

    “일단 보거라.”

    노파는 다시 벽에 손을 대고 마기를 흘려보냈다.

    태운은 그것을 보고 확신을 가졌다.

    자신을 데리고 온 이 노파는 마기의 수준이 한참이나 떨어진다는 확신을.

    ‘실제로 칠죄신교의 전사 중 최하급 전사보다도 수준이 떨어져.’즉, 이 노파는 마을에 있는 칠죄종의 노예를 관리하는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것이다.

    역할이 하나 더 있다면 노예들을 이곳으로 출입시킬 때 사용하는 열쇠 역할 정도일 것이다.

    쿠구구구….

    노파가 마기를 흘리자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처참할 정도로 낮은 보안 수준이네.’

    마기, 아니, 마나만 흘려 넣어 내부에 있는 장치만 자극한다면 그 누구라도 문을 열 수 있다.

    즉, 태운도 언제든 이 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이다.

    ‘하긴… 이 세상에는 마법은커녕 마나도 확실히 발견되지 않았으니 이 정도 보안 수준으로도 충분하겠지.’자신도 모르게 마나를 사용하는 천재가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사람도 마나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 많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

    태운은 열린 문 안의 광경을 보고 경악했다.

    “끄아아악!!!”

    “꺄아아악!!!”

    그 안은 마치 지옥과 같았다.

    “제발…! 제발 그만해!!!”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그 안에서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람들이 수십 명의 사람들을 묶어놓고 고문하며 혼돈 에너지를 끌어내고 있었다.

    “어떠냐? 굉장하지 않느냐?”

    노파는 ‘이번에는 놀라겠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태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노파가 본 태운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고문당하는 사람들을 유심히 바라보기까지 했다.

    ‘뭐야, 이 녀석….’

    악마 숭배자가 되기 위해 선별까지 받은 성인들도 절반은 이 모습을 보고 토를 하거나 경악한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잔인한 광경이었으니까.

    육제적으로 잔인한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내릴 것 같은 고문도 포함되어 있는 이 고문들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게 만드니까.

    ‘이 녀석은 대체….’

    태운은 속으로는 크게 동요했지만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다.

    그 정도 표정 관리 능력은 있었다.

    “저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잠시 기다리거라.”

    노파는 잠시 태운을 두고 앞으로 가서 누군가에게 말을 걸었다.

    “주교님, 제가 괜찮은 인재를 데리고 왔습니다.”

    “인재?”

    주교라 불린 사내는 입구 쪽에 서 있는 태운을 바라보았다.

    “저 코흘리개를 인재라 말하는 건 아니겠지?”“겉모습은 그렇지만 녀석은 평범하지….”

    “멍청한 것!”

    쩌억!

    사내는 노파의 뺨을 올려붙이고는 걷어찼다.

    “검증되지 않은 자를 여기로 데리고 온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가!”“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저 녀석을 제물로 사용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어리고 강한 의지를 가진 인간일수록 얻을 수 있는 혼돈 에너지의 양이 많으니까.

    하지만 주교는 노파의 월권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일은 나에게 허락을 받고 진행했어야지 않나!”주교는 이미 노파의 처분을 결정했다.

    “네 녀석에게서 마기 소유 권한을 박탈한다.”

    “아… 안 됩니다…. 그것만큼은!!!”

    “닥쳐라!”

    주교가 손짓하자 노파의 몸을 채우고 있던 아주 옅은 농도의 마기가 걷혔다.

    “안… 돼….”

    마기가 걷히자 노파는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 죽어 갔다.

    “쯧…. 귀찮게 일을 벌이다니….”

    주교는 손짓으로 거대한 문을 순식간에 닫아 버렸다.

    노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준의 마기였다.

    “마젤란, 저기 가서 저 꼬맹이를 잡아 와라. 제물로 써먹기 좋은 녀석일 테니.”

    “네, 알겠습니다.”

    마젤란이라 불린 거구의 남자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주교의 명령에 복종했다.

    “아, 검을 차고 있었으니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쥐가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도 무는 법이니.”마젤란은 태운에게 다가갔다.

    15살의 카벤과 마젤란의 덩치 차이는 거의 두 배가 났다.

    마젤란의 손은 태운의 머리통을 움켜쥐는 것만으로 터뜨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하지만 태운이 여기서 질 리가 없었다.

    서걱!

    마젤란은 태운이 검을 뽑았다는 것을 인지하기도 전에 목이 땅에 떨어졌고 태운은 한숨을 쉬었다.

    “일이 조금 귀찮게 됐네.”

    “저 녀석….”

    주교는 마젤란의 죽음에 상당히 당황했다.

    마젤란은 타고난 근골의 소유자로 마기까지 가지고 있어 왕실 기사가 와도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진 남자다.

    그런데 고작 저런 꼬마에게 죽었다는 건 방금 자신이 죽인 노파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참…. 기분이 더럽군.”

    주교는 이를 갈고는 소리쳤다.

    “모든 사제들은 고문을 멈추고 녀석을 죽여라!”주교의 명령에 모든 사제들은 기계처럼 고문을 멈추고 태운을 바라보며 다가왔다.

    ‘거의 세뇌로군.’

    사제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들도 자신의 의지를 잃고 주교의 말대로 움직이는 노예와 다르지 않았다.

    “그래…. 너희는 쓰레기지만 마기에 침식되어 나쁜 짓을 했으니….”태운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냈다.

    “편하게 단숨에 죽여주마.”

    태운은 검을 들고 마나를 흘려 넣었다.

    ‘카벤의 몸은 칠죄종과 싸울 몸이야.’

    고작 15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칠죄종과 싸울 준비를 마친 몸이다.

    최하급 사제들이 아무리 많다 해도 태운의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16연격, 질풍검.”

    촤자자자작!

    태운은 검을 빠른 속도로 휘두르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러자 태운이 지나간 곳에 있던 사제들이 순식간에 베여 쓰러졌다.

    “무슨….”

    주교는 태운의 강함에 당황했다.

    “이 정도면 마제 님과 비슷한 수준…. 설마….”마제는 현재 악마 숭배자들의 우두머리 격인 인간이다.

    태운의 세상에 있던 사람 중 대원로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교는 살아남기 위해 마기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간 뒤 문을 닫았다.

    “어딜…!”

    태운은 그것을 보고 사제들을 두고 주교를 따라갔다.

    쿠웅!

    하지만 태운이 주교의 목을 날려 버리기 전에 문은 닫혀 버렸고 주교는 타이밍 좋게 닫힌 문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 빨리 도망쳐서 마제 님에게 가야 한다….”녀석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수 미터의 돌벽을 부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하지만 그건 주교의 생각일 뿐이었다.

    쾅!

    태운의 주먹질 한 번에 부서진 돌벽은 더 이상 주교를 안전하게 지켜주지 못했고.

    푸욱!

    태운의 검이 주교의 허벅지와 땅을 동시에 관통했다.

    “끄아아악!!!”

    허벅지와 땅을 동시에 관통한 검은 주교를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끄으윽….”

    주교는 눈물을 흘리며 검을 뽑아내려 했지만 땅에 깊숙이 박힌 검은 쉽게 빠지지 않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주교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유일하게 제정신으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녀석이다.

    “넌 쉽게 못 죽어.”

    태운은 그렇게 경고하고는 다시 부서진 돌벽 너머로 들어가 사제들을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하… 하하….”

    이런 꼴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간 위에 서 있는 존재가 된 줄 알았다.

    살기 위해 무릎을 꿇고 비는 사람들을 보고 뭐라도 된 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진짜 인간 위에 있는 사람을 보니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게 느껴졌다.

    태운은 순식간에 모든 사제들을 처리했고 다시 주교에게 돌아왔다.

    그러고는 주교에게 무심한 듯 말했다.

    “죽고 싶으면 너희 본거지가 어디 있는지 말해.”다시 말하지만 ‘죽고 싶으면’ 말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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