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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67화 (367/379)
  • 367화

    치익….

    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하고 캡슐 안에서 나왔다.

    “방금 그게 마지막이었나?”

    “네, 방금 이게 마지막이었습니다.”

    태운은 좁은 캡슐에서 마정석을 흡수하느라 굳은 몸을 풀었다.

    “이제 남은 건….”

    태운은 카벤의 기억이 담긴 중상급 마정석을 손에 쥐었다.

    “감을 잃지는 않았을지 걱정되는구나.”

    “고작 3일이에요. 감을 잃었을 리가 있습니까.”최종 결전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3일이다.

    태운은 그동안 카벤의 마정석 안에서 3년간 훈련을 거듭해 힘을 기를 수 있는 만큼 길렀다.

    그 후, 루시퍼와 최대한 많이 싸워보기 위해 카벤의 마정석을 제외한 모든 마정석을 미리 흡수했다.

    ‘그리고 이제 수없이 반복하면서 경험만 쌓으면 돼.’최대한 빨리 마정석을 흡수하고 새로 얻은 힘을 사용해보며 익숙해지겠다는 태운의 계획과는 조금 달랐지만, 칠죄종의 마지막 상대가 될 루시퍼와 미리 싸워볼 수 있는 기회가 왔는데 놓칠 수는 없지 않은가.

    할 수 있다면 뭐든 미리 준비하는 게 태운의 성격이었으니까.

    “그럼 다시 그 마정석을 흡수하는 건가?”

    “아뇨. 아직 준비가 안 됐습니다.”

    “준비? 무슨 준비 말인가. 남은 마정석도 모두 흡수하지 않았나.”

    “그거 말고 준비할 게 하나 더 있어요.”

    태운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연구소의 밖에서 누군가가 벨을 눌렀다.

    “왔나 보네요.”

    태운은 연구소 입구로 나가서 문을 열어주었다.

    “왔어?”

    “안녕. 준비는 잘되어 가고 있어?”

    태운이 기다리던 사람은 연정아였다.

    “일단 들어와. 바쁘거든.”

    태운은 연정아를 안으로 들인 뒤 책상 앞에 앉혔다.

    그리고 공책과 필기구들을 챙겨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오라고 해서 오긴 했는데… 뭘 하면 되는 거야?”그 모습을 본 연정아는 의아해하며 태운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나에게 칠죄종을 소환하는 의식에 대해 알려줘.”

    “뭐라고…?”

    연정아는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칠죄종 소환 의식을 알려달라고…? 잘못 들은 거 아니지?”

    “응, 잘못 들은 거 아니야.”

    칠죄종을 소환하는 의식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마계와의 경계가 약한 곳에서 약 서너 시간의 의식을 하면 칠죄종을 소환할 수 있다.

    물론, 혼돈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설마 힘 기르겠다고 돌려보낸 칠죄종 소환해서 쥐어패려는 건 아니지? 칠죄종은 소환되는 것만으로도 큰 피해가 생긴다는 걸 까먹은 건 아니지?”“내가 미쳤냐? 어떻게 돌려보냈는데 그놈들을 다시 불러와?”

    “그럼 왜 알려달라는 건데?”

    태운의 당황스러운 제안에 놀란 연정아는 따지듯 물어보았다.

    태운은 그런 연정아를 납득시키기 위해 지금 흡수하고 있는 마정석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럼… 그 세계 안에서 칠죄종을 소환해서 계속 싸워 보겠다는 거야?”

    “그런 거지.”

    “확실히 그런 거라면… 딱히 피해는 안 주고 경험을 쌓아볼 수 있겠네.”연정아는 태운의 설명에 쉽게 납득했다.

    “그런데 알려주기 전에 우리 둘만 있는 공간으로 가야 해. 여기 있는 사람들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칠죄종 소환 의식 자체는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다.

    게다가 지금은 혼돈 에너지가 세상에 가득 찬 상태니 조금만 똑똑한 사람이 소환 의식에 대해 알게 되면 칠죄종이 다시 이 세계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러니 CCTV는 물론, 녹음도 할 수 없는 공간이 필요해.”

    “오케이. 알았어.”

    “공책이랑 필기구도 치워. 어딘가에 기록되어서는 안 되는 내용이니까.”연정아는 공책을 책상 한가운데로 밀어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방 하나 부탁드릴게요.”

    “그, 그래 알겠다.”

    자하르는 어느새 익숙해진 한국말로 연정아를 아무도 쓰지 않는 방으로 안내했다.

    “일단 앉아.”

    “그래.”

    연정아는 천천히 칠죄종 소환 의식에 대해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기록을 하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기억하기 쉽게 설명해주었고, 약 30분 만에 태운은 칠죄종 소환 의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완벽하게 알게 된 것은 아니지만 혼돈 에너지가 충분한 상태에서 칠죄종 하나를 소환하는 건 가능해졌다.

    “알겠지?”

    “응, 고마워.”

    “아, 그리고 이거 영상 저장해서 같이 가는 사람들한테 전달하자. 싸우는 데 좋은 정보가 되어줄 거야.”

    “그럴 생각이었어.”

    태운과 연정아는 빈방 밖으로 나와 자하르에게 향했다.

    “다 했습니다.”

    “그래, 이제 남은 건 반복밖에 없구나.”

    “네. 마지막까지 잘 부탁드립니다.”

    태운은 마지막으로 마정석을 쥐고 다시 캡슐 안으로 들어갔다.

    * * *

    “일어났니?”

    “아, 네. 안녕히 주무셨어요?”

    태운이 마정석을 흡수해 카벤의 몸으로 돌아온 뒤 방 밖으로 나서자 카벤의 어머니가 카벤을 맞이해주었다.

    “일단 앉거라. 아침은 곧 준비가 될 테니.”

    근 3년간 태운은 매일을 카벤의 어머니와 함께 지내며 정도 많이 들고 카벤과의 동기화율도 상당히 올랐다.

    그 탓에 지금 그녀를 두고 혼자 떠나야 한다는 게 조금 마음에 걸리긴 했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는 거지.’

    카벤의 의지도 그러길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집어놓은 게 고블린 따위가 아니라 칠죄종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실제로 칠죄종을 막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해도 좋다고 허락해주었다.

    “어머니.”

    “응? 왜 그러니?”

    카벤의 어머니는 최근에 얼굴이 확 좋아지셨다.

    카벤의 실력이 폭발적으로 늘고 자경단 내에서도 입지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이 잘되는 것만 봐도 행복해지는 게 부모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저, 오늘 마을을 떠나려 합니다.”

    “어…? 갑자기 무슨….”

    카벤의 말에 그녀는 당황한 것 같았다.

    “갑자기 무슨 말이니?”

    “이런 작은 마을의 자경단은 제 재능을 담기에는 너무나도 작은 그릇입니다.”태운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이것 또한 사실이다.

    카벤의 재능은 웬만한 국가의 정식 기관에서도 담기 힘든 수준이니까.

    “그래서 저는 수도로 가려 합니다.”

    “하지만… 평민의 신분으로는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없을 텐데…. 돈도 없고….”“용병으로 시작하든, 뭘 하든 저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가고 싶습니다.”태운은 나름대로 거짓말을 지어내 말했다.

    자식이 ‘악마 중의 악마인 칠죄종과 싸워보기 위해 수도로 갑니다.’라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어느 부모가 허락하겠는가.

    “하지만 너는 15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애 아니니….”“그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경단장님께서 최근에 은퇴하셨잖아요. 같이 가기로 했습니다.”“그런 거라면 안심이지만… 혹시 마음을 바꿀 생각은 없는 거니?”태운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럴 때 망설임을 보이면 보는 사람도 결심이 서기 힘드니까.

    그리고 카벤의 어머니는 지금까지 착하고 힘들게 살아온 카벤이 원하는 거라면 뭐든 들어주려 했다.

    그런 점을 이용하는 게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었다.

    카벤의 어머니는 고개를 숙이고 천천히 고민을 하다가 결심이 선 듯 카벤에게 말했다.

    “그래, 그동안 고생했단다. 집 밖으로 나가면 더 고생이겠지만, 네 꿈을 펼치려면 어쩔 수 없겠지.”

    “감사합니다.”

    “그래도 힘들면 언제든지 돌아와도 좋으니 얼굴은 가끔 볼 수 있으면 좋겠구나.”그녀는 조금이지만 떨리는 손으로 마저 식사 준비를 마쳤다.

    “이게 너와 하는 마지막 식사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태운은 그 말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칠죄종과 수없이 싸우며 수많은 기억 속의 카벤은 죽을 것이고 그녀는 앞으로 쓸쓸하게 카벤의 흔적만 안고 살아갈 테니까.

    태운은 천천히 식사를 마치고 준비를 한 뒤 마을 밖으로 나갔다.

    그의 옆에는 최근에 은퇴한 자경단장 펠릭스가 같이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정말 그래도 되겠나?”

    “네, 부탁드릴게요.”

    “하… 나도 마음이 불편한데 말이지.”

    태운은 전날 밤에 펠릭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해놓았다.

    그 부탁은 마을이 멀어질 때까지만 동행을 하고 갈라지자는 것이었다.

    펠릭스는 자경단장을 은퇴하고 세상을 유랑하며 살고 싶어 했다.

    그런 사람을 악마와 싸우는 곳에 데려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수도까지는 데려가주고 싶은데 말이지….”

    “괜찮습니다. 저 아시잖아요.”

    태운은 허리춤에 찬 검을 흔들며 말했다.

    “그래….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펠릭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말했다.

    현재 카벤 아니, 태운은 펠릭스보다 훨씬 강하다.

    애초에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다.

    펠릭스가 10명이 와도 태운의 몸에는 생채기조차 내지 못할 테니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구나.”

    태운이 얼마나 강하든 펠릭스의 눈에는 15살의 아이일 뿐이었다.

    “처음 만난 그 누구도 믿지 말거라. 어린 너를 이용해 나쁜 짓을 할 수도 있으니.”태운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길을 걷다 보니 갈림길 하나가 나타났다.

    “이제 슬슬 마을에서 멀어졌구나. 난 이 길로 가겠다.”

    “저는 이 길로 가겠습니다.”

    펠릭스는 끝까지 태운을 보았고 태운은 그런 펠릭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저 사람도 참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태운의 강함에 순수하게 감탄해주고 나름 부러워하면서도 태운을 항상 응원해주었던 사람이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이 재능으로 빠르게 강해지는 것을 보면 질투할 만도 한데 그런 모습을 보인 적도 없었다.

    ‘카벤…. 그 일만 아니었다면 좋은 인연이 많았을 텐데.’태운은 아쉬워하며 걸음을 옮겼다.

    태운이 수도에 도착하기 전에 펠릭스와 헤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태운이 조사한 결과, 수도와 마을 사이에 태운의 계획에 있어 꼭 필요한 ‘단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태운은 야영을 하며 꾸준히 걸어 한 음산한 기운을 풍기는 마을에 도착했다.

    “여긴가?”

    태운은 천천히 마을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전부 태운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때, 마을의 한 여자가 태운에게 다가와 말했다.

    “아이야…. 이곳에는 오면 안 된다…. 빨리 나가….”

    “이 년이!”

    덥석!

    그때, 등이 굽은 노파가 나타나 그녀의 머리칼을 붙잡고 태운에게서 떼어 냈다.

    그 노파는 웃으며 태운에게 말했다.

    “미안합니다. 이 년이 미쳐서….”

    방금과 다른 사람 좋은 미소에 다른 사람들이었다면 속아 넘어갔겠지만 태운은 아니었다.

    “미친 거 아니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노파를 비롯한 혈색이 비교적 좋은 사람들이 태운을 일제히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마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도 알고 있죠.”태운의 말에 그들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각자 옆에 있는 손도끼, 낫, 괭이 등 무기가 될 법한 것들을 챙겼다.

    그렇게 당장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그때, 태운이 입을 열었다.

    “저도 악마 숭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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