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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63화 (363/379)
  • 363화

    전투가 끝나고 긴급 회의에서 대표들을 정한 뒤 태운은 즉시 집에 돌아왔다.

    삑삑삑.

    아직 윤아는 태운이 일어났다는 소식도 듣지 못한 상태였기에 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온 태운을 당황한 표정으로 맞이했다.

    “오빠…?”

    두 달 동안 태운이 일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윤아는 매일을 태운의 병실에서 살았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윤아는 마음고생을 너무해 살도 빠지고 몸도 안 좋아져 전대섭의 제안으로 병실에 오지 않게 되었다.

    대신 공부와 건강 관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큰 전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윤아는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다가 전투에서 헌터들이 승리했다는 소식을 듣고 짐을 풀고 있었다.

    “오랜만이지?”

    “뭐야…. 언제 일어났어…?”

    윤아와 태운은 언제나 티격태격 충돌하지만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한 혈육이다.

    다른 남매와 달리 더 각별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랜만에 같이 밥이나 먹을까? 뭐 먹고 싶은 거 있어?”태운은 자신의 장비를 방에 내려놓고 윤아에게 말했다.

    “계란말이랑 김치찌개, 생선구이 먹고 싶어.”윤아가 말한 메뉴들은 아주 평범했지만 그 메뉴들이 말하는 의미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 메뉴들은 태운이 가장 많이 해주었던, 그리고 처음으로 윤아에게 알려주었던 요리들이다.

    태운은 간만에 앞치마를 메고 주방에 섰다.

    휙휙휙.

    태운은 계란를 까서 그릇에 담아 계란 물을 만들었다.

    계란말이에 채소가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윤아를 위해 생크림만 살짝 넣고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기름지고 고소한 김치찌개를 좋아하는 윤아를 위해 삼겹살과 앞다리살을 반반 섞어 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끓였다.

    마지막으로는 냉동실에 들어가 있던 고등어를 꺼내 녹인 뒤 팬에 평범하게 구워주었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나물과 김치를 꺼내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와, 진짜 오랜만에 받아보는 식탁이다.”

    윤아는 식탁 앞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거의 1년은 된 거 같네.”

    태운은 바쁘다는 핑계로 윤아와 함께 밥을 먹은 적이 많지 않았다.

    최근에는 얼굴도 많이 보지 못했으니까.

    “8개월 정도 됐어”

    윤아는 숟가락을 집어 김치찌개의 국물을 떠먹으며 말했다.

    태운은 그런 윤아를 보고 미안함을 느꼈다.

    윤아는 이제 고등학생인 아이다.

    윤아에게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언제나 똑같이 맞이해줄 가족이 필요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한 번 더 미안할 일을 해야 할 것 같아.

    그 말을 하려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하나 남았지?”

    “어…? 어… 응….”

    “잡고 와. 기다릴게.”

    윤아는 태운이 할 말을 대신해주었다.

    윤아는 태운이 자신에게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윤아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운이 자신에게 미안할 이유는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태운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을 키워주고 일이 잘되어 바쁜 와중에도 연정아에게 부탁해 외롭지 않게 신경도 써주었다.

    ‘그리고 악마들 잡으려고 목숨 걸고 싸우는데 신경 쓰이게 하면 안 되지.’물론, 서운하지 않은 건 아니다.

    그래도 티는 내지 않으려 했다.

    그게 싸울 힘이 없는 사람을 대신해 싸워주는 사람을 향한 최소한의 예우였으니까.

    윤아와 태운은 밥을 먹으며 그동안 하지 못했던 대화를 했다.

    둘 모두에게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때, 윤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빠, 밥 먹고 엄마 아빠 산소에 좀 다녀올까?”

    * * *

    윤아와 태운은 오랜만에 부모님의 산소에 왔다.

    가끔 태운이 산소 주변을 정리하기 위해 온 적은 있었지만 윤아와 함께 온 것은 오랜만이었다.

    태운은 지소연과 강철운의 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드디어 해냈어.”

    “맞아. 수고했어.”

    태운이 레비아탄을 죽이자 이 세상 사람들에게 걸려 있던 사실 왜곡 저주가 해제되고 강철운과 지소연이 진짜 영웅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난 사실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

    윤아의 말이었다.

    “고작 아카데미 스타지에르 등급에서 2년이나 유급당한 사람이 무슨 세상을 바꾼다느니 부모님의 한을 풀어준다느니… 꿈만 크다고 생각했지.”또래보다 생각이 어른스러운 윤아에게도 사춘기는 존재했다.

    집안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게 밖으로 표현된 적은 없었지만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사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상이었다.

    단순히 헌터가 되는 길목일 뿐인 아카데미에서 출발선도 넘지 못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강태운이 아카데미 내에서 성과를 내기 시작하고 강해지자 윤아는 그렇게 생각했던 과거를 스스로 반성하고 태운을 응원했다.

    “이렇게 된 거 보니까 오빠는 내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인 거 같아.”최초의 S급 헌터니 인류의 희망이니 뭐니 기사에서 떠들고 있었지만 윤아에게는 단순히 든든한 오빠일 뿐이었다.

    이렇게 아무 말이나 하다 보니 윤아는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사실, 가는 거 말리고 싶은데, 그러면 안 되잖아. 그래서 별말 안 하고 있었어.”윤아도 알고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칠죄종은 전보다 더 강해진다는 사실을.

    1차 데블스 에이지 때에도 그랬고 그 사실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진 정보들이었으니 모르기가 더 어려웠다.

    그래서 더 말리고 싶었다.

    “다녀와. 대신 무조건 살아서 와야 해.”

    “당연하지.”

    태운은 나이도 어린 윤아를 가족도 없이 이 세상에 홀로 놔둘 생각은 없었다.

    태운은 윤아 덕분에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내가 루시퍼를 잡지 못하면 세상은 녀석에게 잡아먹힌다. 그렇게 되면 윤아는 물론이고 이 세상 사람들 모두가 위험해져.’태운은 무슨 일이 있어도 루시퍼를 죽이겠다고 다짐했다.

    “오, 태운이 아니냐.”

    그때, 산 아래에서 허덕륜이 올라왔다.

    “어, 안녕하세요.”

    “그래, 윤아도 왔구나.”

    “안녕하세요.”

    허덕륜과 윤아는 레비아탄의 습격 이후 많이 친해진 것 같았다.

    태운이 기절해 있는 동안 허덕륜이 윤아를 많이 챙겨주기도 했었다.

    “여긴 무슨 일로….”

    “과거에 같이 싸웠던 전우들의 묘를 한 번씩 돌아보고 있었다. 대장님과 부대장님도 내 전우니까.”

    “그렇군요.”

    허덕륜이 강철운과 지소연의 묘를 바라보는 눈빛이 참 아련했다.

    그도 그럴 게, 둘이 죽을 때 허덕륜은 부상에서 몸을 회복하고 있었고 세상에 돌아왔을 때 둘이 목숨을 잃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굉장히 밉고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강철운 대장님과 지소연 부대장님은 참 대단하신 분이었지.”강철운은 에테르를 사용해 칠죄종들을 무력화했고 지소연은 신성력을 사용해 다시 마계로 돌려보냈다.

    둘의 조합은 사실상 칠죄종의 우두머리라 불리는 루시퍼가 후일을 기약하게 만들어 마계로 돌려보냈다.

    “너희의 부모님은 그렇게 강했단다. 강했다 뿐이냐. 서로가 함께 있으면 인간적으로 완성에 가까운 분들이었지. 서로가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아주 이상적인 부부의 모습이기도 했어.”허덕륜은 강철운의 묘 앞에 서서 강태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너에게서 두 분의 모습 모두를 보고 있다.”

    “네?”

    “에테르와 신성력을 동시에 사용하며 정의롭고 자애로운 지소연 부대장님의 성격. 악인에게 무자비하고 강했던 강철운 대장님의 힘. 그 모습을 너에게서 보고 있단다.”허덕륜이 태운에게 처음 보았을 때부터 잘해주었던 이유가 이것 때문이다.

    강태운의 눈에는 지소연과 강철운의 눈빛이 모두 담겨 있었으니까.

    “나는 너라면 루시퍼를 몰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생각하지 마라. 권속들은 우리가 붙들어 놓을 테니 너는 루시퍼만 생각해.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대하기 어려운 상대일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허덕륜은 그렇게 말하고 한참이나 말없이 둘의 산소를 바라보다가 뒤를 돌았다.

    “태운아, 오늘은 몸 상태가 영 아니구나. 칠죄종을 쓰러뜨리고 난 뒤에 둘이 술이나 한잔하자꾸나.”허덕륜은 의식적으로 태운을 바라보지 않고 말했다.

    태운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허덕륜의 눈에는 지금 확신이 없었으니까.

    자신이 10일 뒤에 갈 전투에서 살아남을 거라는 확신이.

    허덕륜은 그걸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네, 꼭 그러죠.”

    강태운은 모른 척하면서 웃으며 대답했다.

    허덕륜도 뒤를 돌지 않고 산소를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럼 일주일 뒤에 보자꾸나.”

    허덕륜은 그 길로 산소를 내려가 어디론가 향했다.

    그의 어깨에서 느껴지는 각오를 보아하니 일주일간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힘을 더 기르려는 것 같았다.

    ‘나도 힘을 길러야겠어.’

    태운도 그 모습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윤아야. 미안해. 일주일만 집에 안 들어가도 될까?”태운은 자신을 강하게 만들어준 그 근본을 찾아가기로 했다.

    “급한 일 있으면 자하르 박사님 연구소에 연락해. 일주일 동안 그곳에 있을 거니까.”강태운은 윤아를 집에 데려다 준 뒤 자하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그래, 오랜만이구나. 무슨 일이냐.

    “특별한 마정석을 되는 대로 끌어모아 주세요. 종류, 등급 모두 상관없습니다.”태운은 일주일 동안 쉬지 않고 마정석을 흡수할 생각이었다.

    * * *

    철썩.

    부산의 해변가. 그곳은 가끔 몬스터가 출몰해 아무도 오지 않는 곳이다.

    그곳에 연정아가 홀로 서서 파도 소리를 듣고 있었다.

    “조용해서 오히려 좋네.”

    “역시 여기 있었구나.”

    “전대섭 선생님?”

    그때, 연정아의 뒤에서 전대섭이 걸어왔다.

    “여기가 너와 내가 처음으로 만났던 곳이었지. 맞나?”

    “네, 맞아요.”

    연정아는 어린 나이에 칠죄신교 전사들에게 추격당하다가 이곳에서 붙잡힐 뻔했다.

    그때, 전대섭은 부산 출장 중이었고 연정아를 구해주었다.

    그 후, 전대섭은 연정아의 사연을 듣고 연정아를 거두었고 지금까지 온 것이다.

    “너를 그때 구해주지 않았다면 아마 너를 적으로 마주했을지도 모르겠구나.”“그렇죠. 그랬을 거라는 것만 상상하면 지금도 아찔해요.”전대섭과 연정아 사이에서 침묵이 흘렀다.

    “전대섭 선생님. 재산 모두 기부하셨다는 이야기 들었어요.”“그래? 벌써 소식이 네 귀까지 들어갔구나.”“정말 한 푼도 안 남기고 기부하셨더라구요.”전대섭은 자신의 전재산을 모두 처분한 뒤 몬스터들의 습격으로 집을 잃고 길거리에 나앉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기부했다.

    “그래. 이런 세상에 돈이 무슨 상관이겠나. 내 재산으로 사람들이 조금 덜 죽는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일 아니겠나.”

    “그렇죠.”

    그때, 연정아는 뜬금없이 전대섭에게 물어보았다.

    “그때 저를 구하신 이유가 뭔가요.”

    “이유?”

    “네, 저는 그때 마기를 감출 줄도 몰라서 전대섭 선생님은 제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계셨을 것 같은데…. 절 구하신 이유가 뭔지….”

    “어린애였지 않나.”

    “네?”

    연정아가 되묻자 전대섭이 다시 말해주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자신의 주변만이 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어린애였기 때문에 너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에게 세상을 알려주고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도록 도와주기로 했지. 그게 어른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전대섭의 말이 끝났지만 연정아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렇게 둘은 조용히 파도 소리만 듣다가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남은 10일 중 첫날의 밤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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