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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47화 (347/379)
  • 347화

    태운이 벨페고르를 쓰러뜨린 지 벌써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벨페고르가 쓰러지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 방위군이 벨페고르를 무찔렀다는 사실은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다른 나라의 헌터들도 의욕을 불태웠다.

    강림했을 당시 칠죄종의 힘을 보고 싸우는 것을 포기하고 방황하던 헌터들도 대부분 정신을 차리고 전투에 참여했다고 한다.

    게다가 이 와중에도 이권을 두고 서로를 견제하던 집단들도 모두 하나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유럽의 근황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유명 헌터인 파스칼은 유럽 대륙의 헌터들 전부를 규합해 벨제부브를 노렸다.

    파스칼은 30대 중반의 하오나 허덕륜처럼 전 세대의 헌터는 아니었지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실력을 가진 노련한 헌터였다.

    특히 유럽은 A급 헌터들의 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대륙이다.

    거기에 벨제부브를 공격한다는 소식에 셀까지 합류해 대한민국 방위군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 공략대가 꾸려졌다.

    하지만 결과는 패배.

    벨제부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었지만 마계로 돌려보내는 것에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A급 헌터 23명, B급 헌터 93명, C~D급 헌터 300여 명이 죽는 큰 피해를 감수했음에도 벨제부브를 쓰러뜨리지 못한 유럽의 헌터들은 절망했다.

    벨제부브는 큰 부상을 입고 은신처로 돌아갔고, 그 길목을 권속들에게 지키게 했다.

    “어째 저번 데블스 에이지 때랑 전개 방식이 똑같은 것 같습니다.”“그러게 말이다…. 벨제부브의 능력이 뭐 아슬아슬하게 한 번 살아 나가기 그런 게 아닌 이상 두 번이나 똑같은 일이 벌어질 확률은 높지 않은데 말이지.”“뭐, 정말로 그런 능력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태운과 전대섭, 구찬영은 3명이 같이 탁자에 둘러앉아 유럽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확실히 벨페고르가 죽으니 살기 좋아지긴 했네요.”

    “그러게 말이다….”

    벨페고르가 사라진 뒤 대한민국 방위군은 더 이상 방위군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

    지키기만 했던 여태까지와는 달리 잃어버렸던 땅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영토를 회복함과 동시에 대한민국 헌터와 국민들의 생활 수준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대한민국은 칠죄종이 직접 강림한 땅이 아니었기에 몬스터들에 의한 파괴만 일어났고 그 정도는 충분히 회복할 수 있었다.

    특히 발전소는 굉장히 튼튼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에 몬스터들의 공격에도 멀쩡할 수 있었다.

    발전소의 설비는 권속 수준의 힘을 가진 자가 마음먹고 공격해야 파괴될 정도로 튼튼하게 지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확실히 마나로 전기를 대신할 수 있는 세상이 오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은 전기가 더 좋네요.”“마나로 전기를 완전히 대체해 전기가 세상에서 사라지는 건 아마 100년은 이른 이야기일 거다. 연구도 아직 완전하지 않고 사회 인프라는 아직 전부 전기로 되어 있으니까.”발전소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에게 다시 전기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사람들은 이 힘든 시기를 더 잘 버텨내고 있었다.

    “흐아…. 이제 충분히 쉬었으니 다시 움직여봐야겠네요.”

    “그래, 나도 이제 몸 좀 풀어야겠구나.”

    “나 데려가기로 정한 거 후회 안 하게 만들어줄게.”태운과 전대섭, 구찬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 밖으로 나왔다.

    지금은 대한민국 방위군의 건물로 사용되고 있지만, 전에는 협회 본부 건물로 사용하고 있던 건물이다.

    “그나저나 셀 헌터님은 괜찮으신 걸까요?”

    구찬영이 묻자 전대섭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 괜찮을 거다. 검도 쥐지 못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겠지. 그러니 우리에게 부탁을 한 거야. 셀은 보기보다 미련할 정도로 쓸데없는 자존심이 강해.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면 우릴 부르지 않고 직접 갔겠지.”현재 강태운, 전대섭, 구찬영은 셀 헌터에게 연락을 받고 유럽으로 가는 중이었다.

    셀 헌터는 이미 벨제부브와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이며, 이는 파스칼도 마찬가지였다.

    다치지 않은 다른 헌터들은 부상당한 벨제부브도 상대하지 못할 것이다.

    ‘어차피 칠죄종을 이 세상 밖으로 추방하려면 오러나 에테르, 신성력 중에 하나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하니… 셀 헌터 말고는 벨제부브를 마계로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그쪽에는 없겠지.’지금 생각해보면 벨제부브도 그것을 알고 있으니 자신이 격퇴당하기 전에 어떻게든 셀 헌터를 쓰러뜨리려고 할 것이다.

    “칠죄종과 인간 사이에 있는 격의 차이라는 게 참… 발목을 잡는군요.”“첫 번째 데블스 에이지 때도 그랬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지. 그때는 칠죄종을 죽일 수 있던 사람은 강철운 대장님과 지소연 부대장님, 지금보다 약했지만 셀 헌터, 그리고 두 명 정도밖에 없었으니까.”

    “두 명이나 더 있었습니까?”

    “그래, 모두 첫 번째 칠죄종과 싸우다가 동귀어진하셔서 돌아가셨지. 사실 그때는 나도 전투원 중에서도 말단이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본 적은 없어. 레비아탄 자식의 빌어먹을 기억 왜곡 때문에 기억도 나지 않아.”

    “아….”

    전대섭이 기억 왜곡에도 강철운과 지소연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그 둘과 그만큼 가까운 사이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가까이에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목숨을 잃은 사람까지 기억하는 것은 무리였다.

    “레비아탄 녀석은 정말… 생각할수록 마음에 안 드는 놈입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무슨 말을 하는…?”

    레비아탄이 사용한 기억 왜곡의 제약을 받고 있는 구찬영은 전대섭과 태운의 이야기를 이해할 수 없었다.

    “어디 가십니까.”

    셋이 함께 공항으로 접근하자 헌터 한 명이 앞을 막아섰다.

    “전대섭일세. 셀 헌터의 연락을 받고 유럽으로 지원을 가는 중이다.”“아, 연락 받았습니다. 전용기 대기 시켜두었습니다. 조심히 다녀오십시오.”

    “그래, 수고해주게.”

    “감사합니다!”

    전대섭은 공항 경비를 서던 헌터의 어깨를 툭툭 쳐서 격려한 뒤 안으로 들어갔다.

    태운과 구찬영도 전대섭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때, 헌터가 태운을 불러세웠다.

    “그… 강태운 헌터님 맞으시죠?”

    태운보다 10살은 많을 것 같은 헌터가 태운에게 얼굴을 붉히며 다가왔다.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한 우락부락한 남자 헌터가 그러니 참 모양새가 이상했다.

    “팬입니다. 혹시 마나 각인으로 사인해주실 수 있으신가요…?”그 헌터는 자신의 무기를 건네며 태운에게 사인을 부탁했다.

    태운은 이런 일이 벌어질 거란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치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당황스러워하는 기색을 눈치챈 헌터는 태운에게 손사래 쳤다.

    “힘드시다면 안 해주셔도 좋습니다.”

    “아, 아닙니다. 못 해 드릴 건 없죠. 검면에 마나로 새겨드리면 되는 건가요?”

    “네, 부탁드립니다.”

    태운은 그의 검을 뽑아 살펴보았다.

    엄청나게 좋은 검은 아니었지만 나름 명품으로 불리는 브랜드의 검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무기 손질이 참 잘되어 있어. 매일매일 검을 손질하는 게 아니면 나올 수 없는 수준이야.’태운은 이 정도 수준으로 검을 잘 손질해놓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역시 강렬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죠?”

    “조, 조일성입니다.”

    “조…일성….”

    태운은 마나로 검면에 사인을 새겨주었다,

    그리고 검을 조일성에게 들려주며 말했다.

    “검이 좋네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그리고 검에 파괴 불가 인챈트를 걸어두었습니다. 들고 있는 사람의 신체 능력을 소폭 상승시켜주는 인챈트도 걸어드렸습니다.”

    “네?”

    “일단 들어보세요.”

    태운은 조일성 헌터의 손에 검을 들려주었다.

    “아….”

    조일성 헌터는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태운이 검에 무슨 짓을 한 것인지.

    “무슨… 힘이 거의 1.3배는 늘어난 것 같습니다…. 이 정도라면… B급 헌터 상위권…. 정말 감사합니다!”조일성 헌터는 B급 하위권의 헌터다.

    게다가 헌터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재능 있는 인물이었다.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는데…. 어떻게 이런 걸…. 정말 감사합니다!”“살아남으세요. 이 사태가 끝나면 제 재량으로 당신을 명운 길드에 들이겠습니다.”

    “네…?”

    “계약을 하자는 말입니다. 제가 방금 드린 무기는 다른 길드에 눈 돌리지 말라고 드리는 일종의 뇌물이에요.”조일성 헌터는 태운의 말에 멍해져 태운을 그저 바라만 보았다.

    “당신에게서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무슨 가능성을….”

    “제가 본 가능성은 다음 세대를 지켜낼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입니다. 지금 칠죄종을 쓰러뜨려도 녀석들은 다시 이 세상으로 올 겁니다. 20년이 걸리든 30년이 걸리든 말이죠.”지금 아무리 칠죄종을 쓰러뜨려도 녀석들은 다시 마계로 돌아가 힘을 키운 뒤 돌아올 것이다.

    꼭 칠죄종이 아니어도 다른 악마가 이 세상을 침범할지 모르는 일이다.

    태운은 지금 눈앞에 닥친 위험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보고 있었다.

    ‘기껏 지켜낸 세상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으니까.’태운은 자신이 죽은 뒤, 100년 정도는 악마들이 넘보지 못할 정도로 강한 헌터들이 많은 세상을 만들어두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부터 초석을 깎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이만 가겠습니다.”

    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공항 안으로 들어갔다.

    * * *

    “정말 심하게 다쳤구나.”

    유럽 연합 본부 산하 병원의 병실에서 셀은 전대섭과 구찬영, 강태운을 맞았다.

    “벨제부브 그 녀석… 여전히 강하더군….”

    셀은 팔다리가 모조리 부러져 있었고, 갈비뼈도 부러졌는지 깁스를 하고 있었다.

    안면 일부는 무너져내려 이름표가 아니었다면 누군지 알아보지도 못할 것 같았다.

    복귀 당시에는 더 심했다고 하니 얼마나 다친 것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정말 살아 있어서 다행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다행인 건 내가 벨제부브의 날개를 모조리 찢어 버렸다는 거다.”벨제부브는 팔다리가 길고 비쩍 마른 외형을 하고 있다.

    거대한 입과 날카로운 이빨, 얼굴의 절반을 채우고 있는 거대한 눈과 퀭한 시선.

    그리고 파리의 것과 같은 날개가 그의 특징이다.

    “내가 날개를 모조리 찢어놨으니 너희들이 가도 도망치지는 못할 거다.”

    “큰일 했구나.”

    전대섭은 셀을 위로했고 셀은 전대섭을 노려보았다.

    “그런 말을 내가 싫어할 거라는 걸 알고 하는 것 같다만.”

    “어떻게 알았나.”

    “허허…. 내가 몸이 회복되면 기대해라.”

    “본인 힘으로 숟가락도 못 드는 놈이 무슨…. 다른 생각 말고 몸 건사할 생각이나 해라.”셀과 전대섭은 표면적으로 라이벌이었지만 실제로는 목숨을 건 전투에서 같이 싸워 살아남은 전우였고 친구였다.

    이 정도 장난은 둘 사이에서 사소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녀석이 숨어 있는 곳은 찾아냈나?”“아… 그 위치는 파스칼 녀석이 알고 있다. 녀석도 지금 영 상태가 아니라 이 병원에 입원해 있을 테니 이따가 찾아가 보게.”

    “알겠네.”

    전대섭과 강태운, 구찬영은 셀과 대화를 조금 더 하다가 파스칼의 병실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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