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41화 (341/379)
  • 341화

    퍼-억!

    “후우….”

    벌써 며칠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언월도의 날은 이미 뭉툭해져 더 이상 무언가를 벨 수가 없게 되었다.

    몬스터들의 살을 뜯어 먹으며 연명한 지도 한참이나 지났다.

    “쿨럭!”

    몬스터의 고기에 있는 독성을 버티는 것도 더 이상 무리다.

    입에서 피가 물 흐르듯 흐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하오의 눈앞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놀 4마리.

    평소였다면 단칼에 모두 베어 버렸겠지만 지금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퍼억!

    하오는 달려오는 놀 한 마리를 언월도로 공격했다.

    언월도의 날이 적중했지만 이미 날이 나가 둔기처럼 뭉툭해진 언월도로는 놀의 질긴 가죽을 베어낼 수 없었다.

    “이….”

    퍼억! 퍼억! 퍼억!

    하지만 언월도의 날이 나가고 몸 상태가 좋지 못하다고 해서 놀같이 약한 몬스터를 이기지 못할 하오가 아니었다.

    하오는 날이 나간 언월도로 놀을 가격해 두개골을 부숴 버렸고 그 기세를 이어 다음 놀의 머리도 부수었다.

    “크윽….”

    하오는 심장을 죄어오는 독성에 크나큰 고통을 느꼈다.

    지금 마나를 사용해 주요 장기에까지 독성이 뻗치는 것을 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럴 마나도 부족한 상황이다.

    ‘내가 고작 독 따위에….’

    놀을 모조리 쓰러뜨린 하오의 몸은 천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중국 헌터들만의 힘으로 중국을 되찾겠다는 것은 허황된 꿈이었던 건가….’전대섭은 잠시 참고 상황이 좋아질 때까지 버틴 후에 다 같이 힘을 합쳐 칠죄종을 상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하오는 의욕만 앞서 중국의 헌터들을 규합해 먼저 중국을 되찾기 위해 칠죄종과 전투를 벌였다.

    만용이었다.

    사실 첫 번째 데블스 에이지 당시보다 헌터들의 수준이 높아졌기에 충분히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벨페고르의 권속인 칼라보르에게 패배해 겨우 목숨만 부지했고, 패배한 뒤에 진격한 몬스터 떼에 의해 모두 뿔뿔이 흩어져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었다.

    ‘다들… 미안하다.’

    자신의 부족함 탓에 모두의 목숨을 위험하게 만들었다.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나라를 되찾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멍청한 짓을 하고 말았다.

    만약 그 화를 참고 중국의 전력을 규합해 주변 국가에 합류한 뒤 때를 봤다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지는 않았을 터.

    한심하고 멍청한 선택이었다.

    두두두두두!!!

    몬스터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후우….”

    아이러니하게도 하오를 죽이러 오는 몬스터들의 소리에 하오의 정신은 살아났다.

    ‘독으로 죽을지언정 싸우다 죽으리라.’

    정신줄이 끊어져 가던 하오가 의지를 다잡았다.

    눈앞의 몬스터만큼은 모조리 쓸어버리고 죽을 생각이었다.

    사실 이렇게 일어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죽어가던 하오를 살린 것은 몬스터들의 발소리였고 몬스터들에 대한 증오심이었다.

    “와라!”

    하오는 피를 토하며 소리쳤다.

    “흐아압!”

    퍼억!

    가장 앞에 있는 빅포의 머리를 가격했다.

    하지만 힘이 빠진 하오의 공격은 빅포에게 큰 타격을 주지 못했고 빅포의 손에 들려 있는 몽둥이는 하오의 머리를 향해 날아갔다.

    “…….”

    하오의 머리에 빅포의 몽둥이가 닿기 직전.

    “성벽 갑주.”

    터엉!

    “음…?”

    “소리쳐주셔서 빨리 찾았습니다.”

    하오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너는….”

    “쉬고 계세요.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하오는 평소에 위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야생과 같았던 세상을 살아온 하오에게 위로는 곧 무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위로를 하거나 배려해주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니, 강태운에게는 아니었다.

    무시당하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게 당연하다고 느껴졌다.

    강태운은 마땅히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딱 보기만 해도 느껴졌다.

    “나와라.”

    태운의 그림자에서 병사들이 튀어나왔다.

    “싹 다 쓸어버려.”

    하오는 그림자 병사들에게 명령을 내리는 태운의 등을 보며 정신을 잃었다.

    * * *

    “으윽….”

    하오는 대한민국 방위군 본부 의무실에서 정신을 차렸다.

    “여기가 어디….”

    “어, 일어나셨습니다!”

    하오가 일어나자 옆에서 수액을 교체하고 있던 간호사가 의사를 호출했다.

    “여기가 어딥니까…?”

    하오가 중국어로 말했지만 간호사는 중국어를 할 줄 모르는지 당황스러워했다.

    그런 그녀를 본 하오는 어설픈 한국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여, 여기가 어디죠?”

    “아, 여기는 대한민국 방위군 서울 본부에 있는 의무실입니다.”

    “어….”

    하오는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서울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서울….”

    하오는 기절하기 전 강태운을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강태운이 날 구해서 서울로 데려왔나 보군.’하오는 마계가 현현한 중국 한복판에 떨어져 어디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어 탈출하지 못했다.

    마계가 현현한 곳이었기에 검은 태양도 서너 개씩 하늘에 떠 있어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었다.

    “하오 헌터, 오랜만이군

    그때, 의사와 함께 중국인 헌터 한 명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쟝신! 자네 살아 있었군!”

    “살아 있어서 다행이야.”

    쟝신은 하오의 뜻에 가장 먼저 함께해 준 사람이었다.

    쟝신 역시 중국의 헌터로서 길드를 운영하며 명예와 부를 얻었던 사람이었으니까.

    중국이 없었다면 지금의 쟝신도 없었을 테니까.

    “일단 몸 상태를 확인하겠습니다. 2주 동안 누워 계실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으셨습니다.”

    “2주라…. 딱 못 잔 만큼 잤구만.”

    하오는 몬스터와 싸우면서 3주간 자지도 못하고 매일 싸웠다.

    정신력으로 버텼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오는 잠시 의사에게 몸을 맡기고 검사를 받았다.

    “몸 상태는 괜찮네요. 형식상 하는 말이지만… 몸조심하시고요.”

    “네, 감사합니다.”

    지금 세상에서 헌터에게 몸조심하라는 말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말인지 알고 있었기에 의사도 그 말을 조심히 꺼냈다.

    “강태운은 어디 있지?”

    “아, 그 친구는 나 대신 부산에 가서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있네.”

    “부산에 가서?”

    쟝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일본은 무너졌거든. 아스모데우스가 직접 강림한 땅이어서 그런지 잔류 마기가 많아 몬스터가 엄청나게 많이 나타났다고 하더군. 헌터들도 많이 약했는데 그렇게 되니 금방 망했지.”“그렇다는 건 일본을 점령한 몬스터들이 한국으로 오고 있다는 말이군.”

    “그거지.”

    “허….”

    하오는 한숨을 내쉬었다.

    “칠죄종을 잡기 전에 일본에 있는 몬스터들을 전부 토벌해야겠군.”“그렇지. 헌터들이 떠나 있는 동안 일본에 있는 몬스터들이 온다면 한국도 무방비하게 당할 테니까.”

    “반년은 잡아야 하지 않겠나?”

    “음? 아… 자네는 아직 강태운 헌터가 얼마나 강해졌는지 모르고 있었군.”

    “무슨 소리지?”

    하오는 강태운을 본 순간 그가 전보다 강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 있는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 한 사람의 전력이 강해 봐야 얼마나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는가.

    “강태운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알면 아주 기겁하겠네.”

    “흐음….”

    “일단 쉬고 있게나. 한 2~3일 정도 지나면 강태운이 돌아올 테니까.”

    “흐음….”

    강태운이 얼마나 강해졌길래 쟝신이 저렇게 말하는 건지 하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오는 쟝신에게 안내를 받아 하나의 방을 배정받았다.

    하오는 그 후에 강태운에 대한 소문을 찾아보았다.

    ‘강태운이 하루 만에 신의주에 있던 몬스터들을 싸그리 토벌했다고 했지….’하지만 그건 몬스터들이 한곳에 모여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몬스터들이 퍼져 있는 면적도 좁아 광역 마법 몇 번 사용하면 적들을 효과적으로 토벌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 전역에 퍼져 있는 몬스터들을 처리하는 데에는 광역 마법도 한계가 있을 텐데…. 됐다. 2~3일 뒤에 온다고 했으니 그때 물어보면 되겠지….”하오는 2주 동안 자고 있었기에 몸이 굉장히 뻐근했다.

    몸을 좀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한 하오는 숙소 구석에 놓인 망가진 언월도를 들고 연병장으로 나갔다.

    부웅! 붕!

    하오는 허공에 언월도를 휘두르며 몸을 풀었다.

    “몸이 확실히 굳었네.”

    독성은 완전히 빠졌지만 독성으로 인해 파괴된 근육과 힘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몬스터 고기를 먹는 게 아니었는데….”

    몬스터 고기는 정말 강력한 독성을 가지고 있다.

    하오도 그걸 알고 있었기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고기만 섭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작 2주 만에 죽음에 직면할 정도로 상태가 극도로 나빠졌다.

    사실 하오 정도 되는 헌터에게는 웬만한 독은 통하지도 않는다.

    일반인이라면 즉사할 정도의 독도 잠시 어지러운 정도로 끝날 테니까.

    그런데 그런 하오도 죽을 정도로 강력한 독이 바로 몬스터의 몸속에 있는 독이다.

    그런 독을, 적은 양이지만 2주 동안 꾸준히 섭취했으니 후유증이 없을 리가 없었다.

    ‘힘들군….’

    하오는 전성기에서부터 지금까지 자신의 힘이 계속 떨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일까지 생기자 은퇴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허…. 자네는 아직도 자신의 것만 고수하는 건가.”그때, 하오의 귀에 익숙하지도, 낯설지도 않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오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고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신은…!”

    “오랜만이구나. 애송아.”

    하오를 애송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하지만 그 자존심 강한 하오가 그런 말을 듣고도 화를 내지 않았다.

    “오랜만입니다, 스승님.”

    “스승이라고 할 것도 없다. 나는 단지 나를 대신해 싸워주는 너희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니.”하오가 스승이라 부르며 고개를 조아리는 사람은 바로 처칠이었다.

    “몸 상태가 영 아니구나.”

    “스승님께서는 어찌 그때 그 모습과 똑같으신지….”처칠은 하오와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도 굉장히 오래전에 말이다.

    “스승님 덕분에 과거에 칠죄종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허허… 아니다. 나는 딱히 한 것도 없으니.”“하지만… 스승님이 없었다면 저희는 기회도 살리지 못하고 모두 죽었을 겁니다.”처칠은 첫 번째 데블스 에이지 당시에 하오를 비롯한 각 국가의 우두머리 격 헌터들 앞에 나타나 그들에게 힘과 장비를 주었다.

    그 덕분에 하오도 지금처럼 강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처칠이 지금 하오의 앞에 나타난 이유는 뻔했다.

    “나는 너에게 두 번째 가르침을 주려고 왔네.”그건 바로 노화와 독으로 인해 힘을 잃은 하오에게 다시 싸울 수 있는 힘을 주기 위해서였다.

    “가르침을 받기 전에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 있다. 네 몸은 이미 한계를 넘었어. 60이 넘어서 너처럼 싸우는 것이 더 신기한 것이지. 그런 상황에 독으로 인해 근육과 세포가 파괴되었으니…. 회복 마법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도 정도가 있는 법이야.”

    “…….”

    하오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처칠의 말은 사실이었다.

    더 이상 하오는 전처럼 싸울 수 없었다.

    “너는 더 이상 전처럼 싸울 수 없다. 그걸 인정해야만 나아갈 수 있다네.”그때, 처칠의 눈이 빛나며 대현자의 ‘운명 비유’가 시작되었다.

    “자네는 녹슨 철검과 같네. 녹슨 부분을 갈아내고 갈아낸 뒤에야 그 빛을 발할 수 있어. 녹슨 부분을 갈아내면 그 크기는 작아지겠지만 더욱 예리하고 날카로워지겠지.”

    “그게 무슨….”

    “이 말의 뜻은 네가 스스로 깨달아야 할 것이다.”처칠은 그렇게 말하고 나무 뒤로 지나가더니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게 무슨….’

    하오는 처칠의 말을 곱씹어 생각해 보더니 눈이 번쩍 뜨여 망가져 버린 언월도를 버리고 바로 무기고로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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