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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33화 (333/379)
  • 333화

    “허덕륜 선생님?”

    허덕륜은 공식적으론 해외로 파견을 나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이런 상황에 협회의 소환에 응하지 않는 허덕륜을 욕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허덕륜을 아는 헌터들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다.

    허덕륜은 현직 헌터 중에서도 굉장히 강한 편이었고 그가 있다면 대원로 하나쯤은 견제할 수 있을 테니까.

    그런 허덕륜이 지금 나타난 것이다.

    “동연이 상태 좀 봐주거라.”

    “아, 네!”

    홍유리가 허덕륜의 말을 듣고 신동연의 상태를 보러 갔다.

    “그냥 의식만 잃은 것 같아요.”

    “다행이네….”

    신동연은 공격을 감지해 방어 마법을 자동으로 펼쳐주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었다.

    자신에게 방어 마법을 사용할 필요성을 없애고 여유 마나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것에 집중하기 위해 마련한 아티팩트였다.

    그 준비성 덕분에 신동연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럼 됐다.”

    오랜만에 만난 허덕륜은 학생들에게 무심하면서도 상냥한 모습 그대로였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표정을 허덕륜에게서 봐야 했다.

    “그럼 동연이 데리고 멀어져 있거라.”

    허덕륜이 벨과 밀레를 노려보는 눈빛은 지금까지 본 눈빛 중 가장 강렬한 것이었다.

    과거 칠죄신교에 속한 모든 인간이 두려워했다는 허덕륜의 모습이 돌아온 것이다.

    “역시… 과거에 투신이라 불린 사람다운 기백이군.”“과분한 별명일 뿐이다. 그 당시에는 나보다 강한 사람이 차고 넘쳤으니까.”허덕륜은 힘을 끌어 올리며 벨을 바라보았다.

    ‘저 녀석의 특기는 많은 수의 팔을 뭉쳐서 완력을 강하게 하는 것 같고… 저 꼬맹이는 그걸 보조해주는 것 같군.’허덕륜은 김철과 신동연이 공격당하는 모습을 보고 둘의 포지션을 파악했다.

    ‘그래도 조심해야겠어. 저 여자애는 단순히 서포트만 해주는 게 아닌 것 같으니까….’주변을 보면 헌터들이 마기를 사용한 마법에 당해 죽은 듯한 모습으로 널브러져 있었다.

    ‘저 벨이라는 남자가 공격한 거라면 저 거대한 팔을 사용해 공격한 흔적이 있어야 해. 그렇지 않다는 건… 저 여자애가 한 공격이겠지.’해봐야 C~D급 헌터라고는 하지만 헌터 백여 명을 큰 힘 들이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적어도 개개인이 대원로급이라고 봐야 한다. 하나하나는 약한 편이지만 둘의 호흡과 조합이 좋으니… 대원로 중에서도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들일 거야.’허덕륜은 전보다 적을 더 유심히 관찰했다.

    허덕륜이 자리를 비웠던 약 한 달 동안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왔는지 모르지만, 그는 분명히 전과 달라져 있었다.

    ‘그럼… 천천히 들어가 볼까.’

    허덕륜은 빠른 속도로 벨의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흡…!”

    벨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에 당황했다.

    벨이 자신의 팔의 크기를 줄여 허덕륜의 주먹을 막아냈다.

    “제법….”

    “뭐라는 거냐.”

    허덕륜은 벨에게 공격이 막힌 뒤 바로 무게 중심을 낮춰 하체를 공략했다.

    “……!”

    허덕륜은 주먹이 막히자 바로 태클로 전환했다.

    일반적으로는 먹히지 않을 포지션에서 나온 태클이었지만 허덕륜의 상식을 넘어선 근력이 태클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허덕륜은 유리한 포지션을 잡고 벨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벨은 밀레의 도움으로 불리한 포지션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스위치.”

    쿠-웅!

    허덕륜이 태클을 건 순간, 벨은 다른 곳으로 이동되었고 태클의 대상을 잃은 허덕륜은 혼자 앞으로 고꾸라졌다.

    “젠장….”

    “가속.”

    허덕륜이 넘어져 있을 때 벨은 밀레의 가속 버프를 받고 바로 허덕륜에게로 달려갔다.

    “이 자식….”

    허덕륜은 벨의 공격을 감지하고 바로 뒤를 돌아 대응했다.

    쾅!

    허덕륜은 팔을 교차해 벨의 주먹을 막아냈다.

    “큭….”

    벨의 주먹은 강했고 허덕륜도 생각보다 강한 벨의 공격에 고통의 신음을 흘렀다.

    덥석!

    하지만 거기서 손해만 보고 적을 놔줄 허덕륜이 아니었다.

    허덕륜은 벨의 수많은 팔 중 하나의 팔목을 잡았다.

    “팔이 그렇게 많으면 하나 정도 뽑혀도 괜찮지 않겠나?”꽈드득!

    “……!”

    허덕륜은 벨의 팔 중 하나를 완력으로 뽑아 버렸다.

    “크윽!”

    잘리는 것과 뽑히는 것은 그 고통의 수위가 완전히 다르다.

    벨은 자신의 뼈가 뽑히고 살이 찢겨나가 팔이 떨어져 나가는 과정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껴야만 했다.

    “팔이 많아도 아픈 건 매한가지인가 보구나.”허덕륜은 뽑아낸 팔을 집어 던지고 주먹을 어깨 뒤로 당겼다.

    꾸드득….

    그러자 허덕륜의 팔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받아봐라.”

    심상치 않음을 느낀 벨은 숨겨두었던 팔을 전개해 허덕륜의 주먹을 막아 내려 했다.

    “스위치.”

    하지만 밀레의 재빠른 조치로 허덕륜의 주먹을 피할 수 있었다.

    “제기랄… 공격하기 곤란하군.”

    허덕륜의 공격은 허공을 갈랐고 그것만으로도 풍압이 일어나 흙먼지가 생겼다.

    “미친놈아, 너 방금 그거 못 막아.”

    “알고 있었어. 막았어도 내 팔이 거의 전부 아작 났겠지.”벨은 밀레의 옆에서 허덕륜을 노려보았다.

    “선대 분노의 대원로인 레이지보다 조금 더 강한 수준이라고 들었는데… 이건 뭐 레이지 두 명이 있어도 비슷하겠는데?”

    “그동안 일이 꽤 있었거든.”

    허덕륜은 확실히 전보다 강해져 있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 강해진 걸로 끝날 거였다면 내가 근 한 달 동안 수없이 죽으면서 그 녀석과 싸우지는 않았겠지.”허덕륜은 주황빛 기운을 끌어 올렸다.

    “뭐지…?”

    “미친…. 조심해. 저거 심상치 않아.”

    허덕륜이 끌어 올리고 있는 기운은 지금껏 누구도 본 적 없는 종류의 기운이었다.

    “후우….”

    허덕륜의 몸을 주황색 기운이 감싸자 허덕륜은 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몸이 붉어지며 뜨거워졌다.

    그 열기는 주변의 공기까지 달아오르게 할 정도로 뜨거웠다.

    “이제 해 보자고.”

    허덕륜은 벨에게 달려들었다.

    속도와 힘, 모두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뭔가 기세가 달라졌다.

    쾅!

    허덕륜은 벨에게 주먹을 휘둘렀고 벨은 팔로 허덕륜의 주먹을 막아냈다.

    “크윽….”

    “마갑.”

    밀레는 벨이 허덕륜의 공격을 부담스러워한다는 것을 눈치채고 바로 마기로 된 갑옷을 씌워주었다.

    “후우….”

    허덕륜의 연속된 공격에 버티다 못한 벨은 허덕륜의 공격을 막아냄과 동시에 그 힘을 활용해 뒤로 물러났다.

    “괜찮아?”

    밀레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벨을 보고 걱정 어린 말투로 말했다.

    평소에는 친남매처럼 티격태격했지만 이런 상황이 되자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벨은 그런 밀레를 보고 가볍게 웃으면서 말했다.

    “적응 안 되게 왜 이래.”

    벨은 허덕륜을 주시하면서 말했다.

    “이제 좀 무리를 해야 할 것 같다.”

    “진심이지?”

    벨은 밀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러면 못 이겨. 커버 부탁한다.”

    “알았어.”

    밀레는 한숨을 한 번 쉬고 집중했다.

    눈앞의 적은 둘이 진심을 다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다.

    집중력이 잠깐이라도 흩어지면 그대로 패배다.

    “데블 래피드 스피어.”

    밀레가 허덕륜을 향해 공격을 쏘아내자 허덕륜은 그것을 주시하다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냈다.

    “무슨….”

    데블 래피드 스피어는 밀레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마법 중 하나다.

    게다가 마법으로 만들어지는 투사체의 크기도 작기 때문에 보고 반응할 수 없는 마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허덕륜은 공격을 하러 달려오는 와중에 그것을 감지한 것도 모자라 아주 가볍게 피해냈다.

    그때, 밀레와 벨의 시야에 허덕륜의 불타는 왼 눈이 들어왔다.

    허덕륜의 왼쪽 눈은 붉게 타오르고 있었고 그 눈동자는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 * *

    화안금정(火眼金睛).

    제천대성(齊天大聖)의 눈이었다.

    제천대성은 원숭이로 태어나 신을 죽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초월자가 된 인물이다.

    처음에는 신들의 미움을 사 마계로 쫓겨나 요괴가 된 적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다시 인간계로 돌아왔다.

    그는 마계와 신계, 인간계를 모두 자유롭게 돌아다니다가 결국에는 독립된 하나의 공간에 갇히게 되었다.

    “반쪽짜리일 뿐이지만… 이 정도만 있어도 너희는 이길 수 있다.”허덕륜은 예전부터 ‘투지의 신’에게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허덕륜은 투지의 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로지 싸우는 것만 생각하고 강해지는 것만 생각하는 투지의 신은 부끄러운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했으니까.

    하지만 점점 더 강해지는 태운과 칠죄종의 짐승을 상대로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자신을 보고 결심했다.

    ‘방법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 나의 신념만 꺾으면 강해질 수 있고 이 세상을 구하는 데 힘을 보탤 수 있으니까.’허덕륜은 그날로 전대섭에게 자신의 빈자리를 부탁하고 바로 투지의 신의 연락에 응했다.

    투지의 신은 제천대성을 가둬둔 독립적인 공간에 허덕륜을 가뒀고 허덕륜은 그곳에서 셀 수도 없이 많이 죽으며 제천대성과 싸워야만 했다.

    제천대성이 단순히 봉을 한 번 휘둘렀을 뿐인데 허덕륜은 전신이 찢겨나갔고 소리를 지르자 고막이 터져 나갔다.

    그렇게 1,000배의 시간 배율을 가진 공간에서 허덕륜은 제천대성과 계속해서 싸웠다.

    정신을 잃을 것만 같이 아득한 시간을 싸움만 하면서 보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허덕륜은 제천대성을 이길 가능성조차 보지 못했다.

    필멸자가 어찌 초월자를 이기겠는가.

    하지만 투지의 신이 내건 조건은 제천대성을 이기는 것이 아닌 그에게 인정받는 것.

    허덕륜은 수많은 시간을 제천대성과 싸웠고 그 안의 시간으로 약 80년이 지났을 때 제천대성이 물었다.

    [너는 필멸자가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바쳐 나와 싸웠다.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제천대성에게 80년의 시간은 체감상 며칠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수천, 수만 년을 살아왔을 테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강해져야 할 이유가 있다.”

    [뭐… 세상을 구하기 위해서라던가… 그런 이유인가.]

    허덕륜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것이 정말 자신이 강해지고 싶은 이유인가.

    세상을 구하고 싶어서, 정녕 그런 이유였던 것인가.

    아니었다.

    “제자에게 부끄러운 스승이 되고 싶지 않다.”

    […제자가 어지간히 대단한가 보군.]

    “그래. 내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제자지.”허덕륜은 뿌듯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세상을 구하는 건 그 아이의 몫이다. 나는 그 아이의 등을 밀어주고 도와주고 싶을 뿐이야. 그러기 위해 이곳에서 너와 싸우고 있는 거지.”허덕륜은 80년 동안 싸우며 제정신을 잃을 뻔한 적도 있었다.

    늙지도 않고 죽지도 않는 공간이었지만 정신만큼은 아주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실제로 투지의 신에게 제안을 받고 이 공간에 들어왔다가 미친 사람도 수없이 많았으니까.

    [제자에게 부끄러운 스승이 되고 싶지 않다….]

    제천대성은 허덕륜을 보면서 웃었다.

    [좋은 스승이군.]

    제천대성은 누군가를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하게 허덕륜을 바라보았다.

    [그래, 네게 힘을 주마. 앞으로 1년, 그 안에 너를 제자에게 부끄럽지 않을 만큼 강하게 만들어주겠다. 일단 나의 한쪽 눈을 먼저 가져가라.]

    그렇게 허덕륜은 제천대성의 화안금정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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