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화
“쟝, 헌터들이 왔습니다.”
이젠 질투의 좌에 앉아 대원로가 된 벨이 쟝에게 보고했다.
쟝은 소파에 앉아 있다가 그 말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슬슬 올 때가 됐다고 생각했지.”
쟝은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비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이 칠죄신교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
“알고 있습니다.”
벨은 대원로의 자리에 앉았음에도 불구하고 쟝을 계속 존대했다.
지금까지 떠받들 듯이 모시던 대원로를 하루아침에 다르게 대하기 쉽지 않았다.
애초에 벨은 쟝에게 입은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님’자만 붙이지 않을 뿐 기본적으로 존대를 하고 있었다.
“적들은 현재 약 12,000명입니다.”
“수적으로는 밀리는군. 적의 질은?”
“확인된 바로는 A급 헌터 218명, B급 헌터 4,000여 명, 나머지는 전부 C급 이하입니다”
“그 정도면 질은 우리가 압도적이군.”
칠죄신교는 최근에 칠죄종을 강림시키고 전체적인 전력 상승을 이뤘다.
하급 원로였던 자들은 중급 원로 수준의 강함을 얻게 되었고 전사들 중에 강한 편이었던 사람들은 칠죄종 강림 전의 하급 원로에 준하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전부 원로로 올려주면 계급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그중 강한 사람을 추려 300명만 원로로 올렸다.
“참, 전사 중에 강한 인원을 선별해 따로 배치해두라고 한 건 해뒀던가?”
“그건 페로가 잘해 두었습니다.”
“페로…. 참 능력이 뛰어난 친구지. 특출난 욕망이 없어서 아쉬워.”페로는 과거에 혼돈 에너지를 채우고 칠죄종의 짐승을 데려오기 위한 초석으로 사용하기 위해 신태연을 하늘섬으로 데려온 인물이다.
그는 힘은 물론이고 지략까지 떨어지지 않는 하늘섬 최대의 인재였다.
‘하지만 대원로가 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은 실력과 죄악의 정도.’페로는 칠대 죄악 중 누구보다 특출나게 강한 것이 없었고 결국에는 대원로가 되지 못했다.
“녀석이 성욕이라도 왕성했다면 어떻게든 우겨서 색욕의 좌에 올려놨을 텐데 말이지.”“별수 없지 않습니까. 페로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그런 욕망으로는 대원로가 되어도 효율이 좋지 못할 테니까요.”“그렇지…. 일단 그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쟝은 천천히 걸어 방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의 방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원로 한 명에게 말했다.
“모두 전투 준비를 하라고 일러둬라. 곧 있으면 헌터들의 공격이 있을 테니.”
“네, 알겠습니다.”
쟝은 전력상 칠죄신교가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건 단순 수치상의 우열일 뿐이다.
‘아스모데우스 님을 쓰러뜨린 강태운도 있고 그에 준하는 힘을 가진 전대섭도 있고 셀도 있다. 게다가 이번에 오러를 얻은 구찬영도 있고 중국의 영웅이라 불리는 하오도 있다.’게다가 원로와 A급 헌터는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저번 하늘섬 습격 당시에 큰 손실을 입고 그 수준이 크게 떨어졌다.
힘은 비슷할지언정 그 힘을 다루는 방법이 아직은 미숙하다.
해봐야 반년 밖에 힘을 사용하지 않은 자들이니까.
‘오늘이 칠죄신교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상관없다.’다만 ‘그 일’만큼은 해내야만 한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 * *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비극이 일어나고 있다.”전대섭은 한국의 헌터들이 모인 곳의 단상에 서서 말했다.
“그 누구보다 아버지를 생각하던 아들이 분노의 저주에 걸려 아버지를 폭행하고 선량한 시민이 저주로 인해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저주로 인해 세상의 규칙이 무너지고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
저주 때문에 무너지는 가정도 있으며 끔찍한 일을 겪는 사람도 생겼다.
“그런 일은 더 이상 일어나서는 안 된다.”
지금은 칠죄종 중 고작 둘이 강림했을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칠죄종이 강림할 것이고 그들이 강림할 때마다 우리는 더 힘든 저주를 견뎌내야만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되기 전에 그 뿌리를 뽑는다.”지금 곧 시작될 전투는 그 뿌리를 뽑는 일이다.
칠죄신교를 단 한 명도 남기지 않고 괴멸시킨 뒤 던전만 잘 관리하면 칠죄종이 이 세상에 다시 강림할 일은 없다.
“모두 알고 있는 일이고 각오도 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늙은 헌터의 노파심으로 다시 한번 말하네.”전대섭은 소리높여 말했다.
“이 세상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걸어주게! 나 먼저 그 길을 걸을 테니 자네들도 스스로의 목숨을 아끼지 말아주게!”
“…….”
전대섭이 이렇게 말하는 건 태운은 물론이고 모든 헌터들이 처음 보았다.
그의 말을 들은 헌터들은 모두 감정이 벅차올라 더욱 열심히 싸우겠다는 다짐을 했다.
하지만 그때, 유일하게 고개를 숙이고 부끄러워하는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가온 길드의 길드장, 심중현이었다.
‘내가 저런 사람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있었다니… 부끄러워 죽겠군.’심중현은 고개를 숙였다.
‘나랑은 비교도 안 되는 영웅이었잖아.’
자신은 할 수도 없는 일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해내는 전대섭은 누가 봐도 인재였다.
‘연정아의 정체가 수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걸 이용해 전대섭을 끌어내리려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미치도록 부끄럽다.’그때, 심중현의 어깨에 누군가가 손을 올렸다.
“부끄러워할 필요 없습니다. 저런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강태운?”
놀랍게도 심중현을 위로한 사람은 강태운이었다.
“제가 모를 것 같았습니까? 과거에 가온 길드는 헌터 협회보다 길드들의 영향력이 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길드의 중심이었잖습니까?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는 전대섭 선생님이 눈엣가시였겠죠. 그래서 어느 정도 예상만 했었는데 그동안 같이 다니다 보니 눈에 훤히 보이더군요.”
“…부끄럽군.”
“알면 됐습니다. 이제부터 한마음 한뜻으로 같이 싸우면 되는 일이니까요.”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후… 나는 저 어린 헌터보다 완성되지 못한 놈이구나.”심중현은 스스로 자신의 미숙함을 통감했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다.”
전대섭의 이야기가 천천히 끝나가기 시작했다.
즉, 슬슬 전투가 시작될 거라는 뜻이었다.
그렇게 약 1분 정도 기다렸을까.
단상 위에 서서 하늘섬 쪽을 바라보던 전대섭이 손을 올렸다.
하늘섬 안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신호를 보고 태운도 단상 위로 올라가 마법을 준비했다.
“에테르 스트라….”
“에테르 뉴클리….”
전투의 시작은 전대섭과 강태운의 범위 공격으로 열기로 했지만 전대섭과 강태운은 하늘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고 공격을 망설였다.
“…젠장”
“칠죄신교 놈들….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늘섬에서 칠죄신교의 전사들이 쏟아져나왔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고 마법을 날려 버렸을 것이다.
“개자식들….”
칠죄신교의 전사들의 사이에 고작 10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끼어 있었다.
그것도 적은 수도 아니었다 전체 인원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수였다.
“어떡합니까….”
“젠장….”
전대섭은 고민했다.
‘저 어린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죽어야 한단 말인가….’되지도 않는 정의감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전대섭은 아무 죄 없는 어린아이를 수백 명이나 죽일 수는 없었다.
애초에 전대섭은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대로 선제 타격을 하지 않고 헌터들을 돌격시킨다면 아이들의 희생을 최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헌터들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다.
태운이 전대섭에게 선택을 부탁했다.
“아이들을 살리시겠습니까. 아니면… 아이들까지 모두….”전대섭은 고개를 내저었다.
“난… 그럴 수 없다… 어떻게든 어린아이들은 살린다.”강태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태운은 파괴신의 레벨이 오르면서 얻은 효과를 상기했다.
[자신이 선택한 대상을 제외하고 공격할 수 있다.]
수백 명을 대상으로 지정한 적은 없었지만 할 수 있다.
아니, 해내야만 한다.
‘브레인 부스트, 초감각, 사고 가속.’
태운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기 시작했다.
‘육감.’
그리고 육감을 사용하고 눈을 감았다.
육감을 사용한 이상 시각은 육감을 방해하는 요소일 뿐이니까.
“후….”
태운은 눈을 감은 상태로 신체의 크기가 작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정했다.
누가 무고한 아이들인지 최대한 빠르고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은 그뿐이었으니까.
“에테르 뉴클리어 샷”
태운은 그 상태로 바로 적진에 마법을 던져 버렸다.
콰-.
그리고 미리 만들어두었던 결계 마법이 담긴 룬석을 사용해 에테르 뉴클리어 샷의 영향으로부터 헌터들을 보호했다.
태운도 이 마법을 처음 사용했을 때 고막을 잃고 시각까지 잠시 잃었었으니까.
“가, 강태운… 지금 무슨 짓을 한 거냐.”
전대섭은 태운이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고 마법을 날린 줄 알고 놀란 눈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아니라고 말해라. 나는 너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다.”전대섭은 강태운이 그러지 않았다고 믿고 싶었다.
다행히도 강태운의 마법으로 인해 죽은 아이들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진정하고 앞을 보세요.”
태운의 말을 들은 전대섭은 에테르 뉴클리어 샷으로 인해 난장판이 된 전장을 바라보았다.
폭발로 인해 생긴 연무가 걷히고 난 뒤에 모습을 드러낸 전장에는 즉사한 전사들의 시체와 팔다리가 날아가 고통스러워하는 전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은 어린아이 수백 명이 서 있었다.
“어떻게….”
“전 광역 마법을 사용해도 대상으로 지정한 사람은 공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대상으로 지정할 아이들이 워낙에 많아서 힘들긴 했지만… 보시는 것처럼 성공했습니다.”전대섭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전대섭은 에테르로 메테리얼을 만들어 대규모 텔레포트를 시전했다.
그러자 전장에 있던 어린아이들은 전부 텔레포트되어 헌터들의 후열로 이동되었다.
“그 아이들은 하늘섬에서 태어난 죄 밖에 없는 무고한 아이들이다! 다치지 않게 제압해 속박해두어라!”아무리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이미 칠죄신교에 의해 세뇌당한 아이들이다.
그러니 아이들을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최소한의 속박은 해둬야 했다.
그때, 하늘섬에서 7명의 대원로들이 천천히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300명의 원로들과 수천 명의 전사들, 그리고 키메라들이 걸어 나왔다.
“이제 진짜들이 나오네요.”
앞의 전사들은 헌터들의 돌격을 유도해 전열을 흩트리는 역할을 하는 버리는 패였다.
하지만 그 작전이 통하지 않았으니, 본 전투로 바로 돌입할 수밖에.
“헌터들 전원 전투 준비!”
헌터들은 각자의 무기를 꺼내 전투를 준비했다.
“칠죄종의 가호를 받은 자들이여! 칠죄종에 대항하는 무지한 자들을 처벌하라!”
“““우오오오오!!!”””
쟝의 한마디에 칠죄신교의 전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뚫을 기세로 높아졌다.
그리고 전대섭과 쟝이 동시에 외쳤다.
““전원 돌격!””
그렇게 칠죄신교와 인류의 존망을 건 전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