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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23화 (323/379)
  • 323화

    색욕의 마궁.

    그 활로 쏘아진 마기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특성을 가지게 된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관통하는 힘을 가지게 된 화살은 그 힘을 잃을 때까지 날아가 그 경로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파괴한다.

    “주인도 관통하는지 한번 보자.”

    아스모데우스의 강력한 무기인 색욕의 마궁이 지금은 연정아의 손에 들려 아스모데우스를 향하고 있었다.

    [연정아…!]

    그때, 태운은 연정아의 뒤로 쓰러져 경련을 일으키고 있는 구찬영을 보았다.

    구찬영은 심중현에게 부탁해 공간 왜곡을 사용해 아스모데우스에게서 활을 빼앗아왔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이지만 그의 무기를 잡았기에 마기에 잠식당하고 있는 것이다.

    아스모데우스가 자신의 핏줄을 부하로 삼으려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색욕의 무구를 손에 쥐는 것만 해도 마기가 몸을 침식해 천천히 죽어간다.

    아스모데우스의 핏줄은 색욕의 무구를 쓰기 위해 아스모데우스처럼 힘만 소모하면 된다.

    자신을 제외하고 자신의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그의 핏줄.

    그렇기에 아스모데우스는 자신의 혈통을 종으로 삼지 못하면 그만큼 전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지금 구찬영만 봐도 그 심각성을 알 수 있었다.

    잠깐 만진 것만으로 그렇게 되었으니까.

    “구찬….”

    “전부! 나 신경 쓰지 말고… 할 거 해!!!”

    태운이 찬영이 걱정되어 말하려 한 순간, 구찬영이 소리쳤다.

    구찬영은 각오가 되어 있었다.

    스스로를 희생하더라도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릴 각오가.

    지금 구찬영을 살리겠다고 싸움을 미루는 것은 구찬영과 그의 각오를 모욕하는 일이다.

    태운은 지금은 싸움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건 다른 헌터들도 다르지 않았다.

    “네 무기에 겨눠지는 느낌이 어때?”

    [이 더러운 자식….]

    아스모데우스는 이런 상황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등 뒤를 항상 따라다니며 떠 있는 무구를 빼앗길 거라는 생각은 쉽게 할 수가 없었다.

    애초에 연정아가 자신을 거부하는 것부터가 아스모데우스의 예상 밖의 일이었으니까.

    “내 이름 부르지 마. 더러운 변태 자식아.”

    연정아는 그렇게 말하면서 활시위를 당겨 천천히 힘을 모았다.

    연정아가 활시위를 당기자 아스모데우스는 피하기 위해 몸울 움직였다.

    하지만 헌터들이 그것을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었다.

    “어딜!”

    심중현은 근력이 강한 헌터들을 모두 공간 왜곡을 사용해 아스모데우스의 옆으로 보냈다.

    그리고 헌터들은 모두 온몸으로 아스모데우스를 붙잡았다.

    [이 버러지들이!]

    하지만 그들은 아스모데우스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고 아스모데우스를 붙잡은 헌터들은 아스모데우스의 몸짓 한 번에 모두 날아갔다.

    “크윽!”

    “젠장….”

    그들이 아스모데우스를 붙잡은 건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아주 짧은 찰나의 순간, 태운은 주머니에서 한 가지 룬석을 꺼냈으니까.

    “성스러운 감옥.”

    우웅!

    쾅!

    태운이 룬석을 사용하자 아스모데우스의 위에서 빛의 검이 수십 개나 날아와 바닥에 꽂혔고 동시에 빛의 검끼리 서로를 연결해 아스모데우스를 붙잡았다.

    “오로지 신성력으로만 이루어진 마법이다. 네놈이라도… 쉽게 벗어날 수 없을 거다.”

    [이까짓 거… 금방 쳐부숴 주마!]

    아스모데우스는 마기를 응집해 성스러운 감옥의 외벽을 공격했다.

    강력한 위력에 성스러운 감옥의 한 면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건 바로 태운이 노린 바였다.

    “전대섭 선생님! 연정아!”

    여기까지가 태운의 역할이다. 이제 그들이 해주어야 한다.

    “여기까지 만들어줬는데 해내야지. 텔레포트.”전대섭은 연정아를 성스러운 감옥의 파괴된 방향으로 텔레포트시켰다.

    아스모데우스는 연정아와 눈을 마주친 순간 아차 싶었다.

    [이게 아닌….]

    “잘 가라.”

    피-잉!

    연정아가 활시위를 놓았고 그녀의 마기로 만들어진 화살은 아스모데우스를 향해 맹렬히 날아갔다.

    퍽.

    성스러운 감옥 탓에 옆으로 피할 수도 없던 아스모데우스는 연정아의 화살에 의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이 날아갔다.

    [이 개 같은…. 내가 이 상처만 회복한다면….]

    “그렇게 둘 리가 없지 않은가.”

    쾅!

    전대섭은 다시 한번 어스 퓨리를 사용해 아스모데우스의 다리를 뭉개 버렸다.

    상처를 회복하기 위해 마기를 거둬들인 아스모데우스의 몸은 마치 두부처럼 쉽게 으스러졌다.

    “강렬한 축복.”

    태운은 헌터들에게 모든 축복을 내려주었고 헌터들은 모두 달려들어 쓰러져 있는 아스모데우스를 공격했다.

    그렇게 아스모데우스는 다시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사이에 몸을 완전히 회복한 태운은 아스모데우스의 앞에 섰다.

    [하… 하….]

    아스모데우스에게 이런 패배는 처음이었다.

    과거에는 수십 명의 신에게 인정받은 성녀와 싸워 졌지만, 그때는 사실상 신과 직접 싸운 것과 별다르지 않았다.성녀를 밀어주는 신 중에 아스모데우스를 매우 싫어하는 사랑의 신과 순결의 신이 있어, 둘이 근원의 신성력까지 내어줬기에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고작 하나의 신에게 인정받아 쥐꼬리만큼의 신성력을 가진 녀석뿐이었다.

    [하… 하….]

    이번 패배는 아스모데우스의 실력이 헌터들의 실력보다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지소연… 그 미친년이 없어 이번은 가능할 거라 생각했거늘….]

    태운은 아스모데우스의 입에서 나온 이름에 귀를 의심했다.

    “야, 뭐라고 했어. 지소연? 그 이름이 왜 나와!”지소연. 그녀는 과거 한국을 지키는 헌터들의 부대장이었고 강철운의 아내였고 결론적으로는 태운의 어머니였으니까.

    [지소연…? 왜 나오긴…. 그년이 날 마계로 다시 밀어 넣은 사람이니까.]

    “그것 말고는 더 아는 게 없나? 그 전이라던가. 원래는 어떤 사람이었….”터업.

    누군가의 손이 태운의 어깨를 잡았다.

    “그만해. 아스모데우스가 시간을 끌려고 수작 부리고 있는 거잖아.”연정아였다.

    실제로 연정아가 태운을 말리자 아스모데우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그렇네.”

    태운은 자신의 어머니인 지소연의 이름이 나와 순간 흥분한 것 같았다.

    “그래. 너도 슬슬 돌아가야지.”

    태운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미스릴 검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특성 용사의 특전으로 얻은 스킬을 사용했다.

    “처단.”

    우웅!

    그 순간, 태운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빛이 미스릴 검에 깃들었다.

    그와 동시에 태운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시간이 멈췄다.

    그러자 태운의 귀에 기억의 신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스모데우스. 너에게 직접적인 원한은 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해하거라.]

    [으아아아아!!! 기억의 신 네놈이었나!!!]

    아스모데우스도 그 목소리를 들은 듯 소리쳤다.

    그때.

    [사랑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순결의 신이 당신을 인정합니다.]

    [두 명의 신이 처단에 참가하기를 희망합니다. 허가하시겠습니까?]

    ‘이게 무슨….’

    사랑의 신, 순결의 신.

    둘은 척 봐도 색욕의 아스모데우스를 아주 싫어할 것 같았다.

    ‘허가한다.’

    신과 척을 져봐야 좋을 게 없으니 태운은 허가하기로 했다.

    [아스모데우스. 언제까지 그런 천박한 일을 할 생각이냐. 사랑 없는 욕망은 허망하고 허무할 뿐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듣기만 해도 사랑에 빠질 것만 같은 그런 목소리.

    물들지 않는 자라는 특성을 가지지 않은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상사병에 빠졌을 것만 같았다.

    굉장히 매혹적이었다.

    하지만 아스모데우스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끔찍한 비명을 내질렀다.

    [끄아아아아악!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다!]

    그때,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스모데우스. 네놈은 보고 싶지도 않다. 제발 소멸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말이지.]

    이번에도 아름다운 목소리가 태운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고혹적인 목소리를 들려주었던 신과는 달리 당당하고 곧은 목소리였다.

    감히 인간 따위로서는 사랑할 마음도 생기지 않는 당차고 위엄 있는 목소리였다.

    [으아아아악!!!]

    아스모데우스의 비명을 듣고 있을 때, 태운의 손이 천천히 움직였다.

    ‘음…?’

    누군가 태운의 검을 같이 잡고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태운은 자신의 검을 보았고 아름다운 3쌍의 손이 자신의 손 위로 검을 같이 쥐고 있는 것을 보았다.

    태운은 직감적으로 그 손들이 기억, 사랑, 순결의 신의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서걱!

    태운은 신들에게 이끌려 검을 휘둘렀고 그 순간, 아스모데우스와 이 세상의 연결이 끊어졌다.

    [강태운….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꼭 살아 있어라…. 네놈만큼은 내가 갈가리 찢어….]

    이 세상과의 연걸이 끊어진 아스모데우스는 태운에게 유언을 남긴 채 마계로 빨려 들어갔다.

    그때부터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처단의 시간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던 아스모데우스는 현실에서 빼빼 말라 생기를 잃은 사체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아스모데우스는 죽은 건가…?”

    “네, 마계로 돌아갔습니다.”

    “그렇다면 빨리 찬영이의 상태 좀 봐주거라.”

    “아, 찬영아!”

    전대섭의 말에 태운은 뒤늦게 구찬영에게 달려갔다.

    “끄… 끄윽….”

    찬영의 몸이 더 이상 잠식되고 있지는 않았지만 마기에 의해 이미 잠식되어 있는 피부 조직에는 마기가 들러붙어 찬영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신성한 축복.”

    태운은 신성한 축복을 사용해주었고 그러자 구찬영의 혈색이 돌아오며 잠식된 피부 조직의 마기 또한 천천히 빠져나갔다.

    태운은 구찬영이 안정적으로 숨을 쉬는 것을 보고 순간 다리가 풀렸다.

    “다행이야….”

    찬영의 몸에서는 더 이상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끝난 거지?”

    “시저, 플래그 세우지 마라.”

    태운은 시저와 정일준의 말에 드디어 실감할 수 있었다.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잘 이겨냈고 결국에는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렸다.

    크게 보면 이제 시작일 뿐이었지만 지금만큼은 즐거워해도 좋았다.

    태운은 자신을 바라보며 확답을 바라는 헌터들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태운은 그들에게 한마디 해주었다.

    “네, 이번 전투는 끝났어요.”

    그것도 인류의 승리로.

    * * *

    “윤아야!”

    태운과 연정아는 토벌이 끝나고 빠르게 치료만 받은 채 바로 한국으로 날아왔다.

    자잘한 절차는 전대섭이 모두 해결해준다고 했다.

    “음? 무슨 일이….”

    확!

    연정아는 윤아에게 달려가 그녀의 티셔츠를 올려 배를 깠다.

    “언, 언니?”

    윤아는 TV를 보고 있다가 갑자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연정아에 놀랐지만 연정아와 태운은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다.

    “다행이네.”

    “잘됐어.”

    윤아의 배에 보기 흉하게 자리하고 있던 문신이 사라졌으니까.

    그건 바로 아스모데우스의 영향이 모두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무, 무슨 일 있었어?”

    “아니야. 괜찮아.”

    태운은 윤아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아무 일 아니다. 혹여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아니게 만들겠다.

    그 말을 지킬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하….”

    윤아가 괜찮다는 것을 확인하니 지금까지 있었던 피로가 한 번에 몰려왔다.

    털썩.

    태운은 그 자리에서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깨어난 곳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흰색 공간이었다.

    그리고 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는가. 아스모데우스를 쓰러뜨린 용사여.]

    [내 친히 자네를 칭찬하기 위해 불러왔네.]

    이 목소리는 잊을 수 없는 이의 것이었다.

    “사랑의 신과 순결의 신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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