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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16화 (316/379)
  • 316화

    “드디어 왔구나.”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이었지만 괜찮다.

    아직 다른 죄악의 증상이 나타나지는 않는 걸로 봐서는 분노와 색욕의 칠죄종만 이 세상에 넘어온 것 같았으니까.

    “일단 정아 상태 먼저 보자.”

    연정아는 굉장히 중요한 전력 중 하나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윤아를 지켜줘 태운이 마음 놓고 움직일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이기도 하다.

    그녀를 걱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태운은 바로 비상의 룬을 사용해 하늘을 날아 자신의 집으로 날아갔다.

    집의 문을 열자 윤아가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언니가… 언니가 갑자기 쓰러져서….”태운은 울먹거리는 윤아의 어깨를 치며 괜찮다고 달랜 뒤 연정아의 방으로 들어갔다.

    연정아는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마치 몸살이 난 것처럼 몸에서 열기가 느껴졌다.

    “괜찮아?”

    “어… 괜찮아…. 근데 좀 나가줄래? 지금 참기 좀 힘들거든….”연정아는 자신의 어깨에 있는 혹을 보여주며 말했다.

    그건 과거에 연정아가 태운에게 보여주었던 아스모데우스의 씨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붉게 점멸하며 어지러운 기운을 내보내고 있었다.

    “이건….”

    “너는 괜찮은가 보네….”

    지금 연정아의 혹이 내뿜는 기운은 페로몬과 비슷한 것이다.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성욕을 증폭시키는 기운이었다.

    이 기운은 정신 계열 방어 마법이 있어도 막는 게 쉽지 않았다.

    색욕 그 자체인 아스모데우스의 혈통에서 나오는 기운이었으니까.

    “아… 나는 최근에 얻은 특성 덕분에 괜찮아.”

    “다, 다행이네.”

    하지만 태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태운의 특성인 용사의 하위 특성 ‘물들지 않는 자’ 덕분이었다.

    물들지 않는 자: 자신의 신념이 바뀌지 않는 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악에게 물들지 않으며 누구에게도 현혹되지 않는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어떤 것에도 현혹당하지 않으며 완전히 독립적인 존재가 되었다.’이제야 이 말이 조금 이해되기 시작했다.

    “아무튼 괜찮은 거지?”

    “응…. 30분 정도만 있으면 컨트롤할 수 있을 거야.”태운은 괜찮다는 것을 연정아에게 확인받고 방 밖으로 나갔다.

    “오빠는 괜찮아?”

    연정아의 방에서 나온 태운에게 윤아가 물었다.

    “뭘?”

    “정아 누나 방에 들어가니까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져서… 정아 누나가 빨리 나가라 해서 나가니까 괜찮아지긴 했는데….”“아, 괜찮아. 너야말로 위험했네. 일단 오늘은 내 방에서 자. 거기가 정아한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괜찮지?”

    “응…. 괜찮아.”

    방 밖으로 아스모데우스의 기운이 흘러나오지는 않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일단 오늘은 집 밖으로 가면 안 되겠어.”

    원래대로라면 바로 칠죄종의 소재지를 파악하러 떠났겠지만 지금은 윤아가 걱정되어 일을 나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너무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고 있어. 정아도 곧 괜찮아진다니까.”태운은 연정아가 걱정하지 않게 자연스럽게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하지만 그건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현재 전 세계 흉악범 수용소에서 일어났던 폭동은 쉽사리 진압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한국의 폭동은 전대섭 헌터와 명운 길드의 협동으로 빠른 속도로 제압되고 있지만 인구가 많고 국토가 넓은 국가들은 수많은 범죄자들이 탈옥한 상태라고 합니다. 인도, 중국, 러시아 등의 국가들은 이미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출국과 입국을 통제한 상태이며….]

    칠죄종의 강림은 전 세계적인 재난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칠죄종이 한 번에 모두 강림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고작 둘의 강림만으로 이런 사고가 터졌는데 한 번에 칠죄종 전부가 강림했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겼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

    태운은 윤아의 표정을 보고 채널을 돌렸지만 태운이 돌리는 채널 모두 이 사건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태운은 바로 TV를 끄고 윤아에게 말했다.

    “괜찮아. 무슨 일이 있어도 헌터들이 전부 막을 거니까.”

    “…알고 있어.”

    윤아는 태운의 말에 더욱 울상이 되었다.

    “오빠도 싸우러 가야 하는 거잖아.”

    윤아는 그 사실 때문에 더욱 걱정이 되고 슬펐던 것이다.

    평소에는 다른 친남매처럼 서로 티격태격하며 지냈지만 그래도 윤아에게 태운은 유일하게 남은 혈육이다.

    게다가 지금까지 자신을 키워준 사람이 아닌가.

    윤아는 그 정도 은혜를 모르고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만약에… 오빠가 죽으면….”

    “아니, 그럴 일 없어.”

    태운은 윤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호하게 말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죽지 않을 거고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거야.”그리고 그 말을 함과 동시에 다짐까지 했다.

    “그리고 내 주변 사람도 절대 죽지 않게 할 거야. 아니, 죽어도 내가 살려낼 거야.”불가능한 다짐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지금 헛된 다짐과 희망을 말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불가능하다면 가능하게 만들겠다는 태운의 의지였다.

    “너는 여기서 다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잘 있으면 돼.”태운의 말에 윤아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태운은 윤아 덕분에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최소한의 피해로 이 세상을 지킨다.’

    그게 태운의 최종 목표였다.

    * * *

    끼익.

    “어? 괜찮아졌어?”

    “응, 조금 피곤하긴 한데… 괜찮아졌어. 윤아는?”

    “아, 울다가 지쳐서 내 방에 옮겨줬어.”

    “그래?”

    “근데 너 뭐야? 뭔가 강해진 거 같은데….”

    연정아는 굉장히 지쳐 보였지만 전과 비교해서 확연하게 강해진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말했잖아. 30분이면 컨트롤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설마….”

    “그래, 아스모데우스의 씨에서 뿜어져 나오던 기운은 전부 내 몸에 마기의 형태로 변환돼서 축적되고 있어.”

    “그 강한 기운이?”

    연정아가 윤아에게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최대한 힘을 조절하고 있어 강한 기운처럼 느껴지지 않았지만 아스모데우스의 직접적인 기운이다.

    그 힘은 지금껏 느꼈던 그 어떤 기운보다 강력한 힘이었다.

    “그걸 완전히 네 것으로 만들었다는 거지?”“응. 이제 아스모데우스의 씨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은 온전히 내가 마기를 생산하는 재료가 되어 버린 거지.”

    “오….”

    그 강력한 힘이 마기로 바뀌어 연정아의 힘이 되어준다면 굉장히 든든했다.

    “앞으로 이 힘이 나나 주변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주는 일은 없을 거야.”

    “그건 긍정적이네.”

    연정아는 태운의 옆에 앉았다.

    “너도 대충 알고 있지? 칠죄종들이 강림한 거.”“응, 지금 칠죄종 중에 분노와 색욕의 칠죄종이 강림한 것 같아.”연정아는 태운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빠른 시일 내에 잡아야 해. 녀석들이 노리는 게 뻔히 보이네.”

    “녀석들이 노리는 게 뭔데?”

    태운이 연정아에게 물었다.

    “녀석들은 칠죄종의 완전한 강림이 아니라 순차적인 강림을 선택했어. 그게 뭘 의미하는 것 같아?”“녀석들이 완전한 강림을 노리기에는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가?”연정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것도 있지. 하지만 분노와 색욕은 혼돈 에너지를 수급하기 아주 좋은 칠죄종들이야.”태운은 그 말을 듣고 그제야 그들의 노림수를 깨달을 수 있었다.

    “두 칠죄종으로 혼돈 에너지를 수급해서 다른 칠죄종도 소환하겠다는 건가?”

    “그래.”

    태운은 한숨을 내쉬었다.

    “혼돈 에너지를 수급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죽을지….”칠죄종의 저주는 지구 전체에 내려지는 재난과 같다.

    태운은 자신이 그것을 모두 막을 수 없다는 것에 고통스러워했다.

    “막을 수 없다면 본체를 부수러 가야지.”

    연정아의 말이었다.

    “무슨 말이야?”

    “내일부터 최대한 빨리 전 세계 A급 헌터들을 모두 모아. 아스모데우스를 치러간다.”

    “아스모데우스의 위치도 모르는데….”

    태운의 말에 연정아는 자신의 어깨에 있는 혹을 가리켰다.

    “이게 있잖아. 아스모데우스가 이걸로 지구의 좌표를 찾았던 것처럼 나도 아스모데우스의 위치를 알 수 있어.”

    “아…!”

    태운은 급하게 전대섭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운아, 지금 급하니 나중에….

    전대섭은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흉악범들을 제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 말은 꼭 전해야만 했다.

    “전대섭 선생님. 지금부터 전 세계에 있는 모든 A급 헌터들을 소집해주세요. 아스모데우스의 위치를 알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뭐? 알겠다. 자세한 건 나중에 듣고 일단은 네 말대로 해주마.”전대섭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길드에도 문자 넣어놓을게. 전부 소집될 거야.”“그리고 B급 헌터들은 모두 전국에 퍼져서 치안 유지에 힘 쓰는 게 좋을 거야. 우리가 아스모데우스를 죽인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저주가 지구 전체에 내려질 테니까. B급 헌터라면 80% 정도는 색욕의 저주에 저항할 수 있을 거야.”

    “알았어.”

    “어차피 B급 헌터는 칠죄종과 싸우는 데 큰 도움이 되지 못해.”연정아는 냉정하게 말했지만 태운도 같은 생각이었다.

    B급 헌터들을 데려가 봐야 괜히 피해만 키울 뿐,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태운은 길드에 그렇게 연락을 취했다.

    “그래서 아스모데우스는 지금 어디있는데?”“가까워. 일본이야. 그것도 도쿄. 아마 나로 좌표를 찾아서 지구에 강림하는 과정에서 한국과 가까운 국가 중에 가장 아스모데우스가 원하는 파장을 가진 나라에 강림한 것 같아.”

    “일본…. 그런 경우도 있구나.”

    태운은 일본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문자로 전대섭과 길드에 추가로 문자를 보내두었다.

    그후 연정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걱정인 건 사탄이야. 혼돈 에너지를 가장 많이 수급할 수 있는 게 아스모데우스이긴 하지만 사람들을 가장 많이 죽이는 건 사탄일 테니까.”

    “하긴….”

    분노는 직접적인 폭력성으로 이어진다.

    이번 사건만 봐도 흉악범들이 철창을 뜯어 간수를 죽이거나 맨주먹으로 상대방의 머리가 부서질 때까지 때려죽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지 않은가.

    분노를 주체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연정아는 그래도 괜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도 괜찮아. 분노는 압도적인 강함 앞에선 고개를 숙이는 법이거든.”태운은 그 말에 가볍게 웃으며 화답했다.

    “맞는 말이야.”

    연정아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나는 이제 씻고 자야겠다. 너도 오늘 푹 쉬어둬. 내일부터는 쉴 날도 없을 정도로 바빠질 테니까.”

    “그래. 알았어.”

    연정아가 손님방과 연결되어 있는 샤워실에 들어가자 태운은 거실에 있는 샤워실로 들어갔다.

    ‘내일부터 시작이야.’

    지금까지 자신이 강해지려 한 이유는 부모님의 날조된 역사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이유가 달라졌다.

    이 세상을 어지럽히는 칠죄종을 막기 위해서 태운은 지금까지 강해지기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태운은 에테르와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되었고 신의 용사가 되었다.

    게다가 팔이 잘려도 순식간에 재생하는 초인적인 신체를 얻게 되었고, 마법 하나로 도시 하나를 날려 버릴 수 있는 거대한 힘을 손에 넣었다.

    ‘절대 질 수 없어.’

    인류와 칠죄종의 최종 결전이 이제 막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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