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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311화 (311/379)
  • 311화

    인천의 한 허름한 모텔.

    그곳의 작은 방 침대에 바이튼이 실신한 듯 눈만 뜨고 누워 있었다.

    “아… 어디 가지.”

    바이튼이 이 모텔에 들어온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모텔 주인은 마기로 세뇌해 두었기 때문에 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밥도 알아서 가져다 바치니까.’

    하늘섬에서 먹었던 것과 비교하면 형편없는 컵라면이나 편의점 음식이지만 말이다.

    “하늘섬으로 돌아가고 싶긴 한데….”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잠만 자고 있어도 상관없었다.

    가끔 회의에 참여해야 하는 게 귀찮긴 했지만 그 정도는 평소의 안락한 휴식을 위해 감수할 수 있었다.

    ‘밥도 여기보다 맛있기도 하고.’

    하지만 돌아가면 한동안 귀찮은 일에 시달릴 것이다.

    반년도 더 전에 있었던 사건 당시에 어디에 있었냐느니 징계를 해야 한다느니.

    수많은 절차가 바이튼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은 바이튼이 가장 싫어하면서 효율적인 징계로, 외부 작전 참여라는 벌을 내릴 것이다.

    ‘귀찮다고….’

    귀찮지 않기 위해 하늘섬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하늘섬에 돌아가서 귀찮은 일이 생긴다면 돌아갈 이유가 없었다.

    툭툭.

    바이튼은 모텔 방의 벽을 주먹으로 가볍게 쳤다.

    그러자 모텔 주인이 급하게 달려와 문 앞에 섰다.

    “들어와라.”

    끼익.

    모텔 주인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었고 의식도 없이 몸만 움직이는 인형 같았다.

    바이튼은 정신 계열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이성을 죽이고 명령만 따르게 만드는 인형으로 만들었다.

    “이제 필요 없어. 죽어.”

    스윽.

    50대 중반 남성이었던 모텔 주인은 자신의 턱과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다.

    뿌드득!

    그리고 한 번에 목뼈를 꺾어 스스로 자살해 버렸다.

    “하… 다른 지역의 모텔을 찾아야겠네.”

    이곳은 곧 있으면 경찰이든 헌터든 둘 중 하나에는 걸리게 될 것이다.

    바이튼이 완벽하게 정신 장악을 했다면 모텔 주인이 이상해진 것을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그러지 못해 사람들이 모텔 주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있었다.

    “이제 슬슬 나가야 하나….”

    바이튼이 침대에서 일어난 그때.

    “돌입해!”

    바이튼이 있는 방에 섬광탄이 던져졌다.

    “큭…!”

    그 섬광탄은 평범한 섬광탄이 아니었다.

    태운이 직접 신성력을 가미해 만든 라이트 그레네이드 룬석이었다.

    “젠장… 늦었다. 사람이 한 명 죽었어.”

    “역시 칠죄신교 놈은 봐줄 수가 없다니까. 먼저 간다.”부웅!

    바이튼은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상태에서 바람의 움직임을 느끼고 허리를 숙여 공격을 피해냈다.

    ‘뭐지? 전봇대라도 뽑아서 휘두르는 건가?’바람의 세기가 검이나 창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게, 방금 바이튼의 머리 위로 지나간 것은 거대한 타워 실드였으니까.

    ‘그리고 한 번 더…?’

    첫 번째 공격을 회수하기도 전에 날아오는 두 번째 공격.

    ‘무기가 두 개다.’

    거대한 타워실드 두 개를 동시에 들고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한 명뿐이었다.

    그는 바로 시저였다.

    “시저, 교체다.”

    그 말에 시저가 뒤로 물러났다.

    “16연검.”

    촤자자자작!

    ‘크윽….’

    이번에는 바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공기도 베어 버리는 듯한 깔끔한 검격.

    게다가 인체의 한계와 물리 법칙마저 뛰어넘은 듯한 빠른 속도의 연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상황에서 이것을 피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이토록 깔끔한 검격을 0.5초 만에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에 단 한 명뿐이었다.

    “정일준, 더 밀어붙인다.”

    “그래.”

    정일준과 시저는 바이튼이 도망칠 생각조차 하지 못하게 계속 밀어붙였다.

    삐이-.

    ‘시야는 언제 회복되는거야…!’

    보통 이런 빛에 노출되어 시야와 청각이 차단된 것은 5초면 괜찮아진다.

    게을러 수련을 안 하긴 했지만 명색이 대원로이기 때문에 금방 회복된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10초가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시야와 청각은 회복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왜? 생각보다 더 안 보여?”

    “……!”

    퍼억!

    바이튼은 마치 트럭에 부딪힌 것처럼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그럼, 누가 만든 마법인데.”

    “…….”

    따끔.

    바이튼은 그제야 자신의 피부가 약한 화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거… 신성력이잖아?’

    느껴본 적이 없어서 몰랐지만 교육을 받으며 대충 들은 적이 있었다.

    신성력과 마기는 서로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그런 상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상 신성력과 마기는 상하 관계에 있었다.

    칠죄신교의 전사들이나 원로, 대원로들은 마나를 모두 마기로 치환해 사용하기 때문에 몸 자체에 마기가 가득 차 있다.

    반면에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 중에 ‘신성력만’ 사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신체의 기본 에너지가 마나로 구성되어 있다.

    즉, 신성력을 사용하는 사람은 마기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배가 넘는 피해를 줄 수 있고 마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쟝은 그래서 신성력이 자신들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힘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신성력을 가진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고 그 사람은 레비아탄에 의해 죽었다고 했다.

    그래서 큰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쟝도 항상 신신당부했었다.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무조건 자신에게 보고하라고.

    그토록 강한 쟝이 경계하는 힘, 그게 신성력이었다.

    ‘그런데 신성력을 다루는 사람이 나타났다.’이건 귀찮고 자시고 할 게 아니다.

    ‘죽는다.’

    콰-앙!

    바이튼은 간만에 자신을 감싸고 있던 나태를 벗었다.

    동시에 마기를 뿜어내 자신을 공격한 둘을 밀어냈고 마기로 신성력을 소멸시켰다.

    그러자 금세 시야가 돌아왔다.

    “신성력을 쓰는 놈이 누구냐.”

    바이튼은 마기를 채찍처럼 다루며 물었다.

    “그놈은 여기서 죽여 버리려고.”

    바이튼의 기세가 확실히 달라졌다.

    “긴장해라. 시저.”

    삑.

    정일준은 주머니에 있는 신호기의 버튼을 누르고 바닥에 던졌다.

    “곧 있으면 여기로 한국의 모든 A급 헌터들이 달려올 거다.”

    “상관없어.”

    바이튼은 정일준에게 마기의 채찍을 휘둘렀다.

    ‘생각보다 느린… 잠깐…!’

    휘릭!

    정일준은 그의 채찍을 막으려다가 불길한 예감에 급히 허리를 숙여 피해냈다.

    서걱!

    그러자 정일준의 뒤에 있던 벽이 두부처럼 썰렸다.

    “시저, 조심해라.”

    정일준은 바이튼을 주시하며 말했다.

    “저거 채찍이 아니라… 연검(軟劍)이야.”

    그것도 닿는 모든 것을 베어 버리는 아주 예리한 연검.

    “용케 피했네. 귀찮게.”

    바이튼이 연검을 회수했다.

    “이것도 한번 피해 봐.”

    휘릭.

    콰자자자자작!

    바이튼이 한 번 검을 튕기자 연검은 엄청난 파도를 만들어내며 방 안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크윽…!”

    시저는 정일준의 앞에 서서 타워실드로 바이튼의 공격을 막아냈다.

    “귀찮게 하지 마라!”

    바이튼은 그것을 보고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시저의 방패 사이로 검을 쑤셔 넣었다.

    “흐읍!”

    쾅!

    시저는 방패 두 개를 강하게 부딪쳐 사이에 잇는 바이튼의 연검을 부러뜨렸다.

    마기로 된 물건이지만 형체가 있는 한 물리적으로 파괴되기 마련이었다.

    “버러지 같은 새끼들이 진짜… 귀찮게 하는 데에는 도가 텄어….”바이튼은 더욱 강력한 마기를 분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이튼의 연검은 서너 갈래로 갈라졌다.

    “이것도 막을 수 있나 한번 보자.”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그 성격만 없었다면, 쟝이 오만의 좌에 앉기 전에 칠죄신교에 들어왔다면 나태의 좌가 아닌 오만의 좌에 앉게 되었을 바이튼.

    그가 제 실력을 내기 시작했다.

    * * *

    구찬영의 정보를 바탕으로 인천에 있는 모텔을 전부를 샅샅이 뒤지던 헌터들은 정일준과 시저의 신호를 보고 그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일준과 시저가 신호를 보냈습니다.”

    “어디지?”

    태운은 강일환과 같은 조가 되어 바이튼을 수색하고 있었다.

    “여기서 5km 정도 떨어진 곳이에요.”

    “그리 멀지 않군. 최대한 빨리 달려가지.”

    태운은 비상의 룬을 사용하고 날아가려 했다.

    그게 달리는 것보다 훨씬 빠를 테니까.

    그때, 눈앞에서 마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음…?”

    칠죄신교의 이동 수단인 좌표 지정 텔레포트의 전조 현상이었다.

    “놈들도 냄새를 맡은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순식간에 태운과 강일환이 있는 골목을 가득 채운 50여 명의 칠죄신교.

    그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원로들이었다.

    ‘원로 50명이라….’

    대원로인 바이튼을 시저와 정일준 둘이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각자 수색을 맡은 구역을 생각해보면 인천에 있는 헌터 중 그들의 위치에 가장 가까운 사람은 강태운과 강일환이었다.

    둘 중 한 명은 빨리 지원을 가야 상황이 바뀔 터.

    ‘그렇다고 내가 가버리면 강일환 헌터는 그냥 죽고 말겠지.’강일환 헌터도 A급 헌터 중에서 강한 편이긴 하지만 50명이 넘는 원로들을 상대하는 건 무리였으니까.

    “비상의 룬. 성벽 갑주.”

    태운은 강일환에게 비상의 룬과 성벽 갑주를 사용해주었다.

    “먼저 가세요. 따라가겠습니다.”

    “네가 강한 건 알지만 이 정도 숫자는….”

    “바이튼을 놓칠 생각입니까?”

    “…알겠다.”

    강일환은 태운의 말을 듣고 날아갔다.

    “한 놈이 도망친다! 잡아!”

    “어딜 가려고.”

    태운은 마나로 밧줄을 만들어 날아서 강일환을 추격하려는 원로의 발목을 휘감았다.

    “이거 뭐야!”

    “뭐긴 뭐야. 밧줄이지.”

    태운은 밧줄을 확 잡아당겼다.

    그러자 밧줄에 묶인 원로는 태운에게로 날아왔다.

    “에테르 건틀릿.”

    태운은 날아오는 원로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쾅!

    마치 운석이라도 떨어진 듯한 엄청난 굉음에 주변에 사는 사람들이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치… 칠죄신교다!”

    “으아아아!!!”

    “도망쳐!”

    태운은 혼란을 조금이라도 잠재우기 위해 사고 가속을 사용했다.

    그리고 육감으로 느껴지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대상으로 지정해 안전한 곳으로 텔레포트 시켰다.

    전대섭이 시가지에서 싸울 때마다 항상 하던 일이었다.

    마나를 꽤 많이 소모했지만 상관없었다.

    “마정석 저장.”

    마정석을 흡수해 저장하면 마나를 보충할 수 있었으니까.

    게다가 태운은 지금 아주 평온한 상태였다.

    태운의 특성 마나의 근원이 활성화되어 있었고 태운의 마나는 전투를 시작하고 지금까지 149,999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었다.

    “마력 폭풍.”

    후-우웅!

    태운의 주변으로 마나 입자가 회전하며 원로들을 찢어놓기 시작했다.

    “이 자식…!”

    “녀석이 강태운이다! 진지하게 상대해!”

    원로들은 태운의 정체를 알고 있었고 태운을 상대하기 위해 일단 멀리 떨어졌다.

    “그러면 내가 공격 못 할 줄 알았어?”

    태운은 신장의 룬과 비상의 룬을 동시에 사용했다.

    쾅!

    태운이 땅을 박차고 하늘로 떠오른 순간, 아스팔트에 균열이 생겼다.

    ‘괴력, 장사(壯士)의 룬.’

    하늘로 떠오른 태운의 양손에는 원로가 한 명씩 붙잡혀 있었고 태운은 둘을 바닥에 던졌다.

    콰앙!

    두 원로는 완전히 곤죽이 되어 즉사했고 태운은 천천히 건물 지붕 위로 착지했다.

    “칠죄종의 강림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너희 조금 단단해졌는데?”태운은 에테르 건으로 옆에 있던 원로의 가슴을 꿰뚫었다.

    그 역시 즉사했다.

    “그래도 벌레가 단단해져 봐야 뭔 상관이냐마는….”태운은 아공간에서 검을 하나 꺼냈다.

    “금방 끝내고 너희가 그렇게 따르는 대원로님 잡으러 가야 해서 말이야. 빨리 들어와.”태운은 검으로 까딱까딱거리며 원로들을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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