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310화 (310/379)
  • 310화

    [어제 오후 2시경,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일명 ‘더 바일런스 데이’가 칠죄신교에 의해 일어난 사건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어제 바일런스 데이로 사망한 사람은 한국에서만 2,400여 명에 달했고 전 세계적으로 12만 8,00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공권력이 약한 몇몇 국가들은 이미 국가의 기능을 상실했고 전 세계적으로 범죄률이 급증했습니다. 국가 기관들은 이 현상의 원인을 불안감으로 꼽고 있습니다.]

    “어휴… 저 썩을 놈들….”

    자하르는 휴식 시간에 TV를 보며 인상을 구겼다.

    전 세계적으로 십만 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사건이었고 그의 조국인 러시아도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없었으니까.

    사실 애초에 이 일이 아니었어도 자하르의 머리에는 칠죄신교 녀석들이 쓰레기라는 인식이 박혀 있었지만.

    “안녕하세요. 저 왔습니다.”

    “음? 오늘은 너 안 나오는 날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태운은 그 사건이 있던 바로 다음 날 자하르의 연구실을 찾았다.

    이날은 그동안 수개월에 걸친 마정석 흡수의 자료를 정리하는 날이라 태운이 와서 할 것은 없었다.

    그래서 할 일이나 하라고 해뒀는데 태운이 나타난 것이다.

    “연구 의뢰할 게 하나 있어서요.”

    “의뢰는 무슨…. 뭔지 얘기나 한번 해봐라.”태운은 아공간 주머니에서 완전히 밀봉된 케이지를 하나 꺼냈다.

    케이지 안에는 태운이 메디컬 센터 안에 있던 헌터의 몸에서 떼어낸 벌레가 들어 있었다.

    그 벌레는 여전히 꾸물거리며 케이지 안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 이게 뭐냐?”

    “어제 있었던 그 사건 때문에 저희 메디컬 센터도 난리가 났었거든요. 그때, 한 헌터의 몸에서 발견한 겁니다. 제가 추측하건대 헌터들에게 강제로 칠죄종의 세례를 받게 하는 그런 물건 같습니다.”

    “음?”

    “이 벌레가 문 곳에 칠죄신교의 전사임을 의미하는 문신이 새겨졌거든요.”

    “잠깐… 천천히 말해봐라.”

    태운은 어제 있던 일에 대해 다시 자세히 설명했다.

    “음… 그런 거였나… 그래서 이거에 대해서 연구를 해달라는 건가?”

    “네.”

    “흐음, 난 지금 손이 없고… 이 분야에서는 나보다 나은 사람을 붙여주겠네.”자하르는 그렇게 말하고 연구소 내부 인터폰을 사용해 누군가를 호출했다.

    “금방 올 거다.”

    그렇게 3분 정도가 지나자 연구실 안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아, 또 왜 불러?”

    “아빠가 딸내미 부르는 게 그렇게 잘못한 거냐.”자하르가 부른 사람은 바로 그의 딸인 엘레나였다.

    “일하고 있을 때 부르니까 그러지. 그래서 재밌는 연구라는 게 뭔데?”

    “태운아, 보여줘라.”

    “네.”

    태운은 그 벌레를 보여주었다.

    “으, 이게 뭐야?”

    엘레나는 보랏빛을 띠는 반투명하고 거대한 애벌레처럼 생긴 벌레의 모습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뭐냐면….”

    태운은 자하르에게 했던 설명을 엘레나에게 다시 한번 더 해주었다.

    이해력이 좋은 엘레나는 금방 태운의 말을 이해했다.

    “음, 확실히 이 연구는 필요할 것 같긴 하네. 이걸 모른 상태에서 당했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어.”엘레나는 지금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다.

    “엘레나가 몬스터나 생물 쪽 지식은 나보다 나을 거다.”

    “뭐… 그렇긴 하지.”

    엘레나는 지금까지 수많은 물품을 개발하고 만들어왔다.

    그중 엘레나가 가장 많은 연구를 했던 분야는 바로 생물과 몬스터 분야였다.

    엘레나는 과거 병원에서 일하며 병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을 너무나도 많이 봐왔다.

    엘레나는 그 경험 때문에 병원을 그만두고 연구원으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분과 요소를 가진 몬스터와 던전산 식물들의 등장으로 엘레나는 불치병, 혹은 난치병이라 여겨지던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믿음을 결코 의심하지 않고 지금까지 계속 연구하며 수십 개의 약품을 만들어냈다.

    그녀의 열정은 그 자하르도 광기라고 표현할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고 그녀의 노력으로 이 세상은 난치병, 혹은 불치병이 거의 사라진 세계가 되었다.

    “생물 관련 연구는 나한테 맡겨.”

    엘레나는 태운에게 케이지를 건네받았다.

    “아, 그리고 이것도 받아 가세요.”

    태운은 아공간에서 상자를 꺼내 엘레나에게 건네주었다.

    “이건 뭐야?”

    “제 스킬 중에 열화라는 불이 있는데 마기를 소멸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룬석으로 만들어놓은 거예요. 혹시나 연구를 하다가 그 벌레한테 물리면 그걸 사용하고 물린 부위에 손을 대면 칠죄신교의 문신이 사라질 겁니다.”

    “오호….”

    “일단 안 물리도록 조심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알았어. 알아낸 게 있으면 바로 연락할게.”엘레나는 그 상자와 케이지를 가지고 연구실로 돌아갔다.

    “온 용건은 그것뿐이냐?”

    “네, 일단은 그것뿐인데 여기까지 와놓고 그냥 가면 좀 그러니까 마정석 흡수나 좀 하다 갈까요?”“지금 가지고 있는 건 하급 하나밖에 없어서 나중에 한 번에 부르려고 했는데 말이지.”자하르는 마정석을 보관해두었던 방에서 마정석을 꺼내 왔다.

    “그런데 오늘은 일없나? 네 길드도 상당히 바쁠 것 같은데.”“지금은 괜찮아요. 내일 있을 회의 때문에 비서가 오늘은 쉬라고 일정 싹 다 빼줘서 말이죠.”“음, 그렇구만. 그럼 준비하고 캡슐에 들어가라.”

    “네.”

    태운은 캡슐에 들어가서 마정석을 흡수했다.

    * * *

    [체력 스탯이 ‘1’ 상승합니다.]

    [근력 스탯이 ‘1’ 상승합니다.]

    [스킬 ‘절제’를 획득합니다.]

    * * *

    태운은 급히 소집된 한국 헌터 협회의 회의에 참여했다.

    이 자리에는 한국의 모든 A급 헌터들이 모여 있었다.

    “이런 사건인데 국가가 힘을 합치지 않으면 안 될 텐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상황이 급하기도 하고 범죄율이 급증해 사회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전 세계 헌터들이 모일 수 없어 국가별로 대책 회의를 하고 추후에 한 번 더 자리를 마련하는 것으로 정했다.

    한국 헌터 협회장은 전대섭이 가지고 온 정보를 정리한 자료를 헌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헌터들이 그것을 읽고 있을 때 입을 열었다.

    “칠죄종의 짐승이 나타났다는 사실이 발설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겁니다.”

    “칠죄종의 짐승이라….”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괴물이다.

    하지만 과거 데블스 에이지 시절에 전선에서 싸웠던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괴물이다.

    특히 당시 활동했던 동아시아의 헌터들이라면 모를 수가 없었다.

    수일 동안 날뛰며 수백 명의 헌터들의 목숨을 앗아간 그 괴물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심지어 때에 맞춰 강철운 헌터와 지소연 헌터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피해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그놈이 나타났다는 건 칠죄종의 강림이 머지않았다는 말입니다.”“제2의 데블스 에이지가 시작된다는 말인가요?”협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그들은 혼돈 에너지를 많이 모을 수 있었겠죠.”

    “허어….”

    “미치겠군.”

    그때, 전대섭의 제자였던 강일환 헌터가 손을 들어 물었다.

    “협회장님은 칠죄종의 강림이 언제쯤이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

    협회장은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그러자 전대섭이 대신 입을 열었다.

    “3개월. 그 안에 칠죄종이 강림할 거야.”

    “……!”

    그 말을 들은 헌터들은 경악했다.

    “3개월 안에 다시 데블스 에이지가….”

    “그 지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건가….”태운은 어렸을 때의 기억이라 그때가 어땠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게다가 한반도 수비대의 대장이었던 강철운의 아들이었기에 최대한 안전한 곳에서 살아 그때가 그렇게 끔찍했다고 기억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헌터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초, 중학생 때 데블스 에이지를 경험했고 몬스터를 눈앞에서 보고 죽기 살기로 버티며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그때, 전대섭이 말했다.

    “하지만 괜찮다. 우리의 전력은 과거와 비교해서 더 높아졌으니까.”전대섭이 천천히 그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과거에 애송이였던 나는 그때보다 훨씬 강해졌고 실력도 상승했다. 데블스 에이지 시절에 싸웠던 헌터들이 대부분 은퇴했다고 하나 그들도 아직 싸울 수 있다. 오히려 더욱 노련해져 실력이 늘었을지도 모르지. 나와 셀이 그런 것처럼.”

    “…….”

    “그리고 신세대의 인재들이 있지 않나.”

    전대섭은 강태운, 정일준, 시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는 과거 수천 명이 상대해 수백 명의 사망자를 낸 칠죄종의 짐승을 사망자 없이 제압했을 정도로 강해졌다.”전대섭의 말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데블스 에이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데블스 에이지로 인한 피해를 두려워해라. 그리고 그 피해를 얼마나 줄일 수 있을지만 생각해야 한다.”지금 인류는 데블스 에이지를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인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적이 강한 것은 사실이나 못 이길 것도 없다. 흠집도 내지 못했던 드레이그 고흐도 잡은 게 우리 아니었나.”전대섭의 말을 들은 헌터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전 헌터님의 말이 맞습니다.”

    “그래, 못 할 것도 없지.”

    헌터들의 사기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협회장은 앞의 모니터를 켜며 회의를 시작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데블스 에이지에 대한 대비입니다.”당연한 말이었다.

    지금까지 모든 헌터 협회의 목표는 모든 위협들로부터 시민을 지키고 데블스 에이지가 다시 일어나지 않게 막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데블스 에이지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기정사실이 된 순간부터 헌터 협회는 목표를 새로 설정해야 했다.

    “그래서 협회는 더 많은 헌터를 양성하고 헌터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태운은 손을 들고 발언권을 얻었다.

    “그건 동의합니다. 더 많은 헌터들이 있어야 많을 적들을 막을 수 있고 조금이라도 더 강해야 녀석들을 죽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방법이 거기서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헌터들이 강해지는 것도 분명 중요하지만 적의 전력을 깎는 것도 중요하거든요.”태운은 자신이 가지고 온 사진을 헌터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금 제가 비밀리에 쫓고 있던 사람입니다.”

    “그게 누구입니까?”

    태운이 보여준 사진에 있는 남자는 퀭한 눈을 가진 잘생긴 남자였다.

    “이 사람은 칠죄신교의 대원로 중 한 명인 바이튼입니다.”

    “음?”

    그 말을 하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과거 하늘섬 타격 작전 중에 보이지 않았던 대원로 중 한 명으로 부산의 해변에서 수십 명의 사람들을 생매장했던 사건의 주범이죠. 이자는 나태의 좌에 앉아 있는 대원로로서 칠죄신교에 대한 충성심이 그리 깊지 않은 대원로입니다.”헌터들은 태운의 말에 반발했다.

    “혹시 회유라도 하자는 말입니까?”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칠죄신교의 대원로를 회유하다니!”태운은 그들의 반발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뇨. 회유라니요. 가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그럼….”

    “녀석을 붙잡아 칠죄신교 본거지의 위치를 알아낼 겁니다.”태운은 결연한 눈빛으로 헌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지금 이 자리에서 제2의 하늘섬 타격 작전을 제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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