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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96화 (296/379)
  • 296화

    “이번에는 병사들이 잘 해줘야 할 것 같네요.”

    “그러게 말이다.”

    태운과 가도는 병사들을 불러 모은 뒤 조용히 말했다.

    이번 전투는 병사들이 정말 잘해줘야 했다.

    그림자 괴물들이 가웨인에 의해 너무나도 쉽게 무력화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태운의 그림자 안에 있는 생명 에너지들은 바로 전 전투에서 거의 바닥이 나 버렸다.

    해봐야 그림자 야수 20마리 정도를 소환하는 게 고작이다.

    ‘이제는 병사들이 해줘야지.’

    지금 펜달 왕국군은 20만 정도다.

    케빈의 항복으로 병사들을 얻은 직후에는 30만 정도의 규모였지만 펜달 왕국 본토에서 전쟁이 벌어질 징조가 보인다고 하여 10만 정도의 병사를 펜달 왕국으로 보냈다.

    20만 명의 군대.

    하나의 대륙을 정복한 헤온 제국을 공격하기에는 굉장히 적은 숫자다.

    물론, 그 숫자로도 태운의 그림자 괴물들로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아주 쉽게 헤온 제국의 영지와 요새를 함락시켜왔다.

    하지만 지금은 가웨인 때문에 그림자 괴물들을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적군의 규모는 3만 정도고 우리는 20만 정도….”기습을 알아차렸고 대비까지 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적인 우세까지 가지고 있으니 질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가웨인을 막을 수 있어야 가능한 이야기지.’태운은 가웨인에게 잭이 가지고 있는 ‘전장의 오라’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 스킬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고 있다.

    아수라와 싸울 때는 혼자였기 때문에 사용한 적이 없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비슷한 스킬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만약 지금도 그 스킬을 가지고 있다면… 수적인 메리트가 무색해져.’헤온 제국의 정예병은 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사람들이 가웨인의 버프까지 받게 된다면 펜달 왕국의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것이다.

    ‘그럼 우리가 가웨인을 막는 데 성공해도 의미가 없어지지.’병사들이 다 죽으면 가웨인을 막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용감한 펜달 왕국의 병사와 용맹한 멀른 백작령의 병사들! 그대들은 개혁의 자리에 서 있다!”병사들이 미쳐 날뛰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확실한 명분이다.

    게다가 지금 펜달 왕국군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숨을 걸고 싸웠던 적이 섞여 있다.

    케빈이 잘 말해줘 배신할 일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확실히 펜달 왕국군보다는 충성심이 떨어진다.

    “펜달 왕국군이여, 듣거라! 헤온 제국은 옆 대륙에 있는 우리를 짓밟기 위해 80만이라는 대군을 휘몰아쳐 우리를 침공했다. 그리고 그대들은 그놈들을 몰아냈다! 지금은 그 위치가 바뀌었을 뿐! 다시 한번 적들을 몰아내자!”

    “““우오오오오!!!”””

    펜달 왕국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헤온 제국에서 투항해온 병사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펜달 왕국군과 공유하는 정서가 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도 엄연히 같이 싸우는 전우다.

    태운은 그들 또한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헤온 제국에서 투항한 병사들 또한 듣거라. 헤온 제국의 황제를 믿을 수 있는가? 자신의 욕심으로 8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수의 백성을 차출했고 그중 절반의 목숨을 잃게 했다. 그것으로 얻은 게 무엇인가! 영토? 물자? 강한 국력? 헤온 제국이 얻은 것이라곤 펜달 왕국의 분노와 복수뿐이다. 이리도 멍청한 헤온 제국의 황제에게 그대들은 진정 목숨을 바치고 몸을 기댈 수 있는가?”백성들에게 맹목적인 충성만을 강요하는 이 세계의 왕정.

    병사들은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듯 멍해졌다.

    태어난 나라에 충성하는 것에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과거 나를 찾아온 펜달 왕국의 기사가 한 말이 있다.”당연한 일이지만 헤온 제국의 백성들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일 것이다.

    “기사가 존중받고 존경받는 이유는 존중해주는 이를 위험으로부터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지켜드리지 못한 저는 존중받을 자격이 없습니다.”레일로프의 마정석을 흡수할 때 알레한드로에게 들었던 말이다.

    헤온 제국에서 투항한 병사들은 대부분이 농민들이었다.

    강제로 군대에 차출되어 수년간 전장을 돌아다닌 사람들이다.

    모두 전장을 돌아다니며 거칠고 난폭한 성정을 가지게 되긴 했지만 모두 많지 않은 나이에 가족의 품을 떠나 외로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했던 헤온 제국과 달리 펜달 왕국은 충성과 의무의 대가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펜달 왕국이 그대들에게 더욱 윤택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 이미 펜달 왕국은 거의 대부분의 영지에 마법으로 만든 등불이 밤을 비추고 있으며 모든 백성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농사법도 헤온 제국의 농사법보다 발전된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목을 걸고 헤온 제국의 백성들에게도 이것을 모두 평등하게 제공할 것을 약속한다.”태운은 더욱 목소리 높여 말했다.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현명한 인간이 되어라!”태운의 목소리에 군중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 같은 평민이 그런 말을 했다간 불경죄로 목이 달아납니다!”“맞는 말이지! 우리처럼 없는 사람이 하면 반역죄로 몰릴 수도 있어!”

    “옳소!”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주든가!”한 명의 말은 점점 커져 군중의 목소리가 되었고 펜달 왕국군은 굉장히 소란스러워졌다.

    그 소란스러운 와중에 태운은 아무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금 우리가 그 세상을 만들러 가고 있는 것 아닌가.”태운은 적의를 활용해 압박감을 조성한 후 격앙되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모든 병사들이 입을 다물었다.

    수만 명이 모인 곳에서의 침묵,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태운은 다시 병사들이 입을 열기 전에 소리쳤다.

    “그 세상은 너희들이 만드는 것이다! 누가 만들어주는 것도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도 아닌 너희의 손으로 직접 만드는 것! 그것을 내가, 우리가 도와주겠다!”태운의 말에 펜달 왕국군, 투항한 헤온 제국군 할 것 없이 모두의 사이가 하늘을 찌르기 시작했다.

    * * *

    “말이 많이 늘었더구나.”

    “감사합니다.”

    태운과 가도는 선봉에 서서 자신들만 들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나저나 그건 임기응변이었나?”

    “뭘 말이죠?”

    “병사들이 소란을 일으킨 것 말이다.”

    “아… 그거요?”

    병사들이 소란을 피웠을 때 태운의 대응은 굉장히 훌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처음에 입을 열었던 병사, 제가 심어놓은 녀석입니다.”

    “음?”

    “몇몇 병사들을 심어두고 제가 시킨 대로 말하도록 했고 저는 거기에 맞는 대응법을 준비한 거죠. 생각보다 잘 풀리기도 했어요. 마음대로 안 움직여줄 가능성도 있었는데 말이죠.”컨트롤하기 어려운 변수는 항상 가까운 곳에 둬야 하는 법.

    하지만 태운은 그 변수를 컨트롤하기로 정했다.

    변수를 자신의 손 위에 두고 있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그렇게 일을 벌여놨는지….”“케빈의 항복을 받아내고 그 병사들을 흡수했을 때부터 준비해온 일입니다. 사용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예기치 못한 일은 언제나 일어나기 마련이니까요. 미리 준비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참… 넌 내 상상을 언제나 뛰어넘는구나.”

    “저기 오네요.”

    가도와 태운은 멀리서 보이는 가웨인과 그의 병사들을 보고 동시에 검을 뽑아 들었다.

    “돌격!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창을 들어라!”

    “““우오오오오!!!”””

    병사들이 돌격하기 시작했고 태운과 가도는 그 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강한 적을 상대할 때 승률을 높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기습이지.’전투를 시작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이긴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전투를 굉장히 유리하게 가져갈 수 있다.

    그때, 가웨인이 태운과 가도를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을 보니, 왜 움직이지 않는 거냐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을 확인한 태운이 조용히 입만 움직여 말했다.

    “갑니다.”

    “그래.”

    지금 태운이 가웨인보다 뛰어난 점이 단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마법 실력이다.

    ‘텔레포트.’

    이 세상에는 텔레포트같이 어려운 마법은 그 개념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

    황실 마법사였던 벨자하도 모르는 마법을 기사인 가웨인이 알 리가 없었다.

    챙!

    태운과 가도는 순간 사라져 가웨인의 눈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크윽…!”

    가웨인은 가도의 검은 막았지만 태운의 검은 막지 못하고 그저 몸을 비틀어 큰 상처를 입는 것만 겨우 피할 수 있었다.

    갑옷과 갑옷 사이의 어깨를 길게 베인 가웨인은 순간 흠칫했다.

    “기사님이 공격당하신다!”

    “모두 기사님을 보호해라!”

    “어딜.”

    태운은 남은 생명 에너지를 모두 짜내 그림자 괴수 한 마리와 그림자 야수 10마리를 소환했다.

    태운의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그림자 괴물들은 순식간에 뛰어나가 접근해 오는 병사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이것들이!”

    “대장끼리 싸우자고.”

    가웨인이 달려다가 그림자 괴물들을 저지하기 위해 고개를 돌렸지만 바로 태운과 가도의 공격이 들어왔다.

    “큿….”

    가도와 태운의 공격 하나하나는 그렇게 위력이 높지 않았지만 둘은 모두 갑옷 사이의 취약한 곳을 노렸다.

    둘의 공격을 무시하고 그림자 괴물들을 저지하기 어려웠다.

    “버프 부탁드립니다!”

    “그래. 하이 부스트.”

    마나의 총량이 적은 태운 대신 가도가 태운에게 버프 마법을 사용해주었다.

    한층 빨라진 가도와 태운의 맹공에 가웨인은 어쩔 수 없이 병사들에게 소리쳤다.

    “이 둘은 내가 맡겠다! 너희들은 스스로의 싸움에 힘써라!”

    “아직 여유가 넘치나 보네.”

    카-앙!

    태운은 검에 마나를 주입한 후 가웨인에게 휘둘렀다.

    가웨인은 태운의 검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다시 가도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가도는 왼팔로 검을 휘둘렀지만 곧바로 가웨인에 의해 막혔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가도는 오른팔을 금속으로 재구성하고 가웨인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퍼-억!

    가웨인의 안면에 가도의 주먹이 박혔고 가웨인이 살짝 주춤한 사이 태운이 검을 휘둘렀다.

    “…완전한 축복, 천상의 번개”

    태운의 검이 가웨인의 몸에 닿기 직전, 가웨인이 작게 읊조렸다.

    그 순간, 가웨인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며 그의 몸에 짙은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매직 미사일!”

    태운은 가도의 어깨를 붙잡고 매직 미사일의 반동으로 몸을 뒤로 날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가도는 인지하지도 못하고 태운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미친… 벌써 이걸 가지고 있었어…?”

    태운이 과거에 아수라와 싸울 때마다 시작과 동시에 사용했던 스킬인 ‘완전한 축복’.

    아수라의 분신들이 태운에게 달려들 때 사용했던, 한 번의 공격만으로도 분신들을 재로 만들어 버렸던 ‘천상의 번개’.

    그것들의 성능이 마정석 안의 태운이 사용할 수 있는 그 어떤 마법보다 강력했기에, 태운은 가웨인이 아직은 그 기술들을 얻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런 미친….”

    “감이 좋군. 이 공격을 피하다니.”

    가웨인의 반경 10M 안에 있는 생명체는 그 어떤 것도 살아 있지 못했다.

    가웨인의 주변에 있던 식물들은 순식간에 불타 재가 되어 있었다.

    “너희 둘을 헤온 제국의 위협이 될 거라 판단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처단하겠다.”가웨인은 성스러운 빛을 등에 업고 태운과 가도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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