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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95화 (295/379)
  • 295화

    “용사라고 하더니… 가웨인이 아수라랑 싸웠던 그 녀석이었나…?”태운은 가웨인이 아수라를 상대로 한 세계의 명운을 짊어지고 싸우던 용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순식간에 심란해졌다.

    가웨인의 정체가 그 용사라는 것은 지금의 태운이 그를 이기지 못한다는 뜻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용사로서의 축복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것 같지만….’가웨인은 아직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듯했다.

    아수라와 싸울 때만큼의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태운에게는 굉장히 위협적이었다.

    ‘그림자 야수나 괴수는 가웨인의 옆에 서기만 해도 무력화돼.’고통이나 공포를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던 그림자 야수와 괴수들은 가웨인 옆에 서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워하며 뒤로 물러났다.

    어둠 성향을 가지고 있는 태운의 그림자 괴물들이 신성력을 담고 있는 가웨인의 빛에 반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병사를 물려야 할 것 같군요.”

    태운의 판단은 빠르고 정확했다.

    지금껏 그림자 야수가 밀리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병사들이 너무나 간단하게 격퇴당하는 그림자 야수를 보면 사기가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일단 후퇴한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태운은 가웨인 하나 때문에 병력을 물렸다.

    그건 조금의 변명도 통하지 않을 분명한 사실이었다.

    * * *

    “가웨인… 생각보다 훨씬 강하군. 아니, 그 정도가 아니야.”가도는 가웨인의 강함을 보고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가웨인의 강함은 태운의 강함과 수준도 방식도 달랐으니까.

    마치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온 듯한 힘이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것 말고 다른 것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다.

    “케빈 모란트, 잠시 나가주시겠습니까? 둘이 할 말이 있습니다.”

    “아, 알겠습니다.”

    태운은 케빈을 내보내고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도록 마법을 사용했다.

    가도도 태운이 마법을 사용한 것을 알아차리고 그가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할 것임을 직감했다.

    “이렇게까지 하면서 할 말이란 게 뭐지?”

    “하… 이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건 분명한 것 같네요.”

    “무슨 말이지?”

    가웨인이 아수라와 싸웠던 그 용사라면 이 세상에는 아수라가 강림한다.

    ‘그리고 실제 역사대로라면… 아수라에 의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파괴되지.’그 이후 가웨인은 어찌어찌 아수라를 해치우고 세상을 원래대로 돌리기 위해 신들의 세상에 들어갔다가 세상을 되돌리는 것을 실패했다.

    그렇게 가웨인은 죽게 되었다.

    “아수라라는 강력한 악마가 이 세상을 침략할 겁니다.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가웨인이 지금 18살이니 20년 안에는 나타날 것 같네요.”태운이 아수라와 싸울 때 가웨인의 나이는 대충 30대 중후반인 것 같았으니까.

    “아수라? 그게 뭐지?”

    “6개의 팔이 달린 붉은색 근육질 괴물입니다. 사실 이렇게 표현한다고 해서 그 녀석의 위험성을 전부 표현할 수 없는데….”

    “녀석의 강함은?”

    가도는 태운이 이렇게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우리가 공격하고 있는 황성을 주먹질 한 번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는 정도입니다.”

    “허….”

    “실제 역사에서는 가웨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단 한 명도 남지 않았죠.”

    “…재앙이군.”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 세상에 아수라가 곧 나타난다.

    만일 실제 역사대로 흘러간다면 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웨인을 죽이면… 아수라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진다.’잭과 레일로프, 라온, 가도도 약한 건 아니지만 아수라의 발끝에도 닿지 못한다.

    ‘모든 스탯이 300이 넘는 상태였던 가웨인도 신체 능력에서는 한참이나 밀렸을 수준이니까.’만약 가웨인에게 신성력이라는 힘이 없었다면 태운이 수천 번 도전했어도 아수라를 이기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나저나 실제로 아수라를 잡은 가웨인도 대단한 놈이야.’수백 번이나 도전해 겨우 이긴 태운과 달리 가웨인에게는 한 번의 기회밖에 없었을 테니까.

    “그런 놈이 이 세상에 온다니….”

    가도의 한숨이 깊어졌다.

    “하….”

    그건 태운도 마찬가지였다.

    온갖 수난을 겪고 역경을 이겨내 여기까지 왔는데 20년 내로 세상에 종말 수준의 재앙이 덮친다니 어찌 심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말입니다, 가웨인을 포섭할 방법이 없을까요.”“하긴… 확실히 가웨인을 포섭해야 할 것 같긴 하군.”가웨인을 포섭하지 않고는 저 성을 함락시킬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기적적으로 가웨인을 죽인다고 해도 문제가 생긴다.

    “가웨인 없이는 아수라를 막을 수 없습니다.”미래의 가웨인은 지금의 태운이 봐도 사기적인 스펙을 가지고 있었다.

    앞으로 그런 강함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긴 할까 싶은 수준이었다.

    그런데 지금 가웨인을 죽이면 용사 없이 아수라를 잡아야 하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인류에게 그보다 절망적인 상황은 없을 것이다.

    “케빈에게 가웨인을 설득할 방법을 한번 물어봐야겠군.”“그래야겠습니다. 우린 가웨인에 대한 정보가 너무 적으니까요.”태운도 미래에 있을 일과 미래에 가웨인이 가질 능력과 힘에 대한 정보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가웨인의 성격이나 배경 같은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다.

    “애초에 케빈을 내보낼 이유도 없었겠구나.”“그렇네요. 의견을 구하려면 말은 해야 할 테니…”“그리고 케빈이 이걸로 충격을 받아서 문제를 일으킬 사람은 아니니 말이다.”가도는 밖으로 나가 케빈을 다시 불러왔다.

    “무슨 일입니까? 어… 뭔가 갑자기 조용해진 것 같은데….”케빈은 다시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이질적인 느낌에 조금 당황한 듯했다.

    “제가 사일런스 돔을 사용했습니다.”

    “사일런스 돔…? 그게 무엇인지….”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주는 마법이다. 소리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해주는 마법이긴 하지만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도 어느 정도 막아줘서 조용해진 것처럼 느껴진 걸 거다.”“아… 이해는 안 되지만 일단 알겠습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시려고 부르신 건지….”

    “아, 그게….”

    태운은 지금까지 가도와 나눴던 이야기를 케빈에게도 들려주었다.

    “하… 그게 무슨….”

    케빈도 만만치 않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가도의 말대로 케빈은 금세 정신을 차리고 태운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실 생각인 겁니까.”

    “일단 가장 좋은 방법은 가웨인을 포섭하는 겁니다.”그 말을 들은 케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웨인을 포섭한다… 정말 그 방법밖에 없는 겁니까?”“아직까진 그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가웨인을 포섭한다는 건 그거야말로 불가능한 일일 겁니다.”“가웨인의 충성심이 그 정도로 강합니까?”

    케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웨인은 가이아 교단의 용사로 임명받고 스스로 헤온 제국의 기사로 들어왔습니다.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들어오자마자 엄청난 충성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헬리온 2세는 그런 가웨인을 좋게 봤고 바로 자신의 측근으로 들였다고 들었습니다.”

    “흠….”

    “그리고 헤온 제국에 반하는 세력은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직접 토벌할 정도로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하더군요. 이번 전쟁에도 전선에 나서고 싶어 했는데 헬리온 2세가 허가하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충성심이 대단하군.”

    가도도 케빈의 말을 듣고 가웨인의 충심을 인정했다.

    가웨인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는 출세에 큰 뜻이 없는 것 같았다.

    즉,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헤온 제국의 적을 없애기 위해 움직인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가웨인의 충성에는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그렇지?”

    “가웨인의 성격이 헤온 제국 황실의 성향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는 겁니다. 가웨인은 기본적으로 이타적이고 정직하며 올곧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헤온 제국의 황실은 아시다시피 승리를 위해서라면 적장의 가족까지 인질로 잡는 행위까지도 용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확실히 그렇네요.”

    “게다가 가웨인은 그런 행동을 정말로 증오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반대의 말을 꺼낸 적이 없었죠.”이상하긴 했다.

    잠깐의 설명만으로도 가웨인은 굉장히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안위나 출세보다 신념을 지키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오히려 충성을 한다?’

    이상한 것이 설명만 대충 들은 태운에게도 느껴졌다.

    “뭔가 약점을 잡힌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군요.”케빈이 대충 예상하고 있던 이유를 말해보았지만 가도와 태운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건 아닐 거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만약 약점이 잡힌 거라면 헬리온 2세가 가지 말라는 전장에 나서겠다고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그렇긴 하지만….”

    케빈도 자신의 가설이 틀렸음은 대충 알고 있었다.

    그저 답답한 마음에 한 말이었을 뿐이었다.

    “약점을 잡힌 게 아니라면 가웨인이 왜 헤온 제국에 충성하는 것인지… 감도 잡히질 않는구나.”“가웨인이 헤온 제국에 바라는 게 있는 거 아닐까요?”케빈의 말에 태운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바라는 거라…. 가웨인이 금품이나 권력, 명예에 욕심이 있는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죠.”

    “그게 아니라면….”

    태운과 가도, 케빈이 가웨인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하늘에 떠 있던 해가 떨어져 밤이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하… 일단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내일을 위해 잠부터….”태운이 휴식을 위해 이야기를 끝내려 한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감각을 느꼈다.

    “강태운.”

    가도도 태운과 똑같은 감각을 느낀 것인지 심각한 표정을 하고 태운을 불렀다.

    “네, 느꼈습니다.”

    “케빈, 병사들을 모두 깨워라. 전투 태세를 갖추라 말하고.”가도는 태운도 자신과 똑같은 감각을 느꼈다는 것을 확인하고 케빈에게 명령을 내렸다.

    “알겠습니다.”

    케빈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지만 둘의 표정과 가도의 명령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적습이다.”

    “최소 3만 명 규모의 기습입니다.”

    그것도 가웨인이 직접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냐고 할 것도 없었다.

    가웨인이 자신의 힘을 조금도 숨기지 않고 일부러 퍼뜨리면서 다가오고 있었으니까.

    ‘가웨인에 대한 대책을 세우지도 못했는데….’그나마 다행인 것은 태운이 마나 실을 퍼트려 얻은 정보에 의하면 헤온 제국 최강의 기사 중에 이곳에 온 사람은 가웨인뿐이라는 것이다.

    이곳에 온 사람이 가웨인 혼자라면 그를 막는 것이 아주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그렇다고 쉬운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간만에 저랑 합을 한번 맞춰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난 이제 늙어서 자네를 따라가기 벅찰 것 같네. 자네가 잘 맞춰주게.”철-컥.

    가도와 태운은 옆에 벗어두었던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아직 현역이시면서 늙었다고 하시면 젊은 놈들 전부 눈물 흘립니다.”

    “조용히 하고 나오기나 해라.”

    “옙, 알겠습니다.”

    태운과 가도는 자신의 옆에 놔두었던 검을 들고 막사 밖으로 걸어 나갔다.

    둘 모두 죽을지도 모르는 전장을 앞두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건 방심도, 만용도 아니었다.

    단순한 자신감이었다.

    둘은 아주 작은 가능성이라도 열려만 있다면 그것을 비집고 들어갈 자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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