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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91화 (291/379)
  • 291화

    울-컥.

    잭의 입에서 검붉은 피가 쏟아져나왔다.

    그 직후 벨자하의 웃음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멍청한 놈… 크흐흣….”

    잭은 치열한 전투 끝에 벨자하의 왼쪽 가슴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검에서 전해지는 감각으로 심장을 꿰뚫었다는 것까지 느꼈다.

    쓰러지는 벨자하를 보고 잠시 동생들 생각에 집중을 놓았다.

    “빌어먹을….”

    그 방심의 결과가 이것이다.

    ‘나는 또… 멍청한 실수 때문에… 하늘이 내린 기회까지 놓치는구나….’잭의 정신이 점점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벨자하!!!”

    태운은 벨자하에게 소리치며 그림자 괴수의 등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검을 뽑아 마나 블레이드를 생성했다.

    위력이나 범위를 배제하고 온전히 절삭력에 치중된 마나 블레이드였다.

    서-걱!

    낙하 속도까지 실린 태운의 공격은 금속으로 된 벨자하의 팔을 단번에 잘라냈다.

    “끄아아악!!!”

    벨자하는 단번에 끊어진 자신의 팔을 보고 고통스러워했다.

    그사이 태운은 잭을 벨자하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옮겼다.

    “잭! 정신 차려! 이런 곳에서 죽을 수는 없잖아!”

    “으…으윽….”

    태운의 목소리는 가라앉던 잭의 의식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다.

    “하… 난 언제나 너에게 도움만 받는군….”“그딴 말은 죽을 때나 해. 너 아직 죽을 때 안 됐어. 힘이나 빼. 팔 뽑을 테니까.”태운은 잭의 복부에 박힌 벨자하의 팔을 뽑아냈다.

    그리고 회복 마법을 사용해 잭의 출혈을 멈추고 치명적인 상처가 더욱 악화되지 않게 조치했다.

    “겉으로는 상처가 거의 아문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의 상처는 아직 다 낫지 않았어. 이제는 움직이지 마.”태운은 그림자에 쌓인 생명 에너지로 그림자 야수 세 마리를 소환해 잭을 지키게 했다.

    그리고 벨자하와 싸우며 지친 가도와 레일로프, 라온에게도 말했다.

    “벨자하를 직접 죽이고 싶은 마음은 알지만 이제는 쉬셔야 할 것 같습니다.”태운은 벨자하의 모습을 보고 지금의 벨자하가 어떤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본인을 키메라로 만든 모양이네.’

    벨자하는 단순히 신체 능력을 높이겠다고 자신의 몸을 저 꼴로 만들 사람은 아니다.

    ‘가도의 팔을 가지고 스틸 바디를 사용한 걸 보면… 아마 이식한 신체의 주인이 가지고 있던 특성이나 스킬을 얻을 수 있는 거겠지.’태운은 거의 확신에 차서 벨자하의 상태창을 열어보았다.

    “허 참….”

    벨자하의 상태창은 현실의 태운보다도 길었다.

    특성은 30개가 넘었고 스킬도 50개에 가까웠다.

    ‘예전에 봤던 일본의 카츠보다 많은 거 같은데?’일본의 헌터인 카츠, 사람을 죽이고 그의 특성과 스킬을 빼앗는 능력을 가진 일본의 헌터였다.

    칠죄신교과 결탁해 한국과 일본을 한 번에 위험에 빠뜨린 장본인이기도 했다.

    ‘벨자하 녀석…. 자신의 몸에 저 짓을 하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을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벨자하는 결코 자신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하지 않는다.

    해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도 되도록 하지 않는 편이었다.

    즉, 벨자하는 자신의 몸에 저것을 적용하기 전에 수많은 사람들에게 장난질을 쳤을 것이다.

    “참….”

    생각할수록 끔찍한 사람이었다.

    “끄으윽….”

    벨자하는 팔이 잘린 부위를 붙잡고 일어났다.

    여전히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네놈의 팔도 아닌데 왜 고통스러워하지?”

    “강태운… 네놈…!”

    벨자하는 태운을 보고 슬쩍 뒤로 물러났다.

    4명과 싸우면서도 조금의 자신감도 잃지 않았던 벨자하가 태운을 마주한 것만으로 위축된 것이다.

    태운은 벨자하와 단 한 번 만나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벨자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벨자하가 태운을 만났던 때는 전쟁이 벌어지기 전이었다.

    벨자하는 처음으로 공격할 세라오니라는 영지에 정체를 숨기고 직접 정찰을 나간 적이 있었다.

    그렇게 세라오니를 걷고 있을 때 가도와 함께 지나가는 태운을 보았다.

    그 순간, 벨자하가 받은 감상은 간단하지만 가히 충격적이었다.

    ‘인간의 것이 아닌 것 같이 깨끗하고 순수한 마나.’평범한 수준이었다면 질투를 했겠지만, 태운의 마나는 질투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깨끗했다.

    넘볼 수 없을 수준의 실력이나 강함은 경외심을 불러온다. 그러니 질투라는 감정이 생길 수가 없었다.

    벨자하는 호기심이 동했다.

    벨자하는 세라오니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나 쥐를 이용해 태운을 염탐했다.

    그 이후에 알게 된 것들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강태운이 가지고 있는 마법에 대한 지식은 자신의 상상을 초월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지식을 총동원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벨자하는 그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것이 벨자하가 태운의 생각보다 높은 성취를 이룬 이유 중 하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벨자하는 태운에게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태운이 홀연히 사라지고 10여 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벨자하는 스스로 엄청난 성장을 이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10년간 성장한 강태운도 지금의 자신이라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경외심이 오만함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한편, 태운은 벨자하를 노려보며 나섰다.

    “벨자하. 나는 너에게 직접적인 원한은 없다.”하지만 보고 들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가도의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잭의 동생들이 죽은 것을 보았고 잭로프의 옆에 있던 도적의 마정석을 흡수하며 벨자하의 만행을 보았다.

    그리고 이번 마정석을 흡수하면서 그 원한을 한 번 더 상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고 그 일에는 네가 너무나도 방해가 된다.”

    “크흐흣….”

    “살려달라고 빌어도 살려줄 생각은 없어.”

    벨자하는 살려달라고 빌 수도 없을 것이다.

    곧, 죽여달라고 빌게 될 테니까.

    “하이 부스트.”

    태운은 신체를 강화하고 벨자하에게 접근했다.

    하지만 벨자하는 수십 개의 눈으로 태운의 움직임을 좇았다.

    ‘벨자하의 스킬 중 동체 시력과 반사 신경을 높여주는 스킬이 있었어.’태운은 벨자하의 상태창에서 본 스킬을 머릿속에서 떠올리며 파훼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녀석의 눈이 보고 반응을 해도 피할 수 없는 공격을 해야겠지.’벨자하는 근력과 체력은 굉장히 높았지만 민첩성과 유연성은 크게 떨어졌다.

    이런저런 근육과 눈, 팔, 장기들을 이식하면서 떨어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민첩성은 스킬과 마법으로 어느 정도 케어할 수 있었지만 유연성은 아니었다.

    “화폭.”

    태운은 병사들을 학살했던 마법을 사용했다.

    벨자하는 그 공격들을 전부 보았지만 화폭은 애초에 피할 수 없도록 설계된 마법.

    보고 반응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마나 실드!”

    벨자하는 겨우 마나 실드를 시전해 화폭을 막아냈다.

    “위력이….”

    살벌한 파편들의 수와 달리 생각보다 낮은 위력에 벨자하가 당황한 순간 다음 공격이 들어왔다.

    “마나 익스플로전.”

    태운은 화폭의 마나 파편으로 폭발을 일으켰고 그 폭발은 마나 실드를 부쉈다.

    그리고 폭발로 인해 생겨난 연기로 벨자하의 시야가 가려졌다.

    ‘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한 번에 가려 버리면 볼 수 없는 건 똑같지.’하지만 벨자하는 이런 상황에서도 주변을 볼 수 있는 스킬을 하나 가지고 있었다.

    ‘온도 감지.’

    과거 파충류 계열의 몬스터를 잡고 그 몬스터의 눈을 빼앗아 얻은 스킬이었다.

    벨자하가 그 스킬을 사용하자 주변이 열화상 카메라처럼 비치기 시작했다.

    ‘거기 있었구나.’

    벨자하는 접근해오는 사람 형체의 무언가를 태운이라고 생각하고 그쪽으로 공격을 쏟아부었다.

    “어딜 공격하는 거야?”

    서-걱!

    갑자기 뒤에서 나타난 태운은 벨자하가 이식한 팔을 하나 더 잘라냈다.

    “끄아아악!!!”

    벨자하는 고통에 소리쳤고 태운은 벨자하의 목을 붙잡고 연기 밖으로 끌어냈다.

    “어떻게… 너는 내 앞에 있었는데….”

    “진짜 암살자는 자신의 열기마저 숨길 수 있는 법이야.”

    “……!”

    벨자하는 자신이 열로 위치를 파악했다는 사실을 꿰고 있는 태운을 보고 소름이 돋았다.

    “네가 날 이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태운은 벨자하를 집어 던지고 검을 바닥에 버렸다.

    그리고 마나를 조작해 처참하게 죽어 있는 병사의 창을 빼앗아 들었다.

    “시체를 보아하니… 네가 죽인 거겠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자신의 병사들을 마음대로 죽이다니.”“쓸모없는 녀석들을 죽였을 뿐이다! 놈들은 갱생할 여지도 없는 쓰레기들이었다!”“넌 그런 생각 때문에 죽는 거라는 걸 알아라.”

    “그게 무슨….”

    벨자하는 문득 이곳이 전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곳에서 저들과 싸우는 이는 자신 혼자뿐.

    “어째서 덤벼들지 않는 거냐!”

    벨자하는 소리치며 병사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병사들은 벨자하의 말을 듣고도 우물쭈물하며 서로의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쉽게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이 개자식들…!”

    명령을 내리지는 않았지만 이곳에는 수만 명의 병사들이 있다.

    그 병사들이 왜 적을 보고도 가만히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죽을 게 뻔한 싸움에 왜 끼어들겠어.”

    “병사들은 어차피 죽을 놈들이다. 뒤에서 죽든 앞에서 죽든… 지금 죽든 나중에 죽든 죽어야 할 놈들이다. 그런데 어째서….”

    “그건 네놈의 생각일 뿐이다.”

    어찌 보면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화살받이가 되어 공성 병기를 움직이고 공성 병기로 성벽을 뚫은 후에도 적에게 나아가 죽고 죽이는 싸움을 하는 게 병사들이니까.

    “하지만 병사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병사는 살아가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칠 것이다.

    그게 사람… 아니, 생명체로서 아주 당연한 일이니까.

    그런 사람들 사이에도 스스로를 희생해 누군가를 지키거나 대의를 세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우를 죽이는 지휘관을 목숨 바쳐 지킬 수 있을까?”

    “…닥쳐라….”

    “혹시 모르지. 저들 눈에는 너를 죽이기 위해 나타난 우리가 영웅으로 보일지도.”

    “닥치라고!!!”

    벨자하는 태운에게 소리치고 속으로 생각했다.

    ‘이 일을 내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그럴 리가 없다.

    저 벌레들이 겁쟁이인 탓이다.

    어차피 비루한 인생을 살다가 죽을 벌레들이 조금 빨리 죽는다고 해서 아까울 게 무어란 말인가.

    벨자하는 생각을 정리했다.

    “헛소리하지 마라! 나는 잘못이 없다!”

    “끝까지 갱생이란 게 불가능한 놈이군….”

    태운은 창을 두 손으로 쥐었다.

    “창을 사용하는 동안은 신체 강화 마법을 제외한 마법은 사용하지 않으마. 덤벼라.”태운은 급기야 마법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선언까지 했다.

    “이 자식이….”

    벨자하는 온갖 공격 마법과 신체 강화 마법을 사용하고 태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운은 하이 부스트를 사용하고 창을 부러지지 않게 강화만 한 채로 벨자하의 공격을 모두 쳐내고 피해냈다.

    그리고 벨자하의 복부를 강하게 찔렀다.

    태운은 관통된 벨자하의 복부에 꽂힌 창과 함께 벨자하를 집어 던졌다.

    “이 개자식이….”

    벨자하가 수치심에 얼굴을 붉혔을 때 태운은 아무렇지 않게 주먹을 들어 올렸다.

    “다음은 주먹이다.”

    “무슨….”

    “아직 많이 남았어. 빨리 와.”

    태운은 벨자하에게 온갖 패배를 선사해줄 생각이었다.

    벨자하가 수십 년간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무너뜨리고 그에게 죽고 싶어질 정도의 허망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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