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82화 (282/379)
  • 282화

    “하악… 하악….”

    “후우….”

    가도와 잭, 레일로프가 쓰러져 있는 사이에서 라온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와… 미친 너 완전 괴물이었구나…?”

    태운은 잭, 레일로프, 가도, 라온과 번갈아 가며 스무 번을 넘게 싸웠다.

    라온과 달리 몸을 쓰며 싸우는 잭과 레일로프, 가도는 말도 하지 못할 정도로 지쳐 버렸다.

    “마나를 아끼고 아끼면 생각보다 오래 싸울 수 있네.”잭과 레일로프, 가도, 라온은 모두 병사 수십 명은 가볍게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다.

    태운은 그들과 스무 번 이상 대련을 하면서 마나를 나름 적극적으로 사용했음에도 마나가 15,000 정도 남았다.

    “뭐, 이 대륙에서 마법을 가장 잘 사용한다고 알려진 마탑주들도 제가 있는 세상에서는 중급 수준이니까.”

    “그럼 나는?”

    “음… 라온 너도 중급 수준인 거 같은데.”

    “그런가…. 조금 자존심 상하네.”

    “그럴 필요 없어. 너는 내가 봐왔던 사람 중에 천재성으로만 따지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니까.”

    “오호… 다른 사람들은?”

    “말해도 모를 텐데 말해줘?”

    “간단한 설명도 곁들여주면 좋고.”

    태운이 본 사람 중 가장 뛰어난 천재성을 가진 사람은 단연 전대섭이었다.

    전대섭은 좋은 성능을 가진 특성과 스킬을 가지고 자신만의 마법을 만들어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끈 사람이다.

    지금 명운 아카데미뿐만 아니라 헌터 지망생들을 가르치는 전 세계의 헌터 아카데미들은 대부분 전대섭이 정립한 커리큘럼을 따르고 있다.

    ‘그다음은 잭.’

    잭은 마법적인 재능은 라온보다 조금 떨어진다.

    하지만 잭은 라온에게 없는 재능인 전투 센스를 가지고 있다.

    ‘더 뛰어난 마법을 만들거나 사용할 수는 없지만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을 적재적소에 사용할 줄 알아. 거기에 몸을 움직이는 데에도 천부적인 재능이 있으니 그걸 잘 조합하면… 전투로만 따지면 라온보다 더 뛰어난 괴물이 되겠지.’그다음은 구찬영이었다.

    구찬영은 태운이 알고 있는 한 가장 괴물이라는 말에 가까운 사람이다.

    강함으로만 따지면 구찬영보다 강한 사람은 많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특징은 가장 괴물 같았다.

    ‘신체 능력이 다른 사람보다 세 배 이상 빠르게 성장하고 그 신체 능력에 비례하는, 마나가 필요 없는 신체 강화 능력과 피부 경화 능력. 100만에 가까운 괴랄한 마나통에 공기 중의 마나를 흡수해 사용할 수 있는 마나경까지….’그리고 인충회에 잡혀 죽을 뻔했을 때 얻은 특성인 경이로운 마나 코어와 경이로운 마나 회로.

    그것의 효과로 인해 마나의 회복력이 엄청나게 높아졌고 마나 회로가 넓어져서 일반인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양의 마나를 한 번에 운용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거기에 무기를 다루는 천부적인 센스까지.

    ‘구찬영이 경이로운 마나 코어와 경이로운 마나 회로를 완벽하게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른다면… 아마 최정상급 헌터가 되겠지.’전대섭, 허덕륜, 셀, 하오처럼 말이다.

    ‘다음은…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쟝.’

    칠죄신교, 나태의 좌를 맡고 있는 쟝.

    잠깐이었지만 나태의 힘을 해제하고 진심을 낸 쟝은 엄청난 힘을 보여줬다.

    ‘손짓만으로도 수많은 크레이터를 만들 정도로 강력한 힘.’그리고 초감각을 사용한 태운이 겨우 피해낼 정도로 절묘한 위치에 떨어진 공격.

    태운의 엄청난 속도를 보고 반응할 정도의 동체 시력과 전투 센스는 태운도 경악할 정도였다.

    실제로 리제너레이션이 아니었다면 태운은 팔이 잘린 이후 쟝에게 바로 죽었을 것이다.

    “참… 말만 들어도 괴물 같은 놈들이네.”

    라온은 태운의 설명을 들으며 계속해서 놀랐다.

    “그런데 너는 그런 놈들이랑 싸워왔다는 거야?”“아니, 전대섭 선생님이랑 구찬영은 동료야. 방금 말했던 사람 중에서 적은 쟝뿐이야.”

    “와….”

    라온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싸움의 수준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면 너 혼자 이 세상과도 싸울 수 있는 거 아냐?”“물론, 내 몸이 직접 왔다면 그럴 수 있었겠지.”에테르를 사용해 폭발을 일으키면 도시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 있다.

    성벽 갑주를 항상 다섯 겹 이상 두르고 있을 테니 공격에 당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약 적들이 어떻게 해서 태운의 심장을 꿰뚫어도 태운은 리제너레이션으로 순식간에 회복할 수 있다.

    아니, 애초에 태운이 스킬 ‘피어’를 사용하면 태운의 앞에 선 순간 전의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데 나는 지금 현실의 몸보다 훨씬 더 약해진 상태야.”에테르를 잃은 것은 물론이고 마나의 총량도 절반이 되어 버렸다.

    게다가 거의 대부분의 스킬과 특성도 없어진 상태다.

    지금으로써는 혼자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었다.

    “생각해보면 네가 말했던 사람들보다 네가 더 괴물 같은데?”“어… 음… 뭐, 방금 얘기한 사람들은 천재성으로만 따진 거니까.”“천재성은 너도 딱히 부족한 것 같지는 않은데… 마법도 엄청나게 만들었고 그중에 엄청난 성능을 가진 것도 많잖아.”태운은 명운 아카데미의 최약체라고 불리던 시절 때문에 자신의 재능이 뛰어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태운도 천재성이라고 하면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다.

    수많은 마법을 개량해냈고 자신만의 마법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리고 글로만 마법을 배운 태운이 마나를 다룰 수 있게 되자마자 마법을 바로 사용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천재성은 입증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그렇지만, 나는 내가 말한 사람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지.”

    “그런 것 같지만은 않은데 말이지….”

    라온은 말끝을 흐리며 부정했지만 태운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다들 한계인 것 같으니 이제 쉬어야겠네.”

    “알겠어.”

    태운은 그들에게 회복 마법을 써주었다.

    “후… 진짜 힘들구나.”

    “그러게 말입니다.”

    가도는 허리를 두드리며 일어났다.

    ‘가도 님의 나이도 생각해드렸어야 했는데….’세라오니를 통치하며 헤온 제국과 싸울 때도 30대 중반이었던 가도의 나이는 이제 40대 중후반에 접어들었다.

    이 세계관에서는 노인이라고 불릴 정도의 나이였지만 각성자였기에 검을 들고 싸울 수 있었다.

    “장군님은 너무 무리하지 마시죠. 나이도 있으시니.”레일로프는 허리를 두드리는 가도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레일로프의 입장에서는 가도를 걱정해준다고 한 말이었지만 가도에게는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아직 나는 정정하다. 그렇게 걱정된다면 한번 시험해보지 않겠나?”

    “네…?”

    “일주일 뒤, 나와 대련을 한번 해보는 게 어떤가.”가도는 레일로프의 말에 자존심이 상했고 그 때문에 레일로프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장군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걱정하지 마라. 네가 어렸을 때 거둬서 가르친 사람이 바로 나니까.”가도의 말에 레일로프도 자극을 받은 모양이었다.

    레일로프도 가도를 노골적으로 도발하기 시작했다.

    “나이도 있으시고… 마법을 배운다고 해도 사용해왔던 기간이 다른데… 정말 가능하다고 보십니까?”레일로프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마법을 배운다고 해도 바로바로 전투에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검으로 싸울 때만 해도 적의 움직임이나 검로를 예측해가며 싸워야 한다.

    게다가 가도는 적에게 심리전을 걸어 절묘한 위치에 검을 찔러넣는 방식의 전투를 선호하는데 그것과 동시에 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을 터였다.

    ‘이기는 게 쉽지는 않을 텐데.’

    태운은 가도가 레일로프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사실 지금의 가도 님은 잭, 라온, 레일로프 중에서 가장 약하니까.’물론, 수십 년간 전장에서 구르며 얻은 노련함을 가지고 있지만 그건 다른 사람들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태운의 생각에는 가도가 여기 있는 사람들보다 뛰어난 것은 병사들을 다루는 용병술 정도밖에 없었다.

    “레일로프, 청출어람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려주도록 하겠다.”

    “기대하겠습니다.”

    가도와 레일로프는 서로 물러나 자신의 숙소를 향했다.

    “갑자기 분위기가 이렇게 되네. 가서 말려야 하나?”라온은 레일로프와 가도의 사이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잭과 태운이 그것을 막았다.

    “놔둬. 남자들끼리는 저런 게 필요할 때도 있는 거니까.”“그래, 누나. 이 정도 트러블은 필수거든.”

    어떻게 보면 남자들의 유치한 자존심 싸움. 서열 정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앞으로 서로의 등을 맡기고 적과 싸울 동료들이다.

    서로의 실력을 직접 부딪쳐가며 확인하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 중 하나다.

    ‘그리고 서열 정리가 나쁜 것도 아니잖아?’하물며 남자들은 친구 사이에서도 무의식적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본인들은 모르고 있을지 모르지만 힘으로든, 게임을 잘하는 것으로든, 하다못해 아는 여자가 많은 것으로든 서열은 항상 정해진다.

    그리고 그렇게 정해진 서열은 그 무리가 더욱 끈끈하게 뭉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런 게 언제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그리고 그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도 생각했다.

    “그럼 내일 보자.”

    태운도 라온을 말리고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내일부터 시작될 훈련이 기대가 되네.’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았다.

    * * *

    태운이 마정석을 흡수하기 위해 자하르의 연구소에 있던 시각.

    칠죄신교, 나태의 좌를 맡고 있는 바이튼은 한국에 도착했다.

    “하… 짜증나.”

    바이튼은 눈을 가리는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 올리며 부산의 해변을 걸었다.

    밤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바글바글하진 않았지만 성수기의 해변가였기에 드문드문 사람이 모여 있긴 했다.

    “저기 봐. 저 남자 되게 느낌 있지 않아?”

    “자다 깬 것 같긴 한데 엄청 잘생기긴 했다.”해변가를 걷던 바이튼을 발견한 여대생 두 명이 그에게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외국인인가…? 영어로 말 걸면 되겠지?”

    “빨리 한번 가봐!”

    그들은 한번 말을 걸어보기로 했고 바이튼은 그 대화를 모두 듣고 있었다.

    ‘귀찮아.’

    그사이에 여대생은 이미 바이튼의 옆까지 다가와 있었다.

    “하… 하이.”

    ‘귀찮아.’

    바이튼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 여자는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하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여자랑 말하는 건 피곤해. 힘들어. 짜증 나.’바이튼은 끈질긴 그녀의 말에 결국에는 대답을 해주었다.

    “왜….”

    “어? 한국말 할 줄 알았네? 다행이다!”

    그녀는 바이튼이 한국말을 할 줄 안다는 사실에 기뻐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혹시 시간 있으면 우리 같이 술 마실….”

    퍼-억.

    바이튼은 그녀의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손을 휘둘러 그녀의 상반신을 날려 버렸다.

    “꺄아아악!!!”

    그녀와 바이튼의 대화를 보고 있던 친구는 비명을 질렀다.

    비명을 지르는 순간, 해변가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바이튼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고.

    “꺄아아악!!!”

    “사, 사람이 죽었어!”

    “테러다! 헌터! 각성자 없냐고!”

    바이튼은 그 소리에 귀를 틀어막았다.

    “귀찮아. 짜증 나. 왜 그러는 거야. 왜 나를 가만두지 않는 거지? 강태운.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하늘섬에서. 아직도… 왜 그러는 거야. 귀찮아. 짜증 나.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왜….”바이튼은 광기에 사로잡힌 채로 중얼거렸다.

    “젠장, 몰라. 그냥 다 죽어.”

    바이튼은 양손을 하늘로 들어 올렸다.

    그 순간, 해변의 수많은 모래들이 들어 올려졌고.

    “으아아악!”

    “으아악! 살려줘!”

    모래 사이로 사람들이 모두 떨어졌다.

    그리고 바이튼은 힘을 빼고 모래를 떨어뜨렸다.

    순식간에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해변에 생매장당했다.

    “…짜증 나.”

    바이튼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단 한 명의 사람도 없는 해변가를 거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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