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69화 (269/379)
  • 269화

    [○월 ○○일 2시 비밀리에 진행되었던 일명 ‘하늘섬 타격 작전’이 대성공을 이루었다는 소식입니다.]

    [작전 끝에 적들의 우두머리격인 인물 2명의 목숨을 끊고 천 명이 넘는 적을 섬멸하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36명의 안타까운 희생자가 발생하였고….]

    [이 작전을 구상한 한국의 A급 헌터 ‘강태운’ 헌터는 작전 중에서도 큰 활약을….]

    “참….”

    태운은 TV 채널을 돌리다가 아예 전원을 꺼버리고 리모컨을 소파 위에 던졌다.

    작전이 끝난 지 3일이나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뉴스에서는 계속해서 ‘하늘섬 타격 작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자신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언론을 보고 뿌듯해하긴 했지만 3일 내내 같은 이야기만 하니 조금 부담스러워졌다.

    자신 혼자 해낸 일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 없었다면 결코 해낼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한동안은 바쁘겠네.”

    작전의 발의자로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정아의 정체가 알려졌으니 그거에 대한 해명도 해야겠지.’연정아가 인류에게 피해를 준 것은 없지만 칠죄종의 혈통이라는 것만으로 해명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아마 다른 국가의 헌터들이나 주요 인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거기서 멈추지 않고 연정아를 칠죄신교의 앞잡이라고 몰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절대 그렇게 안 두지.’

    이제는 힘도 얻었다.

    사회적인 지위로 자신을 무시할 만한 사람도 없다.

    ‘더 이상 권위에 굴복하지 않아도 되고 할 이유도 없어.’연정아는 인류를 위해 정체를 들킬 것이 분명한 작전에 동조해주었다.

    이런 위험이 생기리라는 것을 알고 자신의 작전에 참여해주었고 그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움직여주었다.

    그런 사람을 지키지 않고 가만히 놔둔다면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않겠는가.

    ‘그리고 약속했으니까.’

    연정아가 세상에 자신의 정체를 알리게 되는 날은 ‘태운이 연정아를 지킬 수 있는 세력을 이루었을 때’였다.

    하지만 아직 그 조건을 확실히 이뤄내지는 못했다.

    연정아를 지킬 수 있는 세력의 기준은 ‘전 세계 헌터의 10%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펼치는 것’이었다.

    아직은 그 조건을 이뤄내지 못했으니 이제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연정아를 지킬 때였다.

    그때, 태운의 휴대전화로 연락이 왔다.

    “전대섭 선생님?”

    -그래 태운아. 전 세계 헌터 협회의 회담 일자가 잡혔다. 이야기할 게 있으니 와줄 수 있겠나?

    드디어 올 게 왔다.

    * * *

    하늘섬 타격 작전 중 쟝과 페이지의 전장 이탈 직후, 칠죄신교의 일반인 주거 하늘섬에서 쟝이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었다.

    “이런 빌어먹을…!”

    쟝은 태운과의 전투 중에 페이지의 텔레포트로 주거 구역으로 만들어진 다른 하늘섬으로 이동했다.

    하늘섬은 전투 병력이 주둔하는 하늘섬과 일반인이 살고 있는 하늘섬으로 나뉘어 있다.

    일반인 주거용 하늘섬은 크기는 더욱 컸지만 방비가 허술하고 이런저런 기능적 측면에서 전투용 하늘섬보다 떨어졌다.

    “쟝, 지금 짜증이나 내고 있을 때가 아니다. 빨리 주거용 하늘섬의 텔레포트 기능을 복구해서 싸우고 있는 전투원들을 회수해야 한다.”

    “페이지….”

    쟝은 태운과 싸우고 있던 자신을 구출해내 이곳으로 데려온 페이지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더 이상 뭐라 말할 수 없었다.

    페이지가 말도 없이 자신을 데려올 만큼 상황이 위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느껴지는 기운을 보니… 소르코프가 죽었나 보군. 원로들도 수십 명이나 죽었고… 전사들은 말할 것도 없군.”쟝은 최대한 이성의 끈을 잡아보려 했다.

    ‘소르코프가 상대하기로 했던 적은 전대섭이다.’소르코프가 전대섭을 이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시간 벌이를 하다가 도망칠 정도는 될 줄 알았다.

    ‘전대섭이 강해졌다고는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이 정도면 데블스 에이지 시절 전성기의 전대섭보다 두 배는 강한 것 같았다.

    ‘게다가 강태운…. 녀석이 생각보다 훨씬 강해졌다.’고작 20대 초반에 불과한 청년이 어떻게 그런 강함을 손에 넣었는지가 의문이었다.

    게다가 팔이 뜯겨나가는 고통에도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하는 대담함과 고통을 이겨내는 멘탈.

    그건 재능으로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오로지 경험, 수많은 전투 중 수백 번을 다치고 나서야 가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걸 고작 20대 초반의 헌터가 얻었다?’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시 피는 속이지 못하는가….’

    쟝은 오만의 힘을 해제한 반동으로 조금이지만 힘을 잃었다.

    이런 식으로 힘을 계속 잃게 되면 이길 수 있던 적도 이길 수 없게 된다.

    ‘다음에는 처음부터 전력으로 해야 한다.’

    쟝은 강태운을 전대섭, 그 이상의 적으로 판단하기 시작했다.

    오만의 힘을 해제하지 않고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적, 쟝은 강태운을 그렇게 생각했다.

    “가지.”

    쟝은 생각을 정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늘섬 텔레포트실로 안내해라.”

    페이지와 쟝은 일반인 주거용 하늘섬의 텔레포트실로 이동했다.

    텔레포트실의 바닥에는 거대한 텔레포트 수식이 그려져 있었다.

    쟝은 자신의 마기로 꺼져 있는 텔레포트 수식을 활성화할 준비를 했고 페이지는 옆에서 수식을 점검했다.

    그렇게 30분이 지났고 하늘섬의 텔레포트 수식이 활성화되었다.

    “빨리 발동시켜라.”

    쟝은 마기를 급하게 몰아 쓴 것 때문에 잠시 두통에 시달렸다.

    때문에 페이지가 대신 텔레포트를 발동시켰다.

    그러자 거대한 텔레포트 수식 위에 만신창이가 된 원로들과 전사들, 온몸이 부서진 마르기가스가 나타났다.

    “바이튼과 레이지는 어디 있지?”

    “젠장….”

    마르기가스는 다 죽어가는 와중에 입을 열었다.

    “레이지는 죽었다. 허덕륜에 의해 무력화되고 전대섭에 의해 목숨이 끊어진 것을 내 눈으로 확인했다.”“레이지가 허덕륜에 의해 무력화되었다….”쟝이 들었던 보고에 의하면 허덕륜은 과거의 부상으로 힘을 잃었다고 했었다.

    그런데 완력으로는 칠죄신교의 대원로 중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레이지가 허덕륜에게 패배했다는 것은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허덕륜이 힘을 숨기고 있었나 보군. 그래서 바이튼은 어디 있지?”그때, 원로 중 한 명이 한쪽 무릎을 꿇고 쟝에게 말했다.

    “한 가지 아뢰어도 되겠습니까.”

    “말해보라.”

    “바이튼 님은 전투가 시작된 후 텔레포트를 사용하시고 어디론가 가셨습니다.”그 말을 들은 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바이튼…!”

    바이튼의 행방을 알 수는 없지만 그의 생각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귀찮아서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었다.

    ‘녀석이 제대로 활약만 해줬더라면 이길 수도 있었던 싸움이었다.’싸움에 참여하겠다는 확답을 받아놓았지만 설마설마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바이튼의 행방은 나중에 찾는다. 지금은 질투의 좌와 분노의 좌를 이을 인재를 찾는 게 우선이다.”쟝은 상황을 정리하고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잃은 전사들의 수를 충당하기 위해 전사의 나이 기준을 기존 18세에서 15세까지 낮춘다. 전사 시험에서 탈락한 녀석들은 키메라로 만들어.”쟝은 고작 15살의 아이들을 전사로 만들어 싸우게 한다는 것을 넘어 시험에서 탈락한 녀석들을 키메라로 만들라는 끔찍한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리고 기존 전사들은 회복을 마친 후 헌터의 힘이 약한 국가에서 힘을 키워라. 페이지, 이 건은 너에게 일임하겠다.”

    “그래, 그래야지.”

    페이지는 테러 작전을 펼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많이 죽이는 대신 전사의 피해가 크다는 단점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지상의 뒷세계를 사용해 큰 힘을 얻고 싶은 자를 모집해라. 강도나 도둑 같은 잡것들이라도 이용해야겠다. 그건… 원로 페로, 자네 있나?”

    “네, 있습니다.”

    쟝의 앞에 호리호리한 남자가 나타났다.

    “자네가 살아 있어 다행이군. 그럼 이 일은 자네에게 맡기지. 한시가 급하니 부상이 거슬리지 않게 된다면 당장 떠나도록.”

    “분부대로.”

    페로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바로 떠났군. 부상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는 건가.’쟝은 페로의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그다음은….”

    쟝은 하나하나 명령을 내렸고 그 끝에 한 가지 말을 덧붙였다.

    “칠죄의 악마들께서 부활하실 날이 머지않았다. 그분들께 티끌만큼의 힘이라도 되기 위해 영혼을 불살라 강해져라.”

    * * *

    하늘섬 타격 작전이 있던 날로부터 일주일이 지났다.

    “강태운 헌터님, 싱가포르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태운은 싱가포르에서 열릴 회담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곧장 날아왔다.

    과거 싱가포르의 거대 몬스터를 처치해준 적이 있었기에 태운에게 전용기를 지원해주었다.

    “이쪽으로….”

    태운은 싱가포르 정부에서 나온 직원의 안내에 따라 리무진을 타고 싱가포르에 세워진 전 세계 헌터 협회 본부로 향했다.

    ‘…나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다들 올 테지.’A급 헌터라면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자리다.

    한국에서도 모든 A급 헌터가 회담에 참여하기 위해 스케줄을 비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정아는 전대섭 선생님과 함께 어제 이미 도착했었다고 했으니까….’연정아의 정체가 밝혀진 이상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 태운보다는 전대섭과 같이 다니는 것이 더 안전할 것이다.

    태운이 전대섭만큼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외적인 이미지는 아직 전대섭이 더 강렬하니까.

    ‘아는 사람도 많고 사람을 다루는 일에 있어서도 전대섭 선생님이 더 낫기도 하고.’여러모로 전대섭과 다니는 것이 더욱 편할 것이다.

    “도착입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전 세계 헌터 협회 본부에 도착해있었다.

    본부 건물이 공항에서 그리 멀지 않았던 모양이다.

    태운은 리무진에서 내려 본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강태운 헌터님, 안녕하십니까. 헌터증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여기 있습니다.”

    태운은 협회 건물 입구를 지키고 있는 헌터에게 자신의 헌터증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안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시선이 태운에게 꽂혔다.

    ‘참… 살벌하네.’

    그 자리에 태운을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누군가는 동경의 시선을, 누군가는 경계의 시선을,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분노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크흠!”

    그때, 태운의 뒤에서 누군가가 헛기침을 했다.

    “간만이군.”

    “오랜만이긴 하군요.”

    그건 바로 창공 길드의 쟝신이었다.

    “신정훈 헌터의 일은 참 안타깝게 되었네.”

    “큼….”

    신정훈은 강태운이 하던 일을 대신 이어받아 하다가 죽음을 맞이했다는 스토리로 헌터계에서 은퇴했다.

    “장난은 그만 치셨으면 좋겠군요.”

    “알겠네. 알겠어.”

    쟝신은 신정훈이 강태운의 가짜 신분이라는 것을 알아챈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헌터 중 태운에게 악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때, 쟝신이 태운에게 조용히 경고했다.

    ‘오늘 조심하게. 자네를 매장시키려고 작정하고 온 놈들이 태산이니까.’‘알고 있습니다. 그 정도는 예상했으니까요.’누군가는 개인적인 이유로, 누군가는 이해득실을 이유로 태운을 매장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태운은 이미 그것에 대한 대비를 든든하게 마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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