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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68화 (268/379)
  • 268화

    “뭐… 뭐야?”

    태운은 갑자기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하고 쟝과 페이지를 놓치고 말았다.

    “이런 젠장!”

    멍청하게 아무것도 못 하고 둘을 놓치고 말았다.

    초감각과 사고 가속, 브레인 부스트를 사용한 후 저지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스스로에게 너무나도 화가 났다.

    “별수 없었어. 페이지가 있었으니까.”

    “연정아?”

    그때, 스스로에게 화를 내고 있던 강태운에게 연정아가 다가왔다.

    “탐욕의 좌, 페이지. 녀석은 최면 마법의 달인이야. 녀석이 네 의식에도 손을 써서 반응을 느리게 만든 걸 거야.”

    “뭐…? 아무런 느낌이 없었는데….”

    “그게 녀석이 무서운 이유지. 아무도 모르게 사람의 의식을 건드리거든. 둔한 사람은 의식 개조를 당해도 평생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어. 너 정도 실력자라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대원로 중에서는 가장 약한 녀석이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가장 무서운 녀석이야.”직접 당해본 연정아였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크윽….”

    그때, 태운의 눈에 무릎을 꿇고 쓰러져 있는 허덕륜이 보였다.

    태운은 즉시 허덕륜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그래…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잡아냈다.”허덕륜은 후들거리는 팔을 애써 들어 앞의 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온몸이 부서진 채로 벽에 처박혀 있는 레이지가 있었다.

    “방금 공격으로 목숨을 끊었다.”

    “연정아, 부탁해도 되지?”

    “알았어. 내가 가볼게.”

    연정아는 허덕륜의 치료를 해야 하는 강태운 대신 레이지의 상태를 확인하러 갔다.

    ‘엄청난 난타전의 흔적….’

    허덕륜의 몸은 완전 난리가 나 있었다.

    전신 타박상은 물론, 전신의 근육도 완전히 찢어져 있었고 뼈도 성한 곳이 없었다.

    갈비뼈는 4~5대가 부러져 이곳저곳의 장기를 찌르고 있었다.

    허덕륜은 지금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큰 상처를 입고 있었다.

    태운은 조심스럽게 치료를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치료할 수 있었지만 그랬다가는 후유증이 크게 남을 것 같았다.

    ‘허덕륜 선생님이 이 정도면… 레이지는 죽었겠네.’태운은 천천히 허덕륜을 치료하면서 전황을 살폈다.

    ‘하오 헌터는… 아직도 마르기가스와 싸우고 있어. 승패가 아직 갈리진 않았지만 내가 허덕륜 선생님을 치료하고 가세하면 처치할 수 있을 거야.’하오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겠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것이다.

    인류의 존망이 걸린 전투에서 자신의 아집 때문에 일을 망칠 수는 없을 테니까.

    ‘그리고… 셀 헌터님은 원로들을 쓸어 담고 계시네.’오러의 소유자인 셀은 대원로를 상대할 예정이었지만 한 명의 대원로는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아 원로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덕분에 헌터 협회나 명운 길드의 헌터들에게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그리고… 찬영이의 활약이 생각보다 더 대단하네.’찬영은 홀로 원로 12명을 상대하고 전사 수십 명을 베어 넘겼다.

    그러면서도 명운 길드의 길드원들을 보호하기까지 했으니 명운 길드 내에서는 찬영의 활약이 독보적이었다.

    ‘대원로 중 쟝과 페이지 둘이 사라졌으니 전력상으로 우리가 우위에 있다.’숫자는 여전히 칠죄신교 측이 많았지만 쟝과 페이지가 도망쳤고 레이지와 소르코프가 죽었다.

    한 명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고 마르기가스는 하오에게 발이 묶여 있다.

    반면 헌터 측은 최강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전대섭과 강태운이 건재했고 대원로 못지않은 강함을 가지고 있는 연정아도 전투를 지속할 수 있다.

    거기에 태운이 버프만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면 다른 헌터들도 순식간에 체력을 회복하고 다시 싸울 수 있었다.

    쟝과 페이지를 놓친 것이 조금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이번 작전으로 칠죄신교를 괴멸시킬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레이지의 상태를 보러 갔던 연정아 쪽에서 엄청난 양의 마기가 감지되었다.

    “크윽…!”

    “멍청하게 네년이 와줄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고맙다!”죽은 줄 알았던 레이지가 연정아의 손을 붙잡고 마기를 흡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스모데우스의 혈통이기에 비교적 순수하고 짙은 마기를 품고 있는 연정아는 대원로 레이지에게 마치 회복약과도 같았다.

    그 사실은 태운도 전대섭도 연정아도 알지 못한 것이었다.

    마기로 신체를 수복하는 것은 레이지만의 특기였으니까.

    “후우….”

    순식간에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수준까지 회복한 레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덕륜, 오늘은 이렇게 물러나지만 다음에는 네가 너의 목을 부러뜨려주마.”아무리 연정아의 순수하고 짙은 마기여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몸을 회복하는 것은 무리였는지 레이지는 도망을 선택했다.

    레이지는 연정아는 내동댕이치고 공중으로 뛰어올랐다.

    연정아는 강제로 마기를 빼앗긴 반동으로 잠시 움직이지 못했고 태운은 허덕륜을 치료하느라 반응이 늦었다.

    전대섭만이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지만 레이지도 전대섭만 조심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전대섭의 마법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끝마쳤다.

    “이런…!”

    안 된다.

    이미 쟝과 페이지를 놓친 상황.

    더 이상 대원로를 놓칠 수는 없었다.

    그때.

    “공간 왜곡.”

    푸-욱!

    “커억….”

    그 순간, 공간이 줄어들며 누군가가 날아와 레이지의 목을 찔렀다.

    그는 레이지의 목을 찌른 검을 더욱 깊게 박아넣으며 그를 땅으로 몰아넣었다.

    “본대 도착!”

    그는 소리를 지르며 본대의 도착을 알렸다.

    좋은 타이밍에 나타나 레이지의 도주를 저지한 사람은 바로 정일준이었다.

    “간만이네. 강태운.”

    “그러게 말입니다.”

    태운은 정일준을 보고 안심하고 다시 허덕륜의 치료에 집중했다.

    “허덕륜 헌터님은 괜찮으신 거냐?”

    그때, 태운의 옆으로 누군가가 순식간에 날아들었다.

    그 사람은 바로 정일준이 레이지에게 접근할 수 있게 공간 왜곡을 사용해준 심중현이었다.

    “많이 심각하긴 하지만 제가 있는 한 생명의 지장은 없을 겁니다. 빨리 가서 전투 지원을 해주세요. 특히 헌터 협회 측 헌터들은 많이 지쳤을 겁니다.”명운 길드의 길드원들은 태운이 직접 만든 룬석을 보급해 전투의 지속력을 높여주었으니 많이 지치진 않았겠지만 헌터 협회 쪽은 사정이 달랐으니까.

    “알겠다. 가자!”

    심중현과 가온 길드의 멤버들은 모두 협회 소속의 헌터들을 도우러 갔다.

    그 이후에는 중국에서 온 창공, 금호 길드의 1군, 2군 공격대와 미국의 자이언트 길드, 마운틴 길드의 1, 2, 3군 공격대가 가세했다.

    그 외에도 한국의 태양 길드와 전대섭의 제자인 강일환이 이끄는 강일 길드의 1, 2군 공격대도 참전했다.

    물량 공세에 셀과 구찬영, 김현우의 활약으로 전선을 겨우 유지하고 있던 상황에서 수백 명의 헌터들이 나서자 순식간에 전황이 뒤집혔다.

    “이건… 기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구나.”태운에게 치료를 받고 있던 허덕륜은 이 광경을 보고 한숨과 함께 웃음을 지었다.

    “20분이다. 40명도 되지 않은 적은 수로 수천 명의 적을 막아냈다. 그런데 우리 측의 사망자는 5명이 넘지 않아.”생각해보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아무리 소수 정예로 팀을 짜고 셀과 전대섭, 강태운, 허덕륜, 하오, 연정아와 같이 압도적인 강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참전을 했다곤 하지만 적들의 전력도 만만치 않았다.

    앞에서 말했던 6명의 강자와 비슷한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대원로라는 강적이 칠죄신교 측에 있었다.

    그뿐이겠는가. A급 헌터 수준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 원로들이 수백 명이나 존재하는 곳이 바로 칠죄신교의 하늘섬이었다.

    ‘물론, 나와 전대섭 선생님의 폭격을 막느라 원로의 70% 정도는 힘을 쓰지 못하긴 했지만… 어쨌든 전력상으로 보면 이길 수 없는 전투긴 했어.’어떻게 보면 이 작전의 선발대는 상륙 작전의 총알받이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위험한 작전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걸 해냈다.

    그 위험한 전장에서 작전을 아주 훌륭하게 수행하고 살아남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집중해.”

    그 말을 들은 전대섭은 태운의 등을 툭 치고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전대섭의 발걸음이 멈춘 곳은 바로 레이지의 앞이었다.

    “이 녀석… 몸이 완전 박살이 나 있는데 힘이….”정일준은 녀석의 목에 검을 꽂은 채로 버둥거리는 녀석을 제압하고 있었다.

    2차 각성을 마치고 A급 헌터가 된 정일준조차도 중상을 입은 레이지를 겨우 제압하고 있었다.

    “단순 완력만큼은 쟝에게도 밀리지 않을 놈이다. 네가 제압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커, 커컥….”

    레이지는 원망의 눈빛으로 정일준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눈빛에서 엄청난 분노가 느껴졌다.

    순간 정신이 어질해질 정도의 악의였다.

    “헛짓거리하지 말고 죽음을 받아들여라. 지금은 데블스 에이지가 아니니 말이다.”전대섭은 그런 레이지를 보고 나무랐다.

    “크, 크큭….”

    레이지는 그제야 포기한 듯 웃음을 내뱉었다.

    전대섭은 에테르 스피어를 소환해 레이지의 이마에 구멍을 내주었다.

    그러자 레이지의 몸에서 느껴지는 마기는 모두 사라졌고 레이지는 사망했다.

    레이지를 처리한 전대섭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만약 데블스 에이지가 다시 오게 된다면 무력화된 대원로와는 눈을 마주치지 마라.”

    “눈을… 말입니까?”

    정일준은 레이지의 시체 위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그래. 데블스 에이지… 칠죄종의 괴수들이 이 세상에 나타나게 되면 대원로들은 여러 개의 권능을 가지게 된다. 방금 죽은 레이지라는 녀석이 너에게 사용하려 했던 권능은 ‘분노의 이전’이라는 권능이다.”분노의 이전.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그 분노를 절제하지 못하게 만드는 권능이다.

    성가신 적이 있을 때 그를 처리하기 위해 레이지가 자주 사용했던 권능이다.

    “만약 지금 칠죄종이 이 세상에 넘어왔었다면 정일준, 자네는 갑자기 우리를 공격했을 게야. 그만큼 위험한 것들이지. 피할 수 없는 권능들도 있지만 보통은 눈을 마주치는 것으로 권능을 사용하는 것들이 가장 치명적이니 알아두는 게 좋을 거야.”태운은 그 말을 듣고 침을 삼켰다.

    잠깐이지만 오만의 힘을 해제한 쟝은 굉장히 강했다.

    더욱 강해지고 온전한 컨디션에서 싸운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정도였다.

    그런데 칠죄종이 부활하는 데 성공하면 그 힘이 더욱 강해지고 권능도 얻게 된다니.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구나.’

    홀로 식탐의 죄, 벨제부브를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했다는 강철운.

    그만큼은 강해져야 이 세상을 칠죄종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시간은 구세대들이 벌어줄 테니까.”전대섭은 태운의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태운에게 그렇게 말해주고는 다시 전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전투가 30분간 이어졌고 어느 순간 칠죄신교의 전사들과 원로들이 일제히 어디론가 텔레포트 되었다.

    마르기가스는 그때까지 하오와 전대섭의 합공을 버텨내고 있었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텔레포트되어 살아서 도망쳤다.

    태운은 육감과 초감각을 사용해 양측의 피해를 대충 계산해 보았다.

    ‘헌터 측 피해, 사망자 36명, 부상자 67명.’

    30분간의 전투에서 사상자가 생각보다 많이 발생했다.

    하지만 칠죄신교 측의 피해와 비교해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수치였다.

    ‘칠죄신교 측 피해, 대원로 소르코프, 레이지 사망, 원로 217명 사망, 전사 1,351명 사망.’누가 와도 뭐라 할 수 없는 대승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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