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67화 (267/379)
  • 267화

    연정아가 칠죄신교에 갇혀 세상을 보지 못하고 살았을 때, 그녀의 세상은 오로지 대원로들의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대원로들의 회의로 연정아가 사는 곳이 정해졌고 그녀를 키울 유모도 정해졌다.

    아주 가끔 있었던 그녀의 일탈도 대원로들이 의도한 것이었다.

    대원로 중 연정아의 관리에 가장 많이 관여한 사람이 바로 탐욕의 좌에 앉아 있는 페이지였다.

    페이지는 지금의 대원로 중 가장 늦게 대원로의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대원로 중 가장 약했다.

    그랬기에 자신의 입지를 높이기 위해 연정아를 가두고 세뇌하는 데 앞장섰고 그 외에도 가장 악랄한 일들을 맡아왔다.

    그러다보니 페이지는 사람을 죽이는 작전을 짜는 데에는 도가 텄고 덕분에 강한 힘을 원하는 전사들과 원로들이 많이 따르게 되었다.

    칠죄신교의 전사들과 원로들은 사람을 죽이면 죽일수록 강한 힘을 가지게 되니까.

    그렇게 페이지는 공식적으로 최소한의 피해로 최대한 많은 사람을 죽이며 칠죄신교의 전력을 키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즉, 지금까지 있었던 칠죄신교의 테러는 거의 대부분이 페이지의 머리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악랄함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의 연정아를 세뇌하는 데에서도 드러났다.

    연정아가 11살에 처음으로 원로의 성에서 빠져나왔을 때, 연정아가 혼자 빠져나갈 수 있도록 경비를 비운 것도, 그녀가 간 공터에 노는 아이들을 배치한 것도 페이지였다.

    12살, 연정아가 어린 나이에 좋아하게 된 남자아이도 페이지가 선정한 사람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연정아가 칠죄신교 안에서 교류했던 사람들은 모두 페이지가 엄선한 사람들이었다.

    다른 대원로들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지, 악취미라며 비웃었지만 페이지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나중에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내가 이런 일을 한 걸 고마워하게 될 거다.’그때까지만 해도 그 말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모두가 페이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연정아! 나만큼 너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네가 언젠가는 이런 일을 벌일 거라고 생각했었지.”그래서 이런 밑 작업에 과할 정도로 힘을 쓴 것이다.

    페이지는 본신의 힘이 강하지 않은 대신 수많은 잡기술을 잘 사용한다.

    환영 마법과 흔히 바꿔치기 마법이라 불리는 스위치 마법, 사람의 의식에 관여하는 최면 마법에 능하다.

    특히 최면 마법은 국제 사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혀 많이 개발되지 못한 분야, 그렇기에 페이지가 최면 마법의 일인자라고 말할 수 있었다.

    “닥쳐!”

    퍼억!

    연정아는 기껏 잡아놓은 페이지를 내동댕이쳤다.

    지금 연정아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페이지가 분명하다.

    하지만 언제 다른 사람으로 변할지 모르는 일이다.

    “크흐… 아주 물러 터졌어. 아주 멍청해졌어!”페이지는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그의 말에는 조롱과 함께 분통함이 섞여 있었다.

    “한심하다… 내가 만들고자 했던 건 이런 물러 터진 인간이 아니었는데 말이야.”페이지가 만들고자 했던 것은 자신의 명령만을 들으며 칠죄신교의 앞을 막는 것을 무참히 찢어발기는 괴물이었다.

    그 작전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연정아와 접촉할 사람을 엄격한 기준으로 선정한 것도 연정아의 정신을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실 연정아가 하늘섬 밖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페이지의 계산 안에 있었다.

    실제로 탈출을 감행할 줄은 몰랐지만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상황이 바뀌는 것은 없었다.

    연정아는 아직 마기를 다룰 줄 몰랐고 마기를 숨기지 못하는 한 인간의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었을 테니까.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 한들 지금까지 연정아가 살아 왔던 곳은 칠죄신교의 하늘섬.

    그러니 하늘섬 밖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듯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생각은 아주 정확했다.

    마기를 숨기지도 못하는 그녀가 길을 활보하고 있다면 헌터들에게 들키지 않을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페이지의 생각을 모두 뒤집어 버린 사람이 하나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전대섭이었다.

    ‘전대섭만 아니었다면….’

    전대섭은 연정아가 마기를 숨길 수 있게 될 때까지 그녀를 숨겨주었고 칠죄신교가 연정아의 머릿속에 집어넣었던 세상에 대한 잘못된 정보들을 고쳐주었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칠죄신교의 자객들로부터 연정아를 지켜주었다.

    덕분에 연정아는 세상에 아주 잘 적응할 수 있었고 페이지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게 바로 페이지가 싸운 적도, 본 적도 없는 전대섭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유였다.

    전대섭이 손만 내밀어주지 않았더라면 연정아는 자신의 생각대로 자신의 말만 듣는 살인 병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저 빌어먹은 쟝을 밀어내고 내가 대원로장이 될 수 있었을 텐데… 빌어먹을 전대섭 자식.’그게 아니었다면 애초에 이런 귀찮은 일을 맡지도 않았을 페이지였기에 더욱 화가 났다.

    ‘연정아, 너 다음은 전대섭이다.’

    페이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전대섭과 싸우고 있을 소르코프가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때, 페이지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소르코프…?”

    페이지는 고개를 돌린 순간 온몸이 박살이 나서 죽어 있는 소르코프와 그 옆에 서 있는 전대섭을 발견했다.

    “소르코프가 벌써 죽었다고…?”

    서-걱!

    연정아는 페이지가 순간 당황하는 기색을 보이자 바로 공격했다.

    하지만 당황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는 순식간에 다른 사람을 대신 희생해 공격을 피해냈다.

    “젠장….”

    연정아는 개의치 않는 척하면서 방금 공격당한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다행히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급해서 주변에 있는 전사 중 아무나 정해서 희생시킨 것 같았다.

    연정아가 안심한 순간에도 페이지는 상황을 파악하는 데 급급했다.

    ‘소르코프가 벌써 죽었다고…?’

    소르코프가 전대섭을 이길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소르코프는 대량 학살에 특화되어 있기도 하고 가장 최근에 대원로의 자리에 올랐기에 대량의 칠죄종에게서 직접 받아오는 마기를 다루는 데 비교적 미숙하다.

    하지만 비교적 그렇다는 것이지 마법 실력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소르코프가 고작 5분도 안 돼서 당했다고?’게다가 전대섭은 조금의 생채기만 났을 뿐, 큰 상처는 하나도 없었다.

    페이지가 전대섭을 소르코프에게 맡긴 이유는 시간 벌이와 동시에 전대섭의 힘을 빼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전대섭에게 아무런 상처도 입히지 못하고 죽어 버리다니.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쟝! 문제가 생겼다!”

    페이지는 연정아의 공격을 꾸준히 피하면서 쟝에게 소리쳤다.

    후퇴를 하든 다른 작전을 생각해내든 뭔가 수를 써야 했으니까.

    “쟝! 내 말 좀 들어라!”

    하지만 쟝도 페이지의 말을 듣고 무언가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강태운의 힘이 대원로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으니까.

    푸-욱!

    쟝의 손이 태운의 복부를 깊숙하게 찔렀다.

    울컥!

    “크윽….”

    태운의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 정도 고통은 익숙했다.

    ‘초감각 활성화, 브레인 부스트, 사고 가속.’태운은 자신의 복부에 쟝의 손이 들어온 순간 두뇌의 성능을 끌어 올리는 스킬과 마법을 모두 사용했다.

    그 후, A급 던전에서 모우데라투스와 싸우면서 사용할 수 있게 된 에테르 활용법을 사용했다.

    태운은 쟝의 가슴에 손을 대고 그 공간에 에테르를 주입했다.

    “크윽….”

    복부에서 올라오는 고통과 사고 가속의 부작용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아무런 문제 없이 쟝의 가슴이 위치한 공간에 에테르를 주입하는 데 성공했다.

    준비는 끝난 것이다.

    “스페이스 디스트럭션.”

    스페이스 디스트럭션.

    공간을 자르거나 늘렸다 줄였다 하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심중현의 공간 왜곡과는 달리 태운의 에테르는 공간 자체를 파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공간에 있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 공간과 함께 소멸한다.

    “……!”

    쟝도 그것을 직감으로 깨달았는지 태운과 거리를 벌리려 했지만 할 수 없었다.

    태운의 복부에 들어간 팔이 꼼짝도 하지 않았으니까.

    이번 전투의 첫 격돌 당시 쟝이 태운의 팔을 뜯어냈을 때의 양상과 비슷했다.

    “너도 한번 당해봐.”

    쟝은 그 순간 죽음을 직감했다.

    힘 자체는 큰 차이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쟝이 힘의 크기는 더욱 컸다.

    쟝은 트롤보다 강한 재생력과 그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강력한 신체, 엄청난 양의 마기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 공격은 막을 수도 없었고 당하고 살아남을 수도 없었다, 아무리 강한 신체를 가지고 있고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심장이 사라지면 살아 있을 수 없으니까.

    파스스….

    쟝은 공간과 함께 자신의 가슴이 무너져가는 것을 느꼈다.

    ‘이 개자식이…!’

    쟝은 그 순간 오만의 힘을 해제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로 자신의 팔을 잘라 버리고 파괴되어 가는 공간에서 자신의 몸을 빼냈다.

    “무슨…?”

    강태운은 승리를 직감했다.

    지금 태운의 공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태운의 복부에 깊숙이 박혀 있는 스스로의 팔을 자른 후 멀리 도망치는 것뿐.

    오만함과 방심으로 가득 찬 쟝이 자신의 팔을 자르고 도망간다는 선택지를 순간적으로 떠올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드디어 방심을 버린 거냐?”

    태운은 자신의 공격에서 벗어난 쟝에게 말했다.

    언제나 오만한 표정으로 태운을 내려다보던 쟝이 지금은 태운을 일그러진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강태운… 이 개자식이!!!”

    쟝은 오만의 힘을 해제했다.

    다른 대원로가 칠죄악의 힘을 해제하면 약해지겠지만 쟝은 아니었다.

    오만의 힘은 쟝의 힘을 제약하는 족쇄와 같은 것이었으니까.

    오만의 좌의 특권은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는 강력한 힘이다.

    하지만 오만이라는 죄악에서 비롯된 힘이니만큼 그 단점도 명확했다.

    기본적으로 오만함이라는 것은 전투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약점이 될 수 있는 요소다.

    방금도 태운에게 그 점을 찔리지 않았는가.

    쟝은 방금 그 오만의 힘을 해제한 것이다.

    이제 쟝은 자신의 힘을 온전히 사용하며 태운을 상대할 생각인 것이다.

    “강태운… 넌 살아나갈 생각을 하지 마라.”쟝은 태운에게 과할 정도로 화를 내고 있었다.

    쟝이 처음부터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오만의 힘을 해제하고 적을 동등한 상대로 인식하면 오만의 좌에 앉음으로써 얻은 힘을 천천히 잃어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힘을 잃다 보면 오만의 좌에 앉을 자격도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기에 쟝은 오만의 힘을 처음부터 해제하지 않은 것이다.

    “흐아아악!”

    쿠구구궁!!!

    쟝이 힘을 모은 후 크게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태운이 서 있던 땅에 수십 개의 크레이터가 만들어졌다.

    마치 형태가 없는 운석 수십 개가 떨어진 것 같았다.

    그 고고하던 쟝이 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친 공격이었다.

    “미쳤네….”

    태운은 생각했다.

    쟝과의 싸움은 지금부터 시작이라고.

    지금까지 쟝과 해온 싸움은 장난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때, 누군가가 날아와 쟝을 제지했다.

    “쟝! 주변을 둘러보라고!”

    그건 바로 연정아를 뿌리치고 달려온 페이지였다.

    “쟝! 이 하늘섬은 버린다!”

    그 말과 동시에 페이지와 쟝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뭐, 뭐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