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35화 (235/379)
  • 235화

    “충성!”

    “수고하게.”

    성문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헬켄 남작을 보고 경례를 올렸다.

    알레한드로도 한쪽 무릎을 꿇고 충성을 표했다.

    “일어나게. 바뀐 영지를 조금이라도 빨리 보여주고 싶구나.”

    “알겠습니다.”

    헬켄의 목소리에서 알레한드로에 대한 신뢰가 묻어났다.

    무능한 아버지의 밑에서 끝까지 충성을 다하고 자신이 영주가 되고도 일편단심으로 영지를 위해 일하고 있으니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부하가 아닐 수 없었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헬켄은 태운을 성안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무언가 의도가 있는 것 같았다.

    “음… 알겠네.”

    하지만 그게 나쁜 의도라고 느껴지지는 않았기에 그를 따라가기로 했다.

    태운은 헬켄을 따라 성안으로 들어갔다.

    “와….”

    케일과 제빈은 성안에 들어서자마자 감탄했다.

    태운의 감상으로는 그냥 평범한 도시일 뿐이었지만 케일에게는 아니었다.

    케일은 시골 마을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이런 도시를 본 적이 없었을 것이다.

    ‘평범한 도시인데…. 잠깐만… 도시라고?’

    태운은 지금까지 자신이 바인트로가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바인트로는 지방에 있는 별 특별한 것 없는 시골 영지였다.

    그런데 영주의 자리에 오른 지 고작 1년 만에 이런 발전 속도를 보였다?

    솔직히 믿을 수 없었다.

    바인트로의 영주가 엄청난 재능을 가진 마법사라면 어떻게든 가능은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헬켄은 각성도 하지 않은 일반인이었다.

    태운이 아는바, 이 시점에서 시골 영지를 반년 만에 도시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마법사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 대륙에서 마법이 발견된 것은 고작 10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마법이라는 것이 발견되지 않은 시점에서 스스로 마법을 깨우칠 정도의 천재가 아니라면 10년 만에 그 정도 성취를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했다.

    ‘뭐야…?’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대륙에서 마법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진리의 탑이라는 마탑의 주인이었으니까.

    진리의 마탑주를 고작 시골 영지의 발전을 위해 고용했을 리는 없었고 고용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를 하루 동안 고용하는 것만으로도 천문학적인 액수를 지불해야 할 터였다.

    그러니 고작 지방 영지의 주인인 헬켄은 그를 고용할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엄청나군요… 고작 반년 만에….”

    알레한드로도 굉장히 놀란 것 같았다.

    “어떻게 3층 이상의 건물이 수십 개나…. 이게 정년 반년 만에 이뤄내신 겁니까?”알레한드로는 반년 전쯤부터 바인트로를 떠나 외곽 지역의 도적들을 소탕하러 다녔다.

    그런데 알레한드로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바인트로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그래. 나도 그분이 없었다면 적어도 이 정도까지 오는 데 3~4년은 생각했겠지.”

    “그분이라면…?”

    알레한드로도 모르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아, 자네가 떠나가고 1달쯤 뒤에 그분이 찾아오셨다. 내가 하는 일이 재미있어 보인다고 하셨지.”

    “그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알레한드로는 헬켄에게 물었다.

    궁금한 것은 태운도 마찬가지였다.

    “굉장히 뛰어난 마법사시다. 내 짧은 식견으로도 알 수 있더군. 그분은 진리의 마탑주만큼이나 뛰어나신 분이다.”

    “그 정도입니까?”

    알레한드로는 헬켄이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누군가에 대한 평가를 할 때 과한 평가를 절대 내리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놀란 것 같았다.

    “진리의 마탑주는 이 대륙에서 가장 뛰어난 마법사가 아닌가? 마법을 처음으로 깨우친 사람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그렇지만… 제 생각에는 그분이 마탑주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니, 사실 그분이 진다는 이미지가 저에겐 보이지 않더군요.”태운은 갑자기 흥미가 동해 물어보았다.

    “그리고 제가 레일로프 님에 대해 알게 된 것도 그분을 통해서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레일로프는 험난한 산맥으로 가로막혀 있는 옆 대륙에서야 유명하지 이 대륙에서는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럼 생각할 수 있는 경우는 한 가지뿐이었다.

    ‘누군가가 나와 똑같이 그 험난한 산맥을 넘어온 거다.’각성자 중에서 환경 적응에 능한 레일로프도 산맥을 넘어오면서 수십 번이나 죽을 뻔했었다.

    같이 산맥을 넘던 탐험대원들도 20명이나 되었지만 그들은 첫 번째 눈사태 때 모두 죽었다.

    그 이후에도 설인이나 아이스 트롤처럼 강력한 몬스터들도 나타났다.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그 산맥을 넘은 사람은 0명.

    그만큼 위험한 장소가 대륙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다.

    하지만 레일로프는 산맥을 넘어왔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케이스가 없을 뿐, 존재는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그게 가능한 사람은 태운이 아는 한 그리 많지 않았다.

    ‘벨자하… 그놈이 넘어온 것인가? 아니면 그의 제자들? 그들이라면 불가능할 것 같지는 않아. 진리의 마탑주과 비견될 정도의 강함이라면… 벨자하, 그놈이 직접 온 것인가.’그렇게 생각하자 태운은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헬켄이 말하는 ‘그분’이 도대체 누구일까.

    태운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는 사이, 어느새 영주의 저택에 도착했다.

    “저택도 새로 지으셨나 봅니다.”

    “그래, 영주가 너무 검소해도 안 된다고 그분이 말씀하셨거든.”헬켄은 ‘그분’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그분’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만약 벨자하라면 굉장히 곤란해질 것 같았다.

    “아, 저기 오시는군요.”

    헬켄이 저택 안으로 가리켰고 태운은 긴장한 상태로 헬켄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곳에 있던 사람은 벨자하도, 그의 제자들도 아니었다.

    “레일로프! 오랜만이야!”

    “라온?”

    바로 과거 가도의 부하 중 한 명이었던 마법사, 라온이었다.

    [마정석 흡수 조건을 충족하셨습니다. 마정석을 흡수하시겠습니까?]

    [마정석의 주인의 요청에 의해 강제로 마정석 흡수를 진행합니다.]

    “어…? 어? 잠깐….”

    태운은 라온의 얼굴을 본 순간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고 물어보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마정석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바로 태운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냈다.

    천천히 무너져가는 세상 속에서 태운은 한 번도 보지 못한 알림을 보게 되었다.

    [마정석 흡수자가 에테르의 보유자입니다.]

    [마정석 주인의 해당 세계의 역사에 대한 영향력이 거대합니다.]

    [에테르를 소모하여 마정석의 주인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존재들의 마정석들을 연결하시겠습니까?]

    [연결 시 마정석 흡수자가 마정석 안에서 만들어낸 역사는 다른 마정석에도 영향을 주게 됩니다.]

    [또한 마정석의 흡수자가 마정석 안에서 역사를 바꾸게 되면 해당 마정석의 주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태운은 그 알림창을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당연히 해야만 할 것 같았다.

    “연결하겠다.”

    그 순간, 태운의 의식이 바닥으로 꺼졌다.

    * * *

    “으윽….”

    “드디어 일어났군.”

    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하고 잠깐 기절했다가 일어났다.

    하지만 태운이 일어난 곳은 자하르 박사의 연구실이 아니었다.

    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하고 난 뒤 마정석의 주인을 만나는 공간에서 깨어났다.

    “정신이 좀 드는가?”

    태운에게 말을 건 사람은 레일로프였다.

    하지만 평소와는 뭔가 다른 것이 있었다.

    원래라면 흡수가 끝난 이후 마정석의 주인, 한 명만을 만나게 되어 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태운을 깨우는 레일로프의 옆에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반갑구나. 강태운.”

    “가, 가도 님?”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레일로프의 옆에는 가도가 서 있었다.

    “어떻게… 둘이 같이 있으시죠?”

    태운이 마정석을 흡수한 뒤 가도는 눈을 감았다.

    정확히는 대화 도중에 힘을 잃은 듯 천천히 소멸한 것으로 보였다.

    그랬던 사람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여간 당황스러운 게 아니었다.

    “나도 모르겠네. 나도 힘을 잃고 그대로 죽은 것 같았어. 그리고 의식이 끊어졌는데 깨어나 보니 이 장소였네.”가도도 아는 것이 없는 것 같았다.

    “설마… 그것 때문인가?”

    태운은 마정석을 흡수하기 직전에 보았던 알림창을 떠올렸다.

    “뭔가 생각나는 것이 있나?”

    “그게….”

    태운은 자신이 본 알림창에 대해 설명했다.

    그들은 에테르라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태운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에테르라는 것을 소모해서 내 마정석의 세계와 가도 님의 마정석 속 세계를 연결했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태운은 레일로프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가도가 입을 열었다.

    “그럼 내 마정석에서 바뀌었던 역사가 레일로프의 마정석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을 거라는 말인가?”태운은 조금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닐 겁니다. 영향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일부만 적용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가?”

    태운은 의아해하는 가도에게 설명해주었다.

    “제가 가도 님의 마정석을 흡수할 당시에 벨자하와 그의 제자들을 공개적으로 모욕했고, 그 때문에 마법을 배우고 싶은 자들이 모두 테렌 왕국의 마법 아카데미로 몰렸습니다.”

    “그렇지.”

    헤온 왕국의 벨자하라는 인물이 아카데미를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태운이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직접 가서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열린 친선 대련에서 그들을 큰 실력 차이로 이겼다.

    “헤온 왕국이 대륙 전체를 호령하는 대국으로 성장하는 데에는 벨자하의 마법 아카데미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카데미의 영향력을 줄였으니 역사가 크게 바뀌었겠죠. 어쩌면 테렌 왕국이 헤온 제국과 쌍벽을 이루는 강국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흐음….”

    “그런데 레일로프의 마정석에서의 역사는 테렌 왕국이 멸망한 지 10년이나 지난 후입니다. 가도 님의 마정석에서의 역사가 레일로프의 역사에 그대로 영향을 준다면 개연성이 맞지 않아요.”“그렇군…. 그럼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주게 될지… 그게 관건이겠군.”“그럼, 그 말은 뭐지? ‘마정석의 역사를 바꾸게 되면 마정석의 주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 말 말이야.”태운도 그 말의 의미가 궁금했다.

    ‘이미 지나간 역사를 바꾸어준다는 말인가? 가도, 레일로프, 잭, 라온을 모두 살려주고 역사를 바꿔준다는 뜻? 아니, 그건 아닐 거야.’에테르가 아무리 만능의 힘이라고는 해도 어디까지나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일 뿐이다.

    에테르로 세상의 역사까지 바꿀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애초에 이미 지나간 일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는 이야기였다.

    차라리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고 하는 것이 더욱 자연스러울 정도였으니까.

    “그건 나중에 닥쳐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렇군. 레일로프, 할 말이 많… 음? 레일로프?”가도가 말을 걸려고 했지만 레일로프가 눈을 뒤집고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가 봐도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가도가 놀라서 레일로프를 붙잡고 흔들려고 한 순간, 레일로프가 정신을 차렸다.

    “괜찮나!”

    “어… 음… 괜찮습니다… 그런데… 라온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뭐? 뭐라고 했나!”

    “무슨 말을 했….”

    태운과 가도 모두 레일로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레일로프의 입에서 황당한 말이 튀어나왔다.

    “어… ‘남자가 내 몸에 들어오는 게 꺼림칙하니까 내 마정석 흡수할 때는 네 몸으로 들여보내!’라고 하던데…?”

    “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