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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먹는 헌터-234화 (234/379)
  • 234화

    “미리 말씀해주시지 그랬습니까. 식겁했잖습니까….”

    “자넨 담을 좀 길러야 해.”

    알레한드로는 태운의 방어 마법을 보고 안심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병사들이 저 덩치를 상대할 수 있을까요?”알레한드로는 태운에게 물었다.

    당연한 의문이었다.

    마치 거인과 같은 체구에 그런 체구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빠른 속도.

    그 두 개의 장점을 잘 살려줄 수 있는 무기인 거대한 도끼까지.

    “글쎄… 상대가 될 것 같지는 않구나.”

    “네?”

    “기술이 뛰어나지 않다면 무기가 버티질 못할 테니 말이다.”도적 두목으로 보이는 사람이 들고 있는 도끼는 사람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각성하지 않은 사람이 휘두르는 것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였다.

    그런 무기를 특별한 기술 없이 단순히 받아내고 찌르는 것만 배운 병사들이 막아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약도 많이 빨았나 보네.’

    그에게서 마나가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니 각성자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런 비상식적인 무기를 빠르게 휘두르는 것을 보니 근육 증강 약물을 많이 투약한 것 같았다.

    태운은 그를 보고 과거 헥티르의 마정석에서 활용했던 리니안이라는 이름의 약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독성 식물을 잘 정제하면 얻을 수 있는 그 약물은 이 세계의 암시장에서 거대되는 근육 증강 약물의 일종이었다.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도적인 그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강함을 좇아 약물을 투약한 것 같았다.

    “그럼 어떻게….”

    알레한드로가 병사들이 도적 두목의 상대가 되지 않을 거라는 말을 듣고 다시 걱정하기 시작했다.

    “병사들에게는 저런 괴물한테서 버티는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될 거다. 방어막은 적어도 10분은 깨지지 않을 테니 걱정 말고 구경하다가 방어막이 깨지기 전에 나가서 구해주면 돼.”

    “음… 알겠습니다.”

    “하지만… 조금 기대되는 게 있단 말이지.”

    “네?”

    “그냥 보고 있어 봐.”

    태운은 시력을 강화하고 더욱 자세하게 전투를 관찰했다.

    까-앙!

    “이, 이게 뭐야!”

    태운이 씌워준 방어막을 열심히 때리던 도적 두목은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났다.

    도적 두목뿐만 아니라 태운이 방어막을 씌워준 병사들도 어리둥절했다.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의 도끼가 머리 바로 위에서 튕겨 나가질 않나.

    거대한 도적 혼자 수십 번이나 도끼를 휘두르더니 지쳐서는 헐떡거리질 않나.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때, 눈치가 빠른 케일이 태운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전쟁의 여신께서 우리를 축복하셨습니다! 모두 섬멸하세요!”케일은 태운의 의도가 병사들의 수준을 높이는 거라고 판단했다. 그 때문에 도적 두목은 놔두고 일반 도적들만 처치했다.

    그리고 케일은 제빈에게 전음을 보냈다.

    ‘제빈, 당황할 것 없어. 기사님과 스승님은 우릴 시험하는 거야.’

    “으악! 뭐야!”

    제빈은 갑자기 머릿속에서 울리는 케일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얌마! 나야! 진정해!”

    그러자 제빈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케일도 당황하며 전음을 해제하고 제빈에게 소리쳤다.

    “갑자기 뭐야! 귓속말이나 해대고! 아니, 애초에 어떻게 한 거야!”

    “그냥 잠자코 들으면 돼!”

    전음은 태운이 케일에게 가장 먼저 알려줬던 마법이다.

    난이도가 쉬운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쓰기 좋은 마법이었기에 가장 먼저 알려주었다.

    텔레파시처럼 의사 전달을 할 수 있는 회로를 여는 것이 아니었기에 일방적인 의사 전달만 할 수 있었지만 충분히 쓸 만한 마법이다.

    “제빈이 갑자기 왜 저러죠…?”

    “케일이 아마 전음을 보낸 것 같네요.”

    “전음…? 그게 뭡니까?”

    알레한드로는 마법에 조예가 없는 것 같았다.

    이 세상에는 마탑이라는 것도 있고 마법사라는 존재도 있다.

    하지만 기사인 알레한드로는 마법을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텔레파시라고 알고 있나?”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생각만으로 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해준다고…. 그 마법은 마법 중에서도 엄청나게 어려운 편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케일이 사용할 줄 안단 말입니까?”“내가 말한 전음이라는 건 텔레파시의 하위 버전이야. 일방적인 의사 전달밖에 하지 못하지. 그래도 난이도가 확 떨어지니 꽤 쓸만하지.”

    “혹시 직접 만드신 겁니까?”

    태운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만든 건 아니고… 다른 대륙에 전대섭이라는 뛰어난 마법사분이 계신데 그분이 만드신 거야.”“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마법사분이 왜 성능이 떨어지는 마법을 만들었을까요? 본인은 그냥 텔레파시를 사용하면 될 텐데 말이죠.”“그분은 교육 기관의 총수시네. 어린 새싹들을 키우시는 데 헌신하고 계시지.”

    “훌륭하신 분이군요.”

    태운은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 한 분일세.”

    “기회가 된다면 한번 만나 뵙고 싶네요.”

    태운도 생각했다.

    마정석 안의 세상에서 만났던 인연들을 현실에서도 이어갈 수 있게 된다면 어떨까.

    하지만 태운도 그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게 말이야.”

    알레한드로는 태운의 약간 침울해진 표정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도적들의 산채 안을 바라보았다.

    “흐아압!”

    병사들이 과감하게 창을 휘둘렀다.

    자신의 몸이 상대의 공격에 상처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더욱 과감하게 도적 두목을 압박해갔다.

    도적 두목의 몸에 상처가 하나둘씩 늘어가던 순간

    “이… 버러지들이!”

    카앙!

    완벽한 방어는 용기와 유리함을 만들어냈지만 힘의 차이는 여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도적 두목은 도끼를 크게 휘둘러 병사 한 명의 창을 부러뜨렸다.

    창이 부러진 병사는 다시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나는가 싶더니 무언가를 다짐한 듯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도적 두목의 다리를 붙잡았다.

    “호오… 생각보다 잘해주네.”

    치열하고 절박한 전투, 그것만큼 실력을 늘려주는 것은 없다.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전투,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한 태운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기까지 했다.

    “10분 된 것 같네. 먼저 가지.”

    물론, 태운이 보고 있는 한 죽을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하이 부스트.’

    서-걱.

    태운은 순식간에 날아가 도적 두목의 머리를 베었고, 알레한드로도 산채 안으로 들어가 도적들을 순식간에 도륙했다.

    “잘 버텨주었다. 훌륭하더군.”

    그리고 잘 버텨준 병사들을 격려했다.

    이미 제빈과 케일에 의해 도적의 기세가 한풀 꺾여 있던 상황에 태운과 알레한드로까지 가세해 도적 두목까지 순식간에 죽자 그들은 전의를 잃어버렸다.

    그다음 일어난 일들은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그렇게 10분이나 지났을까.

    도적 잔당들은 모두 죽어 그들의 산채 곳곳에 널브러져 있었다.

    “시체들을 모으게. 불태울 준비를 하지.”

    “주변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잘못하면 산 전체로 불이 번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음…. 하긴… 이 산채는 풀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아서 자칫하면 위험할 수도 있겠어.”알레한드로는 시체 처리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었고 태운은 그런 알레한드로에게 말했다.

    “그런 문제는 걱정하지 말고 시체나 모으도록 하게.”

    “네? 일단 알겠습니다.”

    병사들은 그 말에 수십 구의 시체를 태운의 앞에 모았다.

    “파이어, 파이어 컨트롤.”

    태운은 불꽃을 만들어 시체에 불을 붙였고 파이어 컨트롤을 사용해 시체를 제외한 다른 물건에 불이 옮겨붙지 않게 조절했다.

    덕분에 시체만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고 병사들은 체력을 아낄 수 있었다.

    시체를 전부 처리하고 산채를 나온 태운과 알레한드로는 병사들을 쉬도록 했다.

    “다들 수고했으니. 오늘은 푹 쉬도록 하지.”

    “야영 준비도 내가 하도록 하지.”

    태운은 마법을 활용해 흙으로 집을 만들었다.

    안락하지는 않겠지만 매번 야영만 하던 그들에게는 벽과 지붕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오옷…!”

    “감사합니다!”

    병사들도 마법이라는 것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그리 놀라지 않는 모습이었다.

    “푹 쉬게.”

    그렇게 병사들은 태운이 만든 집 안에 들어가 쉬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왁자지껄한 소리가 안에서 흘러나왔다.

    대충 들어보니 오늘의 일을 무용담 삼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각성자처럼 강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별것 아닌 이야기로 들릴 수 있었지만 일반인인 병사들에게는 흔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마 이들은 평생 가지고 갈 안줏거리를 얻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태운은 그들의 성장을 고작 이 정도에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태운은 한번 시작한 일은 끝장을 보는 성격이었으니까.

    * * *

    태운이 알레한드로와 같이 다닌 지 벌써 6개월이 지났다.

    그 과정에서 알레한드로와 케일, 제빈은 엄청난 성장을 이뤄냈다.

    케일은 마나를 자연스럽게 검에 주입할 수 있게 되었고 현실 세계의 기준으로 중급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알레한드로의 검술과 태운의 검술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두 개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특이한 검술을 손에 익히게 되었는데 그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태운도 케일이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을 허락했다.

    제빈의 성장도 굉장히 눈에 띄었다.

    도둑 길드 출신의 날랜 움직임을 제대로 살리기에는 알레한드로의 검술은 적합하지 않았고 태운이 알려준 검술 덕에 큰 폭의 성장을 이뤄냈다.

    마법에는 재능이 없어 아쉬웠지만 일단 기초 마법은 알려주었다.

    하지만 가장 큰 성장을 이뤄낸 사람은 알레한드로였다.

    알레한드로는 두뇌가 명석해 마법도 빠르게 배웠고 검술에 대한 성장도 폭발적이었다.

    지금까지 쌓아 왔던 경험치가 좋은 스승을 만나 한 번에 터지듯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태운은 그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고 성심성의껏 그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태운에게 가장 큰 뿌듯함을 안겨준 이들은 따로 있었다.

    바로 태운이 키우고자 마음먹었던 일반 병사들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태운의 가르침을 받는 것을 반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강해지는 데에 뜻이 없었고 강해진다고 해도 한계가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다.

    괜히 몸을 굴려 가며 힘들게 힘을 키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운의 훈련을 받으며 그들의 생각은 바뀌었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그들은 혼자 일반 병사 10명은 족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졌다.

    알레한드로는 그들에게 틈틈이 병사 지휘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주었다.

    그 이유는 바인트로 영지로 돌아갔을 때, 그들을 십인장으로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오늘이 바로 바인트로에 돌아온 날이었다.

    “오랜만이군요. 바인트로 영지는 평범한 지방 영지였는데… 얼마나 바뀌었는지 기대가 됩니다.”알레한드로도 이번에 바뀐 영주의 추진력과 능력에 굉장히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았다.

    “충성! 바인트로의 기사, 알레한드로 님을 뵙습니다!”

    “수고하게.”

    “뒤에 계신 두 분을 못 보던 사람들인데… 누구시죠?”성문을 지키던 경비병은 태운과 케일을 보고 물었다.

    “아, 이분은….”

    “귀인인 것 같군요. 일단 들어오시죠.”

    알레한드로가 태운과 케일을 소개하려던 순간. 성문 안에서 누군가가 나왔다.

    “반갑습니다. 전 바인트로의 영주, 헬켄이라고 합니다.”그 사람은 바로 이 지방 영지, 바인트로를 개혁하고 있는 영주.

    헬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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