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33화 (233/379)

233화

“이놈들 봐라….”

태운 일행은 도적이 발견되었다는 길목에 도착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이미 참사가 벌어져 있었다.

10명의 사람이 죽어 있었다.

둘은 깔끔한 고급 의류를 입고 있었고 다른 두 명은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머지는 6명은 갑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봐선 호위로 고용한 용병이었던 것 같다.

“행상인이었나 봅니다.”

“그렇군.”

알레한드로의 종자인 제빈이 고급 의류를 입고 있던 사람의 안 주머니에서 상인 조합의 인증패를 발견하고 가져왔다.

“행상인이 용병까지 고용해서 움직이는데 짐이 없었을 리가 없으니 짐을 노린 도적들의 짓이라고 생각하는 게 옳겠군.”“그럼 이 주변에 흔적이 있지 않겠습니까?”제빈의 말에 알레한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시체를 살펴보던 케일이 입을 열었다.

“음… 이 두 명은 노예인 것 같습니다. 목 뒤에 노예의 인장이 박혀있네요.”“노예라…. 노예를 데리고 온 것 보면 짐이 생각보다 많았나 보군.”“여기 말발굽 자국이 있는 걸 보면 수레도 있었던 모양입니다.”“흠… 그럼 이 주변에서 빨리 수레바퀴 자국을 찾아 보거라.”

“알겠습니다!”

알레한드로의 한마디에 병사들이 흩어져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병사 하나가 흔적을 찾았다며 소리쳤다.

“수레바퀴 자국은 아니지만 말발굽 자국을 찾았습니다.”“흐음… 수레 자국은 지운 건가…? 일단 이걸 따라가 봐야겠군.”알레한드로는 말발굽 자국이 숲속으로 이어져 있는 것을 확인하고 이대로 따라가 보려고 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만.”

하지만 태운이 그를 말렸다.

알레한드로는 태운의 말에 반문했다.

“무슨 말씀이시죠?”

“말의 보폭이 넓지 않은가. 수레가 있었으면 말의 보폭이 이렇게 넓을 리가 없지 않나.”

“그게 무슨….”

“본진 탐색에 혼선을 주기 위해 말에게 겁을 줘서 도망치게 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야. 수레바퀴 자국을 지울 놈들이 말의 발자국을 지우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거든.”즉, 도적들이 자신을 찾는 사람들이 저쪽으로 가도록 유도한 것이라는 말이다.

“아마 저쪽으로 가면 겁먹고 도망가다가 배가 고파져서 풀이나 뜯어 먹고 있는 말이 있겠지.”

“그렇군요….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할 것 같나? 이건 조금 더 생각해보면 나올 것 같은데.”“말 발자국이 나 있는 곳의 반대편이지 않겠습니까?”

“그래, 그곳으로 가보지.”

알레한드로는 태운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고 병사들을 이끌고 말 발자국이 나 있는 곳의 반대편 숲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넓게 산개해 주변을 살펴보며 전진했고 10분 정도가 지나자 도적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여기입니다! 사람의 발자국과 수레바퀴 자국을 발견했습니다!”병사가 소리치자 모두 그쪽으로 모였다.

태운은 그 흔적을 보고 중얼거렸다.

“발자국 수로만 보면 대충 30명 정도 되겠네. 산채에 남아 있는 놈들이 있다면 더 많겠지만… 수레의 무게도 상당히 많이 나가는 모양이야. 술 냄새가 약하게 나는 걸 보니 행상인에게서 털은 게 음식과 술인 모양이군. 오늘 밤에 술 파티를 벌이겠구만.”태운이 중얼거리는 것의 내용을 들은 알레한드로는 제빈에게 명령했다.

“이 흔적을 따라가 녀석들의 본거지를 찾아내라. 녀석들이 밤에 취해있을 때 습격한다.”

“알겠습니다!”

제빈은 알레한드로의 종자이지만 견습 기사이기도 하다.

제빈은 도둑 길드 출신으로 뒷세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알레한드로에 의해 갱생되었다.

도둑 길드 출신이어서 그런지 그의 몸놀림은 굉장히 날랬고 은밀했다.

“혼자서 괜찮겠나?”

“도적 따위에게 당할 녀석은 아닙니다. 그럼 이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도록 하죠.”알레한드로는 병사들에게 말해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취사 준비는 하지 못했다.

불을 붙였다가는 도적들에게 들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육포 쪼가리네. 그 마을에 있었을 때가 좋았는데.”“그러니까. 여관 아줌마 요리 솜씨가 죽여줬는데 말이지.”병사들은 수다를 떨며 질긴 육포를 뜯어 먹었다.

‘병사들의 수는 정확히 10명, 그리고 나, 알레한드로, 제빈, 케일까지 총 14명이다.’산채에 남아 있던 도적이 20명이라도 해도 저 산채에는 50명이 넘는 도적이 있을 것이다.

‘나나 알레한드로, 제빈, 케일은 문제없겠지만 병사들은 어쩌다 죽을지도 모르지.’그들도 도적 소탕 작전을 앞두고 떨지 않는 용감함을 가졌지만 그것이 그들의 강함을 대변해주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들은 오로지 장비빨로 도적 두세 명을 상대할 수 있을 뿐인 평범한 병사였으니까.

“앞으로도 저놈들과 같이 움직이려면 조금 더 강하게 키워야 할 텐데 말이지.”

“네?”

알레한드로가 옆에 앉아 육포를 꺼내 들자 태운이 말을 걸었다.

“저 병사들 말이야. 자네의 직속 병사 아닌가?”

“예, 맞습니다.”

“보통 기사라면 천인장일 텐데 30~40명 정도는 데리고 다니지 그랬나? 도적 소탕 임무까지 맡았으면서.”“저는 기사에 천인장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론 백인장에 불과하니까요.”“하긴…. 뭐, 지방 영지의 기사가 다 그렇지.”어쨌거나 준귀족에 속하는 기사는 보통 천인장을 맡는다.

백인장은 보통 전장에서 크게 활약한 평민 병사들이 맡는 자리.

하지만 지방 영지는 보통 국경이 아닌 이상 병사를 많이 기를 수 없는 터라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10명의 병사…. 잘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나?”

“네?”

“저 10명의 병사들은… 기사의 자질이 보이진 않지만 더 잘 기를 수는 있을 것 같네만.”

“그렇습니까?”

“그래, 못 할 것도 없겠지.”

“알겠습니다. 이번 전투에서는 제가 병사들을 지켜주고 병사들이 주도해서 싸울 수 있도록 유도하겠습니다.”

“말이 잘 통하는군.”

지금까지 저 병사들은 알레한드로와 제빈을 보조하는 형식으로 전투를 해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전투 실력이 늘지 않는다.

“그럼 일단 병사들에게 말해두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말거라. 나에게 좋은 생각이 있으니 말이야.”

“그게 뭐죠…?”

“가까이 와보거라.”

태운은 알레한드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알레한드로는 경악했다.

“네…? 그래도 되는 겁니까?”

“나만 믿어봐라. 괜찮을 테니까.”

그때, 정찰을 보냈던 제빈이 돌아왔다.

“녀석들의 본거지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 직선 20분 거리입니다.”“잘했다. 아직 해가 지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좀 쉬어두도록.”

“알겠습니다.”

알레한드로는 제빈에게 육포를 던져주었다.

그러고는 태운에게 아주 조용히 말했다.

병사들이 듣지 못하도록.

“알겠습니다. 대신 병사들이 절대 죽어선 안 됩니다.”“그건 맡겨둬도 좋네. 그럼 나도 좀 쉬도록 하지. 케일과 제빈에게도 비밀이네.”태운은 그렇게 말하고는 뒤로 누워 휴식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도 알레한드로는 이게 맞는 일인지 고민하며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하… 이래도 되는 건지….”

* * *

다음 날, 새벽 1시

태운 일행은 도적들의 본거지로 접근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보초 하나 남겨두지 않고 술 파티를 벌이며 놀고 있었다.

‘제빈, 상대의 전력은?’

‘정확히 48명입니다. 천막 안에서 쉬고 있는 놈들도 있을 테니 55명까지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다.’

알레한드로는 술 파티를 벌이고 있는 도적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태운이 말한 작전을 지금 당장 실행해야 하는데 아직도 마음이 정리되지 않은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은 듯 고개를 들고 소리쳤다.

“지금이다! 돌격! 산적들을 모조리 죽여라!”알레한드로의 말에 병사들과 제빈, 케일은 가장 먼저 돌격해 산채 안으로 들어갔다.

“으윽?”

“저기 병사들이다! 검을 들어!”

“으윽… 머리가….”

예상대로 산적들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일어나 검을 들었고 병사들이 단순하게 찌르는 창에도 쉽게 공격을 허용했다.

“그럼 시작하지.”

그때, 태운과 알레한드로가 산채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기사 님?”

“레일로프 님?”

병사들과 제빈, 케일이 당황한 듯 말했지만 태운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열심히 한번 해보려무나. 그로우.”

태운은 그로우 마법을 사용해 나무로 만들어진 산채의 벽을 자라나게 해 입구를 막아 버렸다.

“이런 미친!”

“이런 장난치시는 분이 아니잖습니까! 기사님!”병사들은 거의 패닉에 빠졌고 케일과 제빈은 열심히 싸우고는 있었지만 당황한 것은 매한가지였다.

“하… 이제 진짜 맞는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괜찮다. 보험은 확실하니까.”

“하아….”

태운과 알레한드로는 나무 위로 돌아가 산채 안의 상황을 살펴보았다.

병사들은 패닉에 빠진 상태로 어거지로 창을 휘두르고 있었고 케일과 제빈은 당황해 호흡이 꼬이고 자세가 흐트러져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 포커스 마인드.”

태운은 병사들과 제빈, 케일에게 마음의 불안을 없애주고 눈앞의 대상에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병사들도 패닉에서 벗어났고 제빈과 케일은 평소처럼 제 실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거봐. 괜찮다고 했지?”

태운은 정신을 차리고 도적들을 천천히 처치해나가는 병사들을 보며 말했다.

알레한드로도 그제야 안심하고 그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전부 전신 갑옷을 입고 자신의 키보다 큰 장창을 가지고 있다. 해봐야 80cm의 한손검을 들고 휘두르는 게 전부인 도적들이 뭘 할 수 있겠나.”

“그렇군요.”

장비의 차이는 전투에 있어서 생각보다 엄청난 차이를 불러온다.

전신 갑옷을 입고 있는 병사들은 도적의 공격을 어느 정도 허용해도 괜찮았지만 천옷을 입고 있는 도적들은 무조건 병사들의 창을 피해야만 했다.

“그리고 취해서 창끝이 두 개로 보일 텐데 피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좋네요….”

사실 그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태운은 나오기 전에 병사들에게 버프 마법을 사용해 두었다.

오늘따라 컨디션이 좋다고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버프 마법이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자신의 실력 이상의 힘을 경험해보는 것만으로도 실력 향상의 큰 도움이 되니까.

그때, 산채 안에서 이변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적들이 공격을 멈추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더니 산채의 중앙에 있는 천막 안에서 키가 2m 30cm는 될 것 같은 거구의 남자가 거대한 도끼를 들고나왔다.

“하… 이 새끼들이 죽으려고 발광을 하네….”그가 바로 이 산채의 주인이었다.

“안 돼!”

“멈춰라.”

알레한드로가 그의 등장에 이변을 느끼고 달려 나가려 했지만 태운이 그를 말렸다.

“뒈져라!”

도끼가 날아드는 기세를 보니 갑옷째로 몸이 반으로 갈라져 죽을 것 같았다.

저런 거구가 휘두른다고 상상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병사의 머리 위로 도끼가 떨어져 내렸다.

꼼짝없이 죽겠구나 싶던 그때.

터-엉!

도적 대장의 도끼가 병사의 머리에 닿기도 전에 튕겨 나갔다.

“어…?”

“이놈! 무슨 잡기술을!”

알레한드로도, 죽을 뻔했던 병사도 놀랐다.

“무슨….”

“병사들의 갑옷에 마법을 걸어두었다. 일정 이상의 충격량을 가진 공격이 가해지기 직전에 방어막을 전개하도록.”

“그게 도대체….”

알레한드로는 얼빠진 얼굴로 태운을 바라보았다.

태운은 웃으며 알레한드로에게 말했다.

“내가 보험은 확실하다지 않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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