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제 스승이 되어주세요!”
레일로프의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레일로프도 도적들이 마을을 습격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을로 돌아갔었다.
하지만 레일로프가 도착했을 때는 입구를 막고 있던 마을 청년들의 대부분이 이미 죽어 있었고 입구가 뚫려 어린아이와 여자들도 공격을 당한 상태였다.
레일로프는 눈이 돌아가 도적들을 모두 도륙했고 전투가 끝난 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힘을 너무나도 가벼이 생각했다.’
힘을 가진 자로서의 책임, 생각이 깊지 못했다.
자신이 마을을 떠나면 도적들이 다시 습격할 거라는 아주 단순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다니.
죄책감에 가슴이 너무나도 쓰려 왔다.
이 일은 앞으로 레일로프가 살아가면서 행동 하나에 있어서도 신중하게 판단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다.
도적들을 모조리 쓰러뜨린 뒤 고통스러워하는 레일로프에게 다가온 사람이 바로 케일이었다.
모두 가족과 친구, 혹은 연인의 죽음에 분개하는 상황에서도 미래를 위해 레일로프에게 검을 배우고 싶다는 것이다.
고작 17의 나이에 온 가족을 잃고 무언가를 배워 미래를 만들어나갈 생각을 하다니.
케일은 슬프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케일의 눈 주변에 눈물이 흐른 흔적이 있었다.
하지만 악에 받쳐 복수를 위해 검을 알려달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오로지 마을의 안위를 위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런 목표를 가지고 힘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이것을 어찌 거절하겠는가.
하지만 레일로프는 자신이 스승으로서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이 없었다.
과거 자신을 한 나라의 장수로 완성시켜 주었던 가도 장군처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거절할 수는 없지.’
힘에 대해 가벼이 여겼던 자신의 속죄라고 생각했다.
레일로프는 그렇게 케일을 가르치기 시작했고 스승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 *
‘…레일로프 이 녀석….’
과거, 현실의 가도와 레일로프의 관계는 장군과 부하였다.
물론, 가도는 레일로프를 수제자라고 생각했지만 레일로프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을 몰랐다.
‘이 사실을 알면 가도가 기뻐하겠군.’
그 이후의 이야기는 간단했다.
레일로프는 100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케일에게 검을 알려주었고 케일의 실력이 느는 것을 보며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갔다.
그 과정에서 케일에게 정을 붙이게 되었고 그때 기사가 찾아온 것이다.
“…알겠다. 내일 마을 옆 공터로 찾아오거라.”일단 태운도 케일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거절해 검을 알려주지 않고 검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하는 것도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으니까.
‘되도록이면 기사를 따라가지 못하게 설득해야지. 안 되면… 어디서든 쉽게 죽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만들어 주면 되는 거고.’태운은 간만에 누군가의 스승이 되어 보기로 마음먹었다.
* * *
태운은 해가 뜨기 전에 케일과 만나기로 했던 공터에 미리 나와 있었다.
미리 준비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간단하게 나무 기둥부터 세워놔야겠군.”이 마을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덕분에 나무가 넘쳐났기 때문에 자제 조달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태운은 곧게 솟아 있는 나무 옆으로 가서 검을 꺼냈다.
그러곤 마나를 실어 단번에 나무를 베어 냈다.
그리고 나무가 쓰러지기 전에 나무를 여섯 등분 하여 여섯 개의 통나무를 만들어냈다.
“이 정도 두께면 딱 좋네.”
태운은 통나무를 하나하나 들고 한쪽 면을 뾰족하게 다듬기 시작했다.
그리고 뾰족하게 다듬어진 통나무를 바닥에 힘껏 내리꽂았다.
검을 휘두르며 수련할 수련용 허수아비 대용이었다.
“두꺼운 밧줄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뭐, 이 정도면 되겠지.”태운은 일단 그렇게 해놓고 나무에 기대어 쉬었다.
그렇게 10분이 지났을까.
그때, 케일이 나타났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시간이었다.
“어제 무리했을 텐데 조금 더 쉬지 그랬나. 휴식도 훈련의 일부야.”“괜찮습니다. 뭐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언제보다도 몸이 가볍습니다.”태운은 혹시나 해서 물어보았다.
“혹시 어제 싸울 당시에 무슨 감각 못 느꼈나? 몸 안에서 뭔가가 터진 것 같다든가, 몸이 뜨거워진다든가 하는… 그런 것 말이야.”“그런 건 없었는데… 아, 아주 잠깐 세상이 느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세 명을 벤 후 한숨을 쉬니 사라지긴 했지만….”
“흐음… 역시 그랬군.”
일반적으로 각성할 때에는 당사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극도로 흥분한 상태나 싸울 때 각성을 하게 되는 경우는 말이 달라졌다.
자신도 모르게 스킬을 써버린다거나 마나를 방출하기도 한다.
‘그럼 무슨 스킬을 가지고 있는지… 한번 볼까?’태운은 케일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케일
LV: 12
마나 총량: 184,940
체력(12) 근력(13) 민첩(11) 유연성(4) 지력(8)
특성
혜안(LV.1)
스킬
사고 가속(LV.1)
집중력 강화(LV.1)
“호오….”
“네…?”
“검사로서의 재능은 타고났구나.”
정석적인 검사로서 가지면 좋을 스킬과 특성을 가졌다.
혜안은 적의 실력을 파악하고 공격의 경로를 파악하기 좋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극대화시켜줄 수 있는 스킬인 사고 가속과 집중력 강화까지.
이것만 있으면 동실력대의 1 대 1 대결은 질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지속적으로 농사를 짓고 힘든 일을 해왔기 때문에 힘이나 체력이 나쁘진 않아.’17살치고는 나쁘지 않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유연성이 크게 떨어졌다.
단순 노동을 오랫동안 해와서 그런지 몸이 굳어 있는 것 같았다.
‘검을 다루는 데에는 유연성이 굉장히 중요한데 말이지.’태운은 케일의 신체 능력 밸런스를 맞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단 않아 봐라.”
“네, 알겠습니다.”
케일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무엇을 가르쳐줄 것인지 굉장히 기대한 모양이었다.
“다리를 벌려 보거라.”
“넵!”
케일을 태운의 말대로 다리를 벌렸고 태운은 그사이에 두툼한 나뭇가지를 꽂아 한쪽 다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시켰다.
“에…?”
그리고 다리로 케일의 등을 고정시켰다.
그 후 검집으로 케일의 다리를 벌렸다.
일명 다리찢기였다.
“으아아악!!! 으아아악!!!”
“버텨라. 다리가 끝나면 상체다.”
“끄아아아아악!!!”
“앞으로 매일 수련 시작 전에 30분씩 할 테니 익숙해지거라.”조용한 마을 옆 공터에 케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15분이 지났고 태운은 케일을 놔주었다.
“사타구니가… 부러진 것 같아요….”
“괜찮다.”
사람마다 유연성이 다르고 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막무가내로 다리를 찢는 행위는 하반신 마비까지 초래할 정도로 위험한 행위다.
하지만 태운은 마법으로 케일의 신체를 자세히 관찰하며 케일의 몸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다리를 찢었기에 부상이 생길 수 없었다.
“한번 일어나보거라.”
“넵….”
케일은 천천히 일어나 다리를 풀어 보았다.
“어…?”
케일은 일어나서 몸을 조금 움직여보더니 몸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뭔가 조금 더 몸이 가벼워진 것 같네요.”
“일시적인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그게 네 기본 몸 상태가 될 거다.”
“오….”
“이제 앞으로 엎드려라. 상체 스트레칭을 시작하겠다.”
“네, 알겠습니다!”
한번 효과를 본 케일은 적극적으로 태운의 명령에 따랐다.
케일은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태운을 따르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끄아아아악!!!”
비명을 지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말이다.
* * *
“그게 아니지. 그렇게 휘두르면 힘이 안 들어가고 뼈에 닿을 때 검이 힘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고 방향이 꺾인단 말이다.”
“그럼 이렇게….”
“그래! 집중해서 하다 보면 그게 몸에 익고 습관이 되면 그게 실력이 된단 말이다. 다시!”케일과 수련을 한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케일의 신체는 상당히 좋은 편이었다.
덕분에 유연성은 빠르게 개선이 되었고 근육이 붙는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이대로면 100일 안에 근육량이 3~4kg은 붙을 것 같았다.
딱히 근력을 운동을 해본 적이 없어 근육이 빠르게 붙는 것을 감안해 보아도 상당한 속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케일이 검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런 케이스가 적은 것은 아니다.
그런 경우에는 몇 번이고 반복하며 움직임 자체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된다.
하지만 케일과 태운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100일.
그 안에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고 반복 훈련으로 검술의 움직임을 몸에 익히는 것은 결코 쉬운 게 아니었다.
‘…별수 없나.’
태운은 훈련을 멈췄다.
“따라와 보거라.”
그러고는 숲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어째서….”
“잘 봐라. 이게 평범한 재능을 가진 검사가 평생을 검만 바라보아야 닿을 수 있는 경지다.”태운은 옆에 있는 나무를 가볍게 베어냈다.
그러자 나무의 70% 정도가 잘려 천천히 부러졌다.
“와….”
수십, 수백 번이나 도끼질을 해야 겨우 자를 수 있는 두꺼운 통나무를 단번에 베어 넘긴 실력에 감탄했다.
“그다음은 뛰어난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검사가 평생에 걸쳐 닿을 수 있는 경지다.”태운은 쓰러지는 나무에 세로로 검을 휘둘렀고 그러자 나무는 세로로 쩍 하고 갈라졌다.
“와….”
케일을 쓰러지는 나무를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천재라고 할 수 있는 검사가 닿을 수 있는 경지는 고작 이것과 비교도 할 수 없지.”태운은 검에 마나를 실은 후 허공에 천천히 검을 휘둘렀다.
그의 검 끝에 반짝이는 얇은 선이 생긴 것만 같았다.
“내가 너에게 기대하고 있는 경지는 바로 이런 것이다.”태운은 검을 검집에 넣고 가장 가까이 있는 나무에 손을 올려놓았다.
“…….”
케일은 레일로프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 케일에게 필요한 것은 최고의 시설, 진심으로 검을 나눌 수 있는 라이벌이나 특별한 가르침 같은 것이 아니었다.
케일에게 필요한 것은 더욱 강한 힘을 갈구하는 순수한 욕망이었다.
마을을 지키기 위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그런 것보다 순수하게 아무 이유 없이 ‘강해지고 싶다’, 그런 마음이 있어야만 했다.
태운도 그랬고 찬영도 그랬다.
잭도 그랬으며 레일로프도 그랬다.
강해져서 이루고 싶은 것이 있었을지언정 강해지고 싶은 것에 이유 같은 것은 없었다.
“강해지고 싶으냐.”
지금 케일에게 필요한 것은 동기 부여.
지금까지 케일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동기 부여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네. 강해지고 싶습니다.”
“그래, 그거면 됐다.”
태운은 손을 올려두었던 나무를 살짝 밀었다.
그러자 전방의 나무 수백 그루가 도미노처럼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 돌아가지. 계속해서 훈련을 해야 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케일의 눈빛이 달라졌다.
무언가를 위해 강해져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고 강해지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