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자하르와 태운은 룬석의 특성과 제작 원리를 마법 구현 장치에 적용할 방법에 대해 토론해 보았다.
물론, 쉽지는 않았지만 어려운 문제를 풀어가는 시간은 즐겁기만 했다.
“일단은 이 룬석을 활용하는 방향으로 제품을 만들어야겠구나. 그건 시간이 얼마 안 걸릴 테니까.”
“그럼 같이 동업하시죠?”
태운은 많은 양의 룬석을 빠르게 생성할 수 있었지만 마법 발동의 트리거가 마땅치 않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자하르의 기술력이라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룬석을 활성화시키는 트리거를 만들어주시면 되는데 가능하시겠죠?”“그거야 쉽지. 지금 발사 장치에 룬석을 끼우고 트리거 역할을 할 수 있는 장치만 만들면 되는 거니까. 뭐…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는 물건이라 시행착오가 좀 있겠지만 그렇게 어려울 것 같지 않구나.”“그럼… 그렇게 하고 판매 수익은 어떻게…?”
“10%만 주거라.”
“예?”
태운은 룬석으로 엄청난 돈을 벌고 있었다.
하루에 수백 개의 룬석을 신영 그룹에 납품하고 억 단위에 달하는 대금을 받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납품하고 있는 룬석은 마나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룬석이다.
그렇기에 마나를 차단하는 상자에 담아서 옮겨야 해 벌리는 돈의 절반 이상을 상자를 사는 데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자하르가 동참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납품하는 룬석을 마나 반응을 없앤 새로운 룬석으로 바꾸고 자하르가 만든 발사 장치를 같이 팔면 마나 차단 상자로 나가는 돈도 아낄 수 있고 가격을 낮춘 룬석을 만들어 대중화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지금까지 상상하지 못한 액수를 벌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해봐야 재벌들이나 고위급 인사들만 사는 사치품의 역할을 하고 있지만… 마나 차단 상자가 필요 없게 되면 가격을 내릴 수도 있고 안정성이 자연스럽게 올라가면서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게 만들 수 있어. 그걸 박사님이 모를 리가 없는데… 고작 10%만 받겠다고…?’태운은 이해할 수 없었다.
태운이 그런 반응을 보이자 자하르가 입을 열었다.
“난 딱히 부에 큰 뜻이 없다. 내 생애 연구할 수 없을 줄 알았던 물건을 연구할 수 있게 해주었는데 돈에 욕심을 부릴 수야 없지. 사실 돈을 받고 싶지 않았는데 그랬다가는 이혼당할 것 같아서 받는 게야.”
“…그렇군요.”
“집에 잘 들어가지도 않는데 돈이라도 많이 벌어다 줘야 할 것 아니냐.”그때, 자하르의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아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핑계 대는 것처럼 들리는데?”자하르의 딸, 엘레나였다.
“무슨 소릴 하는 거냐. 헛소리하지 말고 가서 일이나 해라.”“혜연이가 둘이 재밌는 거 한다길래 궁금해서 와봤는데 바로 돌아갈 순 없지.”“혜연이 아티팩트 연구는 내팽개치고 왔다는 거냐?”
“다른 연구원 붙여두고 왔어.”
“그게 네 연구원이냐? 어딜 아빠 연구원을 부려먹….”“아빠가 시킨 거 대신 아티팩트 연구시키니까 좋아 죽던데? 아무튼 둘이 무슨 얘기하고 있었어?”엘레나는 자하르의 말을 무시하고 태운에게 물어보았다.
“아 그건….”
태운은 엘레나에게 자하르와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 대충 설명해주었다.
태운이 대충 설명했기에 엘레나는 쉽게 이해하지 못했지만 지금 태운과 자하르가 하고 있는 짓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짓인지는 알 수 있었다.
“어후… 생각만 해도 어질어질하네. 그래서 어느 정도까지 진행됐어?”“한 달이면 실제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정도야?”
“그래, 태운이가 가져온 물건이 어지간히 대단한 것이어야 말이지.”“오… 나중에 완성되면 나도 한번 보여줘.”“알겠어요. 이제 슬슬 마정석 흡수하러 가야 할 것 같네요.”자하르는 태운의 말을 듣고는 시계를 보았다.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 그럼 이제 올라가자꾸나.”“알겠습니다. 그런데 마정석이 몇 개나 준비됐나요?”
“12개란다.”
“엄청 많이 준비하셨네요?”
“그중 8개는 중하급 이하의 마정석이라 금방 끝날 게다. 나머지 4개 중 3개는 상급이고 한 개는 최상급이다.”“오… 최상급 마정석은 처음인 것 같은데요?”“그걸 에너지원으로 썼으면 1년 동안 연구소의 전력 걱정을 없었을 텐데 말이지.”“최상급 마정석은 내포하고 있는 마나가 상급 마정석과는 차원이 다르니까요.”상급 마정석이 품고 있는 마나의 양은 수치로 따지면 30,000 정도다.
하지만 최상급 마정석은 그것의 수십 배에 달하는 마나를 품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주 발견되지도 않고 발견되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오는 물건이다.
“기대되는데요?”
태운은 상급 마정석이었던 헥티르의 마정석에서 얻은 주요 보상들을 떠올렸다.
육감이라는 사기적인 성능의 탐지 스킬을 얻었고 관찰력 스탯이 감각 스탯으로 변해 초감각이라는 초인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스탯을 얻을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해주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압도적인 공포에서도 패닉에 빠지지 않을 수 있게 해주는 용기라는 스탯도 얻었다.
‘그게 상급 마정석이었어.’
그런데 그것보다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최상급 마정석이라면?
벌써부터 보상이 기대되기 시작했다.
“일단 자잘한 마정석부터 흡수하죠?”
“알겠다. 오늘은 그럼 8개의 마정석을 흡수하는 것부터 시작하지.”
* * *
[이 동굴에서 살아남으십시오.]
“간만에 재밌는 게임 하는 느낌이네.”
하급 마정석들은 스토리가 없는 단순 임무를 내어주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 태운이 흡수하고 있는 마정석이 그랬다.
“음… 동굴 안인 것 같고… 지금 무장 상태는… 방검이네. 이 정도면 뭐든 클리어할 수 있겠어.”태운은 천천히 마력 실을 퍼뜨려 동굴 안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없…. 잠깐만 저거 뭐지?’
동굴의 심부에서 무언가가 꿀렁꿀렁하며 빠른 속도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방향으로 신경을 집중하니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용암?’
이곳은 산에 있는 동굴이 아닌 지하에 있는 동굴인 것 같았다.
용암이 흘러나오고 있는 속도는 압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할 수 없는 속도였으니까.
‘압력 때문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어. 눈으로 확인한 후 도망친다면 일반적인 사람의 달리기 속도로도 피하기 힘들 정도야.’하지만 태운은 일반적인 사람도 아닐뿐더러 저 멀리 있는 용암을 미리 알아차렸기에 피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태운은 여유롭게 출구를 탐색하며 미러 마법을 사용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불쌍하네. 키나 얼굴을 보면 15~17살 정도 된 것 같은데 이런 곳에서 용암에 묻혀 죽다니….”많지 않은 나이에 이렇게 위험한 곳에 올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마정석에서 알려주는 스토리가 없으니 알 수 없는 것들투성이였다.
그게 조금은 아쉬웠다.
10분 정도가 지났을까?
마력 실이 출구를 탐색해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무언가가 이상했다.
출구인 것은 분명했지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바위와 흙을 쌓아 막아놓은 것 같았다.
‘참… 이게 무슨 짓인지.’
조금 시간이 촉박해졌음을 느낀 태운은 하이 부스트를 사용해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
‘신속의 룬만 사용하다가 간만에 하이 부스트를 쓰니까 조금 아쉬운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 별수 있나. 이 몸은 에테르가 없는데.’전대섭처럼 마나에서 에테르를 추출해 낼 수 있다면 괜찮겠지만 태운은 할 수 없는 일이었으니 이 정도에서 만족해야 했다.
‘어차피 하이 부스트면 충분하네.’
2~3분 만에 출구에 도착한 태운은 막힌 출구를 살펴보았다.
“흠… 분명 누군가 막은 게 분명하긴 하네. 이걸 뚫으려면….”그때, 출구의 너머에서 누군가가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야?”
“머저리 같은 새끼. 크크큭.”
“뭐라고?”
다른 건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건 이 너머에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이 출구를 막은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목소리를 들어보면 이제 막 변성기가 끝난 16~17살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리고 다른 목소리가 또 들리는 것을 보니 한 명이 아닌 것 같았다.
‘최소 3명….’
태운은 바위 사이로 마력 실을 길게 퍼뜨렸다.
‘꽤 많네? 6명이야.’
태운은 그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누구야? 나한테 왜 이러는 거야?”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이래서 평민들이란….”그의 말을 들어보니 그는 귀족가의 자제인 것 같았다.
“나한테 왜 이러는 건데?”
“그건 몰라도 돼. 네 약혼자인 레나는 내가 잘 챙겨줄 테니 그건 걱정하지 말라고. 크큭….”
“뭐?”
그 말로 저 너머에 있는 녀석의 목적을 대충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이 마음에 두고 있던 여자와 내가 약혼을 했고 그 사람을 빼앗기 위해 나를 죽이려 하는 거지?’대충 상황이 정리된 태운은 다시 입을 열었다.
“이것만 열어주면 저 멀리 다른 마을로 떠날 테니 제발 살려줘!”태운은 겁먹은 연기를 시작했다.
여기서 출구를 막아놓은 바위들을 치우는 건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게 끝내면 재미가 없으니 이 녀석이 처한 상황을 알고 싶어졌다.
“하여간… 평민 녀석은 멍청해서 함정에 집어넣기도 편했단 말이지. 결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이것저것 궂은일을 다 한다는 말을 듣고 동굴에서 잃어버린 물건을 가져와달라고 했더니 바로 걸리더라고?”
“크큭… 정말 멍청한 놈이잖아?”
그 옆에 있는 녀석들도 귀족의 자제들인 것 같았다.
평민을 욕할 때마다 웃으며 맞장구를 쳐댔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찜해놓은 여자를 건드려? 네가 죽고 나면 내가 레나를 밤마다 위로해줄 테니 넌 하늘에서 그거나 보면서 자위나 하고 있어!”“크하하하학!!! 너무한 거 아니냐! 크하하학!”그 말을 듣자 태운의 가슴 한켠에서 욱신거리는 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원래는 조금 불쾌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던 태운이었지만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다 보고 있잖아. 빨리 부탁해.’
태운은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흡수했던 마정석들의 주인공들은 태운의 행동을 모두 보고 있었다.
그 활약상에 따라 임무를 바꾼 인물도 있었다.
‘너는 내가 저 너머에 있는 돼지 새끼를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어?’취이이….
이곳의 온도가 굉장히 빠르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이었기에 용암이 태운을 덮치진 않겠지만 이 높은 온도에서는 끽해봐야 1시간 정도밖에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빨리 부탁하라고!”
태운이 소리치자 그제야 태운의 눈앞에 하나의 알림이 떠올랐다.
[그 너머에 있는 돼지 새끼들을 전부 다 죽여!]
“접수했어.”
태운은 출구에 쌓여 있는 돌에 손을 올려놓았다.
“레나는 네가 이런 놈인 걸 알아?”
“알겠냐? 나는 대외적으론 굉장히 착한 놈이거든.”
“이 위치를 누군가 알고 있어?”
“아니? 이곳은 여기 있는 6명의 귀족
자제들만 알고 있어. 누가 와서 구해줄 거란 생각은 버리는 게 좋아.”
“그럼 내가 널 죽여도 되겠네.”
“뭐…?”
쾅!
태운은 손짓 한 번에 출구에 쌓여 있던 돌무더기들이 사라졌다.
“자, 도축을 시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