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24화 (224/379)
  • 224화

    “되게 간만이네요.”

    “그러게 말이다.”

    태운은 오랜만에 자하르의 연구소에 도착했다.

    반년 동안 던전에 있기도 했고 기간트 에이지 당시 원정을 나가는 바람에 거의 1년 가까이 오지 못했다.

    중간에 허덕륜이 마정석을 가져와 흡수를 하긴 했지만 자하르의 연구소에 오는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잘 지내셨어요?”

    “그래, 나야 별일 있었겠느냐. 너야말로 인생이 참 흥미진진하더구나.”그동안 태운의 활약은 전부 온갖 매체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강태운을 모르면 간첩이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으니 자하르가 모를 리가 없었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잖아요.”

    “그게 네 입에서 나올 소리냐. 꼰대 같네.”

    그때, 태운의 뒤를 이어 연구소에 들어온 사람이 말했다.

    바로 서혜연이었다.

    찬영은 자하르의 연구소에 한 달에 3~4번꼴로 나오지만 서혜연은 나오지 않을 날이 없을 정도로 자하르 연구소에 많이 온다.

    아티팩트를 잘 다루는 만큼 연구소에서 하는 아티팩트 연구에 서혜연이 필요하기도 했고 그 대가로 아티팩트를 지원받고 다양한 아티팩트를 사용하는 경험을 얻고 있다.

    “오, 언제 왔냐?”

    “방금 왔어. 근데 너 박사님 연구소에 온 건 거의 1년만 아니야?”“그것보다 조금 안 된 거 같긴 한데… 뭐, 대충 그 정도 됐지.”

    “그럼 ‘그것’도 못 봤겠네?”

    서혜연이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자하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자하르도 뭔가가 떠올랐다는 듯이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뭐… 뭔데?”

    “별것 아니다. 일단 따라와 보거라.”

    자하르는 그대로 뒤를 돌아 엘리베이터로 걸어 들어갔다.

    “우리도 빨리 가자.”

    서혜연도 잔뜩 기대하는 듯한 얼굴로 태운을 데리고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

    자하르가 엘리베이터 한켠에 있는 홍채 인식 센서에 눈을 가져갔다.

    그러자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이 있는 화면에 8개의 층이 추가로 나타났다.

    태운은 그쯤 되자 둘이 무엇을 보여주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혹시 그건가요?”

    “그래. 그거 맞단다.”

    지금 둘이 말하고 있는 ‘그것’은 바로 일반인들도 사용할 수 있는 일회용 마법 아티팩트였다.

    과거에 태운이 보았을 때는 냉장고 정도의 크기로, 실제로 사용하기에는 굉장히 어려워 보였다.

    자하르는 그 당시에 냉장고만 한 이 기계를 소총 수준으로 소형화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적이 있었다.

    자하르와 서혜연의 기세등등한 태도를 보면 소형화에 유의미한 성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음… 3분의 1정도로 줄였으려나? 그 정도면 끈 같은 거 메고 사용할 수는 있겠네. 뭐… 차라리 총을 쓰는 게 낫겠지만.’저번에 보았을 때는 고작 파이어 불릿을 사용하는 데 그쳤으니까.

    태운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때, 엘리베이터는 지하 8층에서 멈췄고 엘리베이터 문 너머로 공기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진공 상태로 보관해야 하는 건 아직 개선하지 못했나 보네요.”“이전 프로토타입을 같이 보관하고 있어서 그런 거다. 최신 모델은 당연히 해결했지. 이젠 분해해서 먼지만 조금 청소해주면 되는 정도로 개선했어.”

    “오….”

    “이제 슬슬 문이 열리겠군.”

    자하르의 말이 끝나자마자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그 너머로 보이는 것은 무기 공장을 방불케 하는 장관이었다.

    소총처럼 생긴 발사기가 수백 개나 있었고 거기에 연결되어 있는 컴퓨터만 한 물체 또한 수백 개나 있었다.

    “처음에는 아티팩트 자체에서 발사가 되게 만들었지만 그래서야 발사 방향은커녕 구동도 하기 쉽지 않겠더구나. 그래서 총 모양으로 발사 장치를 따로 만들었다.”

    “오….”

    자하르는 앞으로 천천히 걸어가 컴퓨터만 한 장치를 가방처럼 어깨에 메고 소총처럼 생긴 발사 장치를 들었다.

    “내가 어깨에 멘 이 장비는 마법 수식을 저장해놓고 마정석의 마나를 추출하고 그 마나로 마법을 시전하게 해주는 장비다.”

    “오우….”

    자하르는 굉장히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았을 것이다.

    태운이야 마정석의 마나를 꺼내 활용하는 것을 밥 먹듯이 해왔지만 다른 사람은 그것을 쉽게 할 수 없다.

    애초에 사람의 마나와 마정석의 마나는 구조가 다르기에 사람이 다룰 수 없었고, 다룰 수 있다고 한들 마정석의 마나 제어권을 가지고 오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런 어려움 때문에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서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에 대한 연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인류는 마정석의 무한한 가능성을 닫아 버리고 전기 대신 사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항상 아쉽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정석이 가지고 있는 마나의 가능성은 매일 마정석의 마나를 끌어 쓰고 있는 태운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마정석의 마나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만 잘 끌어낼 수 있다면 인류의 전력이 크게 상향될 수 있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그 연구의 난이도가 괴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기에 태운도 손을 놓고 있었다.

    역시 인류 최고의 연구자라는 칭호는 허투루 따낸 게 아닌 것 같았다.

    “앞으로 과제는 크게 두 개다. 첫 번째는 당연히 소형화지.”“1년 만에 이 정도…. 놀랐기는 했지만 사실 이 정도 크기여도 실제로 활용하기에는 애매하죠.”컴퓨터 정도의 크기, 등에 메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기는 하지만 이 물건의 목적은 각성자가 아닌 일반인도 마법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일반인이 이 정도 크기와 무게를 가진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사용할 수 있을까?

    군용으로 사용하기에도 애매했다.

    군인의 30%가 각성자가 된 상황에 누가 비싼 돈을 주고 이런 애매한 물건을 사용하겠는가.

    “확실히 소형화는 굉장히 중요하죠.”

    “그런데 쉽지 않구나.”

    자하르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언제나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언행을 보였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보여 온 사람이 자하르였으니까.

    “그래도 단시간에 이만큼이나 작게 만들 수 있었던 건 혜연이의 역할이 컸어.”

    “혜연이가요?”

    “그래.”

    태운은 놀라며 서혜연을 바라보았다.

    서혜연을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서혜연이 잠재력만큼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항상 생각해왔던 이가 태운이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자하르도 어렵다고 생각하는 과제에 대한 답을 내준 게 서혜연이라니.

    “지금까지 수천 개의 아티팩트를 사용해보니까 감이 오더라고. 그래서 조언 좀 해드렸어. 뭐… 조언이고 뭐고 그걸 구현해주신 박사님이 없었으면 그냥 망상이었겠지.”

    “그래도 대단하네….”

    이 말을 들으니 태운은 서혜연이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찬영이가 서혜연이 마스터 등급의 학생이랑 대련했을 때 승률이 좋다고 했었지…?’마스터급 학생과 대련을 해서 승률이 좋을 정도라면 실력은 B급 헌터 상위권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물론, 아티팩트에 기댄다는 평가가 있지만 아티팩트를 다루는 실력만큼은 진짜다.

    “혜연아.”

    “응?”

    “오늘 저녁에 나랑 대련 한번 할까?”

    “오… 너랑 나랑 대련은 처음 아니야?”

    “전에는 실력 차이가 워낙 컸으니까.”

    “이젠 조금 인정해주는 건가?”

    “인정은 예전부터 하고 있었어. 네가 성장하길 기다린 거지.”그 말을 듣더니 서혜연은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태운은 서혜연과 대련하는 것에 신경이 팔려 있어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지만 서혜연의 반응을 알아차렸다고 해서 반응이 딱히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았다.

    그때, 서혜연의 반응을 눈치챈 자하르가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두 번째 목표는 마정석의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을 만드는 거다.”

    “마나를 저장할 수 있는 기능이요?”

    “그래, 언제나 마정석을 들고 다닐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일반인이 자네처럼 아공간 아티팩트를 가지고 다니는 것도 아닐 테니까. 게다가 마법을 구동하려면 최소 중급 마정석 이상의 마정석이 필요한데 중급 마정석은 허가받지 못한 일반인이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니 말이야.”

    “그것도 그렇네요….”

    태운은 자하르의 설명을 들으며 발사 장치에 손을 가져갔다.

    “그런데 구동 원리가 어떻게 되는 거예요?”“하여간… 급하구나. 일단 원리는 발사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알려주마.”

    “알겠습니다.”

    자하르는 아티팩트를 어깨에 멘 채로 옆에 마련되어 있는 사격장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컴퓨터만 한 마법 구현 장치에 마나를 쏟아 넣었다.

    “잘 봐라. 크기와 편리성뿐만 아니라 성능도 엄청나게 향상되었으니까.”

    “오….”

    위이잉!

    마정석을 넣고 버튼을 하나를 누르자 기계가 맹렬히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소총처럼 생긴 발사 장치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툿!

    그러자 엄청난 속도로 매직 미사일이 날아가 정면의 과녁에 꽂혔다.

    “와….”

    한 발 한 발이 상당한 위력이었으며 초당 2~3발에 달하는 연사 속도.

    반동이 강하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소음이 발생한다는 문제점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위력만큼은 확실히 뛰어났다.

    “발사 장치의 원리는 간단하네. 마법 구현 장치를 구동하면 그 안에 있는 마법의 수식이 입력된 소형 장치에 마나가 들어가게 되네. 그럼 그게 반쯤 활성화 상태가 되는데 거기에 전기 신호를 주면 바로 완전 활성화 상태가 되고 장치의 총구 방향으로 발사가 되는 거지.”“그렇… 잠깐만요. 혹시 그 마법 구현 장치 안에 있는 소형 장치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태운은 자하르의 설명을 들으며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태운은 그게 아닐 거라 생각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소형 장치는….”

    자하르는 태운의 질문에 소형 장치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고 설명을 이어나갈수록 태운의 생각은 확신이 되어 갔다.

    “…대충 이런 거란다.”

    “맙소사….”

    태운은 충격에서 쉽게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사실 충격보다 감동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었다.

    ‘자하르 박사님이 만든 소형 장치, 내가 에테르로 만든 룬석과 별반 다르지 않아.’원리도, 구성 성분과 구성 방식도 모두 달랐지만 효과는 같은 것이었다.

    신들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힘.

    오직 에테르로만 할 수 있다고 여겼던 것이 인류의 ‘과학’으로도 가능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감동이 몰려왔다.

    태운은 그것을 자하르가 만들어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존경심이 마구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박사님… 당신은 정말 천재입니다.”

    “이놈이 갑자기 왜 이래?”

    자하르는 그런 태운을 보고 굉장히 당황했다.

    “소형 장치… 정말 엄청난 것을 만드셨습니다.”“하긴… 이 소형 장치를 만드는 게 정말 힘들었다. 사실 소형화를 진행하다가 막힌 것도 이것 때문이다. 이걸 준 활성화 상태로 만들기 위해 수식을 입력하고 마나를 주입해야 하는데 도저히 이것보다 작게 만들기가 쉽지 않더구나.”태운은 그 말을 듣고 바로 아공간 벨트에서 룬석을 꺼내 자하르에게 건넸다.

    “혹시 이게 있으면 도움이 되겠습니까?”

    “이게 뭐지?”

    “룬석입니다. 제가 만든 건데 마법 구현 장치 안에 있는 소형 장치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습니다.”그 말을 들은 자하르는 경악하며 강태운을 쳐다보았다.

    “괴물 자식….”

    한 명은 천재, 한 명은 괴물.

    천재와 괴물의 협력으로 만들어낼 물건이 세상을 뒤집어놓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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