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208화 (208/379)
  • 208화

    타닥! 탁! 타탁!

    탁! 타타타탁!!

    “윽….”

    검 잡는 손을 양손에서 한 손으로 바꾼 태운은 찬영에게 맹공을 쏟아부었다.

    태운은 사실 검을 양손으로 쓰는 것보다 한 손으로 쓰는 것을 선호한다.

    더 자유롭고 즉흥적인 검술을 펼치기에는 양손보다 한 손으로 잡는 편이 더 나으니까.

    파악!

    태운은 찬영의 검을 피하고 목검의 발등을 밟은 뒤 찬영에게 검을 휘둘렀다.

    “이런 미친….”

    찬영이 목검을 놓치지 않기 위해 자세를 낮췄는데 태운이 그 틈을 노린 것이다.

    퍼억!

    태운은 찬영의 어깨를 목검으로 가격했다.

    “1점.”

    “하아….”

    이번 대련의 승리 조건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목검으로 적의 몸을 세 번 가격하면 승리.

    원래는 둘 중 한명이 쓰러질 때까지 대련이 이어졌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둘 다 쉽게 쓰러지지 않게 되어 룰을 이렇게 바꾸었다.

    ‘대련 한 번 하는 데 세 시간씩 걸리는데 바꿀 수밖에 없지….’태운이 1점을 딴 후로 둘의 대련은 잠시 소강상태가 되었다.

    찬영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입을 열었다.

    “빡세네.”

    “이야, 많이 늘었네?”

    “2년 전만 해도 너한테 그런 말 들을 줄은 상상도 못 했는데.”“뭐… 아카데미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근접 전투 기술은 네가 조금 더 나았으니까.”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검술은 태운이 더 나았을지는 모르겠지만 다른 근접 전투 기술은 찬영이 더 나았다.

    특히 창술은 찬영이 압도적으로 훌륭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자.”

    “그래.”

    * * *

    30분에 걸친 태운과 찬영의 대련 끝에 3:1로 태운의 승리가 되었다.

    “후아….”

    “후….”

    태운과 찬영 둘 다 종일 달려도 지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고작 30분 동안 대련했을 뿐인데 모두 기진맥진해서 뻗어 버렸다.

    그만큼 둘의 대련이 치열했고 둘의 집중력을 잡아먹었다는 뜻이다.

    “네가 이겼네.”

    “창이었으면 3 대 1로 내가 졌겠지.”

    “이제 그런 건 의미 없지. 진 건 진 거야.”

    태운은 앉은 채로 다친 왼손을 회복시켰다.

    “이러고 있으니까 옛날 생각나네.”

    “옛날? 얼마나 옛날 말하는 거야?”

    태운과 찬영이 친해진 건 생각보다 오래되지 않았다.

    고작해야 2년이 조금 넘었다.

    하지만 둘은 치열한 경쟁을 통해 서로의 유대감을 쌓았고 그것은 고작 2년 동안 쌓은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깊었다.

    “옛날… 생각해보니까 길어야 2년이네.”

    “그러게 말이다. 한 5년은 된 것 같은데.”

    2년 전 태운은 스타지에르에서 3년 차가 될 때까지 아무것도 못 하고 있었다.

    모두가 태운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있을 때 찬영만큼은 태운을 친구로 대해주었다.

    태운은 찬영이 강함을 가지고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자신을 그렇게 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구찬영이라는 사람의 인간성 자체가 그랬던 것이다.

    태운은 찬영에게 받은 게 많았지만 꼭 태운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찬영도 태운을 보며 여유롭게 훈련해오던 자신을 다그치며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찬영도 태운에게 항상 고마운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일단 나가서 쉬자. 내일부터 다른 길드원들 훈련도 본격적으로 시켜야 하니까.”“그래. 나는 간만에 아버지 일 도와드리러 가야겠네.”

    “아, 마정석 창고 소장님? 잘 지내시지?”

    “당연하지. 너 마정석 창고 그만두고 2달 정도는 할당량 못 채운다고 직원분들 엄청 갈구기는 하셨는데 이젠 괜찮아졌어.”

    “참….”

    태운은 마정석 창고에서 마정석 분류 작업을 할 때를 떠올렸다.

    ‘두세 시간 만에 수만 개의 마정석을 분류하고 마정석을 두세 박스씩 얻어 흡수했었지. 시급제가 아니라 성과제라서 가능한 일이었지.’찬영이의 아버지가 태운 덕분에 수익이 늘었다면 굉장히 기뻐하며 태운을 잘 챙겨주기도 했었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가끔은 네가 병원 모시고 건강 검진이라도 받으시게 해. 우린 각성자라서 건강이나 이런 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만 일반인은 다르니까.”

    “고맙다. 내일 모셔가야겠네.”

    “그래,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 효도해야지.”

    “오냐. 그럼 내일 보자.”

    “알겠다~.”

    찬영이 먼저 지상으로 나갔고 태운은 뒷정리를 한 뒤 지하 훈련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 주변의 땅도 사버려야지.”

    이곳은 도로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옆 야산이다.

    이 정도 크기의 땅을 사는 데에는 돈이 부족하진 않았지만 국유지이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아 조금 찾아보았다.

    “행정 재산이니 일반 재산이니 복잡하긴 했지만 다행히 여긴 살 수 있게 되어 있었지.”안 된다고 하더라도 헌터 협회에 입김을 살짝 불어넣어 주면 어떻게든 됐겠지만 말이다.

    도로 인근 야산일 뿐, 국가에서도 그렇게까지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나한테 밉보여서 좋을 건 없으니까.’

    태운이 나라 핑계를 대며 소속을 다른 나라로 옮기기만 해도 지지율이 폭락할 테니까.

    ‘난 내 가치를 아주 잘 알고 써먹어야 해.’

    전대섭만큼의 압도적인 힘과 전폭적인 인기는 없으니 선은 아슬아슬하게 잘 타야겠지만 말이다.

    ‘일단 이 산을 매수 신청 넣어보고 안 되면 손을 써봐야지.’매수 신청이 기각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일단 좀 쉬자.”

    태운은 지하 훈련장이 있는 야산에서 내려와 집으로 돌아갔다.

    “어, 왔어?”

    윤아는 소파에 누워 TV를 바라본 채 태운을 반겨주었다.

    “엉야. 왔다. 밥 금방 차려줄게.”

    “아, 기다려. 아까 배달시켰어.”

    “뭐 시켰는데?”

    “오빠가 어제 갈비찜 먹고 싶다길래 그냥 갈비찜이랑 내가 먹고 싶은 찜닭 시켰어.”“어허… 뭘 그리 많이 시켰냐. 둘이 다 먹을 수 있겠어?”“오빠 엄청 먹잖아… 저번에 라면 4개 끓여 먹고 자더니만….”

    “그거 봤어?”

    “응, 봤어. 어쩐지 라면만 사놓으면 다 사라지더라….”

    “하하….”

    윤아는 태운이 연금술을 배우지 말라고 말한 후 알바를 하나 구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태운은 윤아가 알바를 할 때마다 돈은 내가 벌 테니 공부나 하라고 했지만 윤아는 자기가 쓸 돈은 본인이 벌겠다며 알바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뭐… 공부도 못하는 편은 아니니까.’

    사실 윤아의 성적은 대체로 전 과목 1등급에 간혹 2등급이 한둘 나오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는 태운의 눈에 차지 않았다.

    태운의 눈에는 단순히 ‘못하는 편이 아니다’ 정도일 뿐. 만족스러운 성적은 아니었다.

    ‘뭐… 알아서 하겠지.’

    태운의 눈에 차지 않았을 뿐, 앞으로 내신 관리만 좀 잘한다면 그녀는 어느 대학이든 쉽게 갈 수 있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

    윤아는 앞으로의 시험에서 올 1등급을 맞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태운처럼 모든 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니까.

    “배달 예정 시간은 언제야?”

    “한… 20분 뒤인 거 같은데?”

    “아, 그럼 나 씻고 나올게.”

    “오케이.”

    태운은 샤워를 한 뒤, 윤아가 시켜놓은 갈비찜과 찜닭을 맛있게 먹고 침대에 누웠다.

    간만에 얻은 평온함이었지만 태운은 뭔가 불안함을 떨칠 수 없었다.

    ‘앞으로 적들이 많아질 거야. 특히 어드벤처 길드를 적대한다면… 그놈들은 무슨 일이든지 벌일 거야.’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윤아를 납치해 협박해올 수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 더 강해져야만 해.’

    에테르도 얻었겠다.

    시험해보고 싶은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태운은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 헌터 협회의 협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강태운입니다. 혹시 처치 곤란인 던전 있습니까? 하나만 공략권 팔아주시죠.”앞으로 실험할 것은 던전 밖에서 할 수는 없는 것들이다.

    “참, 던전 안에 파괴되면 안 되는 게 있다거나 관리를 할 게 있으면 밖으로 빼시거나 다른 던전으로 부탁드립니다.”-그런 건 아니네만… 굳이 그런 걸 물어보는 이유가 있나?

    “아… 별건 아니고… 그냥 던전의 생태를 망가뜨릴 겁니다.”-음…?

    “아, 이렇게 설명하면 안 되겠네요.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그냥 던전을 백지로 만들어 버리려구요.”

    * * *

    “와… 이거 진짜 직원 써야겠는데?”

    “눈알 빠지겠어.”

    태운과 길드원들은 사무실에 앉아서 서류 더미 사이에서 죽어가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우리 같이 고급 인력한테 이런 일 시켜도 되는 거야?”태운은 5일 동안 길드원들을 훈련시킨 후, 다음날 길드의 설립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명운 길드의 초기 멤버와 앞으로의 계획을 본 헌터들은 감탄하며 가입 신청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이었다.

    “이거 감당이 안 되는데?”

    “일단 C급 이상만 추려서 처리해보자.”

    조강현이 C급 이상의 헌터들만 추린 후 가입 인원을 선정하자고 말했지만 태운은 고개를 저었다.

    “아뇨. 순서대로 처리해주세요. 일단 범죄 이력이나 사고를 쳤던 경위가 보이면 바로 탈락입니다.”“하… D급 이하까지 받으면 지금 상태에선 관리도 안 되고 힘들 텐데.”“괜찮아요. 지금 150명까지는 커버 가능하니까요.”

    “알겠다….”

    태운은 가입 신청 서류들을 보며 모두에게 말했다.

    “첫째는 인성이고 둘째는 실력입니다. 인성이 그렇게 좋을 필요는 없어요. 사고를 치지 않을 정도면 됩니다. 실력은 힘의 크기가 아닙니다. 서류상으로 조금이라도 싹수가 보이면 바로 서류 합격시키세요. 2차 면접 때는 직접 실력을 볼 겁니다.”

    “알겠다!”

    “그리고 다들 죄송합니다. 지금 시간부로 가입 신청은 막아두었으니 이것만 처리하고 직원을 고용하도록 하겠습니다.”태운은 고생하는 길드원들에게 사과하고는 다시 서류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음… 이 친구는 글렀네…. 얘는 살인까지 했어? 얘는… 뭐 나쁘지 않네.”태운은 그렇게 계속 서류를 뒤져보다가 뭔가 익숙한 얼굴을 찾아볼 수 있었다.

    “음…?”

    어딘가 익숙하긴 했지만 아는 얼굴은 아니었다.

    “이름은 강판덕… 나이는 28이고… 덩치가 좀 크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너무 익숙하단 말이지.”태운은 눈을 감고 계속해서 그를 떠올리려 해보았지만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마치 꿈에서 스쳐 지나가듯 본 것 같았다.

    ‘잠깐 꿈…?’

    태운에게 꿈이란 진짜 자고 있을 때 꾸는 꿈만 있는 게 아니었다.

    ‘마정석 안에서 본 적이 있는 놈인가?’

    그럼 답은 간단했다.

    지금 태운이 살고 있는 세계를 베이스로 임무를 꾸민 마정석은 단 하나였으니까.

    ‘가장 최근에 흡수했던 그 마정석에서 본 놈이다.’1년간 태운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시험한 그 마정석 말이다.

    태운은 그 마정석 안에서 있던 일들을 떠올렸다.

    ‘잠깐 본 정도로 떠오르는 인상적인 사건….’태운은 그 순간 알아챘다.

    “맞네…. 그 마약 조직의 조직원 중 한 명이었어….”태운은 강판덕의 얼굴을 어디서 보았는지 알아냈다.

    ‘분명해… 내가 블라인드 필드를 깔고 싸워서 스쳐 지나가듯 기억이 났던 거였어. 조직원 중에 가장 앞에 서서 나를 공격하던 놈….’태운은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잠시만요. 이놈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태운은 그렇게 말하고 사무실을 나왔다.

    그러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대섭 선생님, 그 마약 조직의 꼬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