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돌 먹는 헌터-196화 (196/379)
  • 196화

    태운은 창영우를 돌려보내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이제 누가 우리 지하 훈련장을 노린 건지는 알았는데, 어드벤처 길드에서는 어떻게 지하 훈련장의 위치를 알았으며 왜 노리는 건지는….”솔직히 지하 훈련장이 그렇게까지 매력적인 공간인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이질적이며 유용한 공간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국가에 세력을 펴고 있는 길드에서 탐낼 정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정부라면 별의별 이유를 대면서 빼앗을 정도의 가치는 있지만, 타국의 길드에서 굳이 빼앗으려 한다라….’태운은 지하 훈련장의 메리트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보았지만 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지하 훈련장이 일반적인 훈련장에 비해 월등히 뛰어난 점이 뭐가 있을까?’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훈련 장비의 자동 수리 기능이다.

    지하 훈련장에선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도의 마나를 들이지 않아도 스스로 훈련 장비가 고쳐진다.

    ‘그것 말고는… 비밀 장소라는 거?’

    비밀 장소라는 것은 사실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대형 길드 정도 되면 비밀스러운 훈련장 하나 만드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태운은 지금까지 훈련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하나 곱씹어 보았다.

    그러던 중 순간적으로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

    “내가 이걸 왜 생각 못 했지?”

    태운은 지하 훈련장에서 훈련을 하면서 얻은 최고의 기연을 떠올리지 못하고 있었다.

    ‘처칠 할아버지가 있잖아!’

    대현자라고는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속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태운과 그 주변인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을 보면 과거 데블스 에이지 시절에도 헌터들에게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켈러 부인은 데블스 에이지 시절에도 러시아에서 활약을 했었지.’만약 켈러 부인이 처칠과 지하 훈련장에서 만나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면 지하 훈련장을 노리는 이유가 처칠 때문일 가능성은 충분했다.

    대현자 처칠이 주는 도움은 최정상급 A급 헌터도 눈이 돌아갈 정도로 엄청났으니까.

    ‘처칠 할아버지…. 간만에 한번 뵙고 싶네. 여쭤보고 싶은 것도 있고.’태운은 일단 지하 훈련장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침대에 누워 쉬기로 정했다.

    대신 내일 당장 싸워야 할 드래이그 고흐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웠다.

    ‘무조건 해내야만 한다.’

    태운과 전대섭의 진단으로는 지금의 전력에서 인원이 조금만 줄어들어도 헌터들의 승률이 크게 떨어질 것이다.

    ‘지금 상태가 드래이그 고흐를 잡기 위한 최소한의 전력이야. 여기서 패퇴한다면, 더 이상 이곳에 있는 헌터들만으로는 이길 수 없어.’만약 지금 패퇴해 많은 헌터들을 잃는다면 전 세계 헌터들을 모두 끌어와야만 드래이그 고흐를 처치할 수 있을 것이다.

    ‘조금의 실수도 용납할 수 없다.’

    내일 있을 드래이그 고흐와의 전투에서 누가 뭐래도 태운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태운은 조금의 부담감도 느끼지 않았다.

    그저 내일 사용해야 할 마법을 계속해서 되새길 뿐이었다.

    태운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잠이 들었고 결전의 날이 다가왔다.

    * * *

    전대섭은 아침이 밝자 헌터들을 모두 불러 모아 사기 진작을 위한 연설을 시작했다.

    “죽음을 각오해도 이긴다고 장담할 수 없는 적들이다.”헌터가 죽음에 가깝다고들 말하지만 사실 꼭 그렇지만도 않다.

    물론, 던전이 굉장히 위험한 곳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던전 입장 시스템이 굉장히 잘 짜여 있어 자신의 실력 이상의 난이도를 가진 던전에 들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

    헌터들이 던전에 들어가서 몰살당하는 일도 극히 드물고 헌터가 죽는 일도 상시 벌어지는 일이라기보다는 사고로 인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만큼 죽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도 꽤 많지.’헌터라고 해서 무조건 죽을 각오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곳에도 자신의 헌터 등급보다 한두 단계 낮은 던전만 골라서 들어가는 일명 ‘던전 트래블러’가 있으니까.

    특히 던전 트래블러는 중국 헌터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다.

    인구가 워낙 많다 보니 각성하는 사람들이 많아 헌터 인력이 남아도는 까닭이다.

    “죽음을 각오하지 마라.”

    그런 사람들도 있는 자리에서 죽을 각오로 싸우라고 해봐야 통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싸우다 죽으면 헌터 측의 전력 손실로 이어진다. 그렇게 되면 헌터들은 점점 불리해질 것이고 드래이그 고흐에게 모두 몰살당할 것이다. 우리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도 모두 같은 운명을 맞이하겠지.”살아남으라는 말로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전 세계인의 운명이 달렸다는 말로 은근히 책임감을 씌워준다.

    “이번 작전에서 목숨을 내던지지 마라. 그대들은 인류의 자산이고 그대들의 죽음은 인류의 손해이니. 가능하다면 죽지 마라.”하지만 태운의 생각에는 방금 멘트는 전대섭의 실책인 것 같았다.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감성이 필요하긴 하나 너무 감성에 호소한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니까.

    ‘나였다면 레이드가 성공하기 위한 요소가 갖춰졌다는 것을 전달하고 이 레이드가 끝나면 너희는 영웅이 될 것이다, 라며 감성를 건드려 사기를 끌어 올렸을 거야.’태운의 단순한 생각일 뿐, 다른 의미는 없었다.

    전대섭의 연설도 헌터들의 사기 진작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으니까.

    그때, 저 멀리서 먹구름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은 먹구름이 아니었다.

    “드래이그 고흐가 나타났습니다!!!”

    하늘 위를 나는 거대한 드래곤, 드래이그 고흐였다.

    “크흐… 다시 봐도 엄청난 포스야….”

    “온몸이 저릿저릿하구만.”

    드래이그 고흐의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있는 A급 헌터들은 덜했지만 B팀에 속해 있어 그 모습을 직접 본 적이 없던 헌터들은 패닉에 빠지기도 했다.

    “무슨….”

    “이길 수 있는 거 맞아…?”

    방금 전대섭의 연설이 무색하게도 모두 패닉에 빠져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다이치 헌터님,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쿵!

    다이치는 자신의 대방패를 바닥에 내리쳤다.

    “진정의 땅.”

    다이치의 주변으로 푸른 빛의 땅이 생성되었다.

    다이치의 특성은 ‘강화의 땅’이다.

    자신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내에 있는 아군에게 버프를 주는 것이다.

    다이치가 땅을 펼칠 수 있는 한계 범위는 반경 15m에 불과하다.

    절대 좁은 범위는 아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진정시키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한 범위였다.

    하지만 그것은 태운이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마정석 저장, 증폭의 룬.”

    태운은 증폭의 룬을 사용해 다이치의 진정의 땅의 범위를 괴랄한 수준으로 넓혔다.

    ‘마나가 장난이 아니게 많이 들어!’

    태운은 자신의 아공간 창고는 물론 지금 서 있는 바로 옆에도 마정석을 수북이 쌓아놓고 있었다.

    그 덕분에 엄청난 양의 마나가 소모되어도 버틸 수 있었다.

    증폭의 룬을 받은 다이치의 진정의 땅이 헌터 캠프 전체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패닉에 빠졌던 헌터들이 천천히 제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전대섭이 그때를 놓치지 않고 소리쳤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전대섭은 드래이그 고흐에게 확실한 피해를 줄 수 있는 마법인 롱기누스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거대한 창이 완성되어가는 모습을 보자 헌터들은 감탄했다.

    ‘여기서 놀라면 곤란한데.’

    태운은 증폭의 룬을 해제하고 다시 대량의 마정석을 흡수했다.

    “연사의 룬, 메아리의 룬.”

    태운이 전대섭에게 룬을 씌워주자 엄청난 양의 마나가 빨려 나갔다.

    그 마나는 허공에 거대한 창을 두 개나 더 만들었다.

    약 5초 뒤 허공에 3개의 창이 완성되는 순간 롱기누스가 쏘아졌다.

    [쿼어어엉!!!]

    전에 롱기누스의 창에 맞아본 드래이그 고흐는 당연히 전대섭의 공격에 반응했고 그것을 피하기 위해 몸을 틀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하지만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장의 룬, 증폭의 룬, 비행의 룬.”

    “아주 훌륭하구나…!”

    셀은 어느새 드래이그 고흐의 바로 밑에 도착해 있었고 태운은 셀에게 각종 룬을 씌워주었다.

    콰-앙!

    셀은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드래이고 고흐의 날개를 노렸다.

    셀의 공격력이라면 날개를 공격해 녀석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게 가능할 테니까.

    찌이이익!

    [쿼어어어엉!!!]

    셀의 검에서 뿜어져 나온 엄청난 길이의 오러가 셀의 익막을 그대로 찢어 버렸고 드래이그 고흐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드래이그 고흐의 고통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

    “워낙 비늘이 튼튼해서 그런가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모양이군. 당장의 고통 때문에 진짜 위험을 눈치채지 못하다니.”셀의 공격에 고통스러워하는 사이 거대한 롱기누스 세 자루는 이미 드래이그 고흐의 코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쿠우우-.

    롱기누스 세 자루가 드래이그 고흐의 몸에 닿음과 동시에 엄청난 소리가 일대를 울렸다.

    쿠웅- 쿠웅- 쿠웅-.

    [쿼어어어엉!!!]

    롱기누스의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메아리처럼 울리며 드래이그 고흐에게 큰 데미지를 주었다.

    “후우….”

    전대섭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

    ‘전대섭 선생님은 나와 달리 자신의 마나를 사용해서 마법을 펼친 거니까.’거대화한 드래이그 고흐의 비늘을 뚫을 정도의 관통력과 위력을 가진 마법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3~4만의 마나가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전대섭이 사용한 롱기누스라는 마법은 룬의 주인보다도 괴랄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기에 상당한 피로감이 느껴질 것이다.

    ‘선생님이 정신을 차리기 전까진 내가 해야지.’그때쯤 되자 B팀의 헌터들이 멀리서 엄청난 종류의 마법을 쏟아냈다.

    ‘좋아. 롱기누스를 보고 다들 정신을 차리고 싸우기 시작했어.’사실 전 작전에서 B팀에 속해 있던 사람들은 태운이 어떤 버프를 걸어주어도 드래이그 고흐에게 피해를 입힐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의 공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드래이그 고흐의 입장에선 모기 같은 데미지겠지만 그것도 그것대로 도움이 된다.

    사람도 모기에게 물리면 신경이 쓰이지 않는가.

    그거면 충분하다.

    롱기누스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엄청난 양의 마법이 쏟아지자 드래이그 고흐는 몸을 한 번 흔들었다.

    ‘지금이다.’

    태운은 마정석을 저장한 후 눈을 감고 집중했다.

    이 마법도 롱기누스 못지않은 엄청난 난이도를 가지고 있었으니까.

    “광뇌격, 증폭의 룬, 증폭의 룬.”

    “전격 차단의 땅.”

    태운은 증폭의 룬을 자신에게 한 번, 다이치에게 한 번 사용했다.

    그리고 다이치는 증폭의 룬으로 헌터 캠프 전체에 전격 차단의 땅을 펼쳤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태운이 지금 사용할 마법은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어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여기 있는 헌터들이 모두 기절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쿠-궁….

    드래이그 고흐가 있는 곳의 하늘이 새까맣게 물들었고 그 순간.

    콰쾅!

    마치 핵이라도 터진 것 같은 엄청난 폭발 소리와 함께 거대한 단 하나의 낙뢰가 드래이그 고흐의 몸에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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